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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태풍이 지나간 부산, 그곳에서 만난 <신 고질라>

[칼럼]태풍이 지나간 부산, 그곳에서 만난 <신 고질라> 대표 이미지

일본의 대표 괴수 영화 ‘고지라’가 이번에는 안노 히데아키와 히구치 신지 감독의 작품으로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왔다.

1998년 일본 문화 개방 이후 <고질라 24 - 고질라 2000 밀레니엄>(오카와라 타카오, 1999)(이하 고질라 2000 밀레니엄)이 오리지널 재팬 블록버스터 영화로 소개되어 개봉했다가 흥행에 대참패, 개봉 며칠 만에 간판을 내린 적이 있었다. 당시 할리우드판 <고질라>(롤랜드 애머리히, 1998)가 나온 뒤 일본에서 자신감을 갖고 제작한 작품이어서 특수효과에 상당히 신경을 쓴 흔적이 느껴졌지만,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본 <고질라 2000 밀레니엄>은 할리우드판 <고질라>나 한국의 <용가리>(심형래, 1999)에 익숙해진 관객의 시선으로 봐도 조악하고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비디오나 책으로 귀하게 접해야만 했던 고지라 시리즈가 정식으로 극장에 개봉하면서 그동안 갖고 있던 신비감이 사라지는 느낌과 동시에 괴리감이 들어 고민했던 기억도 있다. 간절히 바라던 것이 어느 순간 갑자기 이루어지게 되니 뭔가 허무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 후로 일본에서는 꾸준히 고지라 시리즈가 나왔고, 국내에서도 개봉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고질라 2000 밀레니엄> 흥행 부진의 여파로 일본영화제 등에서의 소규모 상영 말고는 일본판 고지라가 국내에서 정식개봉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2014년에는 또 다른 할리우드판 <고질라>(가렛 에드워즈)가 개봉했으나 개봉 당시 악재가 겹치며 국내에서는 흥행에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이번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신 고질라>(히구치 신지, 안노 히데아키, 2016)가 오픈 시네마로 선정되어 개막식 다음 날 저녁,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상영되었다. 기술 시사회를 통해 이미 보기는 했지만 야외극장의 대형 스크린으로 접한 <신 고질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태풍 차바의 상처가 남아있는 부산에서 관람하니 묘한 사실감이 느껴졌고, 부산의 초고층 빌딩과 영화 속 도쿄의 빌딩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관객과의 만남: 와타나베 켄과 이상일(위) 히구치 신지와 하세가와 히로키(아래)

이번 영화제에는 <신 고질라>를 연출한 히구치 신지 감독과 주연배우 하세가와 히로키가 내한하여 관객들과 만났다. 거기에 영화 <분노>의 주연배우 자격으로 내한한 할리우드판 <고질라>(2014)의 와타나베 켄과 <곡성> 배우의 자격으로 내한한 쿠니무라 준(<신 고질라> 출연)까지, 한곳에서 고지라 출연 배우와 감독들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굉장한 기회였다. <신 고질라>가 처음 상영된 10월 7일에는 히구치 신지 감독과 하세가와 히로키가 두레라움 광장과 야외극장에서 연이어 무대 인사를 진행했다. 이날 처음 만난 히구치 신지 감독은 굉장히 유머러스한 모습이었고 하세가와 히로키는 기존 영화에서 본 모습과는 달리 점잖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와타나베 켄은 가만히 있어도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었다. 히구치 신지 감독과 하세가와 히로키는 포토 타임 때 관객들을 위해 <신 고질라> 손 모양을 따라 하며 팬서비스를 해 주었다. 쿠니무라 준까지 보고 왔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일정 때문에 못 보고 온 게 아쉽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고질라>에 자극을 받아 다시 시작된 일본의 고지라 시리즈는 이후 가렛 에드워즈의 <고질라>에 의해 다시 한 번 영향을 받게 된다. 그 후 이번에 나온 <신 고질라>는 더 이상 할리우드 고지라와 비교를 못 하게 하기 위한, 종지부를 찍기 위해 나온 영화 같다는 느낌이었다. 이번 작품은 1954년 괴수의 왕 <고지라> 1탄 이후 가장 징그럽고 무서운 외양의 고지라가 등장하여 일말의 연민과 동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나온 일본 역대 고지라 시리즈 중 고지라가 무섭게 나왔던 적이 3번 정도 있었는데 신기한 건 이때가 일본이 국제적으로 위기감을 느끼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일본에서 최근 일어난 자연재해와 인재, 외부의 적에 대한 현실이 반영이 된 거라 생각된다. 고지라 시리즈를 포함하여 일본 괴수 영화에 등장하는 괴수의 상징은 일본을 위협하는 재난 혹은 적국을 의미하곤 하는데,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에서 직접적인 전쟁영화나 일본의 군사력을 자랑할 만한 영화를 만들기 어려워지자 그 대안으로 나온 게 바로 괴수와 외계인이 일본을 침공하는 영화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 고질라>도 가볍게 볼 수 있는 상업 영화인 것 같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을 생각하면 마냥 가볍게만 볼 영화가 아니기도 하다. 자위대의 지원 하에 재난(고지라) 앞에서 하나가 되어 해결해 나가는 모습은 원폭, 지진, 쓰나미, 방사능 유출 사고를 겪은 일본이 이를 극복하고 자신들의 국가를 지켜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고지라를 공격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하는 일본 각료의 모습과 미국의 도움 부분에 대한 이중성, 언제든 고지라가 다시 깨어날 수 있다는 암시 등은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 입장에서는 그다지 유쾌한 부분은 아니다.

괴수 영화에도 나라 간의 자존심 대결이나 당시의 시대상과 국제문제 등이 반영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에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와 미국과의 관계, 그리고 투명하지 못한 언론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괴물>이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일본 관객들이 한강에 괴수가 나타났는데 왜 경찰이나 군대가 출동을 안 하는 모습이나, 현서가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도 경찰이 믿지 않는 장면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쩌면 한국 관객 입장에서는 <신 고질라>에서 피난 가지 못한 노인을 위해 폭격을 안 하거나 우왕좌왕하긴 하지만 국민을 속이려 하지는 않는 정부 각료들의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날 부슬비가 내리는 악천후 속에도 많은 관객이 야외극장에 와서 <신 고질라>를 함께 관람했다. 고지라 팬, 에반게리온 팬, 그리고 하세가와 히로키 배우 팬까지 모두 모여 손뼉 치며 환호하며 관람했다. 영화가 끝나고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 기념촬영을 하는 관객들도 많았다. 이날 옆자리에 가족과 함께 온 꼬마 관객이 있었는데 긴 러닝 타임 내내 조용히 몰입해서 보고, 영화가 끝난 후 재미있었다고 말했던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이번 <신 고질라>는 슈트가 아닌,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고지라인만큼 국내 관객들의 눈높이에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한국 관객들에게 지진과 원전의 공포가 이제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닌 상황이 되어버렸기에 고지라가 상징하는 메타포를 이해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논란의 <신 고질라>는 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 한국 관객과 정식으로 만날 예정이다. 

편집자 주: 원고 내용 중 ‘ゴジラ’는 원발음에 가깝게 ‘고지라’로 표기하였으나, 영화 제목은 개봉 제목을 따라 ‘고질라’로 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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