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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비디오모험기]슬픔은 이제 그만

김준식, 1978

[한국영화비디오모험기]슬픔은 이제 그만 대표 이미지

영화에서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보호받으며 천진하게 커야 할 어린이가 고통을 받는다는 설정이 어른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 때문이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항상 대중의 시선을 갈망하면서, 더불어 사회적 발언을 하고 싶어하는 영화는 종종 어린이들을 다양한 모습으로 시각화한다. 어린이들은 <나 홀로 집에>의 케빈처럼 어른들을 골탕먹일 수도 있고,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주인공들처럼 이란이라는 사회의 현실을 돌아보게 할 수도 있다. 극영화가 아니더라도 제3세계 어린이들의 혹독한 노동환경을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로 보여줄 수도 있다. 이렇듯 세계 여러 나라의 영화에서 어린이의 모습은 각 나라의 특성에 맞게 주제를 드러내는 한 방법으로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금의 한국의 겉모습은 풍요에 가깝다. 물론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심한 빈부격차와 밥을 굶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적 인프라의 확장 탓에 이런 부분을 상쇄하려는 노력이 다양한 경로로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거친 후, 독재를 이어갔던 80년대까지도 이런 복지의 출현은 미미했다. 그러므로 사회적 인프라가 확보되지 않은 당시 사회에서 가난으로 인한 고통은 고스란히 아이들이 감당할 몫이기도 했다.

1978년에 개봉된 김준식 감독의 <슬픔은 이제 그만>은 1977년에 개봉된 <엄마 없는 하늘 아래>의 성공 이후 만들어진 일종의 아류작이라 할 수 있다. 어린이 잔혹사 계열의 대표작이라 할 <엄마 없는 하늘 아래>모티브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다. 국민(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미나(강수연)는 희소병으로 다리가 마비되어 누워 지내는 아버지(박근형)와 젖먹이 동생을 키우는 소녀 가장이다. 이제 막 부임해온 담임선생님(한혜숙)은 모범생인 미나가 결석이 잦아지는 걸 보면서 미나의 가정형편을 알게 된다. 추운 겨울날 미나는 눈 덮인 산으로 토끼를 잡으러 가거나, 꽁꽁 언 강가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며 먹을 것을 마련한다. 아버지를 지극정성으로 모시지만 병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한 미나에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펜팔을 했던 한 미국인의 도움으로 아버지는 수술을 받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미나에겐 행복이 찾아온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아버지. 그로 인한 어머니의 지독한 노동과 죽음. 그리고 갑자기 가장이 되어버린 아이라는 스토리는 1981년 개봉작인 이영수 감독의 <하늘 나라 엄마 별이>에 까지 이어지며 전형성을 만들어냈다. 

아버지의 무능으로 인한 경제적 궁핍이라는 설정은 70년대가 되면서 좀 더 두드러진다. 이원세 감독이 <엄마 없는 하늘 아래>에서 아버지의 무능을 6.25전쟁의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분열로 설정하면서 비극의 원인을 좀 더 과거에서 찾고 있긴 하지만, 이후의 작품인 <슬픔은 이제 그만>과 <하늘나라 엄마 별이>에서는 아버지의 무능을 노동현장에서 병을 얻어오는 것으로 설정하면서 직접적으로 당대의 현실과 연결시킨다. 70년대라는 급격한 경제개발의 시대에 아버지들은 앞만 보고 달리며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이 시기에 자신의 몫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리라는 불안감을 이 영화들은 무의식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의 위치가 상당히 중요해진다. 어머니들은 더 이상 남편의 무능 때문에 집을 나가지 않는다. 대신 그녀들은 남편을 제자리로 올려놓기 위해 모진 고생을 감내하다 죽어버린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 <슬픔은 이제 그만>, <하늘 나라 엄마 별이>에서는 공통적으로 어머니의 자리를 비워둔다. 그런데 어머니의 부재가 단지 엄마가 없어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비극을 더하는 장치만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힘든 삶의 원인이 아버지의 무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 때문이라고 관객들이 오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가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권위는 전혀 훼손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딸들이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 채우며 효라는 이름으로 희생하고 이러한 효녀 심청의 스토리에 관객들은 눈물을 흘리며 옷고름을 적신다. 그리고 그 눈물 속에 모든 비극의 원인으로서의 사회적 모순은 씻겨져 내려가 버린 채, 그것은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만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여성의 희생이라는 테마는 한국 현대사에서 낯설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아버지의 회복은 질서의 회복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파도 결코 죽지 않는다. 대신 어머니가 죽는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속)>에서 보듯 어머니의 자리는 항상 누군가로 대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자리가 다른 누군가로 대체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아이들이 고통을 당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것은 순혈주의에 대한 거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려도 카타르시스 대신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던 것은 아마도 당대의 가부장적 가치관을 거스르지 않고 품어 올리려고만 했던 한계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준식 감독의 <슬픔은 이제 그만>에서는 좀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영화가 개봉된 1978년 당시 기독교와 미국은 그야말로 선진화의 표상이었던 것 같다. 미나의 아버지가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의료진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펜팔친구였던 미국인이 기독교의 중심인 목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미국인 의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라. 또 하나는 1987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로 한국 최초의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한국의 대표적 여배우로 성장하게 되는 강수연의 어린 시절을 본다는 것이다.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낭설이 아님을 이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강수연
박근형
한혜숙

감독 김준식
각본 윤삼육
촬영 임진환

1978년 95분 칼라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B0017
※ DVD로 변환된 매체로 영상도서관 감상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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