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영화
[실험영화]영화가 벌써 시작되었나?: 모리스 르메트르, 1951
영토 없는 영화들을 위한 지도: 1950년대 이후 실험영화①
지금으로부터 66년 전, 제4회 칸영화제에서는 루마니아 태생의 스물여섯 살 청년이 만든 한 편의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적잖은 화제를 모으고 있었다. 2년 전에 출간한 책으로 외설 논란을 일으키며 잠시 수감되기도 했던 이 청년 작가는 칸영화제 한 달 전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 작품이 “시네마를 철저하게 바꿔놓을 것이며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경로로 밀고 나갈 것”이라고 호언장담까지 한 터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정작 칸의 공식 초청을 받은 작품이 아니었고 그저 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동안 한 차례의 상영회가 마련되어 있을 뿐이었다. 1951년 4월 20일 금요일, 칸의 복스(Vox) 극장에서 마침내 영화가 공개되었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영화였지만 그때까지 편집이 마무리되지 않았던 탓에 2장과 3장은 이미지 없이 사운드만 흘러나왔고, 그나마 꼴을 갖춘 1장마저도 이미지와 사운드의 연계를 파악하기 힘든 요령부득의 작품이었다. 관객과 기자들은 분노했다. 반면 칸에서 이 영화를 본 장 콕토는 “영화제 기간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스캔들”이라 불렀고 이듬해 이 영화가 파리에서 개봉될 때는 포스터를 그려주기까지 했다. 개봉 당시 이 영화를 본 평론가 시절의 에릭 로메르는 다소 양가적인 감정으로 작품에 거리를 두면서도 1장만큼은 “내가 지금껏 본 그 어떤 최고의 비상업적 영화들보다도 천 배는 나를 사로잡았다”고 「카이에 뒤 시네마」에 썼다. 1953년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의 상영회를 통해 이 영화를 보았던 스탠 브래키지는 훗날 작가에게 편지를 띄우면서 그것이 “내가 영화작가로서 발전하는 데 있어 가장 심원하고 지속적인 변화를 일으킨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고백했다. 이상은 이지도르 이주와 레트리즘(Lettrism) 영화의 시작을 알린 그의 데뷔작 <타액과 영원에 관한 논고 Traité de bave et d’éternité>(이하 <논고>로 표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 이 영화는 영미권에서는 ‘독설과 영원’(Venom and Eternity)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왔고 여전히 그러한데, 이는 ‘타액(침)’과 ‘독설’이라는 뜻을 모두 지니고 있는 프랑스어 ‘bave’를 잘못 해석한 데서 나온 제목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면 오해의 여지가 전혀 없다. 이는 과격한 레트리즘 텍스트를 낭독할 때 입에 고이거나 흘러나오는 침을 뜻하는 것이다.)

장 콕토가 디자인한 <타액과 영원에 관한 논고> 포스터
이주가 1946년에 출간한 저널 「레트리스트 독재 La Dictature Lettriste」로 모습을 드러낸 레트리즘 운동(첫 멤버는 이주 자신과 가브리엘 포메랑 둘 뿐이었다)은 문학, 회화, 영화 등에서부터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에 이르는 영역까지를 겨냥하는 무정부주의적 실천이었는데, 이에 영감을 제공한 것은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 특히 다다이즘이었다. 이 운동에 레트리즘이란 명칭이 붙은 이유는 애초에 그것이 문학, 특히 시적 언어의 전복을 꾀하는 작업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레트리즘 시는 시어에서 모든 의미를 제거하고 시를 전적으로 문자(letter) 그 자체, 그리고 소리로 환원시키고자 했다. (※ 이런 문학적 시도는 다다이스트들의 음향시(Lautgedicht) 작업은 물론이고 그들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러시아 미래파 작가들이 고안했던 초이성적(super-rational) 언어인 자움(zaum) 또한 떠올리게 한다.) 1955년, 오슨 웰즈는 영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시리즈 <오슨 웰즈와의 세계 일주 Around the World with Orson Welles>의 한 에피소드에서 레트리즘 그룹 멤버들(이지도르 이주, 모리스 르메트르, 자크 스파카냐)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레트리즘 시를 낭독하는 광경을 담은 바 있다.
<논고>는 레트리즘 영화의 이념과 방법론을 한꺼번에 드러낸 선언문이자 에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이미지들 간의 관계는 대단히 불투명하고, 이미지와 사운드는 동조화되지 않은 채 서로 무관하다 싶을 만큼 자율적으로 흘러간다. 이주는 이를 불협몽타주(montage discrépant)라고 불렀다. <논고>에서 이주 자신이 연기(?)한 다니엘은 “나는 눈이라고 하는 영화의 지배자로부터 귀를 분리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불협의 원리에 따라 분리된 이미지와 사운드는 이른바 ‘끌질’(cisèlement) 작업을 통해 물리적, 물질적 특성을 고스란히 노출하게 된 대상들이다. 이주는 날카로운 도구들로 필름 표면을 긁어내거나 그 위에 잉크를 칠하기도 했다. 영화의 사운드는 일단 레코드판에 녹음된 뒤에 광학 사운드트랙으로 옮겨졌는데 이로 인해 자글거리는 소음이 시종일관 들리게 되었다. 또한 이주는 이 영화를 위해 새로 촬영한 이미지들 외에도 상당 부분 뉴스릴 등 기존의 영상자료를 재활용하고 있다. 영상자료들을 원래의 맥락에서 떼어 내고, 끌질을 통해 변형시키고, 임의로 다른 것들과 결합하고, 궁극적으로는 ‘모독’한다고 할 수 있는 <논고>는, (1951년에 레트리즘 그룹에 가입한) 기 드보르에 의해 후일 상황주의(Situationism)의 정치미학적 전략으로 정교화될 전용(détournement)의 방법론까지도 예시하고 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논고>는 어느 정도는 에세이영화이고, 어느 정도는 추상영화이고, 어느 정도는 낭독영화이고, 또 어느 정도는 파운드푸티지 영화이기도 한 대단히 복합적인 작품이다. 편집이 마무리되지 않아 영화의 2/3가량이 사운드만 흘러나오는 프린트를 상영해 칸영화제에서 물의를 일으킨 것도 반쯤은 의도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 다니엘은 “시네마가 일종의 라디오처럼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라고 따져 묻는다. - <논고>는 필름 퍼포먼스 실천이기도 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겠다. (심지어 라디오 방송극처럼 펼쳐지는 연애담도 포함되어 있다!) <논고>는 영화가 이제 스스로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철저히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그것들을 분해하고 해체한 뒤에 가능한 여러 대안적 결합의 양상을 모색하는 (보다 과격하게는, 결합의 모든 가능성을 폐지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논고>의 복합성은 그러한 복합성 자체를 추구해서 얻어진 것이라기보다, 이처럼 영화가 새로운 단계로 이행했다는 전제에 입각해 이주가 연역적으로 수행한 이런저런 작업의 산물이라 봐야 한다. 말하자면 <논고>는 대단히 소크라테스적인 정신의 산물인 셈인데, 이는 훗날 고다르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인디아>(1959)를 보고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그러한 정신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논고>는 어느 정도는 에세이영화이고, 어느 정도는 추상영화이고, 어느 정도는 낭독영화이고, 또 어느 정도는 파운드푸티지 영화이기도 한 대단히 복합적인 작품이다. 편집이 마무리되지 않아 영화의 2/3가량이 사운드만 흘러나오는 프린트를 상영해 칸영화제에서 물의를 일으킨 것도 반쯤은 의도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 다니엘은 “시네마가 일종의 라디오처럼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라고 따져 묻는다. - <논고>는 필름 퍼포먼스 실천이기도 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겠다. (심지어 라디오 방송극처럼 펼쳐지는 연애담도 포함되어 있다!) <논고>는 영화가 이제 스스로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철저히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그것들을 분해하고 해체한 뒤에 가능한 여러 대안적 결합의 양상을 모색하는 (보다 과격하게는, 결합의 모든 가능성을 폐지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논고>의 복합성은 그러한 복합성 자체를 추구해서 얻어진 것이라기보다, 이처럼 영화가 새로운 단계로 이행했다는 전제에 입각해 이주가 연역적으로 수행한 이런저런 작업의 산물이라 봐야 한다. 말하자면 <논고>는 대단히 소크라테스적인 정신의 산물인 셈인데, 이는 훗날 고다르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인디아>(1959)를 보고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그러한 정신이다.

<타액과 영원에 관한 논고>의 프레임들
하지만 <논고> 이후 이주는 더 이상 영화작업을 지속하지 않았다. 그가 열어젖힌 문 안으로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는 모리스 르메트르였다. (그는 <논고>의 후반 작업 당시 프린트를 늘어놓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끌질’ 수작업을 프레임 단위로 수행한 장본인이다.) 이주의 영화가 칸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나서 7개월 후, 파리의 한 시네클럽에서 르메트르의 첫 영화 <영화가 벌써 시작되었나? Le film est déja commencé?>가 공개되었다. 여기서 르메트르는 이주가 <논고>에서 제시한 불협몽타주와 끌질의 전략을 더 밀고 나갔다. 전체 영화의 대부분 숏이 수작업으로 채색되었고 이미지의 추상성은 더욱 강화되었다. 사운드트랙의 구성은 정말이지 파격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새로운 영화의 가능성에 대한 사색에서부터 <영화가 벌써 시작되었나?>가 상영되는 영화관 환경 및 상영 도중 영화관에서 벌어지는 소란과 말다툼(“이런 영화를 보려 하다니 미쳤군! 원한다면 내가 돈을 줄 테니 커플이라면 차라리 그걸로 호텔에나 가시오!”)에 대한 묘사, 그리고 심지어 이 영화에 대한 언론의 리뷰들(물론 꾸며낸 것이다)까지 읊조려지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돌연 영화가 끝나버린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극장 매니저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방금 영사기사가 르메트르 씨 영화의 마지막 릴을 찾을 수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어디에 잘못 둔 것인지 배달이 안 된 것인지는 저희도 알지 못합니다. 여하간 상황이 이렇게 되어 상영을 끝까지 마칠 수 없게 되어 참으로 유감입니다. (사탕과 초콜릿 그리고 아이스크림 있어요!)”
오늘날 <영화가 벌써 시작되었나?>를 르메트르가 의도한 바의 모습으로 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에게 있어 영화란 비단 기계적으로 재생되는 이미지와 사운드의 총체만이 아니었고, 그것이 상영되는 특정한 공간과 시간과 결부된 - 바로 그때 바로 그곳에서 벌어진 - 사건들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함께 끌어안는 개념이었다. 또한 스크린은 백색의 직사각형이 아닌 다른 형태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고, 영화 상영 중 관객에게 요구되는 침묵과 부동의 상태 또한 얼마든지 위반해도 좋은 것이었다. 즉, <영화가 벌써 시작되었나?>의 사운드트랙에 재현된 일련의 소란은 비단 영화 내적인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 영화가 상영되는 환경에서 실제로 수행(performance)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가 구상한 상영환경을 개략적으로 묘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영화가 벌써 시작되었나?>가 상영될 영화관 입구에는 핑크색으로 칠해진 이동식 스크린이 설치된다. 상영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영사기사는 이 이동식 스크린에 그리피스의 <인톨러런스> 같은 고전 영화들을 상영한다.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면, 관객들은 채색된 천들과 이런저런 움직이는 물체들로 스크린이 어지러이 가려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상영이 시작되면, 르메트르가 미리 ‘심어둔’ 연기자들이 영화관 안에서 소란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영사기에서 나오는 빛을 가리면서 소리를 질러댄다. 얼마 후에는 다른 이가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 칼로 스크린을 자르고 그 너머로 간다. 관객들 가운데는 항의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이 과격한 퍼포먼스에 동조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여하간 상영은 계속된다. 그리고 또 …. 이러한 영화적 실천을 르메트르는 종합영화(syncinéma)라는 용어로 개념화했다.

<영화가 벌써 시작되었나?>의 프레임들
이러한 실천은 <반개념 L’Anticoncept>(1952) 상영 시 헬륨가스가 든 지름 2미터짜리 구형 풍선의 표면을 스크린으로 활용한 질 J. 울망 등에 의해 레트리즘 영화의 주요 전략으로 자리 잡게 된다. 1960~70년대에 걸쳐 본격적으로 만개한 확장영화(expanded cinema) 작업들이 나오기 이전, 이미 레트리즘 그룹은 라이브 퍼포먼스의 도입을 통해 영화를 다시 사고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예술제도는 이러한 반제도적 실천마저도 제도의 일부로 끌어안은 지 오래다. 지금의 우리가 <영화가 벌써 시작되었나?>를 르메트르가 의도한 모습 그대로 보기가 어려운 것은, 그가 구상한 종합영화적 실천을 실행에 옮기는 게 까다로워서가 아니라, 더 이상 우리가 그러한 실천을 스캔들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의 정치학은 예술이 스캔들을 일으킬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지만, 이제 스캔들은 정치에 고유한 것이 되었고 예술은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가 되었다. 예술과 관련된 스캔들은 있어도 예술의 스캔들은 없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레트리즘을 돌아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타액과 영원에 관한 논고>와 <영화가 벌써 시작되었나?> 이후 레트리즘 운동의 전개 과정, 그리고 레트리즘 그룹과 상황주의 그룹의 관계 등에 대해 서술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지면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이런저런 무용담과 전설과 영웅 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작업에 대한 반응과 평가가 당대에 어떠했는지를 저릿한 기분으로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은 스콧 맥도널드와의 인터뷰에서 P. 애덤스 시트니가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고백한 것을 보고 나서다. “1963년 파리 […]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바깥에 서서 제게 적대적인 문건을 나눠주고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저는 당시 그 사람을 무시하라는 제 프랑스 친구의 말을 들었던 것을 후회합니다. 그 사람은 레트리즘 영화작가인 모리스 르메트르였어요. 그는 제가 침입자이면서 그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거대한 음모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이라 여겼어요. 그리고 그가 느끼는 감정에는 얼마간의 진실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프랑스인들은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에 극도로 적대적이었는데, 반면 미국 작품을 받아들이고 있던 프랑스인들은 「카이에 뒤 시네마」와 누벨바그에 의해 규정된 그림자 내에서 움직이지 않는 프랑스 영화작가들은 죄다 무시했어요.”
※ 위 글에서 언급된 레트리즘 영화와 관련된 여러 사실들은 2014년에 출간된 카이라 M. 카바냐스(Kaira M. Cabañas)의 「오프-스크린 시네마: 이지도르 이주와 레트리즘 아방가르드 Off-Screen Cinema: Isidore Isou and the Lettrist Avant-Garde」를 참고로 해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은 영어로 출간된 레트리즘 영화에 관한 첫 단행본이다. 이지도르 이주의 <타액과 영원에 관한 논고>, 모리스 르메트르의 <영화가 벌써 시작되었나?>, 질 J. 울망의 <반개념> 그리고 기 드보르의 <사드를 위한 울부짖음 Hurlements en faveur de Sade>(1952)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역시 2014년에 출간된 니콜 브레네즈(Nicole Brenez)의 「레트리즘 영화 입문 Introduction to Lettrist Cinema」도 참고할 만하다. 소책자이기는 하지만 레트리즘 그룹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서부터 1960년대 이후 이 운동의 전개 과정과 그것이 후대에 미친 영향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웹사이트 www.mauricelemaitre.org 에서는 레트리즘의 정의와 연대기, 그리고 르메트르의 작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