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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할매-서랍

김지곤, 2015

[초이스]할매-서랍 대표 이미지

김지곤은 2009년 어느 날, 오랜 시간 산복도로에서 살아오신 할머니들을 만났다. ‘말필 할매’와 ‘청바지 할매’는 비가 오는 날이면 술잔을 기울이면서 노래를 부르고, 손자들(할머니들은 감독을 포함한 스태프를 이렇게 부른다)이 놀러 오면 수제비나 라면을 뚝딱 만들어서 술판을 벌인다. 한국의 부패한 정치 풍토, 이웃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 젊은이들의 연애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오랜만에 만난 스태프가 반가워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할머니의 시간과 기억은 그들의 주름진 얼굴과 굵은 손마디로 포착되거나, 오랜 시간 할머니 곁을 지켰던 사물들(못, 낡은 대야, 이름 모를 풀과 꽃, 시멘트 바닥)의 응시로 이어진다. 

김지곤이 <할매>(2011)와 <할매:시멘트 정원>(2012)에 이어 <할매-서랍>(2016)을 만드는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우선 제목이 눈에 띈다. 할머니가 단독으로 등장하다가 할매와 시멘트, 정원은 콜론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되비치는 관계에 놓인다. 최근작에서 할매와 서랍 사이에 놓인 하이픈은 시간(2009-2015), 관계(이 놈-손자), 공간(집과 폐허), 사물(시멘트로 구성된 집과 벽-풀과 꽃)의 연결이 부각된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할머니들은 정든 집을 떠나 여러 차례에 걸쳐 이사를 다니고 있기 때문에 동네 친구였던 말필 할매와 청바지 할매는 더 이상 이웃으로 지내지 못한다.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 반주(飯酒) 공동체는 말필 할매의 아들들과 스태프 모두를 포함하면서 점점 대가족이 되어간다. 마치 산복도로가 자생적인 골목과 계단으로 구성된 유기체가 된 것처럼 <할매> 연작을 통해 스태프도 산복도로의 일부로 자리 잡는다(실제로 김지곤은 할머니들의 집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기력이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할머니들은 술과 노래를 사랑하고, 막걸리 사 들고 찾아오는 손자들을 살갑게 맞아준다. 온정으로 이어진 소박한 이웃을 억지로 떼어놓고, 오랜 기간 살았던 집을 강제로 허물고 있는 ‘산복도로 르네상스’라는 정책을 비롯한 부산시의 고압적인 행정은 오랜 시간 그 지역을 지켜왔던 사람들과 사물들에 무관심하다. 처음에는 공원을 조성하겠다던 부산시의 계획은 빌라 건축으로 변질되었고, 할머니들의 집터는 몇 년에 걸쳐 서서히 폐허로 변해갔다. 

할머니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기록하는 카메라에 담기는 대상 또한 변해간다. 철저하게 목소리로 등장하던 감독의 존재(<할매>)는 프레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할매:시멘트 정원>, <할매-서랍>)으로 변했으며, “카메라 치워라”고 얘기하던 할머니는 어느새 카메라를 들고 스태프의 얼굴을 찍게 된다. 할머니들은 카메라를 쳐다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신들을 찍고 있는 기계에 대해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기에 할머니와 카메라의 거리감은 감독과 할머니의 거리감을 좁혀나가는 표지가 된다. 하지만 5년이 흐를 동안 이별과 해체가 이어지기도 한다. 말필 할머니의 개 해피는 이사 간 집을 찾지 못해 실종되었고, 스태프들은 일자리를 찾아 부산을 떠났다. 무엇보다 계단-골목-계단으로 연결되는 산복도로의 비좁고 구불거리는 길들은 평평한 땅이 되었다. 

<할매-서랍>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김지곤과 스태프가 할머니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한 축으로 삼고, 다른 쪽에 철거가 진행되는 과정을 담은 공간과 사물 인서트들을 디졸브한 이미지로 구성한다. 사람과 공간의 머무름/사라짐은 이미지의 겹침으로 인해 시간과 공간의 상실을 극대화한다. 또한 이 영화는 ‘할매’ 연작의 마지막 영화임을 분명히 지시하고 있다. 첫째로 전작에서 사용하지 않는 구체적 날짜를 명기한 자막이 13차례 등장한다. 산복도로의 정의와 ‘산복도로 르네상스’에 대한 부산시의 발표를 제외하면 태풍이 불어 닥친 어느 날의 기록, 해피가 있었다는 사실, 영정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할머니의 말, 할머니들의 이삿날, 할머니의 79세 생일잔치, 평상을 만든 기념으로 함께 먹은 삼겹살 등 감독이 체감한 산복도로에서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둘째로 영화의 타이틀이 러닝타임의 중간쯤에 삽입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할머니들과의 만남에서 시작된 김지곤의 카메라는 산복도로의 이웃이 해체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그럼에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여전히 이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철거 후에도 할머니의 집터에서 몇 년의 시간을 버티고 있는 버려진 냉장고와 무성하게 자라나는 풀들을 끈질기게 응시하는 것이 서랍을 여는 행동처럼 느껴진다. 서랍을 닫는 형태는 할머니의 대가족으로 편입된 스태프의 모습과 산복도로의 계단을 걷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술을 마시던 할머니들의 공간이 서서히 사라졌다는 기록이다. 특히 전작에서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산복도로의 조감도는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이곳을 바라보라는 감독의 요청 같다. 폐허가 된 집터에서 서서히 하늘로 올라가는 시선에 담긴 산복도로는 긴밀하게 연결된 길과 계단,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의 움직임으로 인해 마치 동맥을 흐르고 있는 피처럼 보인다. 그 사이에 구멍을 뚫어놓은 것처럼 덩그러니 놓인 할머니의 집터를 포함한 산복도로는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전체를 스스로 드러낸다. 참혹한 조망이긴 하지만, 김지곤이 포착한 그곳의 자생적인 생명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시멘트를 뚫고 풀이 자라날 것이며, 천막으로 덮어놓은 땅에서도 꽃이 피어난다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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