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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우스

클레버 멘도사 필루, 2016

아쿠아리우스  대표 이미지

<아쿠아리우스>의 주인공은 은퇴한 음악평론가인 노년의 여성 클라라(소니아 브라가)다. 그녀는 브라질 해변 도시 헤시피(Recife)의 1940년대 지어진 오래된 아파트 아쿠아리우스에 산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 흑단 같은 긴 머리를 말아 올리고 바다로 나가 해수욕을 즐긴다. 방대한 LP 컬렉션에서 음반 하나를 꺼내어 즐기며 평화롭게 낮잠을 즐긴다. 가정부 라드자니와 수다도 떨고 그녀를 마치 박물관의 밀랍인형같이 바라보는 젊은 기자와 인터뷰도 한다. 주말이면 남동생 부부와 조카가 방문하기도 하고 가끔 이혼한 딸이 손자를 맡기면 할머니 역할도 곧잘 해낸다. 그렇다고 그냥 하릴없는 뒷방 할머니인 것만도 아니다. 로맨스에 대한 열망도 갖고 있고, 훌륭한 섹스를 위해 기꺼이 남창을 고용하기도 한다. 

이런 클라라의 일상은 대형 건설회사가 아쿠아리우스의 재개발을 시도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건설사는 클라라의 이웃과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접근, 자신의 모든 역사를 담은 집을 포기하지 않는 클라라를 설득하려 하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쿠아리우스에는 불편한 상황들이 이어진다. 빈 윗집에서는 밤새 요란한 섹스파티가 벌어지고 수백 명이 모이는 종교집회가 열리기도 하며 복도와 계단이 배설물 천지가 되기도 한다. 클라라는 이 모든 상황들이 그녀를 퇴거시키기 위한 건설사의 계략임을 깨닫지만, 정계와 언론까지 장악한 건설사에 대항하기란 바위로 계란치기일 뿐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침입’의 증거를 확보한 순간, 클라라는 당당하게 계란으로 바위를 부숴버리기로 작정한다. 

다수의 평론가들이 ‘캐릭터 연구의 훌륭한 판본’이라고 지적했듯이, 클레베르 멘돈사 필루는 러닝타임 내내 마치 현미경으로 바라보듯 클라라를 관찰한다. ‘자본의 폭압에 대한 개인의 투쟁’이라는 영화의 시놉시스가 제공하는 어떤 기대에 비추어본다면, 이 연구는 짐짓 장황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특히 중반부터 속도를 내는 흡사 스릴러적인 전개나 <에린 브로코비치>의 줄리아 로버츠스러운 클라라의 회심의 반격으로 끝나는 짧은 엔딩에 비하면, 클라라의 과거와 현재, 기억과 일상, 사물과 주변을 두 시간 반가량 내내 차분하고 꼼꼼하게 관찰하는 영화의 대부분은 의아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이 ‘클라라의 재구성’이야말로 이야기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어떤 정치적 주체의 현시에 가장 중요한 원리다. 멘돈사 필루는 고전적인 영웅 서사는 개인의 투쟁과 정의의 구현을 담아낼 수 없다고 믿는 듯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데 있다. 그가 궁금한 것은 개인은 어떤 질료들로 삶을 구성하는가, 그리고 그렇게 구성된 삶은 어떻게 개인의 감정과 행동을 견인하는 준거가 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다. 멘돈사 필루가 관찰하는 클라라의 삶,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과 사람들 같은 삶의 질료들은 클라라라는 하나의 일관된 캐릭터를 목적으로 하는 인과율에서 자유롭다. 마치 격자를 짜듯, 그 질료들은 클라라의 상이한 욕망, 욕구, 불안, 당당함, 허전함을 영화 안에 배치한다. 그 격자 안에서 그녀는 당차고 고집 세지만 외로운 노인이고 유방암으로 가슴 하나를 도려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성적 매력을 소유한 여성이며 모든 이에게 너그러워 보이지만 결국 계층의 도덕률과 행동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산계급 중산층이다. 

이러한 캐릭터 연구는 멘돈사 필루가 믿는 어떤 리얼리즘의 방식으로 보인다. 기실, 개인의 역사를 구성하는 수많은 감정과 행동, 태도는 하나의 유형으로 수렴되지 않으며 종종 각각은 서로 대항하거나 모순된다. 영화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클라라의 입체적인 면들을 쌓아나간다. 그러나 영화가 차이와 모순으로 구성된 개인으로서의 클라라를 관객과 조우하게 하는 보다 흥미로운 방식은 다른 데 있다. <아쿠아리우스>를 언급하는 모든 평문이 빼놓지 않는 클라라의 이모 루시아의 서랍장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젊은 시절 유부남 애인과의 열정적인 섹스라는 루시아의 비밀스러운 기억을 품고 있는 서랍장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클라라의 현재에 머무르면서 과거의 현재의 공존함을 가장 강력하게 드러내는 사물이다. 영화 내내 감독은 마치 장난하듯 무심하게 이 서랍장을 힐끗힐끗 보여주면서 현재와 기억이 맺는 찰나적이지만 강렬한 순간들을 제공한다. 영화의 오프닝과 클로징에 등장하는 브라질 가수 타이구아라의 노래 ‘오늘 hoje’의 첫 소절이 들려주듯이(“오늘, 나는 내 시간들의 흔적들을 내 몸 안으로 가지고 들어온다네”), 사물과 몸, 표정과 행동에 깃들어 있는 어떤 기억과 의지를 쳐다보는 방식이야말로 <아쿠아리우스>가 관객으로 하여금 클라라라는 한 개인을 경험케 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인 셈이다. 과거와 현재, 정신과 몸, 그것을 품고 있는 사물들과 사람들, 그것들이 채우고 있는 공간과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개인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 그것이 한 개인의 역사성을 구성하는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인 양, 멘돈사 필루는 수 천장의 LP 컬렉션을 보유한 클라라와 똑같은 수집가(archivist)마냥 차곡차곡 그 질료들을 모아 쌓아나간다. ‘어떤 영화적/윤리적 방식을 통해 개인과 세계의 관계 맺음 사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힘 관계에 주목하고 그에 대한 해석과 입장을 정립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영화의 정치성 논의에 있어 핵심적인 테제라면, <아쿠아리우스>는 분명 주체-영화-정치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서사 영화다. 
평론가 출신으로 늦깎이 데뷔를 한 멘돈사 필루의 첫 장편 극영화인 <네이버링 사운드Neighboring Sounds>(2012)와 마찬가지로 <아쿠아리우스>의 또 다른 주인공은 감독의 고향이기도 한 브라질 해변 도시 헤시피다. 영화는 흑백 사진에 담긴 헤시피의 과거 모습과 파노라믹한 현재의 풍경 등으로 이 중요한 주인공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헤시피 내부로 줌인(zoom-in)하듯이 들여다보자면, 두 작품 모두에서 헤시피는 과거와 현재, 보존과 개발, 유산자와 하층민이 파이프 하나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기이한 구획의 도시다. 시간이 기입된 클라라의 몸과 그 주변의 사물이 그녀의 역사를 구성하듯 헤시피 역시 낙후된 건물과 반짝이는 초고층 콘도가 공존하며 그 역사를 현시한다. 아쿠아리우스가 개인-시간-공간의 관계맺음을 드러내는 알레고리적인 공간이라면, 헤시피는 ‘클라라의 암’의 세 번째 파트의 제목이 암시하듯 마치 암세포와 같은 대형 자본과 권력의 욕망이라는 위협이 그 질서를 재배치하는 위기의 공간이다. 

고향에 대한 끈끈한 애정을 과시라도 하듯 멘돈사 필루의 카메라는 헤시피의 다양한 구석들을 비추면서 클라라-아쿠아리우스-헤시피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온고적인 수집광이자 시네필인 감독의 취향을 분명하게 영화에서 드러낸다. 그러나 클라라의 수집가적 면모나 영화를 가득 메우는 레트로 이미지들 혹은 감독 본인의 시네필적 흔적들(멘돈사 필루는 브라이언 드 팔마나 샘 페킨파, 로버트 알트만 등 70년대 미국영화로부터 받은 영향을 적극적으로 인정한다)은 단순한 복고취나 노스탤지아의 취향 이상의 위상을 갖는다. 

특히 영화의 공간적 교통과 그 경험은 줌이나 트래킹 같은 카메라 움직임이나 2.39:1 와이드스크린에 대한 미학적 고집, 70년대풍의 스프릿 디옵터 쇼트(특수 필터나 렌즈를 사용하여 전경의 피사체와 원경의 피사체 모두 초점을 맞추는 일종의 딥 포커스 화면) 등을 통해 스크린 위에 세밀하게 재현되는데, 이는 안과 밖, 정신과 몸, 개인과 사회의 관계 맺음과 그 인식이라는 정치적인 토픽을 관객-공간의 시각적 관계로 표상하는 영화적 원리가 된다. 이런 맥락에서 영화 속에서 미디어는 보존과 수집의 물질적 근거이자 관찰/청취라는 인지의 매개로서 사려 깊게 언급된다. MP3 등 디지털 미디어에 대해 클라라와 젊은 기자가 나누는 대화나 보존상태가 엉망인 문서보관소의 광경은 현재를 구성하는 준거로서의 과거, 기억이나 인식 같은 정신적 작용을 가능케 하는 사물과 공간이라는 토픽에 대해 멘돈사 필루가 던지는 농담이자 비판이기도 하다. 

이 모든 관심과 미학적 원리 안에서 소니아 브라가는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존재다. 걸크러쉬의 할머니 버전으로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는 브라가는 전무후무한 브라질 최고의 섹시스타지만 그녀의 존재는 단순한 스타 혹은 역할을 잘 소화하는 베테랑 여배우라는 의미 그 이상을 갖는다(원래 멘돈사 필루는 클라라 역의 배우로 잘 알려지지 않은 얼굴을 찾고자 했다). 트레이드마크인 풍성한 검은 머리와 당장이라도 <거미 여인의 키스>를 다시 찍을 수 있을법하게 나이가 무색한 몸매, 특유의 강인한 표정과 유방 하나를 절제한 가슴 등 소니아 브라가라는 한 여성 스타를 구성하는 과거, 현재, 신체, 표정, 카리스마는 스크린 위에서 매 순간 클라라라는 캐릭터와 마주하며 관객의 기억과 반응에 즉물적으로(viscerally) 접속한다. 영화의 유물론적 입장과 원리를 담아내는 또 다른 장으로서의 소니아 브라가의 현전은 ‘배우’라는 스크린 존재-공간이 가진 잠재적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흔치 않은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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