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X102
장군의 아들 The General's Son, 연작 (첫번째 이야기)
임권택, 1990
고백. 내가 영화에 홀린 까닭은 단순하다. 영화가 활동사진이기 때문이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직접적으로 말하고 싶다. 사진이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간, 거기서 더 이상 사진이기를 중단하고 갑자기 새로운 시간이 시작하는 순간, 내 눈앞에 있는 모든 현실이 마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이 그 무언가의 힘 안으로 들어가 버린 다음 거기서 시침 뚝 떼고 다시 세상이 시작할 때, 거기서 나는 새로운 세상의 일부가 되어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었다. 거기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나는 몇 번이고 거기서, 라고 썼다. 거기서, 라는 지칭. 오랫동안 영화에서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았다.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들>을 보았을 때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거기서 내가 왜 그렇게 영화에 홀렸는지를 보았다. 똑같은 이유로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스트롬볼리>를 보았을 때 그걸 확인하게 되었다. 영화는 현실을 재현하는 예술이 아니다. 그와 똑같은 의미로 꿈을 구성하는 예술이 아니다. 영화는 현실과 나 사이에 놓여진 간격의 세상을 창조하는 예술이다. 영화를 보는 나는 그 간격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영화를 향해서 질문을 던질 때 그것은 그 간격의 구성 방법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이다. 그때 영화는 둘 사이의 매개가 아니다. 그건 그 자체로 하나의 활동하는 형상을 만들어내는 시간이다. 우리는 영화를 담론 안에 살게 하면 안 된다. 이 기나긴 싸움. 담론과 형상. 물론 언어는 침식하듯이 다가와서 형상적인 것들을 잡아먹으면서 분절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언어가 그것을 자기의 체계 안으로 내재화시켜도 끝내 바깥에 머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중단된 이행. 그 사이의 침묵. 말하자면 침묵은 언어 바깥에 머물 것이다. 그때 나는 침묵에 시선을 돌릴 것이다. 침묵을 보는 일. 그게 영화를 지키려는 내가 할 일이다. 그 침묵을 통해서 비로소 영화가 언어에 의해서 상실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침묵의 가장자리에 놓여진 입구로서의 액션이라는 활동을 보게 된다. 이때 액션은 이미지이자 동선이며 시간이자 감각이고 무엇보다도 활동하는 형상이다. 아니, 차라리 나는 그걸 시네마틱 센스의 제 일 법칙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말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나는 이 법칙을 앞으로 좀 더 발전시킬 것이다. 영화적, 이라는 능력의 첫 번째 의미. 영화를 부정하려는 모든 이미지의 위협으로부터 이겨낼 수 있는 우리들의 투쟁을 위한 첫 번째 방어선.


여기엔 다소 긴 서문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 여기서 두 편의 영화를 오가게 될 것이다.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과 왕가위의 <일대종사>. 1990년과 2013년. 종로 우미관(優美館) 앞과 광저우의 불산(佛山, Foshan) 금루(金樓). 일본 제국주의. 김두한과 엽문. 그 둘 사이에는 아무 관계도 없다. 대신 그 둘은 서로를 보충하고 있다. 그 둘이 서로에게 무언가가 부족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도 없다, 내가 여기서 하려는 것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 놓여진 간격을 경유하여 이것을 저것의 자리에서 서로 각자 자기의 것으로 끌어당기려는 것, 바로 그 힘을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거기에 놓인 유일한 교집합. 액션이라는 동선. 액션이라는 설계. 액션이라는 이미지. 액션을 둘러싼 시청각 기호들. 액션이라는 감각. 그리고 액션이라는 시네마토그래프. 활동하는 사진. 하지만 활동을 시작하자 사라져버린 사진. 서로 다른 카메라의 능력. 거기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가. 두 개의 활동하는 힘. 나는 둘 사이를 과도하게 도식적으로 묶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지금 액션만을 생각하고 있다. 이 위험한 생각. 내게 조언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건 스펙터클의 문제에요. 나는 지금 황홀, 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고 있다. 그 말을 파토스에 국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화에서 액션은 동물적인 것이 아니다. 나는 거기서 영화의 수학을 본다. 왜 그렇게 영화에서 액션은 기술(記述)하기 어려운 기술(技術)일까. 나는 여기서 설명하는 대신 단지 기술할 것이다. 그때 이 기술은 선과 속도, 점과 위치, 그리고 방향과 강도의 문제가 될 것이다. 한 가지 더. 이 둘을 놓고 아무것도 이것을 저것에로, 혹은 저것에서 이것으로 환원하지 않을 것이다. 액션은 접촉이라는 문제라는 걸 생각해주기 바란다. 나는 두 영화를 가져다 놓은 다음 조망하려는 것이 아니다. 접촉의 방법을 확인하고 거기서 교차하는 영화적 경험을 보고 싶다. 단순하게 말하자. 여기서는 하나의 장면을 절단한 다음 저기에 올리고 저기의 것을 끌어다가 여기에 연결시켜서 하나의 집처럼 만든 다음 두 개의 층을 번갈아 오가게 될 것이다. 각각의 층. 나는 서로의 층이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그 둘 사이에서 마치 하나의 활동처럼 연결 지어져 있는 선을 따라가 볼 것이다. 왜 그럴 필요가 생겼는가. 하나를 본 다음 다른 하나가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아니, 차라리 하나가 다른 하나를 요청하고 있었다. 나는 그 둘을 분리하는 대신 하나 안에서 출현하는 다른 하나를 겹쳐놓아 보기로 하였다. 말 그대로 배치. 그 배후에는 아무 것도 없다. 당신을 설득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당신이 현재라는 시간을 바탕으로 이끌어낸 내 기억의 발견과 그 안에서 진행되는 미래의 배움을 공감해주었으면 좋겠다. 인상에 대한 믿음. 거기서 시작된 감각. 나는 순진한 시선으로 그 둘 사이를 따라가 볼 것이다. 그때 서로에게 부여하는 다양한 힘의 방향들, 서로 다른 간격의 문턱들, 편집의 층위들, 동선의 단층들을 둘러볼 것이다. 단지 둘러보기. 그 말을 당신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두한. 엽문
물론 좀 더 친절한 유사성이 있긴 하다. 먼저 <장군의 아들>. 청계천 수표교 다리 밑에서 자란 김두한은 우연한 기회에 싸움에 말려들어 종로 주먹패들 안에 들어가게 된다. 종로패는 혼마치깡(지금의 충무로)를 점령한 일본인 하야시패와 서로 긴장관계를 이루고 있다. 김두한은 차례로 아래서부터 자신과 맞서는 상대를 무릎 꿇게 만들면서 위로 올라간다. 종로패 우두머리 김기환은 김두한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위기에 처한 학생패 신마적 엄동욱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 하야시와 그가 고용한 (김두한의 어린 시절의 인연이자 유일한 싸움 경쟁자인) 김동회를 물리친다. 엄동욱은 김두한에게 종로를 넘겨주면서 그를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그런 다음 2편으로 이어진다.) <일대종사>. 궁보삼은 북방 무술과 남방 무술이 서로 교류하는 장을 만들고 자신의 은퇴 이후에 ‘일대종사’라는 명예를 넘겨줄 무술가를 찾기 위해 불산 금루에서 대결의 연회를 연다. 여기에 영춘권을 익힌 엽문이 양광 국술계를 대표하여 차례로 아래서부터 물리치고 올라선다. 궁보삼의 제자 마삼도 그 자리를 탐내지만 궁보삼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마삼은 스승에게 반기를 들고 궁보삼은 대결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딸 궁이는 정혼을 파기하고 마삼과 대결하여 그룰 굴복시킨다. 엽문은 ‘일대종사’가 되지만 홍콩으로 건너가 쓸쓸한 말년을 보낸다. 모두가 그렇게 역사 속에서 잊혀져간다. 둘의 공통점, 아래서부터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 둘은 (영화 제목이 부여하는) 명예의 자리에 오른다. 그런 다음 엽문과 그 모든 인물들은 위에서 아래로 역사의 힘에 의해서 추락한다. 세 편의 이야기 끝에 김두한은 김동회의 부축을 받으면서 종로를 떠난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둘 사이의 줄거리의 유사성을 다루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은 단지 장면 안의 인물들의 동선을 설명하기 위해서 지칭하는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만 이 줄거리를 이용하기 바란다.
그리고 약간의 사연. <장군의 아들>은 임권택이 이어나가던 창작의 선 안에서 일종의 만곡처럼 보인다. 1972년 <돌아온 자와 떠나야 할 자>를 만들고 난 다음 임권택은 두 번 다시 다찌마와리 영화를 연출하지 않았다. 나는 이상하리만큼 이 영화의 제목이 그 자신의 선언처럼 읽힌다. 그런 다음 <잡초>를 만들었다. 새마을영화, 전쟁영화, 반공영화를 만들었지만 다찌마와리에 대해서는 마치 돌아보기도 싫다는 듯이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이 장르의 영화가 몰락한 것도 아니다. 그런 다음 <족보>를 만들었다. 차례로 자기의 탐구를 이어갔다. <만다라>는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길소뜸>과 <티켓>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이어지면서 임권택의 영화 안에서 새로운 미학적 형식의 기준이 세워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건과 인물, 형식은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씨받이>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벽>. 천도교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의 전기. 더 높이 더 멀리 뛰면서 이 땅의 개벽을 소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런 다음 갑자기 <장군의 아들>을 찍었다. 장르영화에로의 복귀. 물론 누군가는 <개벽>에서 <장군의 아들>로 이어지는 인물의 전기에 대해서 설명할지 모른다. 하나의 선. 나는 가능한 (모델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군의 아들>은 초상화와 같은 탐구가 없다. 여기서 김두한은 캐리커처처럼 단순해졌고, 종종 배경은 평면적이거나 흐릿해져서 공간적인 설정이 아니라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물론 나는 이 영화에서 그런 단순함을 사랑한다. 하지만 거기서 인물의 가시성이라는 문제를 생각한다. 가시성의 형상. 가시성의 장소. 가시성의 방법. 방법의 배열. 인물에게 비치는 빛과 그림자. 불투명성과 투명성 사이의 긴장. 보이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사이의 분배. 우리는 영화에서 그려내는 초상화가 가시성의 체계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임권택은 좀 더 직접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었어요. 그런데 (당시 <아제아제 바라아제> 이후 <하류인생>까지 영화를 제작했던 태흥영화사의) 이태원 사장이 나한테 자꾸만 한번 하자는 거예요. 처음엔 화를 냈다니까. 그런데 자꾸만 마음속 한 구석에서 이걸 해보고 싶은 거예요.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게 보고 싶어진 거지요” <장군의 아들>은 임권택 자신에게 (그의 첫 번째 다찌마와리 영화인) 1964년 <욕망의 결산>에서 1972년 <떠나야 할 자와 돌아와야 할 자>에 이르는 (<잡초> 이전까지의) 영화와 다시 대면하는 영화이다. 하지만 임권택은 여기서 배수의 진을 쳤다. “압구정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참 사내답지 않은 아이들이 지천인 거예요. 그 아이들을 데리고 1930년대 경성 거리에서 살아간 사내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거죠” <장군의 아들>에서 ‘협객’으로 나오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처음 영화에 출연하는 신인들이었다. 남자 배우도 그렇고 여자배우도 그렇다. 한 번도 연기 경험이 없는 배우들. 그 ‘아이’들은 종종 발성이 되지 않았으며, 연기의 동선을 알지 못했고, 씬의 연결에 대해서 현장에 와서 처음 구경했다. “내가 영화를 찍다 중간에 겁이 덜컥 나보기는 처음이에요. 어쩌려고 내가 이런 건가, 라는 순간을 매번 촬영 때마다 마주친 거요. 그래도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의 활기라는 게 있잖아요, 내가 그걸 놓치면 안 된다, 라는 심정으로 찍어나간 거죠” (아직은 시인이었던 영화감독) 유하가 양귀자의 소설 제목 <바람 부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를 패러디해서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막 발표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이 시인을 문학과 지성사는 104번째 시집으로 초대하였다. 압구정 거리와 경성 종로통. 두 시대의 ‘모던 뽀이’들.

왕가위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왕가위는 <화양연화>와 <2046>을 만들고 난 다음 잠시 멈추었다. 물론 캘리포니아에 잠시 다녀온 짧은 바캉스와도 같은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가 추신처럼 그 뒤에 달려있다. 나는 <화양연화>의 월드 프리미어 시사를 2000년 9월 18일 오후 7시에 홍콩에서 보았다. (그해 5월 칸 영화제에서는 워크 프린트가 상영되었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만찬회장으로 가는 차를 함께 타고 갔다. 왕가위는 이제야 끝났다는 약간 지친 표정으로, 다소 상기된 얼굴로, 언제나처럼 호화찬란한 홍콩의 야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화양연화>를 지금 막 본 다음이었기 때문에 출렁이는 내 마음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이 영화는 이제까지 당신이 만든 모든 영화들보다 더 훌륭합니다. 왕가위는 선글라스는 벗으면서 고마워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문득 나를 돌아보고 말했다. 이제는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에요. 이 수상한 첨언.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말처럼 들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 말은 수수께끼처럼 내게 머물렀다. 그때는 그 말을 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왕가위의 타이밍. 기다리고 있는 배우들. 양조위, 장만옥. 그의 스텝들, 장숙평. 박수소리. 예술적 승리. 술과 요리들. 나는 그 말을 곧 잊었다. 그날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그리고 한참 뒤에, 그러니까 5년이 지난 다음, <2046>을 보다가 문득 극장에서 그 말을 떠올렸다. 집(home)은 그가 살고 있는 집(house)이 아니라 그의 고향을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왕가위를 처음 만났을 때 질문했다. 홍콩은 당신에게 어떤 곳인가요. 왕가위는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홍콩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상하이에서 태어났고 단지 홍콩에는 아버지를 따라와서 잠시 머물고 있는 것뿐입니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왕가위는 다섯 살에 상하이를 떠나 홍콩에 왔다. 다섯 살의 어린 아이. 그 아이는 홍콩에서 살면서 그 후로 한 번도 여기가 집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속 떠돌고 있는 주인공들. 발 없는 새. (<아비정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무사들. (<동사서독>) 홍콩에서 캘리포니아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중경삼림>) 불면증에 시달리는 킬러. 홍콩의 밤. (<타락천사>) 세상 끝에 가보고 싶어요. (<해피 투게더>) 앙코르와트. 내게 만일 표가 두 장 있다면 함께 떠나주실래요. (<화양연화>, 혹은 <2046>) 그리고 이번에는 캘리포니아에서 다시 한 번 홍콩을 반복한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1997년을 지난 지 10년도 넘게 지났다. 1936년 광저우 불산. 왕가위는 (이소룡의 스승으로 알려진) 엽문의 전기를 만들기로 결심하였다. 오랜 동안 <상하이에서 온 여인>을 찍으려던 계획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엽문은 북방무술과 남방무술의 교차로인 불산에서 ‘일대종사’가 되지만 일본 제국주의 군대와 공산당의 전쟁 중에 홍콩으로 거취를 옮긴다. 거기서 어린 이소룡에게 영춘권을 전수하지만 영화는 그 전에 끝난다. <일대종사>는 이제까지 홍콩을 떠나거나 떠나지 못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던 왕가위의 영화와 반대의 지리적 방향으로 진행된다. 혹은 역사적 수순을 따른다. 왕가위는 <일대종사>를 만들겠다고 결심하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중국 전역에 흩어져있는 무술 명가의 일대종사들을 차례로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무술을 ‘감상’하고, 그들의 안무를 촬영하고, 그런 다음 조언을 구했다. “<일대종사>는 내게 중국의 정신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중국에서는 과거의 유산이 많이 사라졌거나 아니면 바뀌어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치도 버리거나 부서져버렸습니다. 아직 유산을 담고 있는 무언가를 잡아야만 했습니다. 나는 무술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정신의 방법을 알고 있는 스승(Master, 一代宗師)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왕가위는 마오쩌둥의 노선에 대한 비판을 조심스럽게 피하고 있다. 해방 이후 유교전통과의 투쟁. 1950년대 근대화 과정에서의 분서갱유. 문화혁명과 조반유리(造反有理). 일부 수정주의 노선에 따라 자본주의 시장을 표면적으로 개방했지만 여기는 지금 중국 사회주의 한복판이다. 나는 좀 더 <일대종사>의 배경을 설명하고 싶다. <일대종사>는 왕가위의 첫 번째 무술영화이다. 이 영화는 두 번째 무협영화가 아니다. 물론 왕가위는 자신만의 무협영화를 만들었다. <동사서독>. 명백히 호금전의 그림자 아래 놓인 영화, 후 샤오시엔을 감탄시킨 사막의 풍경화. 서극은 <동사서독>을 보고 난 다음 탄식을 했다. 나는 이제 더 빨리 찍을 수 밖에 없어요, 왕가위는 가장 느린 무협영화를 만들었어요. 명백히 서극은 <칼>을 찍으면서 왕가위를 의식하고 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미술은 장숙평이다) 장르 안에서의 경쟁. 말하자면 장르라는 경기장. <일대종사>를 만들었을 때 왕가위는 무술 영화의 전통 안에 처음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이건 그가 해본 적이 없는 장르이다. 물론 왕가위는 재치 있게 대답했다. “<일대종사>는 쿵푸영화가 아니에요. 이 영화는 쿵푸에 관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같은 말이다. 그때 왕가위는 이번에는 장철의 영화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장철은 <복수>를 전환점으로 해서 무협영화에서 무술영화에로 옮겨갔다. 새로운 동작들. 검(劍)은 권(拳)이 되었고, 피아노 줄은 수명을 다했으며, 트램펄린과 편집의 이음새는 좀 더 정교해졌고, 대결의 거리는 좁아졌으며, 더 많은 피를 흘리는 대신 뼈가 부러지는 사운드가 가세하였으며, 몸은 새로운 형태의 도면이 되었다. 피와 살. 신경조직들. 그때 새로이 몸에 자리한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시지각의 관계 안에서 몸이 불러일으키는 반응. 때로 타격을 받아 산산이 부서져버리는 몸. 그 안에서 흩어져버리는 생명. 각자의 고유한 몸. 살과 고기. 액션의 대상으로서의 육체라는 물(物). 쇼 브라더스의 시대는 막을 내렸고 골든 하베스트는 홍콩 액션영화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결정적인 새로운 스타 이소룡, 그의 죽음 ‘이후’ 성룡. 비극에서 희극에로.
나는 여기서 희미하게, 거의 지워질 듯 하면서도, 그 사이에서 가까스로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이름을 호명하고 싶다. 정창화. 임권택에게는 (그 스스로) 영화를 가르쳐준 스승이라고 부르는 사람. 그는 정창화 이외의 감독에게서 연출부를 한 적이 없다. “내가 만일 <장군의 아들>에서 해낸 액션 장면들이 인상적인 것이라면 대부분은 정창화 감독의 연출에서 가져온 경험들인 거예요” 정창화는 1968년 홍콩 쇼 브라더스에 가서 액션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천면마녀>는 홍콩에서 만든 다음 서울에서 개봉하였다. (그리고 유럽에 개봉하였다) 나는 그 영화를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보았다. <아랑곡의 혈투>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철인(天下第一拳)>을 연출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 영화는 미국에 <5 fingers of Death>로 개봉하여 주말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타란티노는 2002년 영국 영화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 투표에서 자신의 10 베스트 영화중의 한 편으로 선정하였으며,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운드트랙을 <킬빌>에 인용하였다. 정창화가 홍콩 쇼 브라더스에서 연출할 때 장철은 같은 스튜디오의 경쟁자였다. 그리고 오우삼은 장철의 연출부였다. 물론 오우삼은 정창화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그걸 오우삼이 <첩혈가두>를 찍을 때 물어보았다. “정창화의 연출은 하나의 전통이 되었지요. 그 전에는 드라마와 액션 장면을 서로 다른 것으로 여겼어요. 하지만 정창화는 드라마 없는 액션은 감정이 없다고 생각 했어요” 정창화의 시간은 짧았다. 그는 한국에 돌아왔고 1981년 홍콩 뉴 웨이브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오우삼은 파토스가 충만한 액션 활극을 연출했다. 그게 전적으로 정창화의 영향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종종 주윤발의 코트자락, 적룡의 표정, 장국영의 노래 부르는 것만 같은 제스처들에서 그림자가 묻어난다. 임영동은 두 번째 새로운 물결이 되었다. 임영동은 오우삼의 전통에 저항했다. “난 장르 안의 리얼리즘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왕가위는 그를 위해서 시나리오를 썼다. 약간 소설처럼 쓰고 싶다. 그는 저 멀리 잠시 동안 머문 다음 떠나간 한국인을 쳐다보았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정창화의 영화들은 홍콩영화의 고전이 되었다. 그때 정창화는 무협에서 무술영화에로 이행하는 (혹은 접합하는?) 시기에 잠시 걸쳐 서 있었다. 나는 둘 사이에 있을 지도 모르는 영화적 진동판을 건드려보고 싶다. 영화라는 커뮤니티. 영화사라는 시간적인 울림. 배움의 전이. 경험의 공집합. 방법의 정식화. 자기의 유한 세계 안에서조차 자신이 포함된 세계의 법칙들에 따라 움직이는 방법을 완전하게 무시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하지만 이건 위험한 가설이다. 여기서 왕가위 영화의 뿌리는 1960년대 쇼브라더스 무협영화가 아니라 1950년대 광동 오페라양식의 멜로드라마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그는 몇 차례이고 광동 오페라에 대한 자신의 매혹을 반복해서 고백했다. 그리고 그 고백을 <동사서독>, <화양연화>, <2046>, 여기에 그 어떤 영화보다도 <일대종사>에서 메아리처럼 듣는다. 일그러진 균형. 계속해서 사라지는 등장인물들. 군무와 아리아. 사람들은 이 영화를 대부분 오해했다. 경극과 오페라의 기기묘묘한 착종. 이 무대로부터 영향을 받은 1950년대 홍콩영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들은 (이 장르의 호사가들을 제외하면)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다음 왕가위는 1950년대 할리우드영화와 1960년대 유럽 영화들에 이끌렸다. 그는 십대 소년시절을 영화관에서 보냈다. 왕가위는 그만큼 임권택과 멀리 있다. 왕가위가 그의 첫 번째 영화 <열혈남아>를 만들었을 때 임권택은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아비정전>을 촬영하고 있을 때 <장군의 아들>이 제작되었다.
나는 좀 더 밀고 나가고 싶다. 이미 말했지만 강제로 임권택과 왕가위의 선을 연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것은 내게 방법에 관한 전략의 문제이다. 영화에서 액션은 결국 과정을 보는 기술이다. 그때 우리는 방법의 절차가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그것을 보는 지식에 대한 일련의 질문을 위치지어야 한다. 액션의 성질, 동선의 출발. 이 선이 연결하는 변주들. 그 사이의 법칙과 목표 사이의 긴장. 물론 우리는 상황을 놓치면 안 된다. 나는 액션의 시퀀스란 결국 집합의 문제틀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움직이는가. 거기서 집합은 어떻게 분산되고 다시 하나로 모이는가. 누가 장소를 채우는가. 그 장소를 어떻게 채우는가. 동시적인 질문. 말하자면 영화적 순간들의 활용이라는 문제와 우리는 여기서 정면으로 대면하게 된다. 이때 왜 그 둘이 필요해졌는가. 나는 여기서 임권택을 임권택이라는 집합으로부터 빼내오고 싶다. 우리는 자칫하면 잘못된 운동의 가능성에로 휘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세 편의 <장군의 아들>은 이 영화들을 둘러싼 <개벽>과 <서편제>로부터도 이상한 방식으로 떨어져 나와 있으며, 동시에 1960년대 임권택의 다찌마와리로부터도 달아나있다. 그러므로 나는 같은 방법을 따르고 싶은 것이다. 차이와 반복은 여기서 우선적으로 피해야 할 방법이다. <장군의 아들>을 보면서 이 주변을 둘러싼 영화들과 연결 지어 동일하게 다루는 관점을 먼저 피한 다음 모든 것이 뒤에 남겨진 다른 모든 영화들로부터 만들어진 연결과의 차이로부터도 나와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바르뜨의 말을 흉내 내서 말하자면) 나에게는 가시적인 것의 가시성과 가시성의 가시적인 것 사이에서 <장군의 아들>에서 내가 본 것을 <일대종사>가 (마치) 설명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결국 보는 것 속에 위치 지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Ceci n´est pas une pipe
내게 약간의 유머를 허락해주었으면 좋겠다. 말하자면 르네 마그리뜨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 파이프라는 형상. 그때 그 곁에 애매하게 달려있는 언표. 그 설명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푸코는 간명하게 대답했다. 이제부터 상사(相似)는 자신에게로 되돌아갑니다. 자신으로부터 출발해 펼쳐졌다가 다시 자신 위로 접히는 것입니다. 나는 같은 방법으로 설명을 흉내 내고 싶다. 그 둘을 동일한 운동 안에 집어넣은 다음 그 둘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서로가 동시에 활동하는 영화적 법칙에 대해서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그때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형상에 대한 언표의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말하자면 형상으로서의 언표. 언표로서의 형상. 그때 여기서는 어느 쪽에도 우선권을 주지 않을 것이다. 핵심은 둘 사이의 성격과 형질, 그리고 동선과 과정이 다르더라도 그 안에서 법칙은 언제나 영화라는 과정 안에서의 결정이 행사하는 방식에서 출발하고 그런 다음 귀결된다는 것이다. 나는 결정을 보고 싶은 것이다. 임권택의 결정. 왕가위의 결정. 대부분 영화에서 그 결정은 과정 안에 신비롭게 숨어있다. 나는 그걸 끌어내서 가시성의 할 수 있는 한 가장 순수한 이것임, 을 설명할 수 있는 긍정의 아니다, 에로 데려가려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액션의 방법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방법이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첫 번째 활동.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의 첫 번째 대결은 영화가 시작한 다음 24분 55초, 그러니까 영화가 시작하고 4분의 1이 거의 다 되었을 때 처음 나온다. 이 씬 앞에 김두한이 종로패에 들어가는 계기가 된 싸움, 신마적 엄동욱과 구마적의 우미관 앞에서의 대결, 그리고 전라도에서 올라온 망치와 김두한의 싸움이 있지만 여기까지는 싸움의 규칙, 인물들 사이의 관계, 지리적인 이동의 체계, 종로와 충무로, 무대로서의 공간의 소개를 위한 것이며 사실상 <장군의 아들>에서 액션 장면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씬은 양적으로 매우 짧다. 고작해야 1분이고 그리고 조금 넘은 다음 몇 초 정도를 더한다. <장군의 아들>에서 액션 씬들은 예외 없이 모두 짧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고 나면 내내 액션 장면들만을 보고 나온 기분이 든다. “액션은 결국 분위기인 거예요, 거기다가 몰아넣기까지가 힘든 거요, 그러고 나면 그다음에는 빨리 거기서 빠져나올 궁리를 해야만 되요. 이게 길어지기 시작하면 허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거요. 그러니까 이제 억지를 부리게 되는 건데, 싸움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기예를 익힌 선수들의 시합을 보아도 정말 잘하는 게 무언지는 그 세계를 아는 사람들의 눈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 거기서 내가 무엇을 찍으려는 건지를 먼저 정한 다음 그걸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찾아야 되는 거예요.” 이 장면은 김두한이 종로패에 막 들어가고 난 다음 거리에서 조선 학생 깡패들과 일본학생 깡패들의 싸움에 휘말려 드는 대목이다. 약간의 설명. 1930년대 경성에서는 조선학생들과 일본학생들이 종종 싸움이 붙었으며, 이 싸움은 민족주의적 파토스가 거기 함께 담겨있어서, 일종의 자존심 대결 같은 양상을 보였다. 물론 이 설명은 역사적인 배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후일 이 시대를 다시 재각색하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신화일 것이다. 홍성유의 원작소설에서 김두한과 그의 종로 깡패들을 협객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은 싸움에서도 예와 의를 지키면서 승패를 겨루었다. 그건 일본 혼마치깡패도 마찬가지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현실 세계 안에 공존하는 일종의 상상적인 또 하나의 질서 안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장르의 규칙이라는 이름 아래 보호받는 또 하나의 세계. 김두한은 여기서 현실세계로부터 장르 안의 세계 질서 안으로 옮겨간다.

“거 주먹세계, 거 별거 아니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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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의 설명. 풍미당 빵집에서 지금 막 큰 형님으로부터 가죽 잠바를 물려 입고 배부르게 빵을 먹고 있는 김두한을 청계천 수표교 다리 밑 움막에서 함께 지내는 친구 진영이 찾아온다. 진영에게 우쭐해진 김두한은 그에게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모두 꺼내주면서 책을 사보라고 한 다음 자기는 돈이 필요 없는 자리에 갔다고 큰소리친다. “거 주먹세계, 거 별거 아니더라구”라고 하자 진영은 “너 그러다 종로 휘어잡겠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그 말에 문득 김두한은 자세를 고치면서 “잡지, 잡고 말고”라고 대답한다. 말하자면 종로패의 우두머리를 위한 첫 걸음. 이제 그 자리를 향한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상승이라는 선. 당신은 이 방향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물론 선과 함께 활동을 시작하는 드라마의 운동. 김두한은 자기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혹은 운명이 그를 그 자리에로 이끈다. 마치 그 대답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두 개의 대답의 차이) 그때 종로패 한명이 뛰어 들어와 김두한에게 다급하게 말한다. “두한이 형, 일본 학생하고 조선 학생하고 한판 붙었는데, 그 왜 있잖아, 오찌아이라는 깡패 두목 그 놈한테 걸린 모양이야” 여기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선. 이때 풍미당 바깥으로 나가면서 김두한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나간다. 동선이라는 문제. ( S#_1) 두 가지 설명. 이 대결에 김두한이 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김두한이 달려간다. 효과의 이유. 김두한은 의협심이 있으며, 게다가 일본인에게 조선인이 맞는 상황을 참지 않는다. 말하자면 장군의 아들. 아버지 김좌진의 피. 하지만 이 효과는 심리적으로 김두한을 다르게 설명할 수도 있게 허락한다. 김두한은 즉흥적이며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미처 계산하지 못한다. 종종 김두한이 (전체 안에서) 수동적인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능동성에 이끌리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행동의 결정은 시종일관 반복된다. 그리고 이 결정이 종종 사건을 만들어낸다. 또 하나의 설명. 김두한은 운명에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답의 자리에서 자신의 말을 증명해야 한다. <장군의 아들>은 먼저 말한 다음 거기에 대해서 사건이 다가오고 그것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때 마치 김두한은 자기의 운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중적인 반어법. 김두한은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항상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기가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때 그래도 김두한이 하는 것은 언제나 대결이다. 우리는 이 대결의 성격을 설명하지 않으면, 임권택의 말을 빌리면, 싸움의 분위기 안으로 들어서지 못할 것이다. 항상 이미 거기에 있었던 대결. 그 자리에 불려가는 김두한. 우리는 이 대결이 일종의 소급효과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운명의 벡터. 김두한이 달려간 장소는 좁은 골목 안이다. ( S#_2) 김두한과 그를 부르러 온 종로패 사내를 뒤따라 카메라는 그 안으로 약간 흥분한 듯이 함께 안으로 흔들리며 직진한다. 이때 보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그 흔들림의 신호와 음악의 청각적 기호이다. 이 영화는 대부분 카메라를 레일 위에 올려놓았거나 안전하게 크레인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마치 들고 찍은 것처럼 움직일 때 그 흔들림이 육체적이면서 동시에 감정적인 신호처럼 가시화된다. 물론 이 장면은 장소의 힘이 불러일으키는 구도의 긴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두 개의 사선으로 이어진 깊이 안으로 우리를 이끌 때 여기에는 두 개의 운동이 있다. 하나는 카메라가 김두한과 종로패 사내와 함께 우리를 이끌고 들어가는 전진의 인력이지만 다른 하나는 사선의 깊이 안으로 이어지는 두 개의 가상선의 교차점에 서 있는 오찌아이의 존재감이다. 이 골목에는 오로지 직선밖에 없다. 그리고 그 선은 양쪽으로 교차하듯이 가운데를 향하고 있다. 거기서 김두한은 자기의 첫 번째 대결을 치러야 한다. 이때 이 골목이 단지 수평 직선이 아니라 아래서 위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이어지는 상승의 방향으로 저 뒤쪽 배경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유심히 보아야 한다. 여기서부터 올라서야 하는 계단. 그 첫 번째 대결의 장소. 일종의 장면을 설정하는 쇼트(master shot). 김두한의 자리에서 멀리 있던 카메라가 단숨에 대결 장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임권택은 오찌아이에게 얻어맞는 조선학생이 땅바닥에 뒹구는 모습으로 바로 뛰어 들어간다. ( S#_3) 이 쇼트는 앞의 쇼트에서 이어져야 할 두 개의 다이어그램에서 김두한을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시선의 교차점을 잘라낸 것이다. 시선의 교환 사이의 데쿠파주. 김두한은 구경꾼의 자리에 있으며 오찌아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오찌아이가 그를 바라보는 것(reverse_shot)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선을 성립시키지 않으면 그 둘을 대결의 관계로 이어붙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 둘 사이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두 개의 집합 중에 바깥의 블록으로부터 내부의 블록 안으로 시선의 고정점을 들여보내야 한다. 오찌아이를 찍은 다음 장면( S#_4)에서 그는 손가락을 들고 화면 정면을 향하여 “다음 놈은 나와라”라고 소리친다. 물론 그 손가락은 조선 학생들을 향한 것이지만 ( S#_5) 앞의 장면과 마주보는(reverse_shot) 다음 쇼트의 9명의 인물 중 가장 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은 김두한이다. 이때 임권택(과 정일성)은 오찌아이와 김두한 사이를 오가면서 두 인물의 크기를 거의 동일하게 맞춰놓았다. 이 장면은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9명을 세워 놓으면서 아무도 인물들 사이에서 겹쳐 세워진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이 9명은 좁은 골목 안에서 반대로 수평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느낌을 준다. 여기에 김두한을 제외한 모든 인물에게 학생복을 입혔기 때문에 짧은 쇼트지만 시선은 김두한을 꼭짓점으로 하여 옆으로 벌어져 보인다. 임권택은 골목의 사선과 면 사이에 인물을 세워놓을 때 반복적으로 수평 구도로 늘여놓는다. 패배감에 조선학생들이 등을 돌려 돌아가려 할 때 김두한은 그들과 함께 등을 돌리면서 슬그머니 가죽 잠바를 벗는다. 등 뒤에서 오찌아이가 “이제 없는가?” 라고 물어볼 때 ( S#_6) 김두한이 돌아서면서 “여기 또 있다”라고 대답한다. 이 쇼트는 하나의 행동을 둘로 나눈 것이지만(double_action) 동시에 방향을 바꾸면서 상대방에로 시선을 돌리는 매우 간단한 방법이다. 이때 임권택은 동시에 9명 속에 섞여있었던 김두한을 그들로부터 떼어내는 효과를 동시에 활용하고 있다. 김두한이라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때 이 골목은 너무 좁아서 45도로 비틀기에 적절한 위치가 없다. 어쩌면 벽면의 붉은 색 벽돌은 이 골목의 연속성으로부터 인물의 행동을 고립시킬 수도 있다. 임권택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돌아보는 김두한과 그 시선을 따라가면서 벽면과 사선으로 평행이 되도록 세워 놓았다. 김두한의 대답이 오찌아이가 돌아보는 쇼트(reverse_shot)를 성립시킨다. ( S#_7) 구경꾼들이 배경으로 수평으로 늘어서 있고, 돌아가려는 일본학생들이 멈칫 할 때 오찌아이만이 마치 조건반사처럼 정확하게 돌아본다. 그들 사이에서 최고의 싸움꾼. 김두한과 겨뤄야 할 첫 번째 상대. 그가 보여주는 예민한 신경. 그 힘을 다시 이쪽으로 옮겨오기 위해서 거기에 먼저 힘을 실어야 한다. 오찌아이는 일본학생들 사이를 걸어 나온다. 정면으로 직진하는 오찌아이를 바라보며 그 앞으로 나서는 김두한의 얼굴을 가까이 다가갈 때(close_up) 거기서 보는 것은 얼굴이 아니라 표정 속의 눈이다. 마치 상대방을 반사하는 것만 같은 눈 안의 빛. 얼굴 위에 덧 쓰여진 표정. 그 위에 상대방을 향하는 시선, 그 시선의 방향을 따라 김두한이 화면 바깥으로 이동할 때(out_of_frame) 그는 마침내 오찌아이의 프레임 안으로(into_frame) 들어서는 것이다. 이제 두 개의 다른 블록이 하나가 된다. 혹은 여기서 저 안으로 이동한다. ( S#_8) 이때 김두한과 오찌아이는 먼저 서로를 마주보면서 상대방을 가늠한다. 물론 김두한이 블록 안으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먼저 김두한의 등 뒤에서 오찌아이를 바라보고 ( S#_9) 그런 다음 (reverse_shot) 오찌아이의 등 뒤에서 김두한을 쳐다본다. ( S#_10) 여기서 오찌아이가 김두한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할 때 그를 마주보는 김두한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은 당연한 동선의 일치이다. 탐색전을 벌이던 두 사람을 동일하게 한 프레임으로 잡을 때 갑자기 카메라가 그들의 머리 위로 올라간 다음 수직으로 내려다본다. ( S#_11) 그들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의상밖에 없다. 이 프레임의 구도는 오찌아이를 왼쪽에 세우고 김두한을 오른쪽에 세운 다음 골목을 마치 경사 앵글처럼 비스듬하게 세운다. 이 구도가 이들의 대결을 역동적으로 만든다고 설명하는 것은 상투적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이 쇼트는 독립적인 프레임이 아니라 리듬 안에 놓여진 것이다. 김두한과 오찌아이가 서로를 마주볼 때 이 좁은 골목에서조차 오찌아아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내려왔고( S#_9) 김두한은 아래서 위로 오찌아이를 올려다보면서 올라간다. ( S#_10) 결합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위와 아래. 이 높낮이를 만들면서 동시에 이 균형관계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카메라는 구태여 왼쪽과 오른쪽으로 조금씩 이동해서 중앙 소실점의 성립을 피하고 있다. 그런 다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때 수직으로 내려다보이면서 동시에 경사진 구도에서 오찌아이가 왼쪽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움직일 때 김두한은 오른쪽 아래서 올려다보는 것처럼 움직인다. 물론 이 시선은 영화를 보는 쪽에서만 성립되는 높낮이이다. 그러나 임권택은 두 인물을 각자의 동선을 따라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동시에 이 둘을 하나로 만드는 블록 안에서 높이의 배치를 한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 둘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S#_12) 갑자기 구경꾼들 바깥으로까지 빠져나간 다음(long_shot) 위에서 내려다보듯이, 좀 더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내리 누르듯이, 찍은 구도에서 오찌아이가 저 멀리 보이고 그 앞에 금방이라도 달려들 자세를 취하는 김두한의 위치는 잘못된 배치이다. 영화 문법적으로 이 두 사람의 배치는 김두한과 오찌아이의 상상선이 맞지 않는다. 약간 에매하지만 둘 중의 하나가 맞지 않거나 혹은 위치가 바뀌었다. 하지만 수직으로 내려다본 카메라의 위치가 완전히 이 시선 바깥으로 나갔기 때문에 마치 이 쇼트는( S#_11) 일종의 인서트처럼 쇼트 사이를 그냥 건너간다. 물론 이 쇼트 자체는 인서트가 아니다. 간단한 설명. 이 쇼트를 삭제하면 두 개의 쇼트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 S#10_ S#_12) 여기서 갑자기 이상한 쇼트의 교환이 일어난다. 완전히 구경꾼 바깥으로 빠져나갔다가 김두한이 결정적인 일격을 가할 때( S#_13) 카메라는 두 사람 사이 안으로 가깝게 들어와서 순간적인 디테일을 보여준다. 단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액션의 속도 자체에 변화를 주어서 스텝 프린팅의 방법으로 다시 변속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재빨리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 S#_14) 이때 앞의 디테일의 쇼트와 다음 장면을 연결시키는 것은 스텝 프린팅의 변속으로 이어지는 액션의 리듬이다. 이 효과는 우리에게 클로즈 업 다음에 바로 뒤이어 완전히 뒤로 물러난 롱 쇼트로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 디테일의 전부를 하나의 연속된 장면으로 본 것만 같은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다음 김두한의 발아래 땅바닥에 쓰러진 오찌아이를 다시 가까이 다가가서 보여준다. ( S#_15) 이 4개의 쇼트는 단순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까다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 쇼트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힘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선택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어떤 미학적 원칙에 따른 것인지 간단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무언가 각 쇼트마다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게 만든 다음 서로 유기적인 체계를 형성하는 하나의 그룹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자, 나는 같은 질문을 왕가위의 <일대종사>를 보면서 다시 던져볼 것이다. 물론 그런 다음 다시 <장군의 아들>로 재빨리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대종사>를 돌아볼 것이다. 궁가 64수의 창안자인 궁보삼은 최고의 필살기 노원괘인을 마삼에게 설명한다. “이 초식의 정수는 고개를 돌려보는 것이다. 타격이 아니라 돌아보는 것이지” 나는 그 말을 믿어볼 참이다. (첫 번째 이야기 끝, 두 번째 이야기 계속)
장군의 아들
1990년 108분 컬러 1.85
감독 임권택
제작 태흥영화㈜
각색 윤삼육
촬영 정일성
조명 차정남
편집 박순덕
음악 신병하
박상민 김두한
신현준 하야시
이일재 김동희
방은희 화자
장군의 아들
1990년 108분 컬러 1.85
감독 임권택
제작 태흥영화㈜
각색 윤삼육
촬영 정일성
조명 차정남
편집 박순덕
음악 신병하
박상민 김두한
신현준 하야시
이일재 김동희
방은희 화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