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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남순아, 2015

[초이스]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대표 이미지

독립다큐멘터리 영화제인 인디다큐페스티발에는 벌써 8년째를 맞이한, 신진작가를 지원하는 ‘봄 프로젝트’가 있다. ‘봄 프로젝트’가 처음 만들어질 때만 해도 제작지원 자체가 드물었고 신진작가를 위한 제작지원은 아예 없었다.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새롭게 진입하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무언가를 계속 만든다는 것은 지루하고 답답한 일일 것이다. 창작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 스트레스는 떨칠 수 없는 숙환 같은 것이고, 그 조건 중 새로운 인물의 출현은 필연적인 것이다.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는 그런 고민의 결과로 ‘봄 프로젝트’를 만들게 되었다. 가난한 영화제는 주변의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 신진작가들에게 비빌 언덕을 만들어주었고 다행히 지금까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덕분에 시작하는 감독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는데, 그들이 달리는 에너지와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스타일, 메시지에 여러 이유로 매혹당하곤 했다.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도 ‘봄 프로젝트’를 통해 만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두 축으로 이뤄졌는데 한 축에는 19살부터 24살까지의 자신의 모습이 담긴다. 각 시기와 관련한 사회의 기대와 개인의 존재 사이의 괴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다른 한 축에서는 괴리가 만들어 낸 당혹감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아주 경쾌하게. 그리고 결말에 가서 감독은 겉으로는 경쾌하지만 고통스럽게 도착한 답에 대해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N포 세대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뉴스 모음으로 시작한 영화는 전형적이지만 20대의 어려움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하지만 감독은 이내 남들은 다 힘들다고 하는 데 자신은 괜찮다며 관객을 배신한다. 사실 이 영화는 불편함에 관한 영화다. 우선 감독이 불편하다. 아빠에게서 70만 원의 용돈을 받는 감독은 자신은 힘들지 않은데 주변 사람들이 힘드니 불편하다, 고 한다. 어떤 이에겐 감독의 불편함이 불편할 수 있다. 감독은 죄책감을 느낀다. 죄를 짓지 않았는데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니 이상한 일이다. 죄책감의 정체를 밝히려 동분서주하던 감독은 그 죄책감이 어쩌면 스스로를 먹여 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일 수도 있겠단 생각에 이른다. 급기야 영화의 제목이 <노동대탐험>에서 <아빠가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로 바뀐다. 그 과정에서 감독 또래 친구들의 노동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누군가 듣고 싶은 목소리가 아닌 자신들의 목소리다. 다양한 알바를 섭렵한 것을 자랑하지만 여전히 다음 주 스케줄을 잡지 못한 친구는 이렇게 살다 죽을지도 모른다며 웃고, 자신의 불안정한 미래를 받아들일 수 있지만 노후를 책임지길 바라는 부모의 욕망이 자꾸 신경 쓰이는 또 다른 친구는 할 수 있을 만큼 독립을 꿈꾼다. 독립하라는 사회의 압력과 노동을 통해 독립할 수 없는 자신을 무능력하다고 비난하는 사회에 독립 ‘할 수 없어서 안 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얘기하는 또 다른 친구는 누구 보다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고 싶다. 감독을 포함해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다큐멘터리에서 전에 볼 수 없었던 인물들이다. 감독은 이야기를 쌓아나가고 관객은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지원받기 위해 불행을 전시해야 하는 사회에서 불행이 아닌 존재만으로 지원할 수 있을까? 우선순위가 있지 않을까? 그럼 불행에도 우선순위가 있는 걸까? 촘촘하게 묻게 된다. 그래서 관객은 불편하다. 특히 과거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제는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기성세대는 더 불편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은 익숙해도 ‘존재의 평등’을 묻는 것은 낯설다. 하지만 이제 ‘존재의 평등’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영화 내내 자신의 자격에 대해 의심하던 감독은 끝내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효율이란 이유로 밀려나고 목숨을 잃는 사회에서 이제는 ‘존재의 평등’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기성세대는 20대에게서 불안을 보지만 그들은 불안의 조건을 확인하고 새로운 가치를 찾으려고 한다. 아주 오래된 미래처럼, 오래 전의 가치여서 이미 잊어버린 혹은 과거의 어떤 것으로 치부되었던 가치들에 대해 새롭게 이야기 한다. 그냥 귀 기울이면 된다. 변명할 수 없고 혼쭐이 날 수 있어 신진작가의 작업은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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