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칼럼]만화가의 <환절기>
2012년 봄, 서울 시내의 한 카페에서 이동은 감독과 마주 앉은 가운데 아직 제목이 붙어있지 않은 시나리오를 읽었다. 그때 나는 만화와는 관련이 없는 IT 관련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만화가로서가 아닌 시나리오를 읽을 첫 독자로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의 시나리오를 읽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전에도 코미디가 가미된 몇 편의 시나리오를 읽은 적이 있었지만, 그 작품들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누적되는 실패로 인한 그간의 마음고생을 반영하는 듯 새 작품은 웃음기가 빠지고 침묵과 슬픔, 좌절이 전면에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또한 담담한 위로를 담고 있었다. 참으로 그 다우면서도 내게도 다르지 않은, 수렴하는 분위기의 정서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한달음에 빠져들어 읽었고 처음으로 그에게 조건을 붙이지 않은 만족스러움을 전달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당장 바닥을 딛고 일어서게 된 것은 아니었다. <환절기>는 그가 초기에 쓴 시나리오들과는 달리 당장 영화로 제작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 아니었다. 그는 소박하더라도 작품으로 가시화할 수 있는 기회가 절실했기 때문에 기다림과 번민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그즈음 일과 직장, 사람에 대한 회의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업무에 적절한 의미를 찾지 못했고, 관계는 부담스러웠고, 결정적으로 가난했다. 일하는데도 가난하다니! 적절한 출구가 필요했지만 이렇다 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가 시름 하는 모습을 보다가 나는 별생각 없이 “(아무도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지 않으면) 내가 그려볼까?”라고 불쑥 던졌다. 객기였다. 어쨌든 그가 웃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그날의 제안이 유효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그가 진지한 제안을 해왔다. 객기가 촉발한 운명이었다. 대책 없이 내뱉은 말이었기에 망망대해에 준비도 없이 나갈 신세였지만, 출구는 필요했고 포기해야 할 경제적 이득도 없었기 때문에 결정은 오히려 쉬웠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불투명한 미래와 가난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마음 편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짧은 준비 과정을 거쳐 나는 이 작품을 만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2012년 여름부터 나는 <환절기>의 만화 작업에 착수했다. 주 중에는 그림을 그리고, 주말에는 이동은 감독과 카페에서 만나 차주 그릴 분량의 콘티 작업을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몇 달 사이에 만화가로 변신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실상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습작은커녕 <환절기>가 처음 그려 본 만화다운 만화였다. 만화가로서는 생초보였던 셈이다. 손은 느렸고 그만큼 진행도 더뎠다. 하루에 한 페이지, 많으면 두 페이지를 그렸다. 특별히 기성 만화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던 만큼 특정한 양식의 만화를 그린다는 생각보다는 ‘영화를 그림으로 옮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애초 영화를 목적으로 쓴 시나리오였기에 그림으로 표현하면서도 만화 연출보다는 영화를 보면서 경험해온 것들이 많은 토대가 되었고 그것이 내게는 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동은 감독과 공동 작업에서 나는 그를 ‘글 작가’보다는 문자 그대로 ‘감독’으로 여겼다. 내게는 작가라는 자의식이 형성되기도 전이었고, 그가 이 작품을 시작했기 때문에 작품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고 관장할 수 있는 사람은 나보다는 그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캐릭터 디자인부터 콘티, 작화의 세세한 영역까지 협의를 통해 결정했다. 캐릭터의 연기 또한 내 손에서 구현되더라도 그 감정의 결은 콘티를 짜면서 자주 상의를 거쳤다. 아리송하게 느껴지는 부분에서 더러는 직접 연기 시범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의 외면을 절대적으로 나 혼자만의 주관에 따라 구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화책 표지에 글, 그림을 따로 구분해서 표기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렇게 꼬박 일 년을 작업한 이듬해 여름 300페이지 정도의 원고가 완성되었고, 2013년 겨울 만화 <환절기>가 출간되었다. 그리고 3년이 흐른 지금 이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이 글이 게재될 즈음엔 촬영이 끝났을 지도!) 어쩌면 본래의 목적을 찾아갔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환절기>는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까? 사실 나는 영화 제작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화 <환절기>의 모습은 미디어 등에 공개되는 부분으로 유추해보는 것이 전부다. 원작자와 연출자가 같기에 최소한 작품의 의도나 성격이 바뀌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는 만화처럼 한두 사람의 손을 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거기에 더해질 우연과 현실적인 제약들이 분명 원작과는 다른 예상치 못한 색다른 맛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만화 <환절기>를 이미 읽어본 독자에게는 고해상도로 구현된 <환절기>를 만나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생생한 색채, 의상, 배경 미술, 그리고 영화이기에 경험할 수 있는 음성과 소리, 음악까지. 내가 여건과 능력 때문에 적당히 타협한 부분들이 훌륭한 디테일로 채워져 있길 바란다.
그럼, 영화로 <환절기>를 처음 본 관객이라면?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만화 <환절기>를 사서 읽어보시라. 만화가로서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다.
이동은 감독과 공동 작업에서 나는 그를 ‘글 작가’보다는 문자 그대로 ‘감독’으로 여겼다. 내게는 작가라는 자의식이 형성되기도 전이었고, 그가 이 작품을 시작했기 때문에 작품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고 관장할 수 있는 사람은 나보다는 그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캐릭터 디자인부터 콘티, 작화의 세세한 영역까지 협의를 통해 결정했다. 캐릭터의 연기 또한 내 손에서 구현되더라도 그 감정의 결은 콘티를 짜면서 자주 상의를 거쳤다. 아리송하게 느껴지는 부분에서 더러는 직접 연기 시범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의 외면을 절대적으로 나 혼자만의 주관에 따라 구현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화책 표지에 글, 그림을 따로 구분해서 표기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렇게 꼬박 일 년을 작업한 이듬해 여름 300페이지 정도의 원고가 완성되었고, 2013년 겨울 만화 <환절기>가 출간되었다. 그리고 3년이 흐른 지금 이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이 글이 게재될 즈음엔 촬영이 끝났을 지도!) 어쩌면 본래의 목적을 찾아갔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환절기>는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까? 사실 나는 영화 제작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영화 <환절기>의 모습은 미디어 등에 공개되는 부분으로 유추해보는 것이 전부다. 원작자와 연출자가 같기에 최소한 작품의 의도나 성격이 바뀌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는 만화처럼 한두 사람의 손을 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거기에 더해질 우연과 현실적인 제약들이 분명 원작과는 다른 예상치 못한 색다른 맛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만화 <환절기>를 이미 읽어본 독자에게는 고해상도로 구현된 <환절기>를 만나게 되는 기회이기도 하다. 생생한 색채, 의상, 배경 미술, 그리고 영화이기에 경험할 수 있는 음성과 소리, 음악까지. 내가 여건과 능력 때문에 적당히 타협한 부분들이 훌륭한 디테일로 채워져 있길 바란다.
그럼, 영화로 <환절기>를 처음 본 관객이라면?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만화 <환절기>를 사서 읽어보시라. 만화가로서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