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영화리스트
비밀은 없다
이경미, 2015
올해의 테마를 정리한다면 어린이, 노인, 여성, 퀴어가 되나보다. 일부러 테마를 정리해서 영화를 고른 건 아닌데, 뽑다 보니 그렇게 됐다. 클래식 할리우드에 대한 내 페티시를 자극해 은근슬쩍 리스트에 오른 <헤일, 시저!>를 제외한다면 리스트에 선정된 모든 영화들이 여기 어딘가에 서 있다. 이중 몇몇은 두 개 이상의 테마를 공유한다. <캐롤>과 <아가씨>는 여성중심인 동시에 퀴어물이다. <우리들>의 주인공들은 여성인 동시에 어린이다. <어둠의 여인>의 주인공은 성인 여성과 어린 소녀이다. <45년 후>와 <다가오는 것들>은 모두 여성의 노년을 다룬다. 어린이를 청소년으로 넉넉잡아 본다면 <비밀은 없다>는 저 테마 중 세 개를 커버한다.
이 테마를 연장해서 다른 영화들도 몇 편 더 언급했으면 좋겠다. 여성 + 퀴어 테마의 영화로는 얼마 전에 개봉한 <연애담>과 개봉을 기다리는 <꿈의 제인>을 뽑았으면 좋겠고, 노인에 대한 영화로 빠진 작품으로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빠지면 아쉽다. <우리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영화로는 엉겁결에 정지우의 최고 걸작이 된 <4등>이 있다. 이들이 리스트에 오른 영화보다 덜 마음에 든다거나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이번 리스트를 만들 때는 그냥 저 영화들을 넣고 싶었고 여기에 완벽한 줄 세우기가 개입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나는 <연애담>을 <아가씨>보다 더 좋아한다고 할 수 있고 <아가씨>에 대한 내 입장은 거의 매일, 심지어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휙휙 바뀌는 편이다. 하지만 적어도 올해는 내가 <아가씨>에 대해 생각한 시간이 엄청나게 많았음은 부인할 수 없다.
올해는 한국영화를 조금 넉넉하게 뽑았다. 해외영화와 한국영화를 반반씩 뽑아도 되었을 것 같다. 이유가 무엇이건 2016년은 한국영화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분노하고 열광할 시간이 많았다. 이들 중 몇 편은 아쉽게도 그 가치에 맞는 관객들을 끌어들이지 못했다.
오늘 내가 고른 영화는 이경미의 <비밀은 없다>이다. 흥행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가장 아쉽다. 거의 수정처럼 투명하고 보편적인 <우리들>이나 감독과 원작자의 명성을 입고 해외에서 호평세례를 받고 있는 <아가씨>와는 달리, 이 영화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관객은 한국인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어처구니없는 비열함에 대한 지식과 분노가 있고, 사투리와 억양을 구별하는 귀를 구별할 수 있는 한국어 사용자. 사전지식 없이 자막으로 보는 외국 관객들이 이 영화의 뉘앙스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반대로 본다면 21세기 초의 한국사회를 보여주기 위한 영화로 <비밀은 없다>만큼 좋은 작품은 없다. 다른 영화들이 이 나라의 표면만을 보여준다면 이 영화는 산 채로 해부해 보인다.

설정을 보자. 텔레비전 앵커 출신인 종찬은 고향인 경상북도 대산에서 국회의원 선거 중이다. 원래 여당 텃밭이지만 이전 여당 국회의원이었던 무소속 후보 때문에 경쟁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선거 유세 첫날, 중학생인 딸 민진이 사라져버린다.
이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이런 정보를 준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야기와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한국 영화계는 정치판을 무대로 한 스릴러 영화가 모자란 편이 아니다. 심지어 이런 내용을 전에 다른 영화에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비밀은 없다>의 도입부는 아주 좋지만 전형적인 한국 스릴러가 될 수 있는 재료를 다 갖추고 있다. 주인공을 종찬으로 만들면 영화는 당연히 그 길을 갈 것이다. 심지어 그는 그리스 비극에나 나올 법한 처절한 아이러니의 희생양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종찬을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는다. 배우에서부터 스토리에 이르기까지 온갖 준비가 되어 있는데도 그렇게 안 한다. 제작자이고 공동 각본가인 박찬욱은 이 캐릭터의 분량이 줄어든 걸 아쉬워했는데, 내 생각엔 이 분량이 딱 맞다. 종찬이 근사한 상황에 빠진 훌륭한 캐릭터라는 사실은 여전하지만 <비밀은 없다>의 장점은 그의 분량과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상식적으로 보았을 때 주인공이어야 마땅한 이 인물을 당연하다는 듯 조연으로 밀어버리는 무심함에 있다.
대신 영화는 주인공 자리를 종찬의 아내 연홍에게 준다. 이 사람이 주인공임을 선포하는 오프닝의 클로즈업을 제외하면 사실 초반에서 연홍은 그렇게 눈에 뜨이는 존재는 아니다. 남편의 대업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예쁘장한 30대 여성. 하지만 딸이 사라지고 어쩔 수 없이 혼자 탐정 일을 시작하면서 이 정상적이고 평범한 가면에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영화가 결말을 향해 달려갈수록 이 균열은 점점 커지면서 연홍의 얼굴을 떠나 연홍이 지금까지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세계 전체로 퍼져간다.

연홍의 수사과정은 하드보일드 소설과 필름 누아르의 영역에 있다. 퍼즐 추리물과 하드보일드 물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을 설명하는 그럴싸한 이미지가 있다. 퍼즐 추리소설이 파편화된 정보들을 모아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해가는 과정을 그린다면 하드보일드 물은 어둡고 좁은 미로 속에서 망치로 벽을 깨부수며 목적지까지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랄까. 개인적으로는 로스 맥도널드의 60년대 이후 소설과 이 영화를 비교하고 싶다. 거대한 비리와 소소한 가족의 비밀이 얽혀 뜻밖의 미로를 완성하는 그 과정이 많이 닮았다.
단지 <비밀은 없다>에는 루 아처가 없다. 지도를 완성하는 역할은 실종된 딸의 어머니에게 넘어간다. 이제 이 모든 것은 개인적이다. 그리고 연홍이 미로를 찾아가는 과정은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우리’ 안에서 자신이 늘 타자였음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만약 공식대로 종찬이 주인공이었다면 그가 몰락하는 과정 속에서도 그를 만든 남성 중심적인 정치판의 세계는 그대로 유지되고 그의 몰락은 흔한 일화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이고 호남 출신이고 지금까지 위태롭게 ‘정치가의 아내’의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성인 여성에겐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정신적인 성숙 따위엔 단 한 번도 도달한 적 없는 이 미숙한 영혼은 중2병 아이들에 걸맞은 파괴력으로 그 주변의 세계를 박살 내버린다. 이런 한국 영화를 전에 몇 번이나 보았는가.
그렇다고 <비밀은 없다>가 남자들에게 희생된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냐면 사실은 정반대이다. 민진의 실종으로 시작되는 영화 속 드라마의 대부분은 여자들에 의해 저질러졌고 여자들 때문에 일어났다. 여자들이 가만히 있었다면 아무 일도 없었다. 물론 가장 먼저 잘못한 것이 누구냐를 따진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이 영화는 거기에 그렇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 중 어느 누구도 페미니스트의 모범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아니며 자신을 그렇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이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의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이유가 무엇이건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주변 여자들과의 관계가 극단적으로 격렬하다는 것도.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남자들의 존재감은 이상할 정도로 흐릿하다. 심지어 거의 궁중 사극처럼 남자 한 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설정일 수밖에 없는데도 그렇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민진의 마지막 대사는 그 남자의 마지막 존재감마저도 날려버린다. 이 모든 것은 여자들의 사정이다.
<비밀은 없다>의 파괴력도 여기에 있다. 앞에서 종찬이 주인공이었고 그의 몰락이 이야기의 중심이었다면 세계는 바뀌는 게 없다고 말했다. 그건 그의 몰락이 그 세계의 입장에서 보면 큰 의미가 없고 그의 자리는 언제나 비슷비슷한 남자들이 채울 것이기 때문이다. 균형의 측면에서 보면 달라지는 게 없다. 하지만 <비밀은 없다>의 세계를 뒤흔드는 것은 모두 (정신적으로 조금씩 미숙한) 여자들이고 청소년들이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정치하는 중장년 남자들의 세계관과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 이들은 여자와 아이들의 자리에 안주하지도 않는다. 따귀를 한 대 맞으면 세 대 받아치고 친구에게 해를 끼치면 차로 세 번 밀어버린다. 그렇다. 이 영화의 청소년 주인공 중 한 명은 심지어 운전을 한다. 지금까지 사회가 허용하지 않은 힘을 가지고 그 사회에 어떤 미련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무심하게 세계를 때려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정도면 거의 묵시록적인 영화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기존 사회에 대해 어떤 기대도 아쉬움도 없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의 묵시론적 비전은 즐겁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