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영화제 출품요강에서 지켜져야 할 것들에 대해
얼마 전 한 영화제에 상영이 결정된 감독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올해 상영하는 모든 작품을 IPTV에서 영화제 기간에는 유료로, 영화제 이후에는 3개월간 무료로 서비스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감독은 “이게 말이 돼요?”라고 물었다. 물론 작품의 배급권을 가지고 있는 협회와 사전에 연락하거나 협의된 바는 없었다.
‘출품요강’이 발휘하는 막강한 힘
영화제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 외에 별도의 플랫폼에서 작품을 서비스할 수 있고, 이것이 사전에 별도의 협의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영화제의 주장에 근거로 사용된 것은 바로 ‘출품요강’이었다. 이 영화제의 출품요강에는 ‘○○○ 영화제 이름으로 IPTV 상영 등 기타 뉴미디어에 일정 기간 상영될 수 있으며’라는 규정이 있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지난해 한 영화제가 배급사나 작가와 별도의 동의 절차 없이 해외에서 작품을 상영한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항의했을 때 돌아온 대답도 같았다. ‘출품요강에 내용이 나와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영화제의 출품요강의 힘은 강력하다. 출품요강 규정에 따르면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는 순간 출품자는 요강에 있는 내용에 자동으로 동의를 표시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작권자나 배급사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이들은 한결같이 ‘출품요강’ 한 마디로 대답해왔던 것이다.
출품요강이 무엇이길래, 그렇게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출품요강은 출품 방법을 안내해주는 설명서라기보다는, 저작권자가 자신의 작품을 해당 영화제에 출품하였을 때 생겨나는 권리에 관한 이슈들을 정리해놓은 일종의 계약서에 가깝다. 대부분의 영화제가 작품공모와 함께 출품요강을 홈페이지에 공지하는데, 규정하고 있는 내용들은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영화제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내용이나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도 다르다. 그럼에도 영화제에 출품할 때 이들 내용을 세부적으로 따져보기보다는 간단한 확인절차를 거친 후 작품을 출품하게 되는데, 이는 분명 어느 정도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출품요강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에는 분명 그러했을 출품요강과 영화제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는, 시간이 흐르면서 운영하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애초의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마치 경전의 한 구절 같은 출품요강의 단어만이 글자 그대로 권력을 가지게 되는 현상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제는 우리가 공유해왔던 막연한 상식 -사실, 그러한 상식이 실재해왔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에 기대는 것이 아닌, 창작자의 권리와 작품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명문화된 출품요강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편리함에 숨겨진 무서운 덫
최근 영화제의 출품요강은 내용의 복잡화와 형식의 단순화 경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내용의 복잡화는 영화제 상영 외의 상영회나 온라인 플랫폼으로 영화제의 영역을 확장하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매번 상영동의를 받는 행정상의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영화제 출품요강에 이 모든 내용을 한 번에 담아서 동의받고자 하는 경향이다. 형식의 단순화는 출품 자체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약식으로 신청서를 작성하여 출품 가능하게 하는 방법과 필요한 내용을 축약하여 출품 방법에 대한 설명서에 가까운 출품요강으로 공지하는 방법이 있다.
두 경향은 영화제나 출품자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규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출품자는 간단하게 자신의 권리를 영화제에 빼앗길 수도 있으며, 영화제에서는 이러한 출품요강을 근거로 작품의 권리를 충분히 악용할 수 있다. 사실 영화제에서 별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출품요강에 적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별도의 협의 없이 사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없어 자칫하면 열려있는 규정이 될 수도 있다. 영화제에 출품한 것이니, 영화제에서만 상영한다는 상식도 의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출품요강에서 지켜야 할 의미, 그리고 형식
출품요강은 영화제와 출품자인 저작권자가 맺는 첫 번째 약속이다. 영화제는 출품요강을 통해 저작권자가 이 작품의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함과 동시에, 저작권자의 권리를 지켜줄 것을 함께 약속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영화제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작품의 권리를 정확하게 명시해야 한다. 즉 기본적인 계약서에 들어가는 기간과 지역을 포함한 권한의 범위를 말한다.
특히, 영화제 상영 외에 다른 권리를 사용하고자 할 때는 정확한 정보의 제공과 사전협의 절차를 거칠 것을 명시해야 한다. 그리고 영화제가 이러한 권리 사용을 요구하였을 때, 이를 거절한다고 해도 영화제에서의 작품 상영 등 기본적인 권리가 침해되지 않는 것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때로 영화제는 자신의 작품을 상영하고 싶은 창작자에게 권력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제는 협의 과정에서 감독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지가 만들어졌는지 스스로 반문해봐야 한다.
영화제들 중 상영작을 ‘비영리’ 혹은 ‘공공목적’의 활용을 전제로 작품의 권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두 단어의 뜻이 애매하여 어디까지 비영리로 볼 수 있으며, 무엇이 공공목적인지 정의하기 어렵다. 결국 해석의 여지가 많은 두 단어로 상영료 지불 없이 작품을 사용할 권리를 가져가는 조항으로 악용될 수 있다.
간혹 영화제들 중 출품 규정과 관련하여 영화제와 저작권자 간의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경우, 규정에 없는 사안에 대하여 상호 협의가 아닌, ‘영화제의 판단에 따른다’거나 ‘영화제가 결정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는 경우들이 있다. 저작권자가 가지고 있는 권리를 영화제가 사용함에 있어 최종 결정은 저작권자에게 있는 것이 맞다. 권리를 빌려달라고 이야기하는 자가 그 권리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말이다.
그리고 영화제들이 출품 기간이 끝나면, 출품요강을 삭제하여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다. 영화제와 저작권자 간의 약속을 서로 확인하는 의미에서도 이러한 출품 요강의 내용들은 기본적으로 언제든지 접근할 수 있도록 열려 있을 필요가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4년 공모전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다. 이는 수상작의 저작권이나 각종 권리를 공모전에서 가져가면서 생기는 문제를 방지하고, 창작자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에서 발표되었다. 이제는 영화제에도 이러한 출품요강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감독 등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각 협단체와 배급을 담당하고 있는 배급사들이 중심이 되어 영화제에 제안을 해보면 어떨까? 영화제 또한 이번 일을 계기로 지금이라도 다시 영화제의 출품요강을 살펴보면서 행정적 편의를 위해 잊혀져갔던 규정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는 영화제를 만들었던 처음의 의미들을 살려 재정비를 해보면 어떨까? 신뢰는 어렵게 쌓이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만약, 그동안 만들어왔던 신뢰관계가 무너졌다면, 다시 처음부터 쌓을 수밖에 없다. 영화제가 감독과 맺는 첫 번째 약속인 출품요강을 다시 살피고 뜯어보면서 서로의 신뢰를 다시 쌓는 첫 번째 길이 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