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영화를 본다는 것은... 사실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극장에서 일한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영화 많이 보겠다”며 부러워한다. 우리 극장처럼 기획전과 특별전을 주로 하고 상징성이 있는 극장의 경우, 그런 영화들을 남들보다 더 쉽게 접할 수 있을 거라는 부러움을 받기도 한다. 무리도 아니다. 나도 처음 입사할 땐 적어도 이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들만큼은 많이 볼 수 있겠구나 기대했다. 영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너무 바빠서 영화를 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물론 극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영화사나 영화제, 영화 제작 현장의 사람들과 처지가 약간 다르다. 우리 회사는 스태프들이 영화를 보는 데에 적지 않은 편의를 제공하기도 한다. 사무실에서 몇십 걸음만 걸으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다. 꼭 우리 극장만이 아니라도, 우리가 세 들어 있는 서울극장에서는 블록버스터부터 예술영화까지 온갖 개봉작들을 상영한다. 함께 세 들어 있는 사이좋은 이웃 인디스페이스에서는 멀티플렉스가 찬밥 취급하는 보물 같은 독립영화들을 전문적으로 상영한다. 그러니 이 극장에서 이 지리적인 위치를 잘만 활용하면, 그리고 내가 열정을 발휘한다면 서울 시내에서 상영하고 있는 영화들 중 80% 이상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여타의 ‘평범한’ 관객들보다 많은 편수의 영화를 본다. 영화가 업이고 영화글을 쓰기도 하니 당연하다. 그럼에도 일 년에 보는 영화 편수는 해가 갈수록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내가 발휘하기만 하면’ 되는 그 노력과 열정의 크기가 문제다. 내 노력과 열정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노력과 열정만으로 메꿔지지 않는, 아니 메꿀 수 없는 조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일하는 직장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다.
먼저 시간과 체력의 문제. 몇 년 전 선거에서 나왔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새삼 떠오른다. 선거 슬로건으로 이런 구호가 나오고 사람들에게 그토록 회자되었던 건, 많은 이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란 현실에 존재한다고는 하나 경험한 적은 없는 유니콘 같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의 회사나 기관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을 일이 많은 내 경우 원래 업무가 오후와 저녁 시간에 몰리는 특수한 사정이 있다. 대신 나는 다음 날 늦게 출근할 수 있다. 주말에 출근하면 주중 대체 휴무를 보장받고, 남자든 여자든 한 달에 하루 보건 휴가를 쓸 수 있다. 세상에 그런 꿈의 직장이 다 있냐고 놀라겠지만 있기는 있다. 다만 월급이 적을 뿐이다. 우리 극장은 비영리재단이고 비상업적인 극장이니까. 그런데 일반적인 노동자들이라고 사정이 많이 다를까. 그들은 아마 나보다 월급을 많이 받을 것이다. 대신 야근과 잔업을 당연하게 요구받고, 정작 당연한 ‘칼 퇴근’은 회사의 특별한 ‘시혜 내지 배려’의 틀 안에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야근과 잔업에 시달리면서도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더 적은 월급을 받는 이들도 숱할 것이다. 야근한 다음 날 늦은 출근이 용인되는 사람, 주말에 근무한 대신 주중에 대체 휴무를 보장받는 사람들의 숫자는 또 얼마나 될까. 휴일 수당도 야근 수당도 제대로 못 받는 사람들도 허다하지 않은가.
두 시간 동안 낯설고 좁고 어두운 곳에서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앉아 꼼짝 못 하고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의외로 많은 집중력과 체력을 요한다. 나이가 들고 몸이 점차 노쇠해질수록 영화 관람이 요구하는 체력과 집중력이 얼마나 큰지 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그뿐인가,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는 영화의 러닝타임만큼의 시간뿐 아니라 극장으로, 다시 집으로 이동하는 시간, 극장에서 표를 사고 대기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2015년 통계 기준,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노동시간 최장 시간 2위를 자랑한다. OECD 국가 평균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국의 취업자들은 하루 8시간 기준으로 43일 더 일하는 반면 실질임금은 80% 수준이라고 한다. 영화를 볼 시간이 물리적으로도 부족하거니와, 어쩌다 시간이 난다 해도 축적된 만성 피로로 영화와 점차 멀어지는 게 지금 한국의 노동자들의 상황이다. 영화가 그나마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여가와 문화생활, 자그마한 즐거움이 아니라 점점 부담스러운 사치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티켓값은 어찌나 자주 오르는지.
두 번째, 소수 영화들의 스크린 독과점 현상. 10년 전에 비해 극장 수와 스크린 수는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이런 곳에 극장이 생긴다니 싶은 곳에도 대기업의 멀티플렉스가 들어선다. 번화가가 아닌 동네에 생긴 작은 극장도 최소 네 개 이상의 스크린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상영되는 영화편수는? 어쩌다 조금 짬이 나서 동네에서 영화를 보려 하면 흥행 1, 2위라는 영화들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대규모 배급을 하는 영화들, 즉 ‘와이드 릴리즈’를 하는 영화들은 지하철 배차 간격만큼의 빈도로 상영되곤 한다. 그러나 조금 다른 영화, 소위 ‘예술 영화’라 분류되는 영화가 개봉한다고 해서 상영관과 시간을 확인해 보면 영화를 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알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하루 딱 한 번, 대낮 혹은 새벽에만 상영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개봉일을 놓치고 한두 주가 지난 후라면 더욱 영화 보기가 힘들어진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는 연차를 내야 하거나 밤늦게 영화를 본 뒤 택시를 타고 귀가해야 하거나. 올해 초에 소위 ‘천만 감독’인 국내 유명 감독이 저예산으로 찍었다는 어느 한국 영화를 볼 때도 나는 늦은 밤 시간에 영화를 보고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타야 했다. 어느 새 영화 비용에는 툭하면 오르는 티켓값에 택시비를 당연히 더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나마 택시를 탈 각오를 하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체력이 받쳐줄 때, 일이 그나마 한가할 때의 얘기지만.
그나마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곳에 멀티플렉스의 아트하우스가 있는 경우는 어떨까? 내 경우 작년까지 살던 집에서는 걸어서 15분쯤의 거리에 아트하우스가 있었다. 이사를 온 지금도 버스로 20분 정도의 거리다. 하지만 나는 이 극장을 그리 자주 찾지 않는다. 다른 극장들에 비해서는 물론이고 그 극장의 다른 상영관에 비해서도 시설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천장은 낮고 출입구는 상영관 앞쪽, 스크린 바로 옆에 하나만 있다. 엔딩 자막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퇴장을 시작하면, 아무리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내가 영화의 여운을 곱씹고 싶어도, 아무리 일찍 퇴장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 해도, 필연적으로 스크린을 가리며 나갈 수밖에 없다. 이 극장만이 아니다. 예술영화를 상시적으로 상영한다는 다른 극장에서도, 이런 영화들은 가장 좌석이 적은 상영관에 배정되고 이런 상영관은 대부분 스크린이 매우 작은 데다, 스크린과 좌석 간 최소 거리도 제대로 확보돼 있지 않다. 스크린 크기 때문에 앞좌석에 앉기라도 하면, 영화 내내 스크린에 난 구멍들을 함께 보거나 고개를 무리하게 위로 쳐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이런 영화들일수록 다른 영화들에 비해 화면의 아름다움이 비상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같은 돈을 주고, 아니 택시비까지 지불하면서도 이런 영화는 더 열악한 곳에서 더 불편한 자세로 봐야 한다.
영화가 좋아 영화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영화 산업의 양상도, 관람 환경도 급격하게 바뀌었다. 이제 우리나라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가 촬영을 하러 오는 곳, 세계적인 스타들이 홍보 투어를 할 때 꼭 들르는 곳이 되었다. 남의 나라 얘기인 줄만 알았던 소위 ‘세계적인 영화제’에 한국 영화가 초청받는 일도 이젠 흔한 일이 되었고, 국가 권력이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검열을 하는 일도 외견상으로는 없어졌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봉준호, 박찬욱 같은 감독들이 최고 스타인 데다 그들의 영화가 대흥행을 한다며 해외의 거장 감독들이 부러워하는 곳이기도 하다. 동네 곳곳에 영화관이 있고 전 세계의 온갖 영화들이 친절하게 한글 자막을 단 채 개봉을 하며, 철마다 열리는 영화제도 많고 역사도 깊어져 가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KOFA 혹은 우리 극장에서, 이전에는 책에서 제목으로만 접했던 영화들을 35mm로, 혹은 디지털 매체로 손쉽게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인구 5천 만이 안 되는 나라에서 일 년에 두 편씩, 꼬박꼬박 소위 ‘천만 영화’가 나온다. 반면 어떤 영화들은, 각별한 노력을 거쳐야만 겨우 볼 수 있거나 아예 극장에서 보기 힘들다. 조금 엄살을 보태자면 ‘대기업이 운영하는 멀티플렉스들이 허락한 영화들이나 볼 수 있는 시대’라고나 할까. 어느 분야나 남들이 덜 찾는 항목에 취미나 기호가 있다면 시간과 돈과 발품과 여타의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게 사실이라지만, 동네마다 극장이 널려 있고 이렇게나 많은 영화들이 개봉하는 나라에서, 어떤 영화들에는 몸을 축내가면서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돈과 특별한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이렇게 영화가 흔한 곳에서, 영화가 값비싼 사치재가 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