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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그림자들의 섬

김정근, 2014

[초이스]그림자들의 섬 대표 이미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담은 <그림자들의 섬>에는 오랜 시간을 버텨온, 자신의 신념, 이상, 혹은 의리, 관계 등의 이유로 ‘뭔가’를 놓지 않고 버텨온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신념’이나 ‘믿음’보다는 먹고 사는 것의 문제, 실리가 더 중요해진 요즘, 사는 것에 지칠 때마다 묻고 싶어진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냥 놓아버리면 안 되는지. 그들의 얼굴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서 눈물이 난다. 그들이 버티어냈을 시간들, 견뎌냈을 아픔들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들이 온전히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섬세하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다. ‘희망버스’와 ‘김진숙 지도위원’ 외에는 한진중공업에 별다른 정보가 없던 사람들에게는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역사, 투쟁의 역사, 그리고 노동자들이 싸워온 시간들의 기록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교과서 같은 영화이다. 김정근 감독의 전작인 <버스를 타라>가 희망버스 자체를 집중적으로 기록했다면, <그림자들의 섬>의 80년대부터 이어져 온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 대한 투쟁의 역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버스를 타라>의 프리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영화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조그마한 사진관의 무대 위로 불러 모은다. 80년대 입사한 이제는 나이가 지긋한 중년부터 2000년대 입사한 젊은 노동자들까지 영화는 지극히 평범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기억과 꿈, 아픔과 상처, 일상과 기적의 순간들을 끄집어낸다.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의 용접공이 된다는 꿈에 부풀어있었던 입사 시절부터, 대기업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너무나 열악했던 노동 조건, 옆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후회되고 아팠던 순간들, 민주노조의 설립과정과 투쟁이 확산되었던 승리의 경험 등. 이 영화는 오랜 기간 민주노조를 만드는데 함께 하고, 동료들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그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위해 같은 곳을 지켜온 평범하지만 단단한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영화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퍼즐처럼 맞춰지는 30년 한진중공업의 역사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평범하지만 다양한 시민들의 연대를 통해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줬던 ‘희망버스’와 300일이 넘어서야 고공 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있었던 김진숙 지도위원, 그리고 회사와의 합의로 이 영화가, 그리고 한진중공업 사태가 마무리되면 좋았겠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림자들의 섬>이 <버스를 타라>의 프리퀄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영화의 러닝타임으로 보자면, 이 부분은 영화의 거의 후반부에 해당하지만 보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싸움을 하고 있는 ‘현재’는 굉장히 무겁고 아프게 다가온다.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외면하고 싶은 현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 정권에 들어서면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회사는 복수노조를 설립한다. 설 자리를 잃은 민주노조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끈을 놓지 않는다. “원망하는 건, 지원하는 건 쉬워요. 미워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기다리는 게 힘들지.” 김진숙 지도위원의 이 한 마디는 쉽게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2009년 1월 19일 서울시 용산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화재로 사상자가 발생한 ‘용산참사’는 올해 1월 7주기를 맞았다. 2009년 5월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구조조정에 맞서 이루어졌던 노동자들의 투쟁과 복직투쟁은 지금도 해고자 전원 복직을 위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비극에 대한 진상규명도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는 게 바빠서, 기억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현재에도 여전히 노동자들은 부당한 처우와 잘못된 환경 속에 있고, 어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어야 하는 위기에 처해있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바쁜 이유 역시, 그 불안정한 삶의 모서리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앞을 알 수 없는 그 삶의 모서리를 지키느라 남의 일에는 도통 신경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망각을 거스르는 기억의 투쟁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2014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2016년 8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시간이 꽤 지나 관객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시간의 경과를 느끼기는 어렵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남의 일만은 아닐 그들의 과거와 현재에 동참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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