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의 시네마테크
[2주의시네마테크]이야 모노가타리 - 재팬파운데이션 무비 페스티벌 추천작 ①
츠타 테츠이치로, 2013
쿠엔틴 타란티노가 필름으로 촬영한 신작 <증오의 8인>이 훌륭하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틀림없이 개봉 즈음엔 또 새삼스레 디지털과 필름을 싸움 붙이는 이야기가 나돌 것이다. 그럴 때면 필름 지지자들은 주로 디지털이 아직도 대체할 수 없는 필름의 특질을 강조한다. 숫자로 측정할 수 있는 디지털 신호 대신 셀룰로이드와 은입자 위에 어린 빛의 흔적이 제공하는 깊고 부드러운 질감이랄지, 아이맥스 필름이나 70mm 필름이 구현할 수 있는 선명하고 거대한 이미지랄지. 또 타란티노 같은 영화광이라면 상영이 거듭됨에 따라 필름이 물리적으로 낡아가면서 아로새기는 고유의 역사가 감상에 스며들어 남기는 감흥도 포기할 수 없겠다.
여기에 한 가지 특질을 덧붙여 생각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바로 필름이 촬영 현장에 강요하는 절박함이다. 한 번 카메라를 돌리기로 결정하면 다시는 지우거나 덮어쓸 수 없으며 바로 제작비 지출로 이어진다는 압박. 디지털 영화 촬영 현장에서 종종 접하게 되는 ‘리허설 겸 슛’ 같은 느슨한 태도는 그야말로 사치다. ‘액션’과 ‘컷’을 부르고 OK와 NG를 결정하는 데에 따르는 선택의 무게는 과연 어떠할까. 다들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던 시절에는 그것도 평범한 기본 조건이었을 테지만, 지금 와서 굳이 필름을 선택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나는 디지털에서는 허용되는 편리함을 포기하고 필름이 요구하는 긴장을 받아들이겠다’는 결기를 느끼게 하는 데가 있다. 그 결기가 빚어낸 현장의 밀도가 영화의 형상에 어떤 유의미한 차이를 남겨 관객에게 닿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대답하는 작품을 한 편 소개한다. 바로 12월 10일부터 20일까지 시네마테크 KOFA에서 열리는 제4회 재팬파운데이션 필름 페스티벌 상영작, <이야 모노가타리>다. 이 영화를 발표할 당시 불과 스물아홉이었던 감독 츠타 테츠이치로는 대학교 영화학과 시절부터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었으며, 촬영은 물론 현상과 인화까지 스스로 해치우며 영화를 배웠다. 졸업 작품이자 장편 데뷔작 <꿈의 섬> 역시 16mm 흑백 필름으로 제작했으나, 35mm 컬러 필름은 <이야 모노가타리>에서 처음 다뤄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새 매체를 몸으로 부딪치며 배워나가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단편을 만들자고 시작했던 기획에 지역사회의 후원도 받고 크라우드 펀딩도 동원하며 규모를 키워 급기야 1년 동안 촬영을 진행한 끝에 169분짜리 장편을 내놓고야 말았다. 가히 그 집념을 짐작할 만하다.
<이야 모노가타리>가 다루는 대상 역시 필름만큼이나 희귀한 존재다. 배경은 일본 3대 비경 중 하나로 꼽히는 도쿠시마 현의 이야 지방. 영화는 아직도 산에 남아 옛 방식대로 살아가는 할아버지와 소녀, 점차 산을 내려가 현대화된 삶을 꾸리는 지역 주민들, 도시 생활에 지쳐 산으로 들어온 젊은이, 지역 주민들보다 더 개발에 열성적으로 반대하는 운동가들을 아우르며 자연의 운행과 세상의 변화를 담아낸다. 츠타 감독은 처음에는 틀림없이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실재하리라 생각하여 온 산을 돌아다녔지만, 그런 삶의 방식은 이미 사라지고 없음을 깨닫고는 결국 직접 산중에 밭을 일구고 작물을 기르며 영화를 촬영했다. 드넓고 광포한 자연 속의 인간을 유장하게 담아내는 화면이나 피사체의 표면에 드리운 음영의 농밀함은 신도 가네토 감독의 <벌거벗은 섬>이나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 또한 21세기 일본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사라진 세계를 사라진 매체로 담아내어 사라진 전통을 되살린 영화라고나 할까. 아직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미숙한 면이 있다고 해도, 단순히 일회성 오마주가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옛 방식을 되살려내는 동시대의 영화인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감동은 화면마다 뚜렷하다.
아쉽게도 이번 상영은 DCP로 진행된다. 제작비가 넉넉하지 않은 독립영화의 형편상 일본 개봉 시에도 단 한 벌의 필름으로 상영을 이어나갔고, 세계 각국의 영화제에 돌리는 필름도 두 벌뿐이라니 이해하기로 하자. 비록 필름의 물리적 정취는 줄어들었을지언정 ‘지금 카메라를 돌리자’고 결의한 현장의 결기만큼은 남아있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