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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4등

정지우, 2014

[초이스]4등 대표 이미지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비밀이 있다. 그건 절대로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금기이며, “너도 그러고 있지?”라는 듯한 눈빛을 통해 은밀하게 소통되는 것이다. 어쩌면 차라리 ‘공범 의식’에 가깝다. 유치원이든 고등학교든 ‘학부형’에겐, 자신이 옳지 않은 시스템의 부역자이며 석연치 않은 계략의 공모자라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차마 말할 순 없다. 터놓고 말하자면 너무나 끔찍하고, 사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도 없는 이유다.

정지우 감독의 <4등>은 고통스럽다. 이 영화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아이를 위한다는 것이 부모의 체면 때문이며, 교육은 결국 폭력을 수반하며, 오로지 원하는 건 1등일 뿐이며, 경쟁은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 아니라 조장된 이데올로기이며, 부모는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면죄부로 현재를 학대한다. 절대 극적 과장이 아니다. 모두 알고 있었지만 묵인했던 진실. 우린 들켜버렸다.

영화는 의외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흑백 화면으로 처리된 도입부는 주인공 소년 준호(유재상)가 아닌, 장차 준호의 코치가 될 광수(정가람)의 10대 시절 이야기다. 그는 국가대표 수영선수이며 에이스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유력하다. 타고난 천재이며 승부욕도 대단하다. 젊은 날이기에 일탈의 유혹 앞에서 약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본업을 해치진 않는다. 그러나 집단주의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고, 코치의 체벌에 저항한 그는 선수촌을 뛰쳐나온다. 시간은 흘러, 똘망똘망하던 눈빛은 흐리멍덩해졌다. 어른이 된 광수(박해준)는 구민 센터에서 수영을 가르치며 살아간다. 이때 소문 듣고 찾아왔다며 정애(이항나)는 아들 준호와 함께 광수를 만난다. 정애는 4등만 하는 아들을 1등으로 만들어달라고 매달리고, 그렇게 준호의 지옥 훈련은 시작된다.

<4등>은 ‘질문의 영화’다. 준호가 아닌 광수로 영화를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다. 폭력이 싫어 메달을 포기했던 광수는, 이젠 준호를 1등으로 만들기 위해 몽둥이를 들고 매질을 시작한다. 여기 <4등>이 던지는 첫 번째 물음표가 있다. 왜 우린 교육을 폭력과 결부시키는 구조에 익숙한가? 이것은 단지 물리적 폭력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아들이 맞는 것보다 4등 하는 게 더 무섭다는 엄마의 논리, 아이의 멘탈을 끊임없이 깎아내리는 폭언, 1등을 하지 않으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거라는 협박은 아이를 주눅들게 만든다. 그리고 광수는 시간이 지나고 보니, 때려서라도 자신을 잡아주려 했던 사람이 진짜 스승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것은 교육과 결합되어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우리 사회에선 결코 낯설지 않은 경구이자 전통처럼 내려오는 교육 철학이다.

물론 이것은 모두 거짓이다. 폭력은 준호를 1등으로 만들지 못했다. 준호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제일 먼저 결승점을 통과한다. 그런데 아이는 크게 기뻐하거나 들뜨지 않는다. 대신 거울 속의 자신을 본다. 준호는 비로소 자신을 발견했고, 그 모습엔 코치와 엄마의 다그침 없이도 뭔가를 해냈다는 떳떳함이 있다. 이 장면은 ‘폭력-교육’의 고리에서 해방된 아이의 위엄이며, 이 영화의 간절한 메시지다. 폭력의 역사는 우리 대에서 끝내자는 것이며, 더 이상 준호의 엉덩이에 피멍을 만들진 말자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때리고 맞는 시스템에 익숙했던 세대에게 이것은 희생이자 각성이다. 자신이 폭력의 피해자였지만 가해자가 되기를 포기해야 하기에 희생이고, 세상이 어떻게든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수반되어야 하기에 각성이다. 이 세상에 ‘맞을 짓’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관성적으로 때리는 자가 존재할 뿐이다.

그러면서 <4등>은 두 번째 물음표를 던진다. 그 질문은 소박하면서도 만만치 않다. 준호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준호에겐 1등이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그 아이가 수중에서 발견한, 포근하면서도 신비로운, 물과 빛이 만들어낸 세계를 보여준다. 그 세계는 1등이든 4등이든 꼴등이든 중요하지 않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런데 아이가 환상적인 경험을 하는 동안, 어른들은 밖에서 스톱워치를 들고 소리친다. 빨리 밖으로 나와 레이스에 참여해 등수를 가리라고. 하지만 이 모든 건 아이들끼리의 일이다. 

어른들은 침묵해야 한다. 광수도 준호에게 말하지 않던가. “넌 엄마만 없으면 1등 할 수 있다”고. 엄마의 말처럼 4등 한다고 해서 인생 꾸리꾸리해지는 것 아니며, 코치의 말처럼 때려서라도 바로 잡아준다고 해서 1등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설사 1등을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건 더욱 아니다. “1등 하면 기분이 어때요?” 준호는 선배 선수에게 묻고, 후배 선수도 준호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1등 하면 행복한가요?” 아이들이여, 부디 행복하자. 세상의 폭력으로 아프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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