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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소통과 거짓말

이승원, 2015

[초이스]소통과 거짓말 대표 이미지

이성과 감정의 균형이 무너진 사람들이 있다. 여자는 허언증이 심하다. 그녀는 보습학원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가끔 남들 앞에서는 10억 원가량의 투자를 준비 중이라고 말한다. 한편, 그녀와 같은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남자는 다산콜센터에 수시로 전화를 걸어 사회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고는 한다. 여자와 남자는 타인과 정상적으로 의사소통하기 힘들다는 점 이외에도 그 어떤 외침도 들을 수 없는 조용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장 8분 동안 이어지는 원 씬 원 컷의 오프닝은 주인공 여자가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소외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가 시작하면, 학원 실장이 여자를 불러 평소 그녀의 부도덕한 행실에 대해 질타한다. 고압적인 실장의 말투는 금방이라도 여자를 집어삼킬 기세다. 하지만, 여자는 실장이 원하는 대답보다는 헛웃음 소리를 더 많이 내고 있다. 보는 이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이 대화 장면이 지나고 나면, 최소한 여자에게 결여된 것이 단순히 사회성만이 아니라는 직감이 든다. 

영화는 여러 단서를 통해 여자의 내면을 추적할 수 있는 구조를 열어두고 있다. 여자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크게 네 가지 정도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웅얼거리듯이 혼잣말을 하며, 소녀시대의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는가 하면, 가학적인 성생활을 한다. 그녀의 거짓말이나 혼잣말은 의사소통과는 무관한 비사회적 혹은 타락한 언어처럼 보이며, 발작적인 춤과 가학적 성생활은 그녀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어떠한 형벌처럼 보인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봤을 때, 이 여자가 충격적인 사건에 의해 신경쇠약 혹은 정신분열을 겪고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분명, 여자는 상처받은 영혼의 소유자일 것이다. 

최대한 논리적 설명을 자제하는 입장을 취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밑도 끝도 없이 불친절한 것은 아니다. 여자의 자기 파괴적인 태도가 이어지는 중간마다 기습적으로 틈입하는 플래시백이 그녀의 내면이 붕괴되어 온 긴 시간을 더듬어 보게 해준다. 이 영화에서 플래시백은 단순히 서사의 공백을 메우는 장치가 아니라 한 인간의 내면의 역사를 완성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최소한의 안전판 덕분에 우리는 과거 여자가 누군가를 상실한 그 지독한 아픔으로 인해, 현재 그녀가 무엇을 상실했는지조차도 모르는 우울감에 잠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과적으로 여자는 오이디푸스가 제 눈을 찔러 과거를 부인하는 동시에 그 과거의 짐을 떠안았듯이 자발적으로 제 삶을 포기하고 비극적 운명에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누구라도 상실의 고통과 불안의 공포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말한다. 여자의 거울 이미지에 위치한 이 영화 속 남자 주인공 또한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환자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두 남자와 여자가 기어코 만나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대화를 나누고 관계 맺음을 한다는 점이다. 여자가 거짓말을 하면 남자가 그 말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지도 않은 채 또 다른 거짓말로 대응한다. 이러한 대화 장면은 우리가 지금까지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의사소통의 구조를 뒤집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인간적이며 또 아름다운 순간으로 거듭난다. 이처럼, 이 영화는 현대 사회를 병리학적으로 해부하는 가운데 우리가 잃어버린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너무 아파서 차라리 벌거벗겨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작은 위안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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