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X102
복부인 Mrs. Speculator
임권택, 1980
종종 임권택을 공격하기 위해서 ‘따분한 계몽영화’라는 표현을 동원한다. 이 단정적인 범주와 싸우는 것은 꽤 까다로운 일이다. 그건 공격적인 지시어를 꺼내 든 쪽도 마찬가지이다. 계몽은 매우 긴 철학적 토론의 역사를 지닌 개념이기 때문이다. 계몽은 두 갈래 길의 교차로에 서 있다. 하나는 합리주의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지식 사이에 스며든 권력 장치의 작동방식이다. 물론 여기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칸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칸트는 1784년 계몽주의란 무엇인가, 라고 물어본 다음 1798년 다시 한 번 약간 질문을 바꾸어 혁명이란 무엇인가, 라고 물어보았다. 그사이에 놓여있는 것은 프랑스 대혁명이다. 논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나치를 피해 망명길에 쓴 「계몽의 개념」에서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계몽의 방식에 몸서리쳤다. 계몽이라는 이름의 후퇴. 이 역설적인 패배. 우리들이 계몽이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꺼내 들 때 대부분은 이 책에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잘 알려진 대로 이 글은 다른 단상들과 함께 1969년 4월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책으로 묶였다) 하지만 푸코는 이 말을 재치 있게 뒤틀었다. 그는 계몽주의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계몽이라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라고 되물었다. 이 질문(을 빌린 대답)을 읽은 사람들은 그런 다음 푸코와 하버마스 사이에 있었던 지적인 불화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자리는 이 논쟁을 다루기에 적절치 않다. 하지만 나는 ‘계몽영화’라는 개념 속에 서로 완전히 대립적인 두 갈래 길이 놓여있다는 것만은 환기시키고 싶다. 종종 이 논제를 쉽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게으른 비평가들은 일련의 영화들에 대해서 (미처 정의내리지 못한) ‘계몽영화’라고 부른 다음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그 영화들이 국가에 의해서 산업에 부과된 강제적인 수행인 것처럼 부른다.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도시는 매우 빠른 속도로 근대의 과정을 밟아나갔고 농촌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형태에 머물러 있는 단계가 장기적으로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 존재하는 (약간 따분한 표현이지만) 둘 사이의 간극에는 어떤 지체가 존재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단계가 있다. 여기에는 지주와 소작농 사이의 관계를 일시에 와해시키고 경작자의 농작물에 대한 노동의 결과를 자본주의 노동지대로 전화시키는 과정에는 토지의 소유라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차액지대라는 다소 까다로운 잉여가치의 모순이라는 계산법이 기다리고 있다. 그 계산은 내 몫이 아니다. 이 과정에 국가가 폭력적으로 개입했을 때 예술이 항상 국가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도브첸코는 이 개입을 시적으로 옹호했다. (<대지 Zemlya>(1930)) 부뉴엘은 처음에는 다소 에매한 입장을 취했다. (<빵 없는 대지Las Hurdes>(1933)) 반대로 누군가는 이 개입을 필요한 악이라고 옹호하기도 하였다. 물론 필요한 악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지 잘 알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평범한 악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계몽의 변증법Dialektik der Aufklarung」
이 시기에 임권택은 근심스럽게 그 폭력을 바라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 강제적인 과정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임권택은 (아주 직접적인 의미에서) 계몽교훈극 영화에 가담했다. 그건 사실이다. 아마 그 첫 영화가 <아내들의 행진>일 것이다. 1974년은 새마을 운동이 국가주도로 진행되고 있었던 해이다. 하지만 그런 다음 <아내>와 <옥례기>를 찍고 나서 새마을 영화를 더 이상 만들지 않았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 ‘이후’이다. 임권택은 자발적으로 계몽 교훈극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사태가 기묘한 것은 이 첫 번째 교훈극이라고 부르고 싶은 영화가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다. 이때 임권택은 단순하게 계몽에 합류하는 이상으로 사회 안의 사람이 가져야 할 도덕에 대해서 선악을 구별한 다음 가혹하게 비판하기 시작한다. 이때 공동체의 도덕은 다소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임권택의 도덕은 지나가 버린 공동체와 도래할 (혹은 해야 할?) 공동체 사이에서 진자운동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지금은 틀렸지만 그 비판이 어느 쪽을 향하는지 종종 모호하다. 그래서 다소 따분하게 여겨지는 훈고주의적 향수처럼 느껴지던 설교가 어떤 때는 갑자기 공허할 정도로 원칙적인 자리에 창백하게 머물면서 현실 안에서 거의 불가능한 비판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 둘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임권택의 일관성은 거의 무조건적인 충실함이다. 무엇에 대한? 여기에 이상한 대답이 기다리고 있다. 이웃에 대한 충실함. 이때 자기 자신의 주인의 자리를 잃지 않으면서 이웃의 자리에 대한 충실함이 지켜져야 할 때 여기에는 자기와 이웃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속되어야 하는 전체선이라는 불길한 구름이 떠오른다. 우리를 내려다보는 구름. 그것이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투명한 덩어리. 건드릴 수 없는 자리에 떠 있는 저 그 무엇. 나는 여기서 구름이라는 표현을 단지 문학적 수사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붙잡을 수도 없고 건드릴 수도 없는 저 모호함이 종종 공허하게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저것이 마치 (이 말을 피하고 싶지만) 큰 타자처럼 아주 분명하게 머물고 있음을 환기시키고 싶다. 이 세계에는 어떤 권리도 없고 오직 의무와 책임만이 있다. 어떤 의무? 그것을 쳐다보아야 할 의무. 어떤 책임? 그 의무를 지켜야 할 책임. 그것이 이 세계에 머무는 방법이다. 임권택은 이 방법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종종 그 구름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하고 싶어 할 때 생긴다. 그때 임권택은 그 자리를 법정에 넘기거나(<법창을 울린 옥이>) 혹은 왕의 자리에서 명령하는(<망부석>과 <십년세도>) 형식을 취했다. 그런 다음에도 그의 영화 전체에서 지속적으로 이 자리를 구태여 남겨 놓았다. 종종 임권택이 절제와 단호한 결정에 따른 결말을 마련했다고 설명하는 후기 영화들에서조차 그 자리는 좀 더 세련되고 때로 뒤로 물러나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는 데도 김두한이 어린 시절의 친구 김동회가 혼마치깡의 일본 야쿠자 하야시 패의 앞잡이가 되어 대결을 청할 때 갑자기 지식인이었지만 거지패로 전락한 사내가 끼어들어 상대방의 민족의 도리를 외마디처럼 따져 묻는다. (<장군의 아들>) 나는 임권택의 영화 전편을 놓고 이 자리에 관한 긴 목록을 작성할 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제기하는 질문은 큰 타자의 자리를 가장한 국가의 요구와 임권택 스스로 자발적으로 나서서 그 자리를 채우려는 노력 사이에서 1970년대 혹은 80년대 초의 영화들이 겹치면서 사태를 까다롭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복부인>은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며 그래서 심지어 순수하다고까지 말하고 싶은 계몽교훈극이다. 좀 이상한 것은 이 영화가 1979년 10월 26일 이후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유신을 국가의 이념으로 내세우고 새마을운동을 근대화의 정책으로 집행했던 장기집권 독재자인 대통령이 부마항쟁에 이어진 요정에서의 총격으로 사망한 다음에 만들어진 이 영화에는 아주 잠깐 있었던 80년의 봄의 기운이 전혀 없다. 그건 그해 만든 다른 영화 <짝코>에서 그나마 희미하게 느껴지던 그런 열린 숨통의 약한 기운조차 없다는 점에서 더 이상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임권택은 정치적인 담론들 사이에 가까이 다가간 적이 없다. 물론 <복부인>은 우수영화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임권택의 영화는 우수영화에 선정되지 않은 영화를 찾기 힘들다. 심지어 반공영화에 대한 반(反)영화라고 부르고 싶은 <짝코>도 반공 우수영화로 선정되었다.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복부인>을 보고 난 다음 잠시 멈추게 되는 것은 부의 축적과정에 대한 분노에 가까운 경멸감이다. 그것이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에 대한 분노라는 점에서 정치경제학적인 계몽의 관점에 선다는 사실에 당황스럽고 그럼에도 여기에 그 과정에 대한 분석적 비판이 전혀 없다는 것이 어리둥절하다.
거의 이야기되지 않는 <복부인>은 임권택의 모든 영화 중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며 그래서 심지어 순수하다고까지 말하고 싶은 계몽교훈극이다. 좀 이상한 것은 이 영화가 1979년 10월 26일 이후에 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유신을 국가의 이념으로 내세우고 새마을운동을 근대화의 정책으로 집행했던 장기집권 독재자인 대통령이 부마항쟁에 이어진 요정에서의 총격으로 사망한 다음에 만들어진 이 영화에는 아주 잠깐 있었던 80년의 봄의 기운이 전혀 없다. 그건 그해 만든 다른 영화 <짝코>에서 그나마 희미하게 느껴지던 그런 열린 숨통의 약한 기운조차 없다는 점에서 더 이상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임권택은 정치적인 담론들 사이에 가까이 다가간 적이 없다. 물론 <복부인>은 우수영화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임권택의 영화는 우수영화에 선정되지 않은 영화를 찾기 힘들다. 심지어 반공영화에 대한 반(反)영화라고 부르고 싶은 <짝코>도 반공 우수영화로 선정되었다. 그러던 시절이 있었다. <복부인>을 보고 난 다음 잠시 멈추게 되는 것은 부의 축적과정에 대한 분노에 가까운 경멸감이다. 그것이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과정 자체에 대한 분노라는 점에서 정치경제학적인 계몽의 관점에 선다는 사실에 당황스럽고 그럼에도 여기에 그 과정에 대한 분석적 비판이 전혀 없다는 것이 어리둥절하다.

임권택의 새마을 운동 계보
임권택은 돈을 종종 징그럽게 쳐다본다는 인상을 준다. 내가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반복적으로 마주친 것은 돈에 대한 그의 태도이다. 마치 임권택은 돈이 자본주의의 형식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전염병인 것처럼 대하면서 돈을 다루는 등장인물들의 관계 사이에서 그 누군가의 악에 의해 다른 누군가가, 혹은 그 전체가, 붕괴되는 대신 아무 문제 없었던 관계에 돈이라는 불순물이 끼어들어서 생겨난 새로운 관계 사이의 잉여가치에 의해 타락하는 것처럼 다루었다. 여기서 이 설명을 경제적인 관점으로 문제 제기하는 것은 요점이 아니다. 물론 자본주의는 잉여가치의 형식 자체의 비밀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그 잉여가치의 이면에 숨겨진 그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다룬다. 미처 보지 못했지만 형식 뒤에 숨져진 돈의 이면이 만들어내는 물신숭배 속에서 붕괴되어가는 과정을 다룬 첫 번째 영화는 <잡초>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가정한다. 그런 다음 그는 긍정의 계열과 부정의 계열 양쪽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전자의 계열이 ‘새마을 영화’인 <아내들의 행진> <아내> <옥례기>로 이어진다면 후자는 <맨발의 눈길> <내일 또 내일> <복부인> <오염된 자식들> 그리고 <티켓>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런 다음 마치 이것이 돈에 대한 이론적 실수인 것처럼 양쪽의 계열 모두 갑자기 사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임권택이 함께 계몽교훈극의 양식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돈의 문제가 완전히 이야기에서 쫓겨난 것도 아니다. 다만 돈의 운동이 관계 사이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관찰을 중단했을 뿐이다. 이 두 개의 계열에서 이상한 것은 한쪽에서 긍정적인 가치로 다루었던 부의 축적이 다른 한쪽에서는 수수께끼처럼 악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두 개의 계열은 거의 공존하듯이 동시에 진행되었으며 마치 임권택은 둘 사이에 아무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번갈아 두 계열 사이를 오갔다. 여기에 단순하게 시골과 도시의 대립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내>는 서울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반대로 <티켓>은 이전의 영화들이 무대로 삼았던 서울로부터 강원도의 작은 항구도시로 물러난다. 물론 둘 사이에 약간의 차이는 있다. 하나는 부의 축적을 향한 ‘선한’ 의지가 있다. 다른 하나는 부의 효과에 의해 ‘나쁜’ 선택을 한다. 물론 그 둘이 결국 도달하는 차이는 정반대의 자리이기는 하지만 문득 그 결과를 바라보면서 그 둘이 서로에 대한 외설적 버전이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을 품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둘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복부인>은 그 점에서도 좀 괴상해 보인다. 임권택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희극에는 자신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약점을 고백하곤 했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무겁고 종종 어두우며 희극적인 요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건 처음부터 그러했다. 나는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내내 낭만적인 기분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이따금 희극영화를 만들긴 했지만 1969년에 만든 시인 천상병의 기행에 관한 희극 <신세 좀 지자구요> 이후 임권택은 이 장르를 완전히 잊은 것처럼 보였다. <복부인>은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조금도 우습진 않지만 임권택은 그녀들의 행동을 다소 과장된 톤으로 우스꽝스럽게 다룬다는 점에서 희극에 가깝다. 이 영화는 이미 제목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한혜숙이 연기하는 한 여사가 달동네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복부인이 되어 처음에는 아파트 투기를 하다가 땅 투기에 나서고 그녀들을 상대로 커미션을 받던 부동산 업자가 사기를 치고 해외로 달아나려던 순간 경찰이 이들을 덮쳐 모두 감옥으로 간다. 희한하게도 이 영화에서 고등학교 동창으로 나오는 세 여자는 이름을 부르는 대신 서로에게 ‘여사’라는 호칭으로 부르면서 끝내 우리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말하자면 익명의 존재. 그녀들은 누구나 그 자리에 불려갈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며 또한 누구도 그 자리에 가면 안 된다는 경고가 거기에 있다.
<복부인>은 그 점에서도 좀 괴상해 보인다. 임권택은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희극에는 자신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약점을 고백하곤 했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무겁고 종종 어두우며 희극적인 요소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건 처음부터 그러했다. 나는 임권택의 영화를 보면서 내내 낭만적인 기분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이따금 희극영화를 만들긴 했지만 1969년에 만든 시인 천상병의 기행에 관한 희극 <신세 좀 지자구요> 이후 임권택은 이 장르를 완전히 잊은 것처럼 보였다. <복부인>은 거의 대부분의 장면이 조금도 우습진 않지만 임권택은 그녀들의 행동을 다소 과장된 톤으로 우스꽝스럽게 다룬다는 점에서 희극에 가깝다. 이 영화는 이미 제목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한혜숙이 연기하는 한 여사가 달동네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복부인이 되어 처음에는 아파트 투기를 하다가 땅 투기에 나서고 그녀들을 상대로 커미션을 받던 부동산 업자가 사기를 치고 해외로 달아나려던 순간 경찰이 이들을 덮쳐 모두 감옥으로 간다. 희한하게도 이 영화에서 고등학교 동창으로 나오는 세 여자는 이름을 부르는 대신 서로에게 ‘여사’라는 호칭으로 부르면서 끝내 우리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말하자면 익명의 존재. 그녀들은 누구나 그 자리에 불려갈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며 또한 누구도 그 자리에 가면 안 된다는 경고가 거기에 있다.










한 컷으로 촬영된 들고찍기
두 번째 괴상한 점. <복부인>은 임권택의 영화에서 가장 난폭한 카메라의 움직임을 지닌 영화이다. 임권택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카메라를 들고 찍는 것을(hand_held) 선호하지 않는다. 그는 정교한 구도를 선호하며 종종 그 자리에 멈춰 서서(fixed) 등장인물을 바라보거나 때로는 그냥 내버려두는 것만 같은 거리를 선택한다. 더군다나 임권택은 <복부인>을 찍은 이듬해 그의 가장 명상적인 영화 중의 한편인 <만다라>를 그렇게 멈춰 선 채 망원렌즈로 멀리서 바라보면서(long_shot) 찍었다. 그는 그때 자신의 촬영 스타일의 변화를 찾고 있지 않았다. 임권택은 사실상 <족보>에서 자기 스타일을 찾았고 그런 다음 그걸 밀고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복부인>은 거의 예외적으로 인물을 따라 카메라를 들고 찍으면서 몹시 흔들리거나 때로 인물 동선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당신은 이때 가벼운 경량 디지털카메라가 아니라 무시무시하게 무거운 미첼 필름 카메라로 영화를 찍던 시절이라는 것을 셈에 포함시켜야 한다. 임권택이 여기서 서정민에게 요구했을 카메라의 스타일은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뉴스를 찍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는 지금 복부인의 생태를 고발한다는 심정으로 따라가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그래서일지 모르지만 <복부인>은 드물게도 (그리고 아마 거의 마지막으로) 1.33 사이즈로 찍은 영화이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이 영화의 화면을 보고 있으면 고전적인 4대 3 비율의 텔레비전 모니터가 떠오른다. 만일 스타일로 설명한다면 <복부인>은 <족보> 이후 이어지는 일련의 나중에 나타날 것의 준비라는 과정의 바깥에 놓여있다.
하지만 이것을 단순하게 불순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영화에 담긴 분노가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보는 내내 그걸 느낀다. 그래서 그 과정 자체를 중단하고서라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그 어떤 대상이 여기에 있다. 이때 해야 할 그 무엇이 나중에 나타날 그 무엇을 방해하고 있다.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대목은 여기에 있다. <복부인>은 나중에 나타날 그 무엇과 타협할 수 없는 과정에 대한 부정적 계기인 것이다. 우리가 이걸 완전히 역전시켜서 물어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 <복부인>에서 임권택이 한 것은 이 일련의 과정에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걸 해야만 했다. <복부인>은 이야기 안에서 보기에는 도덕적이지만 형식적으로 이 영화는 임권택에게 윤리적인 결정이다. 그걸 해야만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 그리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걸 한다. 나는 지금 <복부인>의 미학적 결정을 물어보는 중이 아니다. 이 영화를 형식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간다면 너무 빈곤하고 앙상해서 누구라도 그냥 빨리 지나쳐가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왠지 여기에는 임권택이 이건 그렇게 해야만 한다, 는 어떤 태도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복부인>은 <짝코>가 만들어지던 해에 거의 동시에 만들어졌고 <깃발 없는 기수>와 <만다라>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물론 다른 계열이 여기에 공존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복부인>은 <내일 또 내일>에서 <오염된 자식들>로 가는 그사이에 놓여있다. 여기에는 다루어야 할 그 무엇에 대한 충동과 그것이 불러일으킨 진동의 목표는 형식 안에 통합될 수 없다는 어떤 두려움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내가 임권택의 내면을 말할 수는 없다. 그건 비평의 자리를 훨씬 벗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할 수는 있다. 임권택에게 돈은 미학적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에서 더 있는 그 무엇이다. 후렴구 같은 반복. 더 있는 그 무엇. 그래서 때로 임권택의 계몽교훈극들은 마치 자본주의 바깥에 놓인 것처럼 시작한 다음 거기에 돈이 침입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다소 따분하게 설명하면 임권택은 고전경제학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고 그 잉여의 형식을 분석하는 자리로 밀고 나가지는 않기 때문에 그가 보수주의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임권택이 단지 국책영화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수동적인 영화들을 추월해서 자발적으로 그 과정의 불행과 경제적 행위 뒤에 놓여있는 도덕적 타락을 공격하기 시작할 때 그는 무언가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해야만 한다면 심지어 자신의 영화 안에서 나타나야 할 과정의 형식조차 포기한다. <복부인>이 취한 다소 보수적(일 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 부정확해서 종종 도덕 교과서적)인 관점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섬뜩해지는 순간은 그때 나타난다. 내내 돈의 교환관계에서 계약의 사법적 테두리 안에 머물면서 위법의 행위에 대해서 반감을 표시하던 이야기에서 비교적 주변에 놓여있던 인물들이 한 여사와 함께 계급적 상승을 하는 동안 이따금씩 등장하다가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주인과 노예의 전도된 관계로 도약을 시도할 때 임권택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운 경멸의 태도를 취한다. 이를테면 한 여사의 어머니. 그녀는 영화에서 아주 가끔 등장해서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다음 이야기는 한 여사를 따라가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의 변화를 과정 안에서 보면서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해한다. 하지만 아주 이따금 등장하는 어머니는 마치 그녀의 인격이 집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으로 이 신에서 저 신으로 옮겨갈 때 점프한다. 아니, 차라리 돈이 만들어낸 재산과 그에 따른 부의 축적이 가져온 새로운 관계에서 두 명의 다른 어머니가 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논점이 있다. 돈은 인물과 사회 사이의 매개가 아니다. 돈이 가져오는 가장 큰 효과는 그 인물에 대한 타자로서의 또 다른 그 인물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때 그 인물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 된다. 좀 더 명료한 설명. 그 인물에 돈이 플러스 될 때 그 인물은 +a가 아니라 a라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 혹은 이동하는 것이다. 이게 왜 중요한가? 임권택은 모순이 발생할 때 그 안에서 어떤 종합도 시도하지 않는다. 반대로 모순이 점점 더 확장되면서 전체가 붕괴되어 간다. 다만 그는 그 과정에서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다. 몹시 무서운 사실. 아무리 모순이 확장되어도 세계가 붕괴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건 그의 경험주의적 진술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확장되어도 세계가 몰락하지 않을 때 세계는 끝이 없는 지옥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물은 간신히 견디면서 점점 더 찌그러진다. 그때 항상 임권택이 선택하는 방법은 둘 중 한 가지이다. 그 과정에서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갔을 때 이야기의 고정점이 되었던 인물을 삭제하거나 아니면 이야기 바깥으로 떠나보내는 것이다. 혹은 내보내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복부인>은 <짝코>와 동일한 결말을 맞는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인지도 모르다. 혹은 <만다라>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으면 참선의 세계에서조차 그런 결정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세계가 남는다. 혹은 지옥이 기다린다.
세 번째 괴상한 점, 혹은 맨 처음의 질문. <복부인>이 계몽교훈극의 형식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의 교훈은 어딘가 당혹스럽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는 긴 설교가 나온다. 한 여사를 비롯한 세 명의 복부인은 토지 사기를 당하기 직전 현장을 덮친 형사들에게 체포되어 구조받듯이 경찰서에 잡혀 온다. 이때 마침 그녀들이 땅 투기에 치마 바람으로 바깥으로 나도는 동안 내기 화투에 빠진 남편들이 타짜들의 짜고 치는 도박에 걸려들기 직전 마찬가지로 현장을 덮친 형사들에게 구조받듯이 경찰서에 잡혀 온다. 나는 일부러 복부인과 그녀들의 남편을 거의 반복하듯이 썼다. 그런 다음 그 둘은 우연히도 운 나쁘게 같은 경찰서에서 서로 마주치게 된다.





복부인과 남편의 대면, 그리고 남편의 일장연설
양쪽을 번갈아 본 다음 “지금이 어느 땐데 정신 못 차리고 이래?”라고 야단치는 형사에게 한 여사의 남편이 자기 자신을 비판하는 형식을 빌려서 긴 설교를 한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사기를 해서 얼마의 돈을 땄든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저기 앉아있는 복부인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사람들입니다. 노름판에서의 희생자들은 그 판에 끼어든 사람들로 끝나지만 저들 복부인들의 투기는 사기 도박꾼들보다도 훨씬 반사회적인 해악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저 여자들 때문에 주택과 땅값은 천장을 모르고 뛰고 결국 그 대가를 마지막으로 치르는 것은 저 여자들의 투기와는 하등 관계없는 영세민이요, 실수요자들입니다. 저들이야말로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하게 찍혔고 그러면서 필요 이상으로 길게 이어진다. 영화는 이 대사를 하는 동안 마치 경청이라도 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약간 웅변을 하는 것처럼 하는 이 설교는 <복부인>이 일종의 교육극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환기시킨다. 그들은 교훈을 얻기 위해서 시련을 겪었고 이제 설교를 들어야 할 시간이다. 이 대사가 끝나면 암울한 감옥이 보여지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영화는 끝난다. 대사는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설명으로 이어진다. 이 대사 안에서 땅 투기와 도박 중에 어느 쪽이 더 “반사회적 해악”인지를 따지거나 남편이 아내에게 그렇게 잘못을 따져 물을 자격이 있느냐고 바보같이 반문하는 것은 논점을 벗어난 것이다. 이 대사는 <복부인>이라는 계몽교훈극이 주는 교훈이라는 것이 요지이다. 그런데 이때 이 대사에는 어떤 교훈도 없다. 한 여사를 비롯한 세 명의 복부인이 경찰서에 온 것은 경찰의 부동산 사기단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그녀들의 투기 과정이 드러나 함께 검거된 것이지 그녀들의 땅 투기 과정에서 “투기와 아무 상관 없는 영세민들이요, 실수요자들의” 고발 때문에 여기에 온 것이 아니다. 또한 이야기에서 세 명의 복부인은 서울 인근 지역의 재개발 지구의 농토를 소유하던 할아버지를 속이긴 했지만 그녀들은 그 과정에서 영세민들과 거의 어떤 불화도 겪지 않았다. 그 땅은 내놓은 물건이었으며 그녀들은 중개업자로부터 그 땅을 사들인 다음 되팔았다. 여기에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거래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한 여사는 자신의 남편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설교에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거시적인 경제적 관점을 도입한다면 그녀들은 시차 간 차액을 이용하여 부당한 착취를 한 것이긴 하지만 <복부인>은 그런 관점과는 멀리 있다. 그녀들이 부동산 중개업자 송 사장을 통해 그 정보를 미리 취득하기는 했지만 여기는 지금 1980년이고, 그때 서울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투기는 행정과 자본 사이의 부의 재편과정의 일부였다. 몹시 끔찍한 이야기지만 정확하게 이 시기부터 대통령들도 부동산에 뛰어들어 친인척을 동원하여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물론 예외의 명단이 있지만 나는 논제를 단순하게 만들고 싶다. 이제 막 한강 이남에서 강남이 세워지기 시작하던 바로 그때는 야만의 시간이 시작하던 영년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설교는 교훈의 형식을 빌려 무엇을 건드리고 있는 것일까.
만일 이 대답을 구하기 위해 그저 마지막 장면을 반복해서 본다면 끝내 대답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는 비밀이 있다. <복부인>은 영화가 시작하면 공항에 남편이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서 중동에서 (아마도) 장기간 일을 한 다음 지금 막 귀국하는 길이다. 그런 다음 장모를 만나 호언장담하면서 그동안 600만 원이나 벌었으니 이제 집도 사서 이런 달동네를 벗어나자고 말한다. 그가 되돌려 받는 말은 그 돈으로 어떻게 집을 살 수 있느냐는 대답이다. 600만 원이나 벌었다는 가치의 평가와, 600만 원밖에 벌지 못했다는 대답 사이의 간극. 단순하게 말하면 남편의 노동에 대한 임금의 가치가 느리게 축적되는 동안 재빠르게 상승한 사회 자본의 가치가 추월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꿈은 즉각적으로 좌절된다. 그건 이미 그가 아내와 함께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을 때 예고된 일이다. 그의 집은 마치 등산을 하는 것만 같은 계단을 따라 올라간 달동네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곳엔 택시도 가지 못한다. 아내는 택시비를 낸 다음 잔돈을 받기 위해 운전기사와 승강이를 벌이고 그런 다음 남편으로부터 ‘쪼순이’라는 핀잔을 듣는다. 한 여사는 주택 청약금을 든 아파트를 보기 위해 나갔다가 거기서 복부인으로 나선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고 얼떨결에 그녀들에게 당첨 순위인 아파트 청약번호를 넘긴 다음 며칠 후에 600만 원을 번다. 동일한 액수. 당연한 말이지만 돈은 질적으로 다른 모든 대상을 동일한 가치의 척도로 환원시키기 때문에 그 앞에서 남편이 중동에서 그 돈을 벌기 위해 팔아야 했던 노동력의 양과 시간은 한 여사가 단 며칠 동안 별다른 노력 없이 아파트를 환매한 차액과 동일한 교환가치의 수치가 된다.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은 둘 중 하나이다. 그 하나는 자본주의의 법칙을 부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로 전화된 노동의 형식을 내용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전자이다.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 영화들은 과격한 정치적 해결을 제시하지만 대답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켄 로치는 매번 도식의 덫에 걸려든다. 후자를 선택하고 이 문제의 핵심으로 인물을 끌어당긴 다음 그 심연까지 들여다본 영화는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이다. 물론 임권택이 브레송의 방법을 따른 것은 아니다. 브레송은 그 간극 자체를 영화의 형식으로 만들어서 먼저 돈과 손의 운동을 보여준 다음 그 운동을 감옥으로 이동시킨다. 미셀은 마지막 순간 안타깝게 독백하듯이 말한다. “당신에게 이르는 길은 왜 이다지도 어려운 것이었을까” 두 영화가 모두 감옥에서 끝났다는 점을 환기시키고 싶다. 하지만 <복부인>은 <소매치기>가 아니다. 임권택은 이 계보의 한쪽 끝을 건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형식과 내용 사이의 매듭이 어떻게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서 실재적 추상이라고 부르는 수수께끼에 이르는지를 다루지는 않는다. <복부인>은 다만 형식의 효과 안에서 내용에로 되돌아가기 위해 애를 쓸 뿐이다. 하지만 여기서 형식을 다시 내용으로 전도시키는 과정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 과정에 관해서 약간 도식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한 여사가 자신의 동창인 박 여사와 정 여사와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남편은 이야기의 뒤편으로 물러난다. 한 여사의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남편은 이따금 등장하며 그때마다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바뀐다. 이때 임권택은 <복부인>의 이야기를 사회로 확장하는 대신 가족 안에 머물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시피 한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복부인>은 근본적으로 홈드라마이다. 이것이 맨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의 장황한 설교가 영화 자신과 조응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두 사람 사이에서 거의 바깥으로 나간 남편이 자기의 원래의 자리에로 되돌아오려는 재귀적 주체의 자리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 마치 이 마지막 장면은 <복부인>이 설교의 신과 나머지 영화 전체 둘로 나뉘어 있으며 이 신에서 다른 부분 전체가 미처 말하지 않은 영역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반대로 이 설교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반문이 거기 고스란히 따라온다. 임권택은 이 설교를 단지 아내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야 하며 남편은 (다시 한 번 같은 표현을 반복하면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가부장적 주체의 정립을 위한 헛소리에 가까운 설교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 이전에 임권택의 많은 영화들은 집을 지키기 위해 아내가 나서야 했으며 그녀들은 남편과 역할을 바꾸거나 자식들 앞에서 어머니로서 아버지의 역할을 하거나 때로 그녀 혼자 자립해야만 했다. 남편의 설교가 목표로 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다시 한 번 영화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중동에서 돌아온 남편과 그의 아내 한 여사(와 딸과 장모)가 살고 있는 집은 영세민들의 동네였으며 한 여사가 복부인 동창들을 만나게 되는 아파트 분양 현장에 간 것은 그녀 가족의 실수요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집(home)과 집(house) 사이의 간극이 있다. 그런 다음 이 둘은 내용으로서의 집과 형식으로서의 집으로 분리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그 둘이 조응하는 대신 형식으로서의 집은 갑자기 내용에 구멍을 뚫은 다음 새로운 네트워크로 빠져나가면서 자기의 형식에 조응하는 새로운 참조틀로서의 내용을 찾기 시작한다. 이 공식은 여러 차례 임권택의 영화에서 반복되었다. 이제 서로 다른 두 개의 내용을 갖게 된 형식으로의 집은 자신의 (확대) 재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내용에 집중하면서 낡은 내용을 형식에 대한 형식으로 전도시키기 시작한다. 간단하게 한 여사와 남편 사이의 부부관계는 형식에 지나지 않게 된다. <복부인>은 기이할 정도로 남편과 한 여사 사이에서 부부관계를 보여주는 그들만의 아주 사소하거나 은밀한 장면이 없다. 그런 장면이 비어있어도 될 만큼의 알리바이를 제공할 수 있는 (다소 상투적이라 할지라도) 남편이 한 여사에게 이 관계에서 실패하거나 무심하게 대하는 어떤 순간도 없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남편이 중동에서 벌어온 600만 원이 집을 사는데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 곧장 부동산의 네트워크 안으로 뛰어든다. 임권택은 이 간극이 심화되어가는 과정을 난장판이라고 파악한다. 그는 여기에 어떤 영화적 형식을 부여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임권택에게 영화에서 형식이란 절대적으로 그 인물의 외재적 내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설교는 오로지 재귀적으로 경청할 때만 의미를 갖는다. 그렇게 들어야만 <복부인>이 지닌 계몽교훈극으로서의 진정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여기에는 내용이 형식의 타락에 대한 방어선이라는 교훈이 담겨있다. 만일 그걸 지키지 못하면 내용 자체가 소외의 모습으로 형식에 대한 형식으로 전락해가는 과정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므로 임권택의 도덕은 여기서 나온다. 그는 대상이 자신이 지닌 내용을 포기하고 형식이 압도할 때 타락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때 형식으로부터 내용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과정은 둘 중 하나이다. 대가를 치러야 하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 그때 내용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그 무엇을 잃어야만 이 셈은 비로소 성립된다. 임권택의 도덕이 처음 시작할 때는 항상 보수적인 자리에서 시작하거나 때로는 국책 홍보의 일부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그 자리를 추월해서 자신의 도덕을 집행하기 시작할 때 섬뜩해지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이 시간이다.




갑작스러운 ‘끝’
네 번째 괴상한 점, 혹은 영화 이후의 시간. <복부인>의 마지막 설교의 장면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어떤 화해의 시간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그 둘은 서로에 대한 자기 자신을 위한 반성의 시간이 없다. 설교의 마지막 말을 이렇게 끝난다. “저들이야말로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자들인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저들, 이라고 부른 다음 용서할 수 없는 자들, 이라고 단호하게 판결을 내린다. 남편은 아내를 용서할 생각이 없으며 아마 이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그럴 것이다. 남편은 사기도박의 피해자이고 아내는 부동산 투기의 사기조작에 일부 가담했지만 동시에 피해자의 신분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약간의 벌금을 내고 경찰서에서 풀려날 것이다. 이 부부는 함께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런 다음 남편은 “참으로 용서할 수 없는 자”와 함께 살 수 있을까. 한 가지 더. 아내의 반론은 여기에 없다. 계모가 되어 남의 자식에게 애정을 베풀면서 자기 자식을 홀대하며 평생을 살아야 했던 어머니가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낳은 자식과 마주해서 서로의 입장을 길게 논쟁하다시피 전개했던 <둘째어머니>를 생각해보면 의외라고 생각할 정도로 여기에는 형평성을 잃고 있다. 누가 보기에도 여기에는 남편의 오만이 있다. 이 설교의 앞부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사기를 해서 얼마의 돈을 땄든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저기 앉아있는 복부인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사람들입니다. 노름판에서의 희생자들은 그 판에 끼어든 사람들로 끝나지만...(중략)” 남편은 자기의 자리를 희생자의 자리에 가져다 놓은 다음 복부인을 비판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다소 까다로운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복부인의 “반사회적 해악”을 비판하기 위해서 왜 이 자리에 와야만 하느냐는 것이다. 그 말은 그 전에도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 한 여사는 종종 집에 늦게 돌아오긴 했지만 언제나 귀가를 했으며 그녀는 자신의 가정을 파괴할 생각이 없었다. 언제나 딸을 걱정했으며 남편이 속을 썩인다고 말을 하면서 여전히 관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가 잠시 동안 춤바람이 나긴 했지만 다른 남자들과 성적인 교제를 하고 다닌 것은 아니다. 약간 조롱을 섞어 말하자면 그녀가 부동산 투기를 하고 다니는 동안 남편이 사회경제적인 운동 단체에서 활동을 하면서 갑자기 세상의 모순을 깨닫게 된 것도 아니다. 그동안 남편이 한 것이라곤 화투밖에 없다. 그런데 그 말을 하기 위해서 왜 이 자리가 필요해진 것일까. 나는 이 장소가 경찰서라는 것을 환기시키고 싶다. 임권택은 교훈의 순간 종종 법정이나 경찰서, 혹은 교실과 같은 제도 기구의 장소를 선택한다. 그런 다음 그 설교를 제도의 담론처럼 환유시킨다. 임권택이 이루어낸 환유의 설교를 하는 장면에서 미학적으로도 가장 무시무시할 정도로 어떤 한계까지 밀고 나아간 순간이 <티켓>에서 정신병원에서 진행되는 마지막 대화일 것이다. <복부인>에서 순서는 이렇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결국 타락한 형식이 마지막에 도착할 장소는 경찰서일 것이다. 한 여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맨발의 눈길>) 혹은 미쳐버리는(<티켓>) 것은 여기에 올바르지 않은 목적지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계몽교훈극이다. 이때 이 장소에 형식의 외곽으로 물러나면서 형식이 되어버린 남편이 같은 장소에 도착해야 한다. 여기서 남편이 한 여사에게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 하나는 둘 모두를 사법의 무대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그 형식을 바라볼 수 있는 내용의 일그러진 시선이 필요해진다. 남편은 우월한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여사의 자리에 대한 은유인 것이다. 노름판과 부동산 투기. 타짜들에게 속아 판에 앉아있는 도박 화투의 희생자들. 부동산 투기 전문가들에게 속아 판에 앉아있는 부동산 복부인들. 이 둘 사이에 비스듬히 세워진 거울이 그 둘을 마주 보게 만든다. 회화에서의 관점의 이동에 의한 잉여지식의 자리. 이때 내용은 형식을 내면화하고 주관화시키지 않으면 그 형식이 본래적으로 출발했던 내용의 도착적인 욕망을 읽어낼 수 없는 것이다. 남편이 재귀적 주체의 자리에로 돌아가기 위해 이 말을 할 때 그 설교는 고스란히 그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한 여사의 반론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만일 구태여 그 말을 해야 한다면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임권택은 그 반복을 찍지 않았다. 혹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중요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계몽교훈극의 대답은 언제 와야 하는가. 영화가 끝난 이후로 미루어 놓아쐽옳求짙옛틈句옜덫옛호옰颱督쳐杞옳求짙?임권택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 자리를 영화 안에 남겨놓았다. 이때 이 대답이 구조 안의 일부가 되는 것이 옳은가, 라는 반문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교훈이 목적론적이 되는 것은 옳은가. 그래서 많은 계몽교훈극들은 이 대답을 사후적으로 남겨놓기 위해 그 자리를 영화 바깥에 포함시켜 왔다. 임권택은 그 자리가 가진 불편함을 뻔히 알면서도 그 안에 끌어들이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그의 영화 전체에 걸쳐서 일관되게 유지된 거의 유일한 태도이다. 종종 임권택의 영화를 본 다음 설명적이라고 불평을 늘어놓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도 이 불평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아니, 잘 아는 정도가 아니라 여기에 대해서 물어볼 때마다 다소 몸서리를 치듯이 끄덕이며 대답한다. 잘 아는 것 같죠, 그런데 그걸 정말 알아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거예요. 그러니 그걸 말할 수밖에 없는 거죠. 여기에는 어떤 화해도 없다. 그는 이 화해가 심지어 굴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하겠다. 그러니 그걸 말할 수밖에 없는 거죠. 나는 이 말에 대해서 오fot동안 생각해왔다. 그런 다음 비로소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임권택의 영화는 그 말이 영화 전체의 활동 자체를 통해서만 제대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그 말이 올바른가는 내가 해야 할 질문이 아니다. 내가 할 일은 그 활동을 설명하는 것이다. (계속)
1980년 95분 컬러 2.35
감독 임권택
세경흥업
각본 윤삼육
촬영 서정민
조명 김강일
편집 김희수
음악 정민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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