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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로저 알러스, 2014

[초이스]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대표 이미지

지난해 6월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프랑스의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자그레브에서 안시로 넘어온 첫날, 안시에서는 개막작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의 기자회견이 한창이었다. 그때는 무심히 넘기고 축제의 다른 부분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오히려 돌아온 이후 9월 한국에서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가 조용히 개봉함을 알게 됐다. 그리고 작품을 본 순간 제대로 해석된 칼릴 지브란의 위대한 언어와 아트 애니메이션계 거장들이 모여서 만든 이 작품의 순간순간이 큰 의미로 다가왔다. 안시에서의 화제가 괜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껏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칼릴 지브란의 지혜를 이 애니메이션이 새삼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소녀 알미트라는 동네에서 사고뭉치로 통한다. 엄마 카밀라는 알미트라를 혼자 둘 수 없어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집에 데리고 간다. 그곳에는 불온한 시를 썼다는 죄로 7년간 구금상태인 시인 무스타파가 머물고 있다. 무스타파는 밖에서 놀고 있으라는 엄마의 말 따윈 무시하고 집안으로 숨어들어온 알미트라를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을 읽는 친구가 된다. 

알미트라가 갈매기와 함께 마을 건물 지붕 위에 올라가 두 팔을 펼치고 바람을 맞을 때부터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결코 평범치 않은 기운을 풍긴다. 무엇보다 독특한 점은 이 작품이 한편의 멋진 장편인 동시에 8개의 단편으로도 엮여있다는 점이다. 무스타파와 알미트라, 카밀라와 마을 사람들이 등장하는 이야기 얼개는 작품의 총감독 로저 알러스(<라이온 킹> 연출)가 담당했다. 이야기 사이사이 무스타파가 알미트라, 카밀라, 마을 사람들에게 삶의 진리를 들려줄 때 그 내용으로 칼릴 지브란의 영적 잠언인 ‘예언자’ 중에서 8편의 시를 발췌했다. 이때 시의 내용을 <계단을 내려오는 모나리자>의 조앤 C 그라츠를 비롯해 톰 무어, 빌 플림턴, 니나 페일리 등 현재 세계 애니메이션계의 유명 독립 애니메이터들이 각각 맡아서 8개의 단편으로 만든 것이다. 장편 애니메이션 속에 8개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담되, 서로의 영역을 침범치 않고 개성을 드러내는 예술의 경지를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가 실현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무스타파는 알미트라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갇혀 있는 줄 알지만 사실 날아다닐 수 있다며 말한다. “진정 자유로워짐은 근심 없는 낮이나 설움 없는 밤이 아닌, 이러한 것들이 삶을 옭아매도 속박되지 않고 그 위에 우뚝 설 때니...” 무스타파의 몸은 이때 이미 창문 너머 대지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새들이 땅에 깊이 뿌리 박힌 나뭇가지에 앉아 처음엔 온갖 줄에 속박되는 듯하지만 그 줄을 몸에 감고 날갯짓을 하는 이미지가 등장한다. 곧 나무의 뿌리가 통째로 뽑히고 새들이 나무와 함께 하늘로 날아간다. 

카밀라가 알미트라 때문에 골치다, 통제가 안 된다고 하소연할 때는 무스타파가 이렇게 답한다 “당연하죠. 아이는 당신 소유물이 아니니. 당신을 통해 올 뿐, 당신에게서 온 게 아닌 생명의 아들딸들.” 그리고 무스타파가 마침내 7년 만에 고향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마을로 내려가던 중 어느 가문의 결혼식을 접하게 된다. 그때 그가 사랑과 결혼에 대해 하는 말도 아름답다. “당신들의 영혼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이 시를 읊을 때 화면엔 한밤중 춤을 추는 한 쌍의 연인이 등장하는 단편이 펼쳐진다. 그들의 춤과 움직임 속에서 영혼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남겨둬야 하는 ‘결혼’의 이미지가 환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무스타파에게 고향으로 가는 배 안에서 먹으라면서 산처럼 쌓아주는 음식들 사이로, 한 남자가 알미트라의 엄마 카밀라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그에게 무스타파가 전하는 사랑에 대한 잠언은 <바다의 노래: 벤과 셀키 요정의 비밀>로 알려진 감독 톰 무어가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승화시킨다. 두 남녀가 하나로 결합되는 모습을 단아하고도 황홀하게 그려낸다. 

내려다보는 대신 마주 보면서 인생의 본질을 통찰하는 무스타파의 언어는 어렵지 않으면서도 지혜로 가득하다. 알미트라, 엄마 카밀라, 마을 사람들이 다정한 예언자 같은 무스타파에게 마음을 열고 그의 시에 귀를 기울이듯 우리의 귀도 열리고 눈도 열린다. 무스타파를 연기한 리암 니슨의 목소리가 명징한 발음으로 품격을 더하고, 싱글맘 카밀라 역을 맡은 샐마 헤이액의 활기찬 목소리도 함께 한다. 특히 샐마 헤이액은 이 작품의 기획 단계부터 제작자로 참여해 칼릴 지브란의 시를 함께 묶어낼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게 했으니 그 공이 매우 크다.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세계적인 음악감독인 가브리엘 야레와 데미안 라이스, 글렌 한사드, 리사 해니건의 노래, 요요마의 첼로 연주가 각 단편 애니메이션의 주제에 맞게 흘러나와 더 큰 감흥을 전한다. 영혼의 세계를 이토록 아름답게 보여주다니,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3D 애니메이션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또 한 번 만나는 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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