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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 The Family Pedigree

임권택, 1978

족보 The Family Pedigree 대표 이미지

나는 두 편의 임권택의 첫 번째 영화에 관해서 썼다. 첫 번째는 그의 ‘두 번째’ 첫 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이고, 두 번째는 그의 첫 번째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이다. 이번에는 나의 첫 번째 임권택 영화를 쓸 차례이다. 말하자면 나의 마들렌의 시간. 부디 당신께서 잠시 동안 내가 되찾은 시간에 잠겨서 배움을 구했던 기쁨을 이야기하는 것을 용서해주시길. .... “혹은 그처럼 오랫동안 기억 바깥에 버려진 그런 기억에서, 살아남은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게 분해되어버렸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조언. 그래서 나는 그것을 여기서 불러오려고 한다. “뿌리 깊게, 무형으로, 집요하게, 충실하게, 오래 동안 넋처럼 남아있어, 추억의 거대한 건축을, 다른 온갖 것의 폐허 위에, 환기하며, 기대하며, 희망하며” 종종 나는 동료들과 임권택의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말고 문득 질문을 한다. 당신이 첫 번째 본 임권택의 영화는 무엇입니까? 물론 이 질문은 자료를 거슬러 올라가서 기억을 더듬으려는 것이 아니다. 이 질문의 정확한 판본은 당신이 임권택이라는 이름을 의식하고 본 첫 번째 영화는 무엇입니까, 라는 것이다. 이미 내 주변에는 1962년 2월 4일 국제극장에서 개봉한 <두만강아 잘 있거라>에서부터 시작한 사람은 거의 없다. 물론 이 질문이 크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상하게 이런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진다. 그런 다음 공중에 매달린 시간. 

약간의 우회. 1979년 그해 봄. (하스미 시게히코의 말투를 흉내 내자면) 그때 내 마음 속에 떠 있는 영화의 별 중에서 가장 빛나는 세 개의 별은 알프레드 힛치콕과 장 르누아르, 그리고 고다르였다. 물론 당신은 다른 이름을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거기에 몇 개의 별을 더할 것이다) 그때 앙드레 바쟁의 책은 읽는다기보다는 차라리 한 줄씩 외우고 있었다. 그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 내게 해 준 충고. 시를 음미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그 시를 불러내서 낭송할 만큼 외어야만 해요. 그때 비로소 당신은 한 단어씩, 한 문장씩 맛보게 될 거에요. 나는 영화를 음미하고 싶었다. 거의 매일 프랑스문화원에서 영화를 보았고, 1968년 이후 서울에서 상영된 단 한편의 쇼 브라더즈 영화도 놓치지 않았으며, 매주 주말 텔레비전에서 명화극장을 보았다. 그때 내가 본 한국영화들은 대부분 나를 실망시켰다. 당신은 이 시절 한국영화의 대부분이 반공영화이거나, 새마을영화이거나, 혹은 문예영화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각색영화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한국영화는 외화 스크린 쿼터를 따내기 위해서 최소의 제작비로 재빨리 촬영한 다음 의무 상영일수를 마치기가 무섭게 간판을 내렸다. 대중들은 텔레비전으로 모두들 떠난 다음의 일이다. 내게는 어떤 나침반도 없었다. 나는 한국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다. 다만 동시상영으로 내가 보고 싶은 영화와 함께 상영할 때 할 수 없이 절반만 본 다음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극장을 떠났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비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문학을 참고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비평은 전적으로 나 자신만을 위한 글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계간지를 읽기 시작했다.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은 배움의 시작이었다. 김병익과 염무웅, 그리고 백낙청, 그런 다음 김현. 누구보다도 박현채. 민족문학론이라는 말. 내가 사는 땅. 제 3세계로서의 한국문학. 처음에는 그렇게 내 앞에서 오래 머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두 개의 말,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나는 문학비평에서 사용된 말들을 영화로 번역해서 읽고 있었다. 그런 다음 그 말을 고스란히 한국영화에로 돌렸다. 한국영화, 당신은 무엇입니까? 그때부터 나는 한국영화를 의식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럽거나 불쾌한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장면들은 하나의 씬 안에서 서로 맞지 않았으며, 등장인물들은 종종 서로 다른 데를 쳐다보고 있었고, 줄거리는 너무 나빴으며, 대사들은 상투적이었고, 후시로 녹음한 대사들은 입과 따로 놀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남산에 자리했던 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가끔씩 마련한 상영 일정을 찾아가 최인규의 <자유만세>, 이강천의 <피아골>,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유현목의 <오발탄>, 김기영의 <하녀>, 신상옥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보았다. 한국영화는 아주 가끔씩만 좋았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난 나라에서 나는 마치 외국영화를 보듯이 한국영화를 보았다. 


아마 봄날 이었을 것이다. 그날 걸어가던 길 가로수가 막 피어나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침 수업은 마침 휴강이었으며, 나는 학교에 일찍 도착했다. 버스 정거장에서 내려서 오른쪽으로 오던 길을 따라 다시 내려가면 건물 오층에 작은 극장이 하나 있었다. 나는 이 극장의 이름이 지금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날 상영되는 영화를 확인하지도 않고 그냥 습관적으로 표를 산 다음 극장에 들어갔다. 아침나절 이른 오전의 텅 빈 객석. 따분한 표정을 한 매점 소녀. 운 좋게도 영화는 잠시 나를 기다린 다음 시작했다. 나는 그 시절 항상 가장 나쁜 자세로 영화를 보았다. 먼저 언제나 가운데 통로 쪽 가장자리를 잡았다. 두 손으로 옷깃을 잡은 다음 의자 깊숙이 몸을 반쯤 비틀고 그런 다음 한쪽 발을 앞의 의자에 걸치고 다른 발을 그 위에 포개어 올려놓았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을 영화가 시작한 다음에야 알았다. 그냥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줄거리는 시작하자마자 아, 오늘은 망쳤구나, 라고 나를 탄식하게 만들었다. 조선총독부. 일제 강점하를 무대로 한 영화. 경기도청 총력 1과에 다니는 일본인 다니(하명중)는 지시에 따라 경기도 수원에 살고 있는 지주 설진영(주선태)를 만나러 간다. 조선총독부는 내선일체를 내세우며 창씨개명을 하는데 유독 수원 지역의 반발이 심해서 다니는 지역 유지인 설진영을 만나 설득을 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드라마로도 방영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이미 영화에 관심을 잃고 있었다. 그런데 거의 동시에 이 영화의 진행이 내가 실망한 것과 달리 갑자기 어느 순간 어떤 특수한 순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두 개의 순간. 이 순간(들) 사이의 간극. 어쩌면 실망이 나로 하여금 텅 빈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는지도 모른다. 그건 내가 보아왔던 것과 전혀 다른 방법이었다. 그저 이미지의 표면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여기엔 설명해야할 새로운 조건이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없어도 되는 장면들이 길게 이어지고, 때로 있어야 할 장면들이 없으면서 새로운 리듬이 나타났다. 간단한 예. 영화의 이상한 계산법. 4 +6 +5 와 2 +6 +7 을 각각 더하면 그 결과는 동일하지만 이 두 셈의 형태는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때 동일한 결과를 다시 7 +0 +8 로 늘어놓으면 0은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때 0은 ‘제로’가 아니라 미지수 x가 되는 것이다. 왜 그 자리는 비어있는가. 라캉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서관 서가의 빈 칸. 어느 순간보다도 영화가 시작되고 19분이 막 지났을 때, 다니가 설진영의 집에 머물면서 혼자 저녁을 맞이하며 문득 여기가 한국의 전통적인 집 안이라는 느껴보기 시작할 때, 이 영화는 (그 당시의) 내가 가늠할 수 없는 리듬으로 전체를 이끌기 시작했다. 이 리듬이 전적으로 한국의 전통적인 가옥의 선에서 시작되어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나는 갑자기 정신을 차려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어리둥절해졌다. 도대체 내가 지금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때 이걸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이 리듬이 매우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몹시 우아하다는 걸 보았다. 나는 극장을 나서면서 포스터를 들여다보았다. 거기에 ‘監督 林權澤’이라고 써 있었다. 그 당시 한국 영화포스터는 이름을 모두 한자로 썼다. 임권택의 68번째 영화. 그런 다음 나는 임권택의 영화를 차례로 보기 시작했다. 물론 <족보>가 내가 본 첫 번째 임권택의 영화는 아니다. 이미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동시상영을 하는 다른 영화와 함께, 하지만 나는 그 다른 영화를 보기 위해서, 때로는 중학교 때 단체관람으로, 하여튼 여러 경로를 통해서 보아왔(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인터뷰를 위해서 필모그래피를 정리하면서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그 전에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족보>는 내가 의식적으로 그 이름을 염두에 두고 차례대로 보기 시작한 첫 번째 임권택 영화이다. 나의 첫 번째. 차례로 본다는 문제. 나는 거기서부터 셈을 시작하였다. 무엇이 나중에 오고 무엇이 먼저 나타난 것일까. 무엇이 사라지고, 무엇이 남아있는 것일까. 나는 이 모든 것을 임권택이 계산했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 안에서 나타난 그 영화의 어쩔 수 없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 

<족보>는 일제 강점하 1930년 경성에서 태어난 다음 여기서 10살 때까지 살았던 일본인 가지야마 토시유키(梶山季之)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이 소설은 먼저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이때 드라마 대본으로 한운사가 쓴 각본을 영화사 화천공사에서 가져와 임권택에게 영화화를 제안하였다. 가지야마 토시유키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사람은 임권택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1967년 신상옥이 만든 <이조잔영>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으며, 그의 많은 소설들이 한국에도 번역될 만큼 잘 알려진 작가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가지야마 토시유키는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조선’에 대해서 향수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을 자기 소설 속에 그려냈다. 그러나 그가 ‘조선’에 관한 소설만을 쓴 것은 아니며 추리와 포르노를 곁들인 일본 기업소설로 더 유명하다. 그에 관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그가 1975년 홍콩에서 원인불명으로 객사했다는 사실이다. 그 말은 가지야마 토시유키는 임권택의 <족보>를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나는 그가 쓴 소설 속의 문학적 ‘조선’에 대해서 평가할만한 자리에 있지 않다. 그 대신 먼저 가지야마의 소설을 살짝 읽어본 다음 영화에로 옮겨갈 것이다. 

소설 <족보>에서 다니가 설진영을 찾아오는 장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국도를 따라 작은 내가 흐르고 있다. 파란 풀 무리였던 뚝도, 버드나무 가로수도 이제는 갈색으로 모습을 바꾸고 있다. 빨래를 하고 있는 농부의 손이 찬물에 빨갛게 얼어 보인다. 마른 풀 위에 널어놓은 흰 저고리와 치마는 무딘 초겨울의 햇살을 받으면서 왠지 을씨년스러운 느낌으로 눈에 비친다. 길의 좌우는 넓고 끝없는 추수가 끝난 그루터기가 우수수 기분 나쁘리만큼 정연하게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조금 일찍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했다” 임권택은 대본을 읽은 다음 이 소설의 원작을 읽었다. “내가 원작을 읽어보니까 이미 기울어져가는 한국 농촌풍경을 그려내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지배자의 입장에 선 사람의 감상이 풍경으로 떠오르고 있는 거요. 그 풍경 자체가 음산하고 살풍경하고 별로 정이 붙지 않는 그런, 이미 기울어져가는 나라이면서, 풍경 자체로 기울어진 나라의 을씨년스러움을 계속 잡아나가는 거요 ... (중략) 그런데 나는 왜정시대를 살면서, 이런 가혹한 지배 아래서도 한국인끼리 일어나고자 하는 활력이 그 안에 있다고 보는 거요” (<임권택, 임권택을 말하다>) 

둘 사이의 차이. 소설이 영화로 옮겨오면서 결정적으로 바뀐 것은 계절이다. 거의 가을이 끝나가고 추수도 마친 다음 이제 막 겨울이 오기 시작할 때 시작했던 소설은 영화에서 막 여름이 시작되고 있는 계절로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소설이 일인칭 화자 나,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을 영화는 바꾸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소설은 거의 다니의 독백처럼 이어진다. 그래서 그의 시선이 닿는 모든 풍경들은 거기 그 자체로 존재하는 대신 모두 주관적인 감정을 담고 형용사의 세계로 옮겨간다. 다니의 발길. 나의 시선. 이때 이 영화를 본 다음 나는 기묘하게도 소설에서 영화에로 각색하면서 단지 늦가을, 혹은 초겨울에서 초여름으로 옮겨갔다기보다는 무언가 계절을 거슬러 올라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정시대를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력에 넘치는 조선인”의 계절. 초여름. 한창 피어나는 나무들. 이제 막 시작된 활기를 띠기 시작한 논밭들의 기운. 일본인들이 지배하지만 이 땅의 계절을 어찌해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제 강점하이다. 결국 설진영은 창씨개명의 요구 앞에서 마지막 남은 유일한 저항의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하고, 다니는 그 장례식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나면 여름이 끝날 것이다. 그런 다음 가을이 지나가면 긴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이것은 잠시 미룬 계절의 잠깐 동안의 이야기이다. 역사 안의 틈새. 잠시 동안 가졌던 시간의 일시적인 환대. 예정된 수순. 하지만 그 안에서 나타난 새로운 간격. 말하자면 임권택의 간격. 그렇다. 내가 임권택의 영화에서 본 것은 운동이 아니라 새로운 간격이었다. 내가 일찍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간격의 리듬들. 영화가 그 어떤 한계에 부딪칠 때 그 안에서 찾아내는 새로운 면들, 또 다른 선들, 그 안에 가득 찬 힘이 모여 있는 점들. 그런데 그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내가 붙잡은 질문. 나를 사로잡은 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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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의 과정. 순서대로 하는 내 경험의 고백. 판에 박힌 듯한 질서의 리듬이 갑자기 멈추고 이 모든 것들이 다시 구성될 때, 그래서 마치 기습처럼 내게 느껴졌을 때, 나는 어리둥절해진 채 머물면서, 내가 이제까지 본 영화들을 베끼고 있는 듯한 질서로부터 갑자기 빠져나와 쇼트의 리듬이 새로운 질서 안으로 들어갈 때,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내가 모르고 있을 때, (여기서 내가 느끼고 있을 일인칭 주어의 이동을 유심히 느껴주시기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어떤 아름다움을 볼 때, 나는 새로운 영화와 만났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느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항상 새로운 영화와 만났다. 영화가 시작한 다음, 가지야마 토시유키의 소설 속의 다니의 방문을 소개한 바로 위의 문장을 영화로 옮긴 그 장면에서부터였다. 임권택은 가지야마의 소설에서 다니가 설진영을 찾아오는 장면을 20개의 쇼트로 찍었다. 매우 건조하게 찍힌 조선총독부 실내 구석에 홀로 서서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긴 다니를 보여준 다음 갑자기 영화는 바깥으로 나온다. 나는 <족보>를 설명하면서 몇 차례이고 갑자기, 라는 말을 쓸 것이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어느 순간, 자꾸만 다시 시작하는 것만 같은 갑자기, 의 쇼트와 마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경성을 벗어나서 수원에 도착하기까지의 장면이 없다. 그 대신 생각에 잠기자, 마치 그가 상상하는 조선의 풍경 안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듯이, 이미, 수원의 설진영 마을의 근처에 와 있다. 첫 쇼트는 다니가 멀리서 걸어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S# 1) 이때 이 장면은 이상한 방법으로 다니를 바라본다. 그는 여기에 막 도착했다기보다는 마치 그 풍경 안에서 낯설지만 무의미한 오점이 묻어나오듯이, 혹은 스며 나오듯 (수동적으로) 보여 진다. 더 이상한 다음 쇼트. 카메라는 거기서 그대로 아주 멀리 떨어져서 다니 따위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롱 쇼트로 농촌 초여름의 한가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S# 2) 나는 소설에서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니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이 두 번째 쇼트는 다니의 시점 쇼트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다니를 바라보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풍경이 다니를 바라본다. 그런 다음 수평으로 소나무 솔밭길 사이를 따라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두리번거리면서 걸어가는 다니를 보여준다. (S# 3) 그가 고개를 들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날아가 나무 위에 평화롭게 앉는 백로를 본다. (S# 4) 하지만 임권택은 재빨리 다니의 시점 쇼트를 중단시킨다. 다니의 쇼트로 돌아오면 그는 초록색이 파도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밭 사이를 들여다보면서 한껏 풍경을 느껴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S# 5) 이 설명의 방점은 보여준다, 에 있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다니. 임권택은 조금도 그런 모습에 동요되지 않는다는 듯이 수평 로우 앵글로 내려앉아서, 마치 카메라가 그 갈대밭 너울거리는 갈대 중의 하나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서 다니를 바라본다. (S# 6) 풍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카메라. 그 무심함. 그때 등 뒤의 버들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다. 그렇다. 이 장면 전체를 연결하는 힘은 바람의 방향에서 오는 것이다. 나무를 흔드는 바람. 여기서 살아본 사람만이 느껴보는 초여름의 기호. 다니는 마치 바람에 날려서 금방이라도 여기에 도착한 다음 그 바람결을 따라 이 풍경 속을 떠도는 것처럼 보인다. 저 멀리 논밭을 매는 남편을 위해 점심 찬을 준비한 아낙이 딸의 손을 잡고 막 도착했다. 롱 쇼트. 지금은 점심시간이다. 해가 중천에 든 시간. 그림자가 가장 짧은 시간. 풍경은 온전하게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S# 7) 가방을 움켜쥐고 주눅이라도 든 듯, 다니는 경이에 차서 두리번거리면서 걸어간다. 그건 분명히 식민지 지배자의 모습이 아니다. 다니는 그저 이 풍경 앞에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주춤거리는 이방인으로 보일 뿐이다. 이때 이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막 시작한 초여름 옷을 입고 있는 동안 오로지 다니만이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것만 같은 두터운 마지막 겨울 옷, 혹은 이른 봄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그는 마치 다른 시간에서 온 사람처럼 보인다. 게다가 흰색으로 이어지는 조선 사람들의 하얀 의상과 대조적으로 누런 군복색 옷을 입은 다니는 풍경 속에서 죽은 색처럼 보인다. 수채화처럼 물기가 묻어나는 초여름 풍경 안에 유화의 질감과도 같이 두텁게 처리된 낯선 인물. 당신은 그 사람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S# 8) 이때 이 장면의 위로 여자들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청각적 쇼트의 반응. 저 편에 네 명의 조선 처녀가 한복을 입고 무언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기를 방문한 낯선 일본인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마치 그의 존재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걸어온다. 흩날리는 초록색 갈대밭. ( S# 9) 그걸 웃으면서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걸어가며 마주보는 다니. (S# 10) 하지만 이 쇼트는 처녀들의 시점 쇼트가 아니다. 그녀들 중 아무도 그를 보지 않는다. 같은 말의 반복. 그렇게 아무도 보지 않는다. 그저 무심하게 저 멀리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이 보인다. (S# 11) 카메라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얕지만 제법 넓은 개울가에 놓인 다리를 건너가는 다니를 다시 한 번, 필요 이상으로 멀리 떨어진, 롱 쇼트로 바라본다. (S# 12) 여기서 음악이 끝난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때 나는 여기까지 그냥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를 멈춰 세운 것은 바로 그 다음 장면부터이다. 카메라는 여전히 다니를 쳐다볼 뿐이다. 더 정확하게 다니는 이 장소의 내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그는 바깥에서 포함된 얼룩이다. 거기에 있지만 들어맞지 않은 운동의 일부. 보여 지지만 보지 않는 전체의 일부. 중단된 시선의 교환. 왜 이 교환은 불가능해진 것일까. 그때 그것을 어떻게 다시 문턱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까. 아니, 이 이상한 쇼트들의 진행은 도대체 무엇을 준비하는 것일까. 음악이 끝나자 (S# 13) 다니는 이 동네 입구에 막 도착하여 그 안으로 들어선다. 그때 카메라는 마치 다니를 감싸 안듯이, 그를 안으로 이끌듯이, 마주보는 대신, 그의 등 뒤에서 걸어가는 방향을 향해 바라본다. 처음으로 동네 입구에 선 청년이 하던 일을 멈추고 다니가 동네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본다. 다니를 바라본 첫 시선. 그러나 그가 아직 시선의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영화는 다니의 동선을 따라가지 않는다. 갑자기 카메라는 집 안에 들어와서 대문 바깥 저편에 걸어오고 있는 다니를 아주 작게 보여준다. 사내 한명이 허둥지둥 달려와 집 안의 동네 어른들에게 일본인이 나타났다고 알리자 저마다 한마디씩 수군거린다. (S# 14) 그런데 누구의 집? 여기서 이상한 쇼트가 등장한다. (S# 15) 바로 눈앞에 초록색 나뭇잎이 초여름 바람에 흔들릴 때 시네마스코프 2.35 화면 중앙을 가로지르면서 왼쪽 끝 너머에서 오른 쪽 너머까지 한 채의 한옥이 거기 있다. 그리고 그 한옥 중앙에 대문이 있다. 그 대문 안으로 한옥의 그 너비에 비해 볼품없게 작은 점처럼 보이는 롱 쇼트의 다니가 들어간다. 이때 다니를 따라 들어가는 대신 그 집안의 방에 카메라를 세워놓고 열린 방문을 통해 바라보면서 그를 마중하는 쇼트가 등장한다. (S# 16) 그 방에서 한 사내가 서둘러 나와 다니를 맞이하며 “저, 그런데 어디서 오셨지요?” 라고 묻는다. 이때 그 방이 오로지 한옥에만 존재하는 대문 옆 바깥 행랑채라는 사실을 생각해주기 바란다. 이건 오로지 이 집, 한옥에서만 성립되는 쇼트이다. 다니가 집 안에 들어오는 것을 이미 바라본 마루 위에 선 사내들 중 아무도 그 질문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 해야 할 일. 그때 다른 누군가는 그걸 구태여 하지 않는다. 체계의 세계, 순서의 절차.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진 안내. 그를 따라 다니는 집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언제나 쇼트는 집 안에서 다니를 맞이하는 방식으로 찍혔다. 중문간 행랑채에서 마을의 노인 둘이서 바둑을 두고 있고 다니는 낯선 동작으로 인사를 하며 마루로 올라올 때 카메라는 두 노인보다 더 안쪽에서 들어서는 다니를 쳐다본다. (S# 17) 그런 다음 카메라는 더 깊숙이 집 안으로 들어가 작은 정원에 서 있다. 이때 사내가 어른의 허락을 받아 나오면서 안채 쪽 마당에서 중문간 행랑채 너머 열린 방문 너머 서 있는 다니에게 전한다. “저, 들어오시랍니다” 집 안에서 더 깊숙한 집 안으로. 그 다음에서야 공손하게 한국인의 방법으로 예를 갖춰 절을 하는 다니의 쇼트와 만난다. 이때 열린 방문 바깥에서 다니의 뒷모습 너머 병풍 앞에 앉아있는 설진영을 보게 된다. (S# 18) 여기서 카메라는 절을 하는 다니의 뒤에서 그만큼 내려온 다음 무릎을 꿇은 다니보다 조금 더 낮은 수평 로 앵글로 서 있다. 그런 다음 명함을 건네고 (S# 19) 비로소 다니와 설진영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란히 앉은 투 쇼트가 등장한다. (S# 20) 

순식간에 지나가긴 했지만 이 쇼트들의 과잉은 내게 섬광과도 같았다. 존 포드는 이렇게 찍지 않았을 것이다. (<수색자>) 알프레드 힛치콕은 이렇게 집 안에 사람을 들이지 않는다. (<레베카>) 장 르누아르는 이렇게 집을 방문하지 않는다. (<게임의 규칙>) 오즈는 이렇게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고하야가와가의 가을>) 임권택은 쇼트의 경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전적인 연출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족보>는 한국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기영도 낯선 이가 이렇게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녀>) 신상옥도 이렇게 낯선 이가 방문하지 않는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임권택만이 지금 그렇게 진행하고 있다. 지금 나는 누가 옳고 그르냐는 문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멈춰 서야만 했다. 그런데 (당연한 말이지만) 영화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영화를 멈춰 세울 방법을 알지 못한다. 나는 갑자기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온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윤곽. 한참 뒤의 인터뷰. “다니는 설진영을 만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집이 그 만남을 방해하는 것만 같습니다. 왜 그 쇼트들이 거기 있어야만 합니까?” 대답을 하기 전에 오히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여긴 한국인거요. 그게 나이 어린 사람이 어른을 만나는 태도인거요, 거기 그런 게 없으면, 그건 한국영화가 아닌 거요, 그러니 그건 도리가 없는 거요” 후렴구. 도리가 없다. 이 무서운 말. 없어도 상관없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거기 있어야만 하는 쇼트들. 이때 비로소 그 쇼트 안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 아니, 이렇게 말하고 싶다. 쇼트 안에서 사람이 살아야 한다. 그건 마치 집 안에서 그 나라 사람이 살아야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한국이라는 환경. 그 위에 세워진 집. 그런데 그 집은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의 방향을 따라 뻗어나가면서 세워진 삶의 틀일 것이다. 벽면과 그 벽의 창문들. 창호지 위로 스며드는 반투명의 햇빛. 거기서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그걸 느껴보아야 한다. 적어도 내게 <족보>는 집과 함께 다시 시작하였다. 내 아버지가 살았고, 내 아버지의 아버지가 살아온 영토의 한 순간이 거기 머물러 있었다. 아마도 임권택은 내 아버지와 그 영토의 시간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공통감각. 그들이 살아온 영토. 말 그대로 바탕. <족보>는 그 위에 미장센이라는 면을 세우고 인물들의 동선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단단하게 주춧돌 위에 선 다음 옆으로 이어지는 가옥의 선을 따라 구도와 단면들을 만들어냈다. 나는 여기서 살아야 한다. 그때 구도는 프레임이 되고 단면들은 쇼트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납득시키기 위한) 이상한 인용. “K가 도착했을 땐 늦은 저녁이었다. 마을은 눈 속에 깊이 묻혀있었다. 성이 있는 언덕은 안개와 어둠에 잠겨 있어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으며, 어렴풋이나마 큰 성이 있음을 알려주는 불빛도 없었다. K는 오랫동안 큰길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나무 다리위에 서서 허공으로 보이는 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선 그는 잠자리를 찾으러 갔다... ” 카프카의 <성>의 첫 문장. 물론 가지야마의 <족보>와 임권택의 <족보>와 카프카의 <성>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러나 다니가 조선의 한 마을, 창씨개명을 완강히 거절하고 있는 이 동네 앞에 들어선 다음, 난공불락의 설진영의 집 안에 들어서서 그가 끝까지 느꼈을 난처함에는 왠지 카프카의 기계 안으로 들어온 다음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이리저리 내쫓기면서 그 어떤 것의 의미도 이해하지 못한 채, 오로지 경험만을 한 채, 되돌아 나오는 발걸음을 뒤쫓았다는 느낌을 준다. 나에게 <족보>는 카프카와 프루스트,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루이스 캐롤이라는 기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용이 오해를 불러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낯선 세계 안으로 들어온 이방인 다니를 설진영은 기꺼이 환대한다. 설진영의 옆에 앉아있는 옥순. 그의 딸. 물론 그녀가 등장했을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동적으로 다니와 옥순 사이의 판에 박힌 듯한 감정선이 생겨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상황은 종종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작동하도록 유도한다. 우리는 수 없이 같은 상황을 보았다. 그러나 임권택은 옥순의 선을 이야기 바깥으로 끌고 나왔다. 이때 낯익은 선이 바깥으로 빠져나오면서 상투적인 기능을 내버려둔 채 갑자기 빈자리가 생기자마자 임권택은 그것을 거기 있는 다른 이미지가 차지하도록 이끌었다. 




내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던 순간. 다니는 설진영의 집에서 저녁 만찬을 먹은 다음 그의 집에 머문다. “벌써 6시군요” 시간의 신호. 이제 막 매직 아워가 끝나가는 시간. 초여름의 느린 저녁. 하늘은 아직도 어둠이 시작되기 직전의 푸른 하늘이다. 다니는 사랑채에서 나와 저녁의 밤공기가 가져다준 초여름의 바람을 느껴본다. 그 앞에 이어지는 정원. 다니는 무슨 생각에 잠긴 것일까. 멀리서 어디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판소리가 들려온다. 무언가 충만한 것만 같은 장소. 그때 쇼트는 다니와 정원을 찍는 대신 사랑채 마루 앞에 앉아서 정원을 바라보는 다니를 단 하나의 프레임에 담은 다음 다니의 시선을 수평으로 놓고 수직으로 바라본다. (S# 1) 수평의 인물의 시선과 수직의 기계의 시선. 그때 둘은 서로 느슨하게 연결된 다음 각자의 계열에 따라 작동한다. 임권택은 거기서 더 물러나면서 수평의 상상선 반대편에서 정원을 가로질러가는 다니를 롱 쇼트로 보여준다. (S# 2) 시네마스코프의 우아한 길이. 그런 다음 어둠이 떨어지고 있는 한옥 기와의 지붕을 보여준다. (S# 3) 다니는 이 정원을 느껴본다. 방에서 방으로 이어지는 한옥 가옥의 면들. 그때 다니의 저 뒤편에서, 마치 스크린의 일부에서 구멍이라도 뚫리듯이 작은 문이 열리면서 거기서, 저 멀리서, 작은 점처럼, 옥순이 걸어 나온다. 이 조용한 화면에서 들리는 나무로 만든 대문소리. 그 소리가 다니를 멈춰 세우고 그 쪽을 보게 만든다. 옥순은 저 멀리서 천천히, 사뿐사뿐, 다니에게 걸어온다. 고무신이라는 신발의 속도, 이때 다니는 잠시 멈춰 섰다가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수평으로 걸어가고 옥순은 저 멀리서 화면 앞에 있는 다니에게 수직으로 걸어온다. 그러나 이때 두 사람은 서로 겹쳐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두 사람은 서로 (아직은, 그리고 겉으로는 앞으로도) 아무 사이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인(의 딸)과 손님의 사이일 뿐이다. 나는 이 장면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왜 여기서 옥순으로 하여금 저 멀리서 걸어오게 한 다음 이미 충분히 앞 장면에서 설명된 설진영과 다니의 호의적인 사이를 다시 한 번 딸 옥순의 입을 빌려 이렇게 길게 설명해야 할까. 아니, 무엇보다 지금 이 데드 타임은 내게 무엇을 느껴보기를 요구하는 시간의 기호일까. 이때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은 이 쇼트가 이상하게도 어둠 속에서 다니와 옥순을 보여주려 한다기보다는 그들의 표정을 포기하고서라도 더 물러남으로써 만들어내는 새로운 광경의 발견, 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은 더 넓고 더 큰 화면으로 이루어진 로 앵글의 구도라는 사실이었다. 이때 어스름한 초여름 저녁 막 어둠이 내린 직후의 한옥의 기와의 선들이 거기서 우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 쇼트 바로 앞 쇼트의 느닷없는 인서트의 이미지가(S# 3) 구태여 등장시킨 한옥 기와지붕이라는 것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고다르가 니콜라스 레이를 설명하면서 말한 교육의 쇼트. 이때 임권택은 지워져가는 어둠 속에서 모습은 사라져가면서 선으로 남아있는 한옥 기와지붕의 윤곽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같은 말의 반복. 사라져가는 선. 어둠 속에 지워져가는 한옥. 일제강점하의 조선. 근대 앞의 한국. 그 속에서의 음미. 사라져가는 아름다움이 불러일으키는 그 가련한 시네마스코프의 선. 윤곽으로서의 영화. 

물론 <족보>가 모든 점에서 만족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이야기 안으로만 들어오면 난처할 정도로 상투적인 사건들과 마주치게 된다.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나쁜’ 일본 관료들은 서투를 정도로 도식적인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이 음모가 시작되면 이상할 정도로 영화는 단조로워진다. 그 속에서 마주치는 과도하리만큼 넘쳐나는 민족주의적 열정에 사로잡힌 쇼트들. 설진영에게 자발적인 창씨개명 협조를 구하지 못하자 일본인들은 그의 딸 옥순의 약혼녀에게 독립군과의 (있지도 않은) 관계를 자백받기 위하여 그를 붙잡아 고문을 하기 시작한다. 한국영화에서 이미 수없이 본 장면의 기계적 반복. 이미 수 없이 경험한 장면의 거의 학습에 가까운 감정의 반복. 일제 강점하의 일본에 대한 적개심에 찬 거의 장르에 가까운 이야기. <족보>는 이 시대를 다루기 때문에 마치 이 장면들을 피해갈 수 없다는 듯이 그 이야기 안으로 들어갔다. 이때 이 영화는 갑자기 모든 점에서 무력해지기 시작한다. 혹은 임권택은 이 장면들 안에서 구태여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그 장면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 스스로 작동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수동적인 규칙들. 그것이 만들어내는 종종 자포자기에 가까운 영화적 클리셰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족보>는 기괴하리만큼 좁은 통로사이를 오가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다소 도식적으로 말한다면 충실하고 창조적인 내부성과 상투적이고 반복적인 외부성. 여기에는 어떤 통일의 고정점이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내부와 외부가 나누어진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다니가 설진영의 공간 안으로 들어갈 때에는 거의 모든 쇼트들이 초여름의 햇살과 기분 좋은 바람을 쇼트들이 느끼면서 한옥의 선과 면들이 이 모든 인물들의 동선을 움직이기라도 하듯이 활동하기 시작하지만, 반대로 이 집을 떠난 다음 조선총독부의 건물로 이동하면 어두운 군복을 입은 일본군들이 가장 상투적인 일제 강점하의 반일영화의 관습에 따라 힘을 잃은 채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옥순과 다니




물론 임권택이 이 둘 사이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예. 잠시 동안 옥순의 약혼자를 일본군이 고문하는 장면으로 돌아와 보자. 여기서 고문의 장면을 전시하는 것은 다소 기괴하지만 설진영이나 옥순이 아니라 다니의 앞에서이다. 나는 이 설정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옥순의 약혼자와 옥순과 다니. 말하자면 매개항으로서의 옥순. 우리는 물론 다니가 설진영의 집을 방문했을 때 자신의 통역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옥순을 두 사람의 사이에 설진영이 불렀을 때, 그래서 다니와 옥순이 서로 마주할 때, 그 둘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흐르는 감정의 선을 영화의 관습적인 규칙에 따라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임권택은 그 선을 이 이야기 안에서 그저 가능세계로 남겨둔다. 다니와 옥순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가능은 그들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가 표현하는 것을 감추면서 단지 영화가 그걸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다니가 설진영의 집을 찾아갈 때 그는 우연히도 옥순의 약혼자와 다리에서 서로 스쳐지나간다. 어쩌면 이 쇼트는 아무 것도 기능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때 이 장면을 약간만 찡그려서 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의 그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롱 쇼트로 잡은 구도. 이 쇼트와 동일한 위치에서 우리는 이미 다니가 설진영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이 다리를 건너가던 동일한 쇼트를 본 적이 있다. 그때 그는 혼자서 이 다리를 건너갔다. 이번에는 맞은편에서 옥순의 약혼자가 걸어온다. 당신은 이 시퀀스가 다니가 아니라 옥순의 약혼자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옥순의 약혼자는 설진영이 몸져눕자 방문한 다음 조심스러이 병색을 살펴보고 몇 가지 조언을 하고 옥순에게 인사를 한 다음 돌아간다. 그가 돌아가는 길에 다리가 있을 것이다. 아니,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설진영의 집에 오기 위해서 이 영화의 지리적 지도에 따르면 반드시 이 다리를 통과해야만 한다. 설진영의 집으로 가는 기호. 이때 우리는 옥순의 약혼자를 따라가다가 다니를 그 다리에서 마주친 다음 다시 다니를 쫓아서 설진영의 집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 다리를 막 지난 다음 다니는 문득 무슨 생각이 든 것처럼,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갑작스러운 궁금증이라도 생긴 것처럼 이 남자를 돌아본다. 그러나 옥순의 약혼자는 녹색으로 펼쳐진 논밭 사이의 바람결 속으로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등을 내보이고 걸어간다. 이 시선의 실패한 교차는 이상할 정도로 보뇩옜二?멈추게 만든다. 다니는 무엇을 느낀 것일까. 왜 다니만이 느낀 것일까. 이 두 말의 차이를 동시에 생각해주기 바란다. 약간의 첨언. 나는 여기서 다소 소심한 추측을 해보고 싶어진다. 여기에는 두 개의 계열이 있다. 하나는 다니의 계열이다. 다른 하나는 옥순의 약혼자의 계열이다. 이때 둘 사이를 연결하는 사람은 물론 옥순이다. 이 연결이 우리에게 쇼트의 감정적 성질을 읽어보도록 요구하는 것은 옥순이 여자라는 기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기호 사이에 일제 강점하의 일본과 조선이라는 칸막이 쳐진 두 개의 나라가 이 둘 사이를 강제로 찢어내면서 일종의 명령을 내리기 시작한다. 가능한 사랑과 불가능한 사랑. 나는 여기서 옥순의 약혼자에서 시작한 쇼트의 진행이 다리에서 다니를 만난 다음 고스란히 반대의 역순으로 다시 우리를 되돌리는 배치를 생각해보았다. 이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이 쇼트의 진행은 아무리 보아도 이상할 정도로 예절바르면서 어딘가 수줍게 그 세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이 세 사람은 자신들이 각자 다른 자리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의 서로 다른 층위에서 작동하고 있는 운명을 알지 못한다. 그건 오로지 우리들을 위해서 배려한 것이다. 그때 이들을 계속 겹쳐 놓으면서도 임권택은 결정적으로 불편한 자리를 피하면서 우리들에게 그들의 관계의 층위를 고스란히 드러내서 보여준다. 처음에는 잉여의 쇼트들의 진행처럼 보인 이 장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국 감정의 파국이라는 쇼트와 대면해야만 했을 것이다. 이중의 파국. 그런데 왜 이 장면의 순간을 피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했던 것일까. 이 순간을 피해야한다는 그 절대적인 노력. 그런 다음 이후 계속해서 반복하게 될 임권택의 외면. 말하자면 자신의 등장인물에게 갖는 임권택의 ‘한국에 사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예의의 쇼트. 나는 그때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장면의 결정에 관한 결정적 순간을 한참이 더 지난 다음 <길소뜸>에서 다시 만났다. 두 개의 결정이라는 말의 (공유로서의) 차이. 나는 이 순간을 임권택의 영화에서 ‘외면의 쇼트(face-away-shot)’라고 정식화시키고 싶다. 이 쇼트들은 거의 깨달을 사이도 없이, 미처 돌아볼 분명한 신호를 주지 않으면서, 그러면서도, 그들 사이의 감정적 의미를 우리에게 육화시킨다. 이때 이 장면을 성립시키는 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이 영화가 우리를 대하는 태도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 우리들은 이들 사이의 고귀한 감정을 다치지 않으면서도 위태로운 그 관계의 감정 안으로 수렴되고 있음을 나중에야 비로소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종종 임권택은 <족보>에서 많은 장면들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의 쇼트들의 능력과 가능한 경험들 사이의 목적을 일치시키는 종합에 관한 배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족보>는 그런 의미에서 비탈에 선 영화처럼 종종 보는 나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내가 임권택을 발견한 것은 이 영화가 막 시작하고 난 다음 다니가 설진영의 집을 찾아오는 순간이었지만 내가 앉은 자리에서 이 영화를 두 번 보게 만든 것은 설진영이 집안의 창씨개명을 결정하고 난 다음 자신은 자살하는 대목에 이르러서이다. 약간의 장황한 설명. 설진영은 창씨개명은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순간에 이르고 만다. 손자들마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면서 할아버지에게 투정을 부린다. 설진영은 손자들에게 내일 창씨개명을 하마, 라고 약속한 다음 아내에게 긴 독백을 한다. 여기서 설진영이 인용하는 문장은 일본 민속학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조선백자에 빗댄 조선 문화(에 관한 주관적인 감상)을 담은 글이다. 이때 임권택은 갑자기 이야기의 계열로부터 벗어나 조선 백자의 이미지 쇼트를 차례로 열거하기 시작한다. 멈춰 세운 카메라. 오로지 백자만이 담겨진 쇼트. 그 단조로운 화면. 하나의 백자가 마치 다른 백자들을 불러오기라도 하듯이 이어지면서, 차라리 백자들이 증식이라도 하듯이, 그런 다음 무려 10쇼트가 차례로 이어진다. 조선 백자라는 그 자체의 세계. 이 말을 생각해주기 바란다. 이 순간 조선백자는 영화보다도 우월한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이야기가 여기서 중단되어도 할 수 없으니 차라리 조선 백자가 만들어내는 기품과 역사가 민족에게 안겨준 슬픔을 여기서, 이 절대적인 쇼트들의 병풍 앞에서, 영화가 느껴보는 시간을 할 수 있는 한 늘려본다. 나는 당신이라고 써야할 자리에 영화라고 잘못 쓴 것이 아니다. 임권택은 그렇게 영화를 진행한다. 나는 이 순간 거의 멈추어 섰다. 그런데도 임권택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거기서 다시 한옥 기와 지붕을 보여준 다음, 그 기와의 장면을 차례로 5개의 쇼트로 펼쳐 보인다. 이때 이 쇼트들을 보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쇼트를 음미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쇼트. 차라리 쇼트가 우리를 바라 보는듯한 시간. 그런 다음 갑자기 다음 쇼트와 마주친다. 바로 이 장면. 설진영은 초여름 한 낮 바람에 흔들리는 커다란 가로수길이 늘어서있는 길 저 편에서 걸어온다. 이때 우리는 15개의 쇼트를 음미하면서 차례로 마주하였다. 혹은 쇼트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쇼트는 원래의 계열로 돌아오는 대신 저 멀리서 걸어오는 설진영을 마치 조선 백자를 음미하듯이, 그 사람을 바라본다. 나는 이걸 환유의 쇼트라고 단순하게 말하고 싶지 않다. 이 쇼트는 그냥 단 한 마디로 거의 절대적이다. 35초 동안 꼼짝도 않는 카메라. 아무런 대사도 없이, 거기서 우리는 초여름의 바람을 느껴본다. 나무를 흔드는 그 바람결. 그런데도 그 바람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정면으로 설진영이 저 멀리서, 거의 멈추어선 듯한 망원렌즈 앞으로, 그렇게 걸어온다. 그저 그의 흰색 한복 옷깃이 바람에 가끔 흩날릴 뿐이다. 한국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 이때 당신에게 충고를 하고 싶다. 이 장면은 발췌해서 보면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오로지 이 쇼트들의 진행 속에서만 그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장면의 비밀을 맛보고 싶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처음부터 다시 보면서, 이 장면과 만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경험적으로 그 방법이야말로 시네마틱 센스를 느껴보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영화의 비밀을 느껴보는 절대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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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이 장면에서 멈추면 안 된다. 이제 임권택이 이야기의 선 바깥으로 완전히 빠져나온 다음 오로지 영화의 힘만으로 버텨보는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설진영은 동 사무소에서 가족들의 창씨개명을 차례로 한 다음 자기 이름만 남겨 놓는다. 소장이 의아하게 묻자 그저 무심하게 “게까지는 아직까지 생각해보지 못했소. 차차 할 거요, 잘 부탁하오”라고 말을 끊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난다. 동 사무소 직원들의 배웅을 받고 나서는 설진영은 집으로 돌아간다. 이때 마을 청년들이 트럭에 짐을 싣는 모습을 본다. (S# 1) 나는 여기까지 그냥 무심코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장면이 나온다. 돌아오는 설진영을 따라 가깝게 다가간 카메라는 수평으로 이동한다. (S# 2) 저 멀리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마치 여름이 지나가는듯한 이 기분. 설진영은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동네 어느 집에 들어선다. (S# 3) 그리고 그 집의 조카와 마주 앉아 그 집 사정을 듣는다. (S# 4) 그런 다음 집을 떠나는 설진영은 골목길을 돌면서 다른 사내와 마주친다. (S# 5) 그리고 골목 담장 길을 따라 혼자 걸어오는 설진영을 보여준다. 점차 설진영으로부터 멀어지는 카메라. (S# 6) 아마도 설진영의 오랜 친구일 법한 동네 어른의 방에서 두 사람의 짧은 대화 (S# 7) 그리고 골목 담장 길을 따라 혼자 걸어가는 설진영 (S# 8) 걸어오는, 과 걸어가는 쇼트의 이어짐. 누군가의 집 대문으로 들어서면 그를 반기며 말한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S# 9) 그 누군가의 집을 나서는 설진영을 바라보는 더 멀리 떨어진 카메라 (S# 10) 그리고 거기서 더 멀리, 아마도 밭 건너에서, 걸어가는 설진영을 바라보는 먼 롱 쇼트. (S# 11) 점점 멀어진다는 말. 세상으로 멀어져가는 시간. 그리고 나서, 해가 떨어지고, 한옥 집이 어둠에 잠겨서야, 설진영은 자기 집 대문으로 들어선다. (S# 12) 이 12개의 쇼트는 사실상 아무 기능도 하지 않는다. 또한 임권택 자신도 여기에 어떤 사건을 만들지 않는다. 별다른 대사가 없으며, 어떤 쇼트도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 쇼트들을 데드 타임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쇼트들은 그 계보 안으로 들어선다. 로셀리니가 다시 영화 안으로 끌어들인 다음 앙드레 바쟁이 정식화하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하나의 형식으로 만든 시간. 멈추어 섰지만 이상하게 동요하는 시간. 이야기에서 아무 것도 더 나아가지 않지만 앞으로 계속 진행되고 있는 시간. 이때 이 시간은 변화를 묘사하는 시간이 아니라 관찰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싶다. 어떤 예측도 우리에게 기대하지 않고 우리도 거기서 무언가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때, 거기서 새로운 시간이 움직이고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아무리 유심히 보아도 당신이 고작해야 이야기를 쫓아간다면 여기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 설진영이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마치 직선을 중단한 다음 의도적으로 곡선을 그리듯이 동선을 연결하기 시작할 때 이 행동은 어떤 이야기도 동반하지 않는다. 그저 거기서 이어질 뿐이다. 거기에는 낭만도 없고, 그렇다고 어떤 비통한 감정에 휩쓸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이 쇼트의 대부분의 인물들은 우리가 영화에서 처음 보았거나, 반복해서 등장했지만 별다른 설명이 없었던 인물들이다. 설진영은 그들 중 누구에게도 오늘 오후에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어떤 결정. 말하자면 사건. 그런 다음 다시 일상의 시간 안으로 되돌아올 때 임권택은 거기서 조금씩 물러난다. 이 씬은 수십 번을 다시 볼만한 가치가 있다. 단 한 마디로 이 12개의 쇼트는 <족보>에서 그 어느 장면보다도 중요하다. 그건 이 장면들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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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12개의 쇼트가 끝났을 때 어쩌면 영화는 이미 함께 끝난 것일 지도 모른다. 설진영은 그날 하루를 끝내고 조용히 이부자리에 눕는다. 그의 죽음에 동반하는 것은 ‘한 오백년’의 슬픈 가사이다.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이 영화에서 우리가 들은 노래. 그 다음은 느닷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눈부시도록 화창한 초여름 한낮 펼쳐진 마당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장례식에서나 볼 수 있는 흰색 상복을 한 사람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장면과 갑자기 만난다. (S# 1) 그 장면이 이상할 정도로 동떨어져 나왔다는 느낌을 주는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이제까지 이 영화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은 방법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족보>에서 카메라가 이야기 바깥에 독립적으로 존재했다는 인상을 받은 장면은 그 이전까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거의 대담하리만큼 과격하게 손으로 들고 (말하자면 ‘핸드 헬드’) 카메라가 그 인파 속을 꿰뚫고 지나간다. 그 카메라는 흰 색 옷으로 가득 찬 상갓집 방문객들 사이를 지나 그들 사이로 이 집을 다시 찾은 다니를 보여줄 때까지 통과한다. 이때 다니는 이들 모두와 대조적으로 검은 색 양복을 입고 찾아왔다. 흰 색과 검은 색. 수 없이 많은 흰 점과 단 하나의 검은 점. 전통적인 한복의 물결과 단 한 벌의 양복. 전통과 근대. 마치 다니를 찾는 것처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카메라는 그를 보자 마치 자석처럼 다가간 다음 다니를 따라서 그 집 안으로 따라 들어간다. 이때 이 장면을 낯설게 만드는 것은 이렇게 사람이 많은 대낮에 이토록 과격한 카메라의 운동이 드러나 보이고 있는데도 아무 소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험적으로 이 정도의 사람들, 그것도 상갓집을 방문했을 때의 소란스러운 청각적 상황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없다. 마치 소리를 잊어버린 것만 같은 쇼트. 그저 운동만 남아있는 화면. 이때 다니의 방문을 가로 막아 나서면서 한 노인이 그의 멱살을 잡으며 “네, 이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라고 외쳐볼 때까지 화면은 침묵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 쇼트는 그런 다음 다시 무겁게 침묵이 내리 누른다. 이 쇼트는 단지 이 씬의 시작이 아니라 이제까지 진행되어왔던 영화 전체와 ‘설진영이 없는’ 나머지 사이의 단절이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결정적이다. 아마도 임권택은 이 씬을 마치 하나의 쇼트처럼 찍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S# 2) 다니가 설진영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집을 찾아오는 장면을 하나의 쇼트로 찍은 다음 마루에 올라와 방 안에 둘러앉은 마을 어른들에게 무릎을 꿇고 인사를 드리기까지 어쩔 수 없이 나누어야 하는 쇼트를 액션 매치로 두 개의 장면을 연결한 것은 그 예이다. 그런 다음 다니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마당에 서 있는 옥순을 바라본다. (S# 3)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다니는 설진영의 영정사진 앞에 간다. (S# 4) 이 네 개의 쇼트의 길이는 짧은 것이 아니다. 지금은 대낮이고 설진영은 이 마을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이었으며 지금 마당과 방에는 문상객들로 넘쳐난다. 그런데도 이 집에서 우리는 거의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 무거운 침묵. 그들이 조심스럽게 움직인다기보다는 영화가 화면 속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이 비대칭이 가져오는 음향적 관계는 이상하게도 내게 화면 속의 사람들이 아니라 계절과 관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 여름 대낮의 무서우리만큼 고요한 침묵. 나는 여기서 시각적 운동과 음향적 침묵(속의 선택)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기묘한 부조화 사이에서 어떤 정신적 이미지를 느껴본다. 다니는 설진영의 영정사진 앞에서 한국식의 예법에 따라 절을 올린다. 그때 마치 그 절을 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설진영의 영정 사진을 클로즈업 한다. (S# 5) 좀 더 정확하게 설진영의 사진 위로 다니의 얼굴이 반사되어 보이면서 두 개의 이미지가 겹친다. 여기서 이 문장을 곡소리를 듣듯이, 노래를 부르듯이 소리를 내어 읽어주실 것. 웅얼거리듯이 들리는 아이고, 아이고, 라는 곡소리. 망자를 위한 후렴구. 마치 그 절에 대한 반응이라도 오듯이, 다니의 작별인사에 대답을 하듯이, 설진영이 이부자리에 누웠을 때 들었던 ‘한 오백년’의, 그 선율을 곡소리 위로 이어 듣게 된다. 이때 절을 올리는 다니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위치는 정확하게 설진영의 영정사진이 놓여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이다. (S# 6) 그렇게 절을 올리는 다니를 바라보는 유일한 시선은 옥순의 눈길이다. 다니의 바로 뒤에 상복을 입고 앉아있는 옥순. 등과 얼굴. 두 개의 신체. 교차하지 않는 시선. 그때 옥순의 눈길은 다니의 절하는 모습을 따라서 이동할 것이다. 절을 한 다음 일어나는 다니의 등 뒤로 설진영의 영정사진이 보일 때, 두 개의 이미지가 하나가 될 때, 사실상 두 개의 쇼트가 하나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올 때, 옥순의 마음속의 두 사람이 하나의 눈길 안에 머무를 때, 고인 앞에 절하는 기계적인 운동이 감정의 이미지로 넘어올 때, 감정의 여러 다발이 거기서 각자의 좌표를 설정할 때, 이 모두를 하나로 감싸 안는 것은 고인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면서 바치는 한국적 장례의 예절이라는 복잡한 절차의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예절의 액션이다.

 

그런 다음 마지막의 마지막 작별인사. 상여가 나가는 순간, 그 장면의 비통한 아름다움, 달리 말할 수 없는 그 작별의 아름다움.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이 장면 앞에서 거의 숨을 멈추었다. 그런 다음 많은 시간이 흘러 다시 보았을 때, 고맙게도, 이 장면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어떤 장면들은 세월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간 다음, 그 시간의 마모를 견디지 못하고, 그저 망가져버리는 영화 속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수없이 경험하였다. 그때마다 나는 내 안목을 탄식하였다. 그러나 <족보>는 그때 내가 본 아름다움이 말 그대로 숭고하리만큼 보는 나를 사로잡은 다음 그 어디론가 데리고 가는 움직임의 힘이 발생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다시 볼 때마다 일깨워주었다. 이 말의 방점, 다시 볼 때마다. 물론 나는 이 장면을 카메라의 움직임과 쇼트의 단위, 그리고 인물들의 동선과 이러 저리 휘어진 논두렁길의 곡선으로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장면에는 그 설명을 그냥 지나쳐버린 다음 만들어내는 그 무언가의 출현이 거기 있었다. 무언가는 거기서 매번 소멸하겠지만 그러나 반대로 무언가는 거기서 불멸하는 것이었다. 단지 그것은 이미지의 힘이 아니었다. 나를 이끌어 어느 순간으로 들어 올린 다음, 그것이 주는 아름다움의 공중에 나를 매달아 놓고, 마치 멈춘 듯한, 그 어떤 힘의 약속, 프루스트라면 시간으로부터 탈취한 그 어떤 순간, 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 특별한 진공의 시간, 이 장면은 임권택이 내게 한 약속의 시간이다. 어떤 약속? 영화, 더도 덜도 아닌 영화라는 약속. 나에게 임권택은 여기서 시작하였다. 아니, 그렇게 나는 임권택을 만났다. (계속) 



1978년 110분 칼라 2.35
감독  임권택

제작  화천공사
각본  한운사
촬영  이석기
음악  정민섭
미술  김유진
편집  김희수

하명중  다니
주선태  설진영
한혜숙  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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