초이스
[초이스]내 이름은 꾸제트
클로드 바라스, 2016
겉으로 드러내놓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정해둔 나만의 애니메이션 장르가 있다. 제작기법이나 국적과는 상관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장르 구분이랄까. 그중에 하나가 ‘용감한’이라는 장르다. 나만의 ‘용감한 애니메이션’으로 꼽아둔 작품 중 하나가 <내 이름은 꾸제트>다. 주인공인 아홉 살 소년 꾸제트는 알콜 중독인 엄마가 마셔버린 맥주 캔들을 주워다가 다락방에서 피라미드를 쌓으며 노는 아이다. 집 나간 아빠가 그리워서 아빠를 망토 걸친 슈퍼히어로로 그려 넣은 연을 날리기도 한다. 연의 뒷면에는 엄마가 알려준 대로, 아빠와 함께 있다는 어린 닭(영계)도 그려놓았다. 혼자인 엄마는 그날도 술에 취해서 다락방에 있던 꾸제트를 혼내러 올라오다가, 꾸제트가 무서워서 닫아버린 다락문에 부딪혀서 세상을 뜬다. 엄마마저 잃어버렸지만 그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는 꾸제트는 경찰 아저씨 레이몽의 도움으로 보육원에 간다. 그리고 저마다의 이유로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그곳의 아이들과 친구가 된다.
꾸제트가 엄마 머리 위에서 다락방 문을 닫고 한참 있다가 문을 열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은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사고지만 살인의 순간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라니. (최근 청각장애를 지닌 소녀가 수화가 아닌 구음을 내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는 모습을 용감하게 담았던 애니메이션 <목소리의 형태>에 버금가는 충격이다.)
잠시 후 꾸제트가 벽에 기대어 앉자 연이 창밖에서 날아 들어와 꾸제트 앞에 떨어진다.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연만큼 마음도 추락하는 느낌을 연출한 애니메이션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그 용감한 장면에 디테일이 깃들어 있다. 히어로 아빠가 웃고 있는 노란색 연을 꼬옥 끌어안는 꾸제트의 모습, 그때 꾸제트가 기댄 벽에 가득 그려진 무심한 듯 간절한 낙서가 그렇다. 결코 캐릭터와 이야기를 소홀히 다루지 않으려는 정성이 엿보인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무척 어울린다. 캐릭터는 물론이요, 작은 우주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배경 세트까지 오롯이 그 질감과 수작업의 공로가 들여다보이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세계는 어쩌면 쉽게 하기 힘든 이야기를 끝끝내 해내려는 의지를 담기에 참 좋은 그릇이다. 여기에 캐릭터 인형의 손에 들린 작은 책가방, 책상 위의 앙증맞은 크레파스, 다락방에 널브러진 미니 사이즈의 책들이 더해져서 꾸제트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장면 장면이 그런 아름다움으로 빚어져 있는데,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경찰인 레이몽 아저씨가 꾸제트를 차에 태워 보육원으로 가는 순간이다. 꾸제트가 창밖으로 날린 연이 푸른 하늘로 더 높이 올라가도록 사이렌을 울리며 액셀을 밟아주는 레이몽 아저씨와 해맑게 웃는 꾸제트의 표정이 정갈하고 사랑스럽게 표현된다. 연을 함께 날려주는 어른이 이 세상에 한 명쯤 존재한다는 것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프랑스 작가 질 파리의 동명 동화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내 이름은 꾸제트>는 이처럼 결코 밝지 않은 이야기를 알록달록한 화면에 담았다. 파란 머리, 빨간 코, 무표정한 얼굴을 지닌 꾸제트를 중심으로, 당근색 머리의 보육원 대장 시몽, 부끄러울 때면 노란색 앞머리로 얼굴의 반을 가려버리는 알리스, 꾸제트가 반한 갈색 머리의 당찬 소녀 까미유 등 아이들 각자의 사연도 아프기는 마찬가지. 그런데 아이들은 온몸으로 상처를 드러내면서도 사랑받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달콤함과는 거리가 먼 이 아이들의 성장담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정성스런 손길 속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간다. 화려한 몸개그, 헛소동, CG의 세례 없이도 그게 가능하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찬찬하고 조심스러운 움직임과 세밀한 질감은 이 아이들의 머리를 살포시 쓰다듬어주고 싶거나 두 팔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증폭시킨다. ‘어쩌다 어른’이 된 이들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함께 연을 날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보게 되는 애니메이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