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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혜영

김용삼, 2016

[초이스]혜영 대표 이미지

언젠가부터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 한국영화가 설 곳이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검사, 경찰, 탐정, 공무원, 정치인, 범죄자를 중심으로 한 장르 영화가 판치는 현재의 한국영화계 안에서 인간관계의 본질을 관통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찾는 건 쉽지 않다. 그나마 사랑이라는 관념과 경험의 복합체를 삶의 흐름 속에서 재현하는 매체로 텔레비전이 있다. 그런데 이들이 다루는 사랑도 어딘가 모르게 획일적이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사랑을 말하기 위해 복수, 치정, 불륜 등의 선정적인 소재를 거치거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사랑의 가치를 교환 가능한 것쯤으로 환원하거나, 그도 아니면 가족이라는 사회적 제도의 부속물로 축소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사랑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러한 사랑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대상화할 수 있고 그래서 유형화할 수도 있다는 한계가 있다. 결국, 사랑을 말하지 않는 영화와 사랑을 획일화하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틈에 끼여 사랑에 관하여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경험 자체가 희소해지고 있다.

김용삼 감독의 <혜영>이 반갑고 또 이 영화가 귀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단순히 사랑을 이야기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한 인간의 삶 속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관념, 감정, 관계 등으로 그려내고 있어서다. 영화는 오랜 시간 사귀었던 성우와 혜영이 헤어진 이후 성우가 혜영을 잊지 못하는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오프닝을 제외하고 이 영화는 총 3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가장 먼저 오프닝에서 2016년 4월 구마모토현에서 진도 7의 강진이 발생했다는 인터넷 기사를 읽는 성우의 모습이 나온다. 이어서 찬송가의 웅장한 사운드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가운데 구마모토성을 각각 부감과 정면으로 담은 쇼트, 한 교회 건물의 십자가를 담은 쇼트, 그리고 벽에 기대에 잠들어 있는 성우의 모습이 몽타주 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오프닝은 과거 성우와 혜영이 연인이었을 때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편집해 놓았다. 여기서 혜영의 얼굴은 검게 칠해져 있어서 현재적 시점에서 봤을 때 그녀는 성우와 이별했으며 그래서 그녀는 성우의 과거로 남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성우와 혜영의 관계를 경제적으로 압축하고 있는 이 오프닝은 영화 전체에서 혜영과 성우의 사랑이 과거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랑이 현재에도 지속하는 무엇으로 남아 성우의 삶에 강한 파문을 일2으키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사랑은 끝났어도 그 이야기는 계속된다는 것이 이 영화가 일관되게 유지하는 태도이다. 1부는 혜영과 성우가 연인이었을 때, 서울에 직장이 있는 혜영이 성우가 사는 대구로 내려와 며칠 머물다 떠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은 종종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마치 뼈와 살처럼 서로 끈끈하게 붙어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둘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함께 야구를 보고 함께 랩을 흥얼거릴 수 있지만, 혜영은 집에 있을 때 잘 씻지 않고, 치킨을 시켜 먹는 것을 좋아하고, 둘 사이의 약속을 어기고 몰래 일본 성인물을 보는 성우가 못마땅하다. 그래도 둘은 마치 영혼의 단짝처럼 서로에게만 공유 가능한 언어로 소통하는 애틋한 관계이다. 그런데 2부로 넘어가면 돌연 혜영이 사라진다. 영화는 혜영의 사라짐과 관련하여 명확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혜영이 사라진 이유는 그녀가 성우 몰래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서울과 대구를 왕래할 때 기차 대신 버스를 더 애용한다는 단서를 통해, 그리고 성우의 집 근처 교회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찬송가의 장엄하면서도 어두운 분위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론해볼 수 있는 정도다.

2부는 이별 후 홀로 남은 성우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매일 술을 마시면서 폐인처럼 살아가던 중 우연히 구마모토현에 강도 7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다. 구마모토현은 과거 혜영이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에피소드를 통해 영화는 비록 사랑하는 사람은 지금 곁에 없지만,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심연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불현듯 지형학적 융기를 일으키듯 겉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사랑과 지진은 삶을 뒤흔들고 강한 파문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끝으로 3부에서는 성우와 찬다라에 관한 이야기이다. 찬다라는 성우와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인데, 그는 혜영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성우와 함께 야구를 보고 수다를 떤다. 여기서 영화는 혜영의 공백을 찬다라로 채우면서도 정작 성우가 혜영의 빈자리를 정서적으로 완벽히 메우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영화는 하나의 사랑이 그것의 정점에 있다가 느닷없이 이별로 추락하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에 찾아오는 파장을 다루고 있다.

영화는 사랑을 관념의 수준에 머물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혜영>은 일부 예외적인 장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성우가 사는 방을 주된 배경으로 활용하고 있다. 1부에서 혜영과 성우의 과거 이야기가 전개될 때, 두 사람의 활동 반경은 성우의 집안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성우의 집은 그들의 사랑을 오롯이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리고 성우의 집은 그들의 사랑이 물질적인 흔적의 형태로 남아 있는 장소이다. 그곳에는 혜영과 성우가 텔레비전으로 야구 경기를 시청하면서 나누어 입었던 야구 유니폼이 있으며, 혜영이 성우와 다툴 때 잃어버렸던 반지가 방구석 어딘가에 떨어져 있는, 그리고 혜영이 쓰던 여러 물품이 창가에 수북이 쌓여 있는 그런 곳이다. 2부에서 이별을 겪는 성우를 괴롭히는 것은 단순히 혜영에 대한 그의 감정이 무의식 속에 억눌려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방 구석구석에 그녀의 흔적이 물질적인 흔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를 존재론적으로 대리하는 사물들이 성우의 집에서 성우와 더불어 살고 있었다. 이것이 이 영화를 만든 김용삼 감독의 연출력의 미덕으로, 그는 사랑을 건축적으로 주조하는 동시에 그것을 물질적으로 구체화하는 재능을 갖고 있다.

<혜영>의 또 다른 미덕은 사랑을 다른 어떤 것과도 교환 불가능한 특이한 것으로 그려낸다는 점이다. 이는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혜영과 성우가 빚어낸 사랑의 강도가 다른 이들의 사랑보다 더 강렬하다는 말이 아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그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방식에서 특이성을 갖는다. 예를 들어, 성우와 혜영은 종종 두 사람 사이에서만 소통 가능한 언어로 대화를 나눈다. 그들은 함께 보던 만화 속 대사를 활용해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손을 맞대고, 시선을 교환한다. 그리고 성우는 혜영을 호명할 때 “캡틴”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명장면에서 빌려온 캡틴이라는 단어는 성우를 통해 혜영을 세상에서 둘도 없이 귀중한 그래서 더없이 고유한 존재로 만든다. 이외에도 성우와 혜영 사이에서만 소통 가능한 표정과 몸짓이 있다. 이처럼 혜영과 성우는 오직 두 사람 사이에서만 약속된 언어를 통해 서로를 더 빛나게 하는 동시에 둘 사이의 관계를 더 공고하게 다진다. 그들에게 사랑은 은밀한 언어이고 신비로운 세계이다. 오직 사랑하는 두 사람만이 입장 가능한 작지만 큰 세계. 그렇기에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이란 하나의 유일무이한 세계를 만드는 것이며, 이별이란 그런 세계를 상실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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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서울독립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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