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걸작선
[한국영화걸작선]나의 사랑 나의 신부
이명세, 1990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모두 그렇겠지만, 해마다 10월이면 마음은 영화의 바다가 펼쳐진 부산을 향한다. 그와 동시에 최진실이라는 이름의 그늘 또한 마음에 드리워진다. 최진실은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하던 10월 2일, 거짓말처럼 세상에서 사라졌다. 당시 나는 영화제 데일리를 만들기 위해 부산에 내려가 있던 터라 서울에서 들려온 비보가 더욱 비현실적으로 들렸던 것 같다(공교롭게 올해 부산영화제 개막일도 10월 2일이다).
부산과 최진실 사이의 연상작용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내가 최진실을 배우로서 처음 접한 곳이 부산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리메이크작으로도 만들어진 그녀의 출세작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1990년 12월에 개봉했는데, 마침 부산에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갔던 나는 남포동의 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다. 물론 그녀는 앞서 <남부군>(1990)과 <꼭지딴>(1990)에 출연했지만, 이들 영화를 미처 보지 못했던 탓에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배우 최진실과의 첫 만남인 셈이었다.
이 영화 속 최진실의 모습은 제목처럼 너무도 사랑스럽다. 사실 그녀가 연기한 미영은 남자들의 판타지 속에서나 존재하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다. 미영은 신혼여행 첫날밤, 남편과의 잠자리가 두려워 호텔 방 문을 걸어잠그는 숙맥이며, 남편의 도시락에 완두콩으로 ‘I LOVE YOU’라는 글자를 새겨넣는 애교쟁이이고,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면서도 무리하게 추궁하지 않는 남편 바라기이니 말이다. 불과 2년 뒤 만들어진 <결혼이야기> 속 심혜진과 비교하면 조선 시대 여인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이러한 미영의 모습은 무명이었던 그녀를 일거에 스타 자리에 올려놓은, 하지만 전근대적인 여성상을 대변한다는 비판을 들었던 전자제품 CF 속 대사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한 비현실성과 성정치학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최진실은 아름답고 귀엽게 느껴진다. 거기에는 배우이기 이전에 최진실이라는 사람이 간직하고 있던 특유의 성향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터이지만, 이명세 감독의 스타일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그런 느낌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노란색이 주를 이루는 원색 톤의 실내 분위기나 영화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말풍선, 철길이나 가로등, 맨홀 같은 도심 변두리의 정취, 기억이나 상상, 그리고 꿈의 자유분방한 혼재 등의 요소가 어우러진 덕분에 최진실의 모습은 리얼리티와 판타지 중간 어딘가에 존재하는 이미지로 남게 된 듯하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존재감이다. 이명세 감독의 회고에 따르면 유영길 촬영감독은 당시 촬영 현장에 와서 ‘이거 못 찍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시나리오 볼 때는 서울 변두리 단칸방 같은 공간을 생각했는데, 막상 와보니 온통 노란색 등 원색 톤이 두드러져서 당황했다는 것이다. 결국 유영길 촬영감독은 촬영을 맡았는데, 나중에는 모든 소품을 노란색으로 칠해놓을 정도로 이명세 감독을 믿게 됐다고 한다. 아무튼 유영길 촬영감독의 유려한 영상은 이 영화의 ‘판타스틱한 리얼리티’를 돋보이게 했다. 또한 유난히 어두운 실내 장면에서도 따뜻한 질감을 살려줬다.
사실, 이명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과도기적 영화다. 시대를 앞서가도 너무 앞서갔던 블랙코미디 <개그맨>(1988)의 과격한 실험정신에서 빠져나와 상업 영화적 성향을 명확히 드러냈던 영화이며, 이명세식 러브스토리의 최고봉이라 할만한 <첫사랑>(1993)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된 영화이니 말이다. 기억이나 상상, 꿈 등의 세계를 시각화해 내러티브에 녹여내는 이명세 감독의 스타일이 덜 정제된 형식으로 보여진다는 점이 지금의 시각으로는 도리어 신선해 보이기도 한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박중훈에게도 과도기적 영화였다. 그는 이 영화로 ‘청춘 스타’ 시대를 마감하고 뉴욕으로 유학길에 올랐고 <투캅스>(1993)로 복귀한 뒤 한동안 한국영화계의 유일무이한 블루칩으로 영광을 누렸다.
물론 최진실에게도 이 영화는 과도기에 해당했다. 여전히 CF 스타의 이미지가 강했던 그녀는 이 영화를 도약대 삼아 본격적인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1991)이나 <숲속의 방>(1992),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 같은 진지한 영화에도 등장했으나 역시 그녀가 주목받았던 것은 <미스터 맘마>(1992), <마누라 죽이기>(1994) 같은 코미디영화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뽐낼 때였다. 이후 그녀는 배우로서 침체와 재기를 겪었다. 그리고 그녀의 결혼 생활 또한 그러했다. 24년 만에 다시 본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속 최진실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애잔하게 느껴진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