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
[초이스]어느 날 그 길에서
황윤, 2006
<어느 날 그 길에서>(2006)는 황윤 감독의 <작별>(2001), <침묵의 숲>(2004)에 이어지는 ‘야생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작별>에서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의 슬픈 눈빛을 담아냈던 감독은 이제 도로 위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야생동물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야생동물의 교통사고를 이르는 ‘로드킬 Roadkill’이라는 말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고 생소하다. 하지만 로드킬은 야생동물을 멸종의 위기로 내모는 가장 큰 위협 요소 중 하나이다. ‘더 빨리 더 싸게’ ‘경제 활성화, 반나절 생활권’ 등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고 풍요롭게 해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고속도로의 개통이나 도로 확장이 야생동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혹은 그 사실에 주의를 기울인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날 그 길에서>는 국내 최초로 로드킬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세 명의 생태학자 태영, 천권, 동기의 뒤를 쫓으며, 지금껏 한번도 기록되지 않았던,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래서 ‘누락’되어 왔던 야생동물의 죽음을 따라간다.
세 명의 로드킬 조사자는 88고속도로, 섬진강변도로, 산업도로로 삥 둘러쳐져 도로에 갇혀있는 지리산 주변을 돌아다니며 로드킬 당한 야생동물의 사체를 치우고, 기록하고, 수집한다. 차들이 씽씽 달리는 도로에서 동물의 핏자국을 따라가거나, 카메라로 기록하는 그들 역시 교통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처음부터 인간의 땅이 아니라, 그들의 땅이었던 곳이 파헤쳐지고, 도로로 단절되면서 야생동물들은 짝짓기를 위해, 물을 먹거나 먹이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도로를 건널 수밖에 없다. 혹은 도로의 중앙분리대나 옹벽 등의 구조물로 한번 도로로 나오고 나면 다시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트럭이나 고속버스의 엄청난 차량 속도로 인해 발생하는 공기의 역류로 작은 새들이 죽기도 한다. 의식불명 상태로 쓰러져 있던 어린 암컷 삵을 치료해 야생으로 돌려보냈지만, 며칠 후 처음 발견되었던 곳에서 로드킬로 죽은 ‘팔팔이’의 에피소드는 로드킬의 심각함을 너무도 여실히, 극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이다.
로드킬을 조사하는 세 사람과 감독을 제외하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단연 도로 위에서 길을 잃거나 죽어가는 야생동물들이다. 멧토끼, 거북이, 칡부엉이, 삵, 뱀, 두꺼비, 족제비, 고라니, 황조롱이, 오목눈이, 너구리 등 도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희귀한 야생동물들을 이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 감독은 인간의 시선이 아닌 야생동물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로와 자동차들, 고속으로 달려가는 차량의 불빛들을 담아내려고 애쓴다. 전력으로 질주하는 차량들 사이로 어쩔 수 없이 길을 건너야 하는 아슬아슬한 야생동물의 횡단은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에게도 불안과 공포를 전해준다. 굉음과 폭풍 같은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가는 거대한 트럭, 관광버스, 자가용들은 그야말로 하나 하나의 이야기와 사연을 갖고 있는 야생동물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무심하다. 밤 사이 이동을 감행한 야생동물들이 다음 날 처참한 형태로 길 위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무척이나 안쓰럽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감독은 관객들이 아스팔트 도로 위에 흔적도 없이 붙어 껍데기만 남아있는 두꺼비나, 내장을 드러낸 채 죽어있는 너구리나 삵의 모습을 지켜보기를 바란다.
<어느 날 그 길에서>은 우리에게 인간이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빼앗고, 그들의 땅을 파헤쳐 인간들을 위한 도로를 만들어낼 권리가 있는가라고 묻는다. 로드킬을 조사하는 천권의 말처럼 이곳은 ‘원래 그들의 땅이지, 우리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손쉬운 대안을 속시원히 이야기해주는 것은 아니다. 정부에서는 생태도로와 유도펜스 설치 등의 일시적 해답을 내놓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는 없다. 대신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인간의 삶의 방식, 자연과 생명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그 어떤 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섬진강 도로가 천 마리가 넘는 두꺼비가 죽어가는 도로라는 아이러니한 사실이 드러내듯, 인간이 자연과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지 않는 한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할 수 없을 것이다.
한번 도로가 나고 나면, 차의 통행이 없어지지 않는 한 로드킬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도로 자체가 야생동물의 서식지 단절을 야기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그저 경제적 풍요로움을 약속하는 고속도로(‘행복을 이어주는 사람들’로 포장된)에 대해 우리가 다른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은 언제쯤 가능할까. 우리는 언제쯤 인간 위주의, 인간의 편리와 풍요로움만을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때까지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길 위에서 무의미하게 죽어가고, 또 사라져가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