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수색역
최승연, 2015
1996년 3월, 2002년 17회 월드컵 개최지가 확정되었다.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을 유치하게 되었다. 10개의 월드컵 경기장 중에서, 서울에는 ‘상암동’이라는 생소한 장소에 경기장이 놓인다고 했다. 원래는 ‘난지도’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일대였다. ‘난초와 지초가 가득한 섬’이라는 원래 이름이 무색하게 자연히 쓰레기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지역이다. 과거 국내 땅콩 재배 30%와 싸리 빗자루의 70%를 만들어 먹고 살던 동네였지만 서울시의 강제 수용 정책으로 주민들은 땅을 모두 빼앗기고 쫓겨나 78년부터 쓰레기 매립지가 된 탓이다. 지금도 강변북로를 따라 올라가 자유로를 진입할 무렵에는 악취를 맡을 수 있다. 먼지, 악취, 파리가 많다고 ‘삼다도’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던.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던 땅.
개인적으로 멀지 않은 동네에서 오랜 시간 살아왔기 때문에, 이 <수색역>이라는 이름의 영화가 반가우면서도 의아했다. 근처 동네가 영화의 제목으로 나와 반갑긴 했지만, 저 동네를 가지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일산 혹은 파주에서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은 다들 안다. 수색이 얼마나 오랜 시간 옛 향취(?)를 간직하고 있었는지. 만약 당신이 서울 안에서 멋과 키치적인 맛을 다 뺀 진짜 <응답하라 1988> 정도의 시간대를 거닐어 보고 싶다면 화전-수색-모래내 구간을 추천한다. 여기엔 리얼한 정체가 아직 살아있다.
이게 얼핏 생각하면 ‘삭제되어가는 공간에 대한 기록’ 같은 로맨틱한 영화적 구상을 떠올릴지 모르겠지만, 오랜 시간 그곳을 보아왔다면 그런 생각은 들지 않을 거라 장담한다. 이건 특이점이 없는 그냥 방치에 가깝게 보이기 때문이다. DMC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진행된 상암동 일대를 조금만 벗어나면(굴다리를 하나만 넘어가면) 무슨 이야기인지 대번에 알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20년 전부터 ‘형제 대장간’을 가보고 싶었는데 아직도 못 가봤다. 여전히 영업 중이다.
이 이야기는 이런 수색에서 나고 자란 네 친구의 이야기다. 상암동의 옆 동네. 다시 말해,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의 바로 근처에서 유년을 보낸 이들은 별로 미래에 대한 환상도 꿈도 없다. 그냥 고등학교 대충 졸업해서 공장에 들어가 월급 받고 돈 모아 결혼하고 그런 삶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받아들인다? 이 말도 좀 이상하다. 그냥 태어났을 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처럼 의식조차 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친구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으로 취업 실습에 나갔을 무렵, 이 변두리 동네에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2002년에 한일 월드컵이 개최될 것이며, 재개발이 진행될 거라고. 워낙 낙후된 곳이라 몇 번이나 재개발 이야기는 있었지만 모두 불발로 끝난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다. 1988년 목동이 어떻게 드라마틱하게 변했는지 사람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바람을 타고 동네에 떴다방이 들어오고, 우연한 기회에 원선은 일원이 된다. 반반한 얼굴과 대범한 성격으로 인정도 받고, 취업 실습 나갔던 공장에서 만난 누나도 꼬셔 여자친구로 들여앉혔다.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치고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상우는 열 받아 있다. 공장 누나는 그가 어떻게 한 번 꼬셔 보려고 엄청 노력했으나 실패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술이 얼큰하게 취한 어느 날 상우는 결국 화를 못 이기고 윤석과 싸운다. 그리고, 큰 실수를 해버리고 만다. 그 실수는 너무 커서, 피하려 애쓰고 덮으려 노력할수록 계속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다.
<파수꾼>에 비교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다. 아니, 영화가 보여주는 같은 시간을 지냈으나 어떤 사건을 통해 각자의 길이 갈라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당황과 오해, 그리고 폭력과 파국은 거의 똑같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그러나 내 경우는 <수색역>이 더 와 닿는 면이 있다. 이 영화가 제목을 <시계태엽 장치 참이슬>이나 <이방인> 같은 식으로 달지 않은 이유는 멋 부릴 여유가 별로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호영은 공장에 빨리 적응해 돈을 모으기 위해 답답하고 힘들지만 기숙사에 들어갈 것을 결정한다. 윤석은 어머니의 야채가게를 이어서 운영하기에 바쁘다. 상우와 원선 사이의 일에 신경 쓸 시간도 여유도 없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이 되었지만, 그들의 삶은 마치 이미 30살은 된 것처럼, 당연스럽게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고민, 꿈, 노력 그런 거 없다. 이 공간 속에서 삶은, 다른 걸 꿈꾸는 게 사치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꿈’이라는 걸 꾸는 인물이 있다면 상우다. 아버지의 고물상 일을 당연스럽게 돕던 그는 원선과의 사고 이후 꿈을 꾸기 시작한다. 큰돈, 멋진 여자 그리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희망. 그러나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재개발은 또 불발되었다. 재개발이 예상대로 진행되었다면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걸, 관객은 안다. 이들의 이야기 안에는 찌질하고 한심하게 시작되었으나 기어코 세계가 무너지는 절망이 있다. 호영과 윤선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원선과 상우는 몰랐던 것. 본인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너무 위태롭게,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는 사실. 그들이 봐야 했던 것은 목동에 세워진 아파트들이 아니라, 그곳에서 쫓겨난 사람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고 나란 죽마고우들의 파국은 자신들이 자라난 땅의 역사와 비슷하게 돌아감을 암시한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근대가 겪었던, 없어도 되었을 많은 상처들도 함께 떠오른다. 시간은 흐르고 과학도 발전하고 역사는 대충 진보한 것 같은 느낌으로 사는 시점에서 우리의 시야 밖 어딘가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편한 자각.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들이 처음 공장에 실습을 나갔을 때 꼰대라고 대들었던 인물의 행동을 똑같이 답습하는 호영의 모습. 상처는 봉합되지 않고 버려질 뿐이다. 여태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계속. <수색역>은 이후에도 별로 달라질 건 별로 없을 거라고 말한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솔직하다.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