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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아메리칸 앨리

김동령, 2008

[초이스]아메리칸 앨리 대표 이미지

아마도 밤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였을, 한 때 ‘리틀 시카고’로 불렸던 그 곳은 가난에 떠밀려온 한국 여인들의 마지막 피난처였다. 폐허처럼 을씨년스럽게 변해버린 ‘리틀 시카고’는 이제 ‘아메리칸 앨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등지로부터 떠밀려온 이주 여인들의 터전. 김동령 감독은 바로 그 기지촌 골목의 구석구석,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그 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여인들의 삶을 찍는다. 율리아, 마리아, 나스챠, 레베카, 에덜린, 리디아, 그리고 K는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그 곳에 흘러오거나 남겨진 여인들이다. 카메라는 이 여인들의 일상 속에 조용히 자리 잡는다. 

몇몇 장면에서 여인들은 카메라를 쳐다보며 자신의 요동치는 내면을 고백하기도 하지만, 영화가 이들의 삶에 대해 자신의 견해나 시선을 첨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들의 드라마틱한 사연들은 그저 무심한 자막으로 전해질 뿐이다. 영화는 그 어떤 신파도 경계한다. 동정이나 연민어린 접근도, 그렇다고 사회구조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거부한다. 다만, 모두가 떠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곳에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여인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보다 인상적인 건, 이들을 둘러싼 삶의 구체적인 풍경들이다. 다 쓰러져가는 공간 안에 흩어진 삶의 도구들, 이를테면 초라한 빨래들, 낡은 냄비, 소주가 담긴 술병, 벽에 걸린 시계, 싱싱한 야채들, 되찾을 수 없는 꿈처럼 한쪽 구석에 놓인 곰 인형들, 바닥에 널브러진 약봉지, 그리고 지나간 영화가 반복해서 나오는 오래된 텔레비전과 추억의 가요가 흐르는 오래된 라디오..... 거기에 삶과 죽음이 있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회환과 슬픔, 외로움과 분노가 있다. 또한 바로 그 풍경에 카메라가 개입할 수 없고 다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삶이 존재하며, 영화는 그걸 최대한 존중한다. 이 유령 같은 도시, 착취와 폭력에 얼룩진 여인들의 삶을 그 순간만큼은 어떤 잣대로도 재단하지 않고자 애쓰는 카메라의 마음 같은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 여인들의 망각된 죽음 앞에서만큼은 감정적인 흔들림을 참지 못하는 것 같다. 카메라가 동두천의 골목을 떠나 어느 언덕에 방치된, 잡초가 무성한 무덤들, 이름이 아닌 번호가 새겨진 익명의 죽음들 앞을 부유할 때, 분명 그 곳에 존재했으나 죽어서도 기억되지 못하는 자들의 비통함이 영화 속으로 스며든다. 

이제 이 여인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전지구적 자본주의는 가난한 여인들에게 전지구적인 착취의 굴레를 안기고 이들의 삶이 뿌리내릴 장소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삶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여인들에게서 우리는 위안을 얻어야할까. 이들이 그곳을 벗어나는 길은 죽음밖에 없다고 무기력하게 체념해야 할까. 잔혹하고 비정한 세상을 사는 <아메리칸 앨리>의 카메라는 쓸쓸하고 냉정하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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