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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뉴우스]4월 혁명과 이승만 대통령

[오늘의뉴우스]4월 혁명과 이승만 대통령 대표 이미지
작년 초까지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 ‘촛불 시위’를 벌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성과로 최고 권력자였던 전임 대통령은 현재 독실 감방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1945년 해방 이후부터인 길지 않은 한국 현대사의 궤적에서, 이는 크게 낯설지 않은 경험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기념비적 첫 걸음은 58여 년 전, 1960년 ‘4월 혁명’이었다. 공명선거를 요구하는 1960년 2·28 대구 학생시위부터 3·15부정선거에 들고 일어난 두 차례의 마산 시위, 항거의 정점을 이룬 4·18과 4·19시위를 거쳐, 쐐기를 박은 4월 25일 교수단 시위와 4월26일 대규모 민중 시위에 이르기까지의 역동적 과정은 그 이후의 한국 민주화운동의 비옥한 자양분을 이뤘다. 물론 대미를 장식한 것은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발표였다.  

4월 혁명 직전까지도 정부와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 우상화 작업을 공들여 진행 중이었다. 특히 6·25전쟁의 피해가 수습단계에 접어든 1955년부터 장기집권을 위한 우상화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남산과 시청 앞, 탑골공원 등지에 이승만 동상이 줄줄이 세워졌고, 이승만을 민족의 영웅이자 국가의 아버지, 심지어 “한반도의 그리스도”로까지 치켜세우는 전기도 출간되었다.1) 매년 대통령 생일에 맞춘 3월 혹은 4월에는 국가적 차원의 탄신 축하 행사가 전국에서 벌어졌다. 이 광경은 당시 찍혀진 여러 영상을 통해 확인된다. 

제82회 대통령 탄신 경축 행사(1)2) : 이승만 대통령 부부
제82회 대통령 탄신 경축 행사(1)2) : 이승만 대통령 부부

제81회 대통령 탄신 경축 행사(1)3) : 고전무용을 추는 여고생들
제81회 대통령 탄신 경축 행사(1)3) : 고전무용을 추는 여고생들

제81회 대통령 탄신 경축 행사(2) : 시가행진을 하는 학생들
제81회 대통령 탄신 경축 행사(2) : 시가행진을 하는 학생들

무엇보다 대통령 탄신축하 행사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동원되었다. 일례로 1956년 3월 26일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된 81세 탄신 경축식에서는 “대통령 각하 앞에 씩씩하게 자라나는 대한 아들의 기상을 마음껏 자랑”하기 위한 인창고등학교 남학생들의 연합체조가 펼쳐졌고, 수도여고 학생들은 “대통령 각하의 만수무강하심을 상징하는 고전무용”을 추었다. 행사 후 학생들은 경축 시가행진에 나섰다. 1957년 4월 22일의 이승만 대통령 82세 탄신 경축식에서도 500여명의 숙명여고 학생들은 한복을 입고 “축원장수라는 고전무용을 나비와 같이 덩실덩실” 추어야 했다. 경복고 남학생들은 인간 탑을 쌓는 집단체조를, 상명여고 학생들은 대통령의 만수무강을 비는 검무를 선보였다. 적어도 수개월 간의 연습은 필수였을 것이다. 
 
제82회 대통령 탄신 경축 행사(2) : 경례하는 학생들
제82회 대통령 탄신 경축 행사(2) : 경례하는 학생들

제82회 대통령 탄신 경축 행사(3) : 체조하는 남고생들
제82회 대통령 탄신 경축 행사(3) : 체조하는 남고생들

이러한 광경은 40% 사전투표와 공개투표 등 수많은 부정이 행해진 3.15대통령선거와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된 마산상고 1학년생 김주열의 시체, 그리고 항의시위에 대한 경찰의 무차별 발포 등 악화가 거듭되던 속에 반전된다. 학생들이 대통령의 만수무강을 위한 동원의 대상에서, 이승만정부에 대항하는 시위의 주체로 부상한 것이다. 특히 고등학생들은 4월 개강을 맞아 4월 18일부터 본격적 시위에 나선 대학생들보다 한발 먼저 시위를 전개했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공명선거를 외치며 첫 시위에 나선 주역 역시 고등학생들이었다. 4월 혁명의 대표 격인 4월 18일과 4월 19일의 시위 영상에서 드러나는 학생들의 모습 역시 위의 대통령 탄신 축하행사와 뚜렷이 대조된다.
 
4월 19일 시위(1)4) : 시위에 나선 고등학생들
4월 19일 시위(1)4) : 시위에 나선 고등학생들

4월 19일 시위(2) : 시위하는 대학생들
4월 19일 시위(2) : 시위하는 대학생들

4월 19일 시위(3) : 경찰과 대치하는 시위대
4월 19일 시위(3) : 경찰과 대치하는 시위대
 
4월 19일 시위(4) : 차에 올라타고 질주하는 시위대
4월 19일 시위(4) : 차에 올라타고 질주하는 시위대

물론 4월 혁명의 주역은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시위에 박수를 보냈던 이들부터, 직접 거리로 뛰어든 이들까지 수많은 시민들의 힘이 보태진 결과였다. 특히 4월 혁명기간 중 (1960.2.28.~4.26) 경찰 진압으로 사망한 186명(정부 공식집계)을 살펴보면, 학생층 77명(국민학생·중학생 19명, 고등학생 36명, 대학생 22명) 외에 압도적 다수는 하층노동자 61명과 무직자 33명이었다. 이는 도시 하층민들이 4월 혁명의 최선두에서 격렬하게 싸웠던 또 다른 주역임을 알려준다. 
 
남산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철거(1)5)
남산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철거(1)5)

남산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철거(2)
남산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철거(2)

4월 26일 이승만의 하야 성명 이후, 그의 몰락을 상징한 것은 그토록 이승만 정권이 몰두했던 대통령 우상화 작업 그 자체였다. 단적으로 남산 조선신궁 터에 세워졌던  약 25미터 이승만 동상은 1960년 8월 철거되었다. ‘이승만’을 앞세워 억압을 정당화했던 사회는 그 상징과 함께 무너졌다. 다만 그 빈자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1년 여 뒤 5·16군사쿠데타가 발발하며 새로운 ‘동상’을 예고하게 되기 때문이다.  


1) 우남전기편찬회, 『우남노선』, 명세당, 1958, 187쪽.
2) 국방뉴스 제65호 (한국근현대영상아카이브) 
3) "제82회 대통령 각하 탄신 경축 행사", 대한뉴스 제110호 (e영상역사관)
4) "Korea Anti Government Riots"(NARA수집자료) (한국근현대영상아카이브) 
5)  "이 박사 동상 철거", 대한뉴스 제279호 (e영상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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