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검은 머리
이만희,1964
기관총과 아편, 그리고 ‘갱’이라는 단어의 등장까지 <검은 머리>에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필름누아르의 요소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잠깐이긴 하지만 알 카포네와 금주법으로 대표되는 1920-30년대 할리우드 갱스터 무비에서나 볼 법한 자동화기를 든 조직원이 초반부터 등장하고, 아편에 찌들어 ‘검은 머리’ 연실(문정숙)을 괴롭히는 아편쟁이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영화에서 저런 묘사가 일상적이었던 범죄 누아르 영화가 있었나?’ 싶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더불어 유지형 감독이 쓴 「영화감독 이만희」에서 그가 얘기한대로 “나는 한국영화의 배우들을 보면서 저렇게 조용하게 연기하는 패턴의 모습을 이만희 감독 외에는 보지 못했다. 다들 뭔가 좀 서두르고 말이 많은데, 이만희 영화의 배우들을 보면 절제와 절도가 있어 좋다”거나 “이만희 영화는 ‘내 영화는 뭔가 다르다’라는 걸 언제나 도입부터 관객에게 늘 알린다”는 말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처럼 <검은 머리>는 그때까지 알고 있던 한국영화사의 다른 범죄 누아르 영화들과는 사뭇 달랐다.
돌이켜보면 1964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만희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에 속하는 <마의 계단>과 <검은 머리>, 그리고 <추격자>가 동시에 등장한 해가 바로 1964년이다. <내가 설 땅은 어디냐>와 <협박자>같은 영화들까지 더하면 무려 6편이 개봉했다. 22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감독의 입지를 다져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개봉한 1963년부터 문희의 데뷔작 <흑맥>(1965), 사라진 신화 <만추>(1966)를 지나 <귀로>를 포함해 무려 11편을 내놓았던 1967년까지, 그렇게 이만희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시기를 가득 메운 전쟁영화와 멜로드라마 사이에서 범죄 누아르 <검은 머리>는 그야말로 독특하다. 무엇보다 머리를 반쯤 가린 ‘검은 머리’라는 여성 캐릭터부터 매력적이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사처럼 팜므 파탈인 듯 팜므 파탈 아닌 팜므 파탈 같은 검은 머리랄까.
보스 동일(장동휘)의 아내인 연실(문정숙)이 동일의 부하이자 아편쟁이인 만호(채랑)와 정분이 난다. 다른 부하들은 조직의 계율대로 간통을 한 연실의 얼굴에 상처를 입히고 쫓아낸다. 이후 그녀는 얼굴의 상처를 검은 머리로 가린 채 창녀로 생활하며, 어쩔 수 없이 만호와 함께 지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연실은 택시 운전수(이대엽)를 만나 사랑에 빠질 듯 했지만, 어떤 위험이 찾아올지 알기에 연실은 그를 거부한다. 한편, 연실은 보스를 만나려 조직이 운영하는 바를 찾아가지만 조직원들은 보스 몰래 그녀를 죽이기 위해 철길로 데려가고, 그를 뒤쫓아 온 택시 운전수가 그녀를 구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아편쟁이는 사라진 ‘돈줄’인 그녀를 찾기 위해 자신의 패거리를 풀어 정형외과마다 지키게 한다. 연실이 얼굴을 고칠 거라고 생각해 서울의 모든 병원을 지키고 선 것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범죄의 세계랄까, 검은 머리 연실을 둘러싼 악순환의 구조는 인상적이다. 택시 운전수의 여동생의 남자 친구는 연실을 찾으려는 아편쟁이의 패거리로서, 연실의 사진을 들고 정형외과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또한 택시 운전수의 여동생은 자신이 일하는 바에서 우연히 검은 머리의 그녀를 본 기억이 있다. A가 B를 알고, B는 C를 아는데, A와 C는 서로 몰라서 발생하는 기막힌 수수께끼의 상황이다. 이만희 감독은 적은 숫자의 인물로도 서로 엮고 엮이는 관계를 만들어내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런 가운데 당대 한국영화계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용팔이’(박노식)의 반대편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이대엽의 존재는 믿음직하다. “어차피 내 여자도 아닌데 (얼굴의 상처는 상관없다)”라고 무심하게 대하는 것 같더니, “고향선배 중에 정형외과 의사하는 분이 있으니까 고쳐주꾸마”라며 연실을 향해 조건 없는 사랑을 드러내는 그의 존재는 꽤 매력적이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정서는 사랑하는 여자를 처벌하여 내쳤다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가던 장동휘의 비애감과 인간미다. 그는 이만희의 이후 작품 <암살자>(1969)에서도 자신이 암살한 남자의 딸을 대신 키우는 사내였다.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하들 중 장혁의 상처 난 얼굴은, 장동휘의 인간적 고뇌의 반대편에서 도대체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조직의 규율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원시성’을 상징한다. 연실 앞에서 “사랑을 어떻게 하는 것인 줄은 모르지만 난 너를 좋아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너를 처형하고 말았어”라고 참회하거나 “악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야. 내게 주어진 거야”라며 항변하는 장동휘의 모습 역시 이만희의 다른 영화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정서다. 어쩌면 유일하게 ‘추남’이라는 필명을 쓰면서까지 <검은 머리> 각본 크레딧에 자신의 존재를 올려놓은 이유일 것이다.
끝으로, 매력적인 장르적 요소만으로 <검은 머리>를 마무리하기는 아쉽다. 바로 전쟁의 상처다. 이만희는 실제로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고등학교를 미처 졸업하지 못하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영화감독이 안 되었다면 직업군인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전쟁의 기억은 장르를 떠나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정서다. 영화에서 보스에 반기를 들려는 부하들 중 한 사람은 “힘들었을 때 가진 것 없는 우리를 데려다 보살피고 품어준 게 바로 큰 형님”이라며 그에 반대한다. <검은 머리> 또한 바로 그 한국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얼굴에 상처 입은 한 창녀의 실제 모습에서 출발했다는 이 영화의 시작점을 떠올려 봐도, ‘과연 그 상처가 어떻게 난 것일까’ 생각해보면 자연스레 그 전쟁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처럼 <검은 머리>는 장르의 매력과 현실의 상흔이 기막히게 결합한 걸작이다. 2009년 한국영상자료원이 복원한 <검은 머리>는 작년 이탈리아 볼로냐영화제에서도 상영됐다.
돌이켜보면 1964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만희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에 속하는 <마의 계단>과 <검은 머리>, 그리고 <추격자>가 동시에 등장한 해가 바로 1964년이다. <내가 설 땅은 어디냐>와 <협박자>같은 영화들까지 더하면 무려 6편이 개봉했다. 22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감독의 입지를 다져준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개봉한 1963년부터 문희의 데뷔작 <흑맥>(1965), 사라진 신화 <만추>(1966)를 지나 <귀로>를 포함해 무려 11편을 내놓았던 1967년까지, 그렇게 이만희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 시기를 가득 메운 전쟁영화와 멜로드라마 사이에서 범죄 누아르 <검은 머리>는 그야말로 독특하다. 무엇보다 머리를 반쯤 가린 ‘검은 머리’라는 여성 캐릭터부터 매력적이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사처럼 팜므 파탈인 듯 팜므 파탈 아닌 팜므 파탈 같은 검은 머리랄까.
보스 동일(장동휘)의 아내인 연실(문정숙)이 동일의 부하이자 아편쟁이인 만호(채랑)와 정분이 난다. 다른 부하들은 조직의 계율대로 간통을 한 연실의 얼굴에 상처를 입히고 쫓아낸다. 이후 그녀는 얼굴의 상처를 검은 머리로 가린 채 창녀로 생활하며, 어쩔 수 없이 만호와 함께 지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연실은 택시 운전수(이대엽)를 만나 사랑에 빠질 듯 했지만, 어떤 위험이 찾아올지 알기에 연실은 그를 거부한다. 한편, 연실은 보스를 만나려 조직이 운영하는 바를 찾아가지만 조직원들은 보스 몰래 그녀를 죽이기 위해 철길로 데려가고, 그를 뒤쫓아 온 택시 운전수가 그녀를 구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아편쟁이는 사라진 ‘돈줄’인 그녀를 찾기 위해 자신의 패거리를 풀어 정형외과마다 지키게 한다. 연실이 얼굴을 고칠 거라고 생각해 서울의 모든 병원을 지키고 선 것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범죄의 세계랄까, 검은 머리 연실을 둘러싼 악순환의 구조는 인상적이다. 택시 운전수의 여동생의 남자 친구는 연실을 찾으려는 아편쟁이의 패거리로서, 연실의 사진을 들고 정형외과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또한 택시 운전수의 여동생은 자신이 일하는 바에서 우연히 검은 머리의 그녀를 본 기억이 있다. A가 B를 알고, B는 C를 아는데, A와 C는 서로 몰라서 발생하는 기막힌 수수께끼의 상황이다. 이만희 감독은 적은 숫자의 인물로도 서로 엮고 엮이는 관계를 만들어내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런 가운데 당대 한국영화계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용팔이’(박노식)의 반대편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이대엽의 존재는 믿음직하다. “어차피 내 여자도 아닌데 (얼굴의 상처는 상관없다)”라고 무심하게 대하는 것 같더니, “고향선배 중에 정형외과 의사하는 분이 있으니까 고쳐주꾸마”라며 연실을 향해 조건 없는 사랑을 드러내는 그의 존재는 꽤 매력적이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정서는 사랑하는 여자를 처벌하여 내쳤다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살아가던 장동휘의 비애감과 인간미다. 그는 이만희의 이후 작품 <암살자>(1969)에서도 자신이 암살한 남자의 딸을 대신 키우는 사내였다.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하들 중 장혁의 상처 난 얼굴은, 장동휘의 인간적 고뇌의 반대편에서 도대체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조직의 규율을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원시성’을 상징한다. 연실 앞에서 “사랑을 어떻게 하는 것인 줄은 모르지만 난 너를 좋아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너를 처형하고 말았어”라고 참회하거나 “악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야. 내게 주어진 거야”라며 항변하는 장동휘의 모습 역시 이만희의 다른 영화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정서다. 어쩌면 유일하게 ‘추남’이라는 필명을 쓰면서까지 <검은 머리> 각본 크레딧에 자신의 존재를 올려놓은 이유일 것이다.
끝으로, 매력적인 장르적 요소만으로 <검은 머리>를 마무리하기는 아쉽다. 바로 전쟁의 상처다. 이만희는 실제로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고등학교를 미처 졸업하지 못하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영화감독이 안 되었다면 직업군인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전쟁의 기억은 장르를 떠나 그의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정서다. 영화에서 보스에 반기를 들려는 부하들 중 한 사람은 “힘들었을 때 가진 것 없는 우리를 데려다 보살피고 품어준 게 바로 큰 형님”이라며 그에 반대한다. <검은 머리> 또한 바로 그 한국전쟁으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얼굴에 상처 입은 한 창녀의 실제 모습에서 출발했다는 이 영화의 시작점을 떠올려 봐도, ‘과연 그 상처가 어떻게 난 것일까’ 생각해보면 자연스레 그 전쟁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처럼 <검은 머리>는 장르의 매력과 현실의 상흔이 기막히게 결합한 걸작이다. 2009년 한국영상자료원이 복원한 <검은 머리>는 작년 이탈리아 볼로냐영화제에서도 상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