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초이스]공부의 나라

최우영,스티븐 두트, 2015

[초이스]공부의 나라 대표 이미지

대한민국 입시를 다룬 다큐멘터리나 보도물은 수없이 많다. 그만큼 대입이란 이슈는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 모순과 갈등을 응축한 중요한 사건이라는 얘기다. 수능 시험일은 한국사회의 일상이 잠정적으로 중단 내지 조정되는 시간이다. 군부대도, 경찰서도, 민간기업도, 하물며 항공 운항조차도 입시를 위해 각자 일상의 스케쥴을 조정한다. 원활한 입시 진행을 위해 민관이 동원되는 상황을 국민들은 기꺼이 이해한다. 참으로 이해할 듯하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저 대학 시험일 뿐인데! 힘들어 죽겠다고 모두들 아우성을 치는 데도 나아질 기미 없이 수십 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대입’이라는 사건은 대한민국 모두가 연루된 거대한 사건인 것만은 분명하다. 영화는 대학 입시 하나에 대한민국 전체가 울고불고 요동치는 그로테스크한 현실을 더더욱 낯설고 기괴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스타일 면에서 압도적이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접하는 것은 교육 관련 다큐들이 진즉에 지적해온 문제점들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거대한 미로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집단적 악몽의 곤혹스러움 자체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범죄 드라마적 서스펜스와 초현실주의적 악몽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면서 헤어날 수 없는 음모론적 세계의 폐소공포증을 선사한다. 이러한 세계-시스템 속으로 절대 끌려들어 가고 싶지 않지만 자신 역시 예외일 수 없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관객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스멀스멀한 불안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관객들이 체험하는 낯선 감정의 실체다. 시스템 밖으로 탈출하기 위한 소수의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결국 대부분 순응하고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대한 개미지옥. 영화가 조여오는 묵직함은 관객 역시 그 지옥을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열심히 공부하라’는 현실논리만으로 대한민국 ‘입시’라는 관문을 헤쳐 나가기는 버겁기 짝이 없다. 그래서 대입이라는 필생의 통과의례에는 수험생을 둔 가족을 비롯해서 사회 전체가 가담하는 준 종교적 제의가 따라붙는다. 영화는 종파를 초월해 아이들의 입시 성공을 위해 기도하는 범종교계의 기도와 제의 장면들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과 수시로 교차시킨다. 목사와 승려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들의 대입 성공을 기원하고, 부모들은 정성을 모아 삼보일배를 하고 눈물로 기도한다. 사실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이질적인 색감과 사운드를 통해 재현된 이 이미지들은 그 익숙함을 잃고 한없이 낯설고 기괴한 풍경으로 변모한다. 

영화는 수능 시험일이라는 시간을 D- day, 즉 심판의 날로 설정하고 그 심판의 날에 맞춰 모든 일상을 셋업한 아이들과, 각계각층을 망라한 집단적 기원의 장을 기괴한 색감과 소리로 표현한다. ‘SKY’는 이러한 집단적, 종교적 열망을 상징하는 주술적이고 중의적인 기표이다. 학생도 부모도 모두가 ‘SKY’라는 허상을 향해 기약 없는 줄달음을 칠 때, 그들의 불안함을 어루만지는 것은 다름 아닌 거대 사교육 시장의 스타 강사들이다. 과거 공자나 예수, 부처와 같은 신과 성인의 자리를 차지한 이들 스타 강사들은 갈대처럼 흔들리는 불안한 고3들을 SKY라는 낙원으로 이끄는 사제 역할을 자처한다. 영화의 중간중간 삽입된 현실과 괴리된 공자의 말씀이 종종 현실의 부조리를 도드라지게 하면서 헛헛한 웃음을 유발할 때, 영화는 이 사교육 시장의 스타 강사들이 대입이라는 통과의례를 주관하는 신흥 교주 내지는 사제가 되었음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영화에 사용된 사운드는 이 영화의 기괴한 낯섦-이화효과(異化效果)를 극대화하는 증폭기 역할을 한다. 필립 글래스고의 음울한 음악이 시종일관 영화 전체에 불안함과 어두운 그림자를 강하게 드리우면서 관객의 무의식에 파고들던 에롤 모리스의 작품 <가늘고 푸른 선The Thin Blue Line>(1988) 처럼, 이 영화 음악 역시 영화의 분위기, 톤을 주조하면서 전반적인 영화의 인상을 각인시키는 데 핵심적인 기능을 한다. 이 영화의 스태프 상당수는 외국인들로 이루어졌다. 최우영 감독과 함께 공동 연출자로 이름을 올린 벨기에 출신의 스티븐 두트 감독을 비롯한 다수의 외국인 스태프들, 그들의 시선은 한국사회의 풍경을 한층 더 낯설게 보면서 영화의 이질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영화가 바라본 한국사회의 입시 광풍은 도처에서 질병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지만, 나 역시 저 대열(SKY)에 합류하고 싶다는 우리들의 분열적 욕망으로 인해 해결 불가능한 무한 반복의 폐쇄회로를 맴돌고 있다. 

이 영화의 궁극적인 힘은 사회적 질병을 명료한 언어로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대신, 우리 욕망의 맹목성을 무의식의 언어로 파고들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영화의 소재가 충분히 익숙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생경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그저 남보다 우월하기 위해 끝없이 달리는 욕망의 맹목성에 대한 자각에도 불구하고, 이 경주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은 우리를 사로잡는 근본적 두려움이자 좌절감이다. 지옥이란 그런 것이다. 이 영화는 ‘대학입시’라는 현상을 통해 우리 사회의 욕망의 지옥을 그려낸다. 그 지옥의 낯설고도 강렬한 인상 때문에 우리는 한동안 영화 앞에 멈추어 그 지옥의 불구덩이를 응시하게 된다.

관련 영화인

불러오는 중입니다.

관련 영화글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