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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나는 곤경에 처했다

소상민, 2009

[초이스]나는 곤경에 처했다 대표 이미지

음울했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짧은 메모 중에는, 혁명을 추동하는 것은 계급이 아니라 세대일지도 모른다는 글이 있다. 물론 이 말은 논쟁적일 수 있다. 계급은 명확하고 특정한 주체를 구분하지만, 세대는 모호하고 상대적이다. 그러나 간혹 혁명의 역사 속에서 세대라는 구분과 표현은 매혹적이고 주체적으로 표방된 바 있다. 프랑스의 필립 갸렐과 장 으스타슈를 배출했던 68혁명이 그랬고, 제3영화를 실천했던 중남미의 60-70년대가 그랬다.

불현듯 ‘혁명과 세대’라는 거창한 개념들이 떠오른 것은 최근 20대 젊은 영화감독들, 학생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무수한 독립영화들에서 발견되는 어떤 경향성 때문이다. 이 경향성을 구성하는 주요 키워드에는 주로 ‘곤경’과 ‘무력감’이 포함되고, ‘우리’나 ‘공동체’가 아니라 ‘나’와 ‘개인’이 중요하며, 열려 있는 공공의 장소보다는 우울하고 암울한, 내가 기거하는 골방과 뒷골목들이 빈번하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성이 다소 이상해 보이는 것은 분명 이들이 세상의 어떤 부조리함을 담고는 있지만 그것에 분노하거나 그 부조리를 생산하는 사회나 시대를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조리함을 하나의 영화적 유머로 빚어내거나 개인화하는 방식들 때문이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서부터 주목받고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까지 초청된 소상민 감독의 <나는 곤경에 처했다> 역시 이러한 코드 아래 놓여있는 작품이다.

나이 서른을 목전에 둔 있는 선우는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가작으로 당선한 시인이지만 이후에도 딱히 시를 쓰거나 다른 노동은 하지 않는다.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연인 유나와는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빈번한 이별과 화해를 반복하고 있다. 선우가 기대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은 절친한 대학 선배이다.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 남은 그는 경제적으로 성우가 기댈만한 좋은 안식처를 제공하고 있으나 성실한 유나와 시인인 선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종종 충고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유나는 선우를 아버지에게 선보이고자 점심 약속을 잡지만, 전날 선배와 술판을 벌인 선우는 늦잠을 자다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곤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유나에게 발각되고 결국 또 다시 이별을 통보받는다. 항상 이별을 당해야만 유나에게 절실해지는 선우는 또 다시 그녀를 잡기위한 행동을 시작한다. 

<나는 곤경에 처했다>는 자칭 시인이지만, 지리멸렬한 일상에 빠져 허우적대다 간혹 술독에 빠져 온갖 진상 짓을 해대는 한 20대 백수의 청춘백서다. 무언가 하면 할수록 스스로를 더욱 곤경으로 몰아가는 남자의 영화적 상황들은 소위 ‘일상적 리얼리티’라 불리는 대사와 행위를 통해 구성되고, 일정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관객들은 그의 그 부조리한 상황과 성격에 대해 유머와 쾌락을 느낀다. 분명 이 영화에는 잘난 척 하지 않으며, 현실의 무력감을 전달하는 생생한 질감 같은 것이 존재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상한 것은 이 영화가 20대 청년의 곤경을 다루는 방식이다. 영화는 많은 20대 청년들이 공감할만한 사회적 이슈들을 전제로 한다. 영화 속 대사처럼, 비정규직과 실업자, 사회적 성취와 실패, 부와 빈곤의 문제,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파생되는 남녀간의 연애와 결혼까지 말이다. 그러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푸념하거나 무력감에 빠질지언정 그것에 대해 사회적인 방식으로 비판하거나 돌파하려는 의지나 의식 자체를 지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영화 속 선우는 시인이지만 단 한 번도 시에 대해, 혹은 시인이라는 직함에 대해, 시인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무랑태수 같은 삶의 면죄부로 쓸 뿐이다. 오히려 선우가 몰두하는 것은 비루한 연애와 쉽게 무릎 꿇는 비굴한 사죄들뿐이며, 그것은 희극적으로 반복된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적 수사는 종종 홍상수 감독의 표면과 비교된다. 얼핏 이 영화의 캐릭터와 상황들은 홍상수 감독의 이야기적 요소와 흡사해 보인다. 그러나 홍상수 영화의 캐릭터와 플롯들은 마치 체스판 위의 말들처럼 전체 영화적 구조 안에서 의미와 가치를 획득한다. 반면 지금 독립 단편 혹은 장편 영화들 속에서 가장 흔히 발견하게 되는 이러한 일상적 부조리함과 유머에 관한 영화들은 그러한 구조나 의미를 배제한 채, 매 순간의 유머와 쾌락에 안주한다. <나는 곤경에 처했다>는 분명 최근 독립 장편 영화들 중에서 돋보이는 이야기 진술의 힘과 대사력을 지닌 영화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나는 곤경에 처했다>의 가장 큰 장점과 한계는 모두 같은 곳에서 출발한다. 곤경에 대한 태도 말이다. 그저 쾌락할 것인가, 넘어 설 것인가? 난 후자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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