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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사돈의 팔촌

장현상, 2015

[초이스]사돈의 팔촌 대표 이미지

애정 고백을 해야겠다. 장현상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사돈의 팔촌>(2015)에 대한 마음이다. 감정에 솔직한 채 직행으로 뻗어 나가는 이 영화가 반가웠다. 머리를 쓰기보다는 몸을 쓰는 건강함이 마음을 건드렸다. 몸을 쓴다는 건 말 그대로다. 인물들이 몸과 몸을 스치고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영화의 분위기와 긴장감을 만들어나간다. 덕분에 보는 이의 뭉툭해진 마음도 부숭부숭해졌고 기대감을 갖고 영화의 진행을 지켜봤다. 이 영화가 좀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 지금보다 더 많이 이야기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어 괜히 아쉽고 그렇다. 

20대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다. 다만 사랑하는 상대방이 이종사촌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흔히 말하는 금기시된 관계인데 <사돈의 팔촌>은 넘어서는 안 된다고 여겨지는 금지의 선에 대해서 굳이 캐묻지 않는다. 드라마의 극성을 고조시킬 장치로 쓰려면 얼마든지 쥐고 흔들 수도 있었지만 그 손쉬운 길로는 갈 마음이 없다는 투다. ‘사촌이기 때문에’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싶었을 순간에 상대방을 외면했을 거라 짐작되는 장면들도 있다. 하지만 <사돈의 팔촌>은 혈연 간의 사랑이라는 무게에 짓눌려 주저앉아 울어버리지 않는다. 서로를 향한 자신들의 마음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솔직해지려 한다. 자기 연민이나 감정 과임 없이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사돈의 팔촌>은 상당히 과감하고 저돌적인, 감정에 충실한 영화다.

이종사촌 간인 태익(장인섭)과 아리(배소은)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영화가 시작한다. 어린 태익(문태건)과 유리(오유진, 성인이 돼 이름을 아리로 바꾼다)는 오랜만에 만나 어색하고 서먹한데 그래도 만나니까 좋은 눈치다. 나무 막대기를 들고 칼싸움을 하는가 싶더니 잔디밭을 뒹굴며 논다. 밀가루 반죽으로 장난을 치며 즐거워하다가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지만 이내 티격태격 또 논다. 꼬집고, 치고받고, 잡아끌고, 뒤엉키며 몸으로 친해진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은 <사돈의 팔촌>에서 만큼은 적확한 표현이다. 몸 대 몸으로 얼싸안으며 가까워지는 관계. 카메라는 유년기의 그 육체성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다 태익과 유리가 너른 옥상 바닥에 물을 채우고 걸어 다니며 놀 때가 있다. (상당히 과감한 장난이다. 역시, 아이들의 상상력이란.) ‘첨벙’하는 물소리의 자극을 뒤로하고 태익이 가만히 아리를 뒤에서 안아본다. 이 순간, 두 아이는 난생처음으로 불가해한 감정과 마주했을 것이다. 낯선, 그러나 충분히 따뜻한. 첫 경험이다. 아이들을 그렇게 성인이 돼 재회한다.

<사돈의 팔촌>에서 감정은 몸의 접촉을 통해 전해진다. 그것은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다. ‘사촌이기 때문에’ 몸을 부딪칠 일에 스스럼이 없다. 서로를 툭툭 치는 손짓과 발짓 사이로 서로를 향한 웃음이 엿보인다. 이때 이들의 육체성은 외설적이거나 음험하지 않다. 내숭을 떨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내적인 갈등이야 왜 없겠냐만은 자기감정에 확신을 갖는 데까지는 주저하지 않는다. 잠든 외할아버지 곁에서 태익은 “부정할 수가 없어요... 그럼 저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라는 진짜 고백의 말을 한다. 엄마에게 재혼할 생각은 없냐고 묻던 태익이 이어가던 말도 마찬가지다. “복잡하지만 간단하잖아. 사랑하고, 사랑받고. 끝.” 머리를 굴리면 굴릴수록 사태는 복잡해진다. 이미 몸은 간명하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런 것이라고. 돌이켜보면 영화 시작 직후, 아리가 불쑥 내뱉은 혼잣말도 얼마나 솔직했던가. “사촌이긴 한데 사돈의 팔촌이면 좋겠다.” 마음 가는 상대가 남이나 다름없길 바라는 안타까움을 ‘사돈의 팔촌’이라는 관용구 속에 무심히 툭 던져 놓을 줄도 안다.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장현상 감독은 열혈 스태프 상을 받았다. 직접 각본을 쓰고 촬영까지 했다. 사실 그의 장편 데뷔작 <네버다이 버터플라이>(2013)를 보면서는 도무지 집중을 하지 못했던 기억이다. 온라인에 성인만화 사이트를 만들겠다고 달려들던 혈기 왕성한 10대들의 이야기였는데 에너지가 과하다고 느꼈다. 어쩌면 인물의 내면을 들끓게 하고 그 힘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보는 에너지가 장현상 감독 작품의 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돈의 팔촌>은 그 힘이 보다 정제돼 그 순도가 높아진 결과물이 아닐까. 아, 그러고 보니 감독이 대표로 있는 제작사명도 ‘피도 안 마른 녀석들’이다. 뜨거운 작품의 온도에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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