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꿈
원창성, 2015
이 온통 하얀 풍경 아래 어딘가에 수학적인 하나의 선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국경이라고 부르는 하나의 허구이다. - Stanley Cavell
<꿈>(원창성, 2015)의 줄거리는 ‘고등학생 오성은 사랑이라는 낯선 감정을 느끼고, 자주 잠들며, 꿈을 꾼다’, 라고 간단하게 요약될 수 있다. 이렇게 요약할 수밖에 없는 것은 오성의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하고, 영화는 사건의 중심을 따라 이동할 생각이 없으며,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서사적 전략을 애써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꿈의 이미지들은 서사의 외부를 떠돌며 오성의 혼란스런 감정의 결들을 드러낸다. 현실 이미지가 멈추자, 꿈의 시간이 찾아온다. 오성의 꿈은 현실을 이질감 없이 드나든다. 현실의 차원과 꿈의 차원 사이에는 어떤 간격이 있는 걸까. 우리는 마치 파도처럼 현실에 닿았다가, 다시 꿈에 닿는다. 닿는 곳 어디라도 아련해지거나, 작은 생채기를 목격한다. 감정의 강도를 가파르게 견인하지 않고, 스치듯 달아나는 오성의 생채기들은 그 시절 낯선 감각으로 산란된 섬세한 에너지들이다.
현실과 꿈의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병치 되는 <꿈>은 동성애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주류 퀴어 영화들의 경향과는 다른 지점에 위치한다. 그것은 육체의 자극적 전시나 금기의 위반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꿈>은 동성애라는 파격성에 주목하기보다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의 불온성을 보여준다. 영화는 동성애라는 소재 자체를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방법으로 구성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것을 보편적 감정에 흡수시키면서, 고등학생 시절의 꿈과 방황 그리고 사랑을 섬세한 감각으로 펼쳐낸다. 동성애와 이성애라는 사회적 코드를 대립시키지 않고, 동일한 감정의 기원을 탐색하는 <꿈>은 왜곡된 사회적 시선의 근저를 흔든다. 사회적 코드의 위계에 대한 폭력적인 전복이 아니라, 한때 우리에게 머물다 떠난 사랑들처럼, 시각 너머 잃어버린 윤리의 지평을 더듬는다.
현대의 감각 체제는 상투적인 자극이 상식의 세계로 받아들여지고, 스펙타클의 강도와 속도의 과잉을 욕망하는 세계다. <꿈>은 이러한 감각 체제의 궤도를 이탈한다. 4:3이라는 화면 비율은 현실과 꿈의 형식을 같은 위계에 놓고, 현실은 마치 다큐의 날 것처럼 구성하고, 꿈은 빛의 왜곡과 외화면의 사운드로 몽환적 이미지를 담는다. 대화 장면은 숏-리버스 숏과 인물의 사이즈로 감정의 흐름을 견인하지 않고, 오히려 서사의 작동과 무관하게 인물들을 공간에 배치하고 즉흥적인 연출에 따른 줌-아웃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기존의 감각 체제를 허물고, 우리의 감각을 더욱 예민하고, 섬세하게 한다. <꿈>은 잊힌 감각이 다시 작동할 때까지 천천히 기다릴 것을 요청한다.
오성의 현실과 꿈을 이렇게 교란할 때, 우리는 오성의 꿈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 걸까. 오성의 꿈을 프로이트가 언급한 ‘소원성취’로서 단순히 해석할 수 있을 까. 오성의 꿈의 이미지는 오성의 언어로 구술된 꿈이 아니라, 현실과 동등한 지위로 우리에게 직접 경험된다. 오성과 오성의 꿈의 간격, 오성의 꿈과 우리와의 간격, 이 간격이 해석을 위태롭게 한다. 영화의 후반부 오성과 우석의 여행지에서의 벌어진 꿈과 현실의 교차, 지연되는 시간들, 그리고 제시되지 않는 마지막 오성의 꿈은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영화가 끝나자 오성의 꿈의 내용은 더욱 궁금해졌다. 그리고 꿈의 해석으로 <꿈>의 논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은, 마치 인과율이 구멍 난 세계를 이해하는 것처럼 지지부진한 일이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