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빵과 우유
원신연, 2003
<빵과 우유>는 2003년 제작된 원신연감독의 단편극영화이다. 이 영화는 그 해와 이듬해 거의 대부분의 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상을 독식하다시피 한 단편영화의 걸작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이 놀라운 작품은 아직 제작한지 불과 7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고전이 된 듯 한 느낌이 드는 것은 최근의 영화트랜드가 너무 빨리 변하기도 하고 이제는 단편영화들이 예전만큼 강한 여운을 남기거나 생명력이 길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무척 간단하지만 러닝타임은 단편치고는 꽤나 긴 30분에 가깝다. 그러나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빨리 지나간다. 주인공이자 출연자 단 한 명과 커다란 바위 하나가 화면의 대부분이며 원경이라고 해 봐야 철로와 산밖에 보이지 않는다.
며칠 전 해직 통고서를 받은 철도청 소속 선로보수 노동자가 늘 지급되는 빵과 우유를 가방에 넣고 마지막 근무에 나서게 되고, 자신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낀 그가 자살을 결심하고 철길에 누워 열차가 오길 기다린다. 그 순간 커다란 낙석 하나가 철길 위로 떨어지고 선로에 누워있던 노동자는 달려오는 열차와 커다란 낙석 사이에서 본의 아니게 사투를 벌이는 것이 내용의 전부다. 어떻게 보면 자살하려는 노동자가 겪는 해프닝을 그린 것이 전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미덕은 단출한 영화적 형식보다는 블랙유머 뒤에 감추어진 우리 사회의 폐부를 건드린 것에 있다. 대기업 위주의 고용 없는 성장과 그로 인한 끊임없는 삶의 무게와 위협들에 고스란히 노출된 서민과 노동자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에 맞닥뜨린 우리들의 모습을 블랙코메디로 그려냈기에 그 진정성과 영화적 감동이 함께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부인의 잔소리라는 일상과 그의 앞에 놓인 커다란 바위는 삶의 절망이자 어쩌면 그가 살아가야할 이유일지도 모른다. 죽고 싶었던 그가 살아가게 된 것은 바위로 인한 본능적인 노동자의 이타적 행위 일 뿐만 아니라 남겨질지도 모를 가족과 또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상징인 빵과 우유가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짙은 사회성으로 노동의 건강함과 노동자의 위대함을 그린 영화들은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의 접근 방식은 매우 진지한 편이다. <빵과 우유>의 장점은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하면서도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 영화라는 데 있다. 독립영화가 그 강한 주제의식에 비해 형식적 재미와 감동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고 그로 인해 재미없다는불필요한 오해와 평가절하 속에 놓였던 것이 지난 수년간의 일이었기에 이 영화는 더더욱 반가운 영화였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정겨운 독립영화가 되었다.
감독의 친동생인 원풍연씨가 연기한 노동자는 충분한 공감을 일으킬만하고 동시에 단 한 명의 출연자이지만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2004년 그를 정동진영화제에서 보았는데 영화에서 바위를 치우느라 너무 힘을 쓴 나머지 인대가 늘어나 아직 팔이 불편하다고 하니 하나의 단편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 것이 결국 좋은 작품으로 이어졌다는 평범한 진리에 새삼 고개가 숙여지는 순간이었다. 우스갯소리로 감독의 동생이니 노개런티로 출연했을 것이고 초췌한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빵과 우유만 주고 연기를 시키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았는데, 그는 애써 부인하지 않고 미소만 지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빵과 우유>의 제작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특수 제작된 바위였다니 내가 한 우스갯소리가 결국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원신연 감독은 단 한 컷으로 이루어진 단편 <자장가>를 통해 영화적 실험과 실력을 선보인 이후 <빵과 우유>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선보였다. 그후 <가발>을 필두로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 <구타유발자들>을 거쳐 흥행작인 <세븐 데이즈>에 이르러 대중과의 소통에 성공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가 가진 강점인 대중성과 무술감독, 연기자 등 다양한 경력과 재능들이 맛깔스럽게 들어간 좋은 영화들이 양산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