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이스]올 리브 올리브

김태일,주로미, 2016

[초이스]올 리브 올리브 대표 이미지

김태일, 주로미 감독의 <올 리브 올리브>는 팔레스타인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야 했던 1세대의 이야기가, 인티파다(민중봉기)와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2, 3세대의 이야기가 그들의 일상생활과 함께 들려진다. ‘민중의 세계사’ 세 번째 작품인 이 영화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거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민중들의 이야기를 듣는데 역점을 둔다. 

1948년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그들의 땅에서 쫓겨나기 시작한 시점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분쟁의 시작이 아주 먼 과거의 일처럼 생각된다. 마치 우리의 한국전쟁과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의 역사가 태곳적 일처럼 느껴지듯 말이다. 게다가 이 폭압의 역사가 팔레스타인 인민들에게는 일상의 비극일진데, 마치 내가 이 이슈를 기사나 뉴스로 접했을 때만 일어나는 특별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내 조부모, 부모, 혹은 내가 경험했던 동시대의 이야기가 먼 시간의 일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본질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그 표면의 이슈들만 주입하는 부르주아 미디어에 익숙해진 우리는 대규모 전투와 학살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자살폭탄 현장에서의 절규나 어린 난민의 슬픈 이미지를 소비하지 않는 한 그들의 고통에 무감해진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치 매김 할 수 없는 올리브 나무를 베는 행위보다는 누군가 극적으로 총에 맞아 죽고, 슬퍼하고 절규하는 이미지에 분노하려 나를 준비시킨다. 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미지들에 피로해진 우리의 감각들은 결국 평범한 인민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특별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한다. 비이성적이고 명백한 부조리함 앞에 “알아, 그렇지만 나도 힘들어, 항상 그랬잖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라는 신화를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듣지 않으려 귀를 닫고 보지 않으려 눈을 감았다. 결국 전쟁과 가난에 죽어가는 사람들, 폭압 자본의 고된 노동에 고통스러워하는 인민들과 목숨을 걸고 경계를 넘어서는 수많은 난민들은 내 지각에서 멀어지고 남의 일이 된다. 그리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현재하는 이야기들을 과거 오래전부터 있었던, 내가 어찌해도 바뀌지 않는 무엇으로 자리 잡게 한다. 그래서인지 1999년 가자지구에서의 폭력적인 상황을 경험했음에도, 2009년 이스라엘 야파(텔아비브)에서 “자기 땅을 들어와 보지 않는 한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것”이라 웅변하던 팔레스타인 다큐멘터리 감독과의 만남도 나에게는 이미 먼 과거의 일이 되어 있었다. 선물 받았던 팔레스타인 음악 CD는 여전히 내가 즐겨듣는 음악이며 소장품 중 가장 소중한 선물임에도 말이다. 대상 없는 평화를 이야기하며 실체 없는 자유를 외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시간과의 단절, 기억과의 단절에 대해 생각해 본다. 

땅이다. 삶의 근간이 되는 땅을 잃어버렸을 때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이들은 땅을 통해 이야기한다.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자신들의 터전에서 이유 없이 쫓겨났을 때도, 근거 없이 매일 매일 그 점령지를 넓혀가고 있는 이 폭력적인 상황에도 돌아가고 싶고 지키고 싶은 것은 바로 이 땅이다. 높이 8m 총길이 720km의 폭력적인 장벽에도 이들이 지키고 싶은 것은 대대로 노동하며 살아왔던 이 땅이다. 지붕 없는 감옥에서 살아가야 하는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언젠가는 평화롭게 숨 쉬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고 싶은 땅이다. 단절된 시간과 기억들을 품고 있는 지켜져야 할 땅이다. 그리고 이 땅이 지켜지기 위해 우리는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영화 <올 리브 올리브>는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우리의 ‘무관심’으로 지금도 파괴되고 있는 땅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때다. 대항의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는 각 개인들의 삶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과 공명하기 위해 우리 안 고단함의 실체를 인정하고 치열한 성찰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 놓은 내 안팎의 신화를 해체해야 한다. 그리고 이 들음을 통해 지워졌던 시간들과 기억들을 복원해야 한다. 

영화 <올 리브 올리브>는 들어주는 영화다. 이 영화적 실천이 내 주위의 ‘점령’들을 직시하게 한다. 듣고 공감하며 함께 하는 것, 우리가 이 땅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는 시작이다. 결국 기억에 대한 싸움이다.

관련 영화인

불러오는 중입니다.

관련 영화글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