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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청계천의 개

김경묵, 2008

[초이스]청계천의 개 대표 이미지
청계천 복원사업은 떠들썩한 사건이었다. 오랫동안 무수한 사연을 쌓아왔던 공간은 세파를 겪으며 모양새를 고쳐오다, 급기야 산업화 열기에 덮여 버렸다. 하층민의 눈물도 판잣집과 함께 밀려났다. 2005년 다시 얼굴을 드러낸 청계천은 이름처럼 맑아, 금세 관광명소로서 도시의 또 다른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본디 물줄기와 다른 거대한 인공의 모형이었다. 복잡다단한 서울의 단면으로써 바라보노라면 미묘한 심상이 이는 까닭이다.

김경묵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청계천의 개>가 제작될 즈음은 청계천의 낯선 인공성에 막 적응해 가려는 참이었다. 영화 속 도시는 서울이었지만, 그것은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대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때 새마을운동이라 불렸던 이데올로기를 계승하고 있는 건설의 땅, 마초와 공안이 들끓고 있는 감시의 도시. 

영화는 그곳에 머물러 있는 가련한 영혼에 마법처럼 줌인해 들어간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환상성은 압도적인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영화를 내내 지배한다. 인어의 전설을 구슬프게 읊조리는 가운데, 카메라는 일렁이는 물결을 넘어 폭포에 다다랐다, 저 멀리 바라보던 인어를 담는다. 이내 프레임은 고정되고, 액자 밖의 공간으로 나아가 흐느끼는 사람을 만난다. 기괴한 행동을 보이는 그/그녀가 섹슈얼리티에 도취하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틈입한다. 단박에 들어도 폭력적인 소음은 명시적인 협박을 남긴 채 사라진다. “넌 내가 될 수 없어, 영원히.” 되고자 하는 욕망과 가로막는 권력 사이에서 우리는 그/그녀와 함께 꿈결 같은 영화 속으로 깊숙이 미끄러진다. ‘지금도 꿈인지 잠에서 깨어난 것인지 모르겠다’는 내레이션의 고백이 암시하듯 <청계천의 개>의 시공간은 좀체 가늠하기 어려운 초월성을 갖고 있다. 인물이 놓인 공간은 익히 알고 있는 도시이지만, 그것의 리얼리티를 주장하기 어렵다. 때문에 타이틀이 말하고 있는 ‘청계천’은 앞서 언급한 2005년 복개된 청계천과 같지 않다. 어쩌면 무관하다 보는 것이 더 옳겠다.

영화는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의 세계를 분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남자는 인어의 전설을 꿈꾸듯, 또 다른 자신을 욕망한다. 본디 사진 속에 갇혀 있던 원형적 욕망은 방 안에 머물다, 어떤 자극 이후 세상으로 나아간다. 이후부터 영화는 그/그녀가 자아를 찾아가는 혹은 성장하는 수행적 성찰적 로드무비로서 기능한다. 세계에서 그/그녀는 많은 이들을 만나고, 사건을 겪는다. 처음에 그는 장님이었고, 우연히 말하는 개를 만난다. 개를 풀어주는 대가로 눈을 뜨고 호감의 대상을 찾지만, 그때부터 공안의 집요한 표적이 된다. 쫓기는 가운데 다다른 곳은 명품이 즐비한 땅, 자본은 그/그녀를 구분치 않고 소비를 부추긴다. 남자는 그렇게 여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그녀의 욕망은 곳곳에서 시종일관 위태롭다. 위협의 시선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도망 길은 끝이 없고 아득하며 미로와 같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어지럽게 오가는 <청계천의 개>는 파격적인 이미지와 형식적인 실험, 주술적 캐릭터의 등장으로 내러티브를 한없이 해체한다. 하지만 반대로 분명한 서사구조 아래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남자가 된 여자가 괴물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은 남자가 방안에서 벌이는 은밀한 폰섹스와 오버랩 된다. 눈을 뜬 남자는 이 두 가지 정사씬을 끔찍하게 내려다본다. 그의 욕망의 이곳과 저곳은 결국 감시와 통제, 권력이 허용하는 그곳까지였던 것이다. 기묘한 아이러니를 통과하며 남자는 자신이 해방되지 못한 결여된 주체임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작품에 오프닝과 엔딩은 치밀한 대구로서 영화의 비전을 증명하고자 한다. 장님인 채 밀고 갔던 페인트 길은 세계를 통과하고 만신창이가 된 남자 앞에 다시금 나타나 방향을 제시한다. 좁은 길을 묵묵히 통과한 후 물에 이르러, 그/그녀는 함께 청계천의 폭포 앞에 서 있다. 인공의 물은 가짜이지만, 그 또한 세찬 폭포를 일군다. 거대한 모형을 지그시 바라보는 뚜렷한 주체적 시선이야말로, <청계천의 개>가 말하고자 하는 장대한 각성의 시작이리라. 

영화는 욕망을 금기하는 낙인이 선연한 사회의 심연을 스크린에 투사한 후, 주체에게 초현실적인 체험을 겪게 함으로써, 현실의 부조리를 일깨운다. 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영화적 도전은 거칠지만 파괴적이다. 감독의 내레이션은 마지막으로 영화 속 충격을 정서적으로 매만진다. 이를 통해 관객은 영화 속에 세계를 액자에 걸어두고, 진짜 세계로 돌아온다. 그러나 역시 영화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마치 그가 ‘깨어나 있는 상태와 꿈꾸는 상태를 더 이상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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