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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동창생들

린 신, 2009

[초이스]동창생들 대표 이미지
 
올해 전주에서 린신 감독의 <동창생들>을 보게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3시간 3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이 영화 한편을 보고나면 현재 중국 인민들의 삶이 한눈에 보인다고 감히 말할수 있다. 2009년에 한국에서 중국 독립영화 특별전이 열렸을 때 몇몇 다큐멘터리 작품을 챙겨보면서 중국의 현재를 조금이나마 엿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창생들>은 그 영화들과는 또다른 방식으로 중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힘은 20여명에 달하는 등장인물들에서 나온다. 주인공이 서너명으로 압축되었다면 특정 인물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중국 인민들 다수의 삶으로 보편화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학교를 졸업해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동학들의 수십년에 대한 기록은 이 영화를 인류학적 가치를 지닌 텍스트로 만들어준다. 

카메라는 1978년 동추안(銅川) 산리통 매광중학 졸업생 20여명의 삶을 따라간다. 예상하듯이 감독 역시 동창생들 가운데 하나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그들이 졸업한 뒤로 수십년간 변화해온 중국의 현재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감독 세대의 기억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그들은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문화혁명을 겪은 세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에게 문화혁명은 무엇을 했다는 기억이 아니라 아무 것도 배운 것이 없다는 텅 빈 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영화는 매광중학 동창생들 각각의 흑백 사진에서 출발한다. 그들의 삶이 대동소이했을 시절, 그들은 모두 미래에 대한 구김살없는 꿈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흐른 뒤 흑백사진 속에서 웃고있던 그들중 누군가는 그때의 꿈을 이루었고 누군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생의 쓰라림에 눈물 흘리고 있다. 그들이 살아온 시간은 그들 각자의 얼굴에 서로 다른 주름과 그림자를 새겨 놓았다. 삶이란게 언제나 그렇듯이.

영화를 보면서 정말 놀란 것은 중국인들의 삶의 방식, 사고 패턴이 동시대 남한 사람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은 큰 차이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닮아있어서 무서울 정도다. 그들 역시 시장경제 구조 속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시민들과 동일한 고민을 한다. 출산, 자녀 교육, 학원문제, 입시 시스템, 집 구매, 부의 축적. 대학 내의 마르크스-레닌연구소는 경영학과와 부동산학과로 바뀐지 오래고 대학생들은 출세를 위해 공산당에 가입한다. 그들의 자녀가 말하는 배우자 선택 기준은 방 몇칸 짜리 집과 자동차 소유 여부다. 엄청난 빈부의 격차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는 공허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혼란스러워진다. 도대체 사회주의 중국과 자본주의 남한의 차이는 무엇인가? 공산당은 그들의 사회주의 국가 인민들에게 도대체 뭐라고 사회주의의 대의를 강변하고 있을까? 중국 인민들에게 공산당은 어떤 의미일까? 망설이다 물었다. 이런 질문이 중국 엘리트 지식인들에게 상당히 민감한 질문이라는 것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지난해 중국 독립영화 특별전에 초청되었던 감독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졌을 때 그들은 직답을 피하거나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독립영화 감독들조차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한번 린신 감독에게 물어보았다. 그 역시 이런 질문을 불편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눈 딱 감고 나의 궁금증을 풀기로 했다. 그러나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이 소심해 보이던 감독은, 의외로 나의 질문에 눈을 번쩍이며 열변을 토하며 대답해 주었다. 중국 사람 어느 누구도 그들의 나라가 사회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오직 ‘그들(당 관료)’만 그렇게 주장한다고. 그는 거리낌없이 대답했다. 

정치적 슬로건으로서 사회주의 이념과 사람들의 삶의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이 영화는 그런 중국의 간극과 모순에 찬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인간의 무제한적 욕망을 제어하는 시스템은 과연 불가능한가? 그들의 삶을 보며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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