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정오의 낯선 물체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2000
몇 지난 지금에 와서 돌이켜봐도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데뷔작 <정오의 낯선 물체>는 태국이라는 나라와 그들의 언어만큼 낯설고도 신비한 영감으로 가득찬 영화이다. 이 기묘한 영화의 내러티브를 요약하는 것은 불가능할테지만(그 이유는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한번 달리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방콕의 풍경으로부터 시작해 태국 전역을 여행하는 정오의 낯선 여정을 따라가보도록 하자.
이내 차는 어느 마을에 선다. 흑백 필름으로 촬영된 화면에 생선 파는 여성이 등장해 어린시절 부모가 단돈 몇푼에 자신을 팔아버린 기억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친다. 곧 관객이 이 여성의 기구한 인생사에 빠져들어 동정할 자세를 취할 쯤, 카메라 뒤에서 감독은 뜬금없이 우리가 기대했던 내러티브를 벗어난 요구를 한다. '다른 이야기를 해주세요. 그것이 진짜이든 사실이든.' 그러자 그 여성은 지체장애 소년과 그의 가정교사인 도그파에 대한 꾸며낸 이야기를 들려준다. 감독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태국의 여러 마을들을 이동하며 만난 할머니, 청각 장애인, 십대, 초등학생 등의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이 극이야기를 덧붙어 만들어 주길 요청하고, 이들 인터뷰와 동시에 연출된 극영화로 소년과 도그파의 극영화가 교차적으로 펼쳐진다.
인터뷰를 통해 이 극이야기는 점차 연관성없는 상황들로 구성되기 시작하는데, 가령 이런식이다. 도그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비한 물체인 구슬을 낳고 그것은 곧 별아이가 되는데, 별아이는 도그파를 옷장 속에 가둬버린다. 그러나 도그파는 아무 일 없던 듯 다시 나타나 소년은 놀라고, 곧 그녀는 별아이가 변신한 가짜 도그파란 것이 밝혀진다. 가짜 도그파가 소년을 죽이려 하자 이웃집 사람이 별아이의 목을 졸라 소년을 구해주고, 그 이웃은 도그파의 목을 치료하기 위해 복서가 되기로 결심하고, 종국에 이르러서는 마녀 호랑이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반영한 비약과 단절로 점철된 극이야기는 어떤식으로 진행될 지 종잡을 수가 없다. 더군다나 영화 속 극이야기가 발전함에 따라 어디까지가 다큐멘터리이고, 극영화인지조차 따라잡을 수가 없게 되는데, 마을 사람들의 전통공연을 통해 극이야기가 재현되기도 하고, 극영화를 촬영하는 모습이 중간에 그대로 노출되기도 한다.
영화를 본 뒤 당신을 이 질문에 맞딱드릴 것이다. 이것이 다큐인가 픽션인가? 물론 이 영화는 허구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모큐멘터리도, 마이클무어와 같이 극화된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실상 영화는 그러한 선을 두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는 스토리텔러인 태국 민중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삶을 반영된 무의식을 바라보게 되고, 구전되는 민담이 어떻게 설화로 변해가는 지를 체험하게 된다. <오후의 낯선 물체>를 본다는 것은 다큐와 극, 이야기하기와 듣기, 현실과 환상, 현대와 신화 사이의 경계들을 넘어선 영화 만들기와 서사를 체험하는 영화적 해방구에 들어서는 것과 같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이 해야할 일은 어떤 방법으로든 영화를 찾아 볼 것, 그 다음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다음 영화들, <친애하는 당신>과 <열대병>을 보는 것이다. 아마 당신은 이후의 영화들에서 이 영화의 풋티지가 어떻게 접합되는 지(<친애하는 당신>의 첫장면>), 초등학생의 상상 속 마녀 호랑이가 어떻게 태국의 집단 무의식으로 유령으로 귀환하는 지를(<열대병>의 호랑이) 보게 될 것이다. 이후 영화의 원형들로 가득 찬 <오후의 낯설 물체>는 시작부터 창대했던 낯선 이국의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란 신세계를 향한 첫걸음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