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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의시네마테크]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② - 40년대 작품 세 편

떠돌이 배우, 1940

[2주의시네마테크]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② - 40년대 작품 세 편 대표 이미지

나루세 미키오의 5, 60년대 작품 세 편을 소개했던 지난 글에 이어, 이번에는 ‘나루세 미키오 특별전’ 상영작 중 40년대 작품 세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루세는 그 위상이 드높아진 지금도 5, 60년대에 만든 여성-가족 멜로드라마를 중심으로 소개되는 편이며, 한때 나루세의 4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 영화 전반이 그러했듯) 침체기였다는 주장마저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오즈 야스지로가 무성영화 시절 미국 영화를 본뜬 빼어난 범죄 영화를 만들며 자신의 길을 모색했던 것처럼, 이 시기의 나루세 역시 다양한 소재의 영화를 통해 다른 표현법을 탐구하거나 이후에 나아갈 방향을 찾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빚어낸 결과물은 소위 원숙기의 대표작들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이번에 상영하는 3, 40년대 영화 가운데에는 특히 예술가에 관한 영화들이 눈에 띈다. 그중 <떠돌이 배우>는 제목 그대로 떠돌이 극단에서 말을 연기하는 두 배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말의 탈을 쓰고 무대에 서다 보니 인지도도 낮고 대접도 박하지만, 말머리를 맡은 배우는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말의 움직임을 부단히 연구하면서 자기 일에 회의를 느끼는 말꼬리를 맡은 후배를 독려한다. 그러다가 사고로 말의 탈이 망가지고, 극단이 진짜 말을 무대에 올리면서 그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빼앗기고 만다. 이것은 대접받지 못한 예술가의 각오와 분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진짜와 진짜를 모사하는 예술이 빚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따라서 어쩌면 영화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시기 나루세 영화에서는 5, 60년대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의 카메라 움직임이 나타나곤 하는데, 특히 사람과 말이 대결을 벌이는 클라이맥스에서 카메라가 느닷없이 허공을 가르며 선사하는 신비로운 상쾌함은 <번개>에서 번개가 치는 대목에 필적할 만하다. 이 시기 카메라와 인물의 격렬한 움직임으로 표현했던 것이 뒤에 가면 공간의 문제로 바뀌었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초롱불 노래>는 정통 무협 영화다. 진짜다. 줄거리를 들어보시라. 한 문파의 고수인 아버지와 백부, 아들이 각지를 떠돌며 무공을 시연한다. 그러던 중 그들에게 자신이야말로 최고수라고 뻐기는 하수의 소문이 들려오고, 분개한 아들은 상대를 직접 찾아가 코를 납작하게 만든다. 하수가 치욕을 못 이겨 자결을 택하자 모두가 통쾌하게 여기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아들의 오만함을 책망하며 파문을 선언하고 무공을 사용하지 말라 명한다. 결국 아들은 저잣거리를 떠돌다가 마음이 맞는 의형제를 만나는가 하면 급기야 자신이 모욕했던 하수의 딸을 만나게 되는데……. 이게 무협이 아니고 뭔가! 권각과 병장기를 겨루는 대신 노래와 춤, 북 장단을 겨룬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무림 고수들이 무형의 내공을 실어 실력을 겨루듯, 나루세의 고수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로 상대의 솜씨를 가늠하고 친구를 만나고 제자를 이끌며 스승을 알아본다. 한편 공연 예술 영화로서 <초롱불 노래>는 거듭 무대와 객석, 공연자와 관객의 자리를 분리한다. 이것이 처음에는 실제 공연장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나중에는 술집과 거리나 마루와 정원 등 문지방 노릇을 할 경계만 있다면 어떤 공간에서든 변주되면서 행동하는 사람과 지켜보는 사람을 나누고 또 연결하기에 이른다. 이런 점을 나루세의 5, 60년대 영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문을 사이에 둔 두 개의 방’이라는 공간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감상법이 될 것이다.
 

그래도 정말 병장기를 겨루는 모습을 봐야 속이 풀리겠다는 분들을 위한 영화로는 <산주산겐도 궁수 이야기>가 있다. 명궁이었던 아버지가 라이벌에게 명예를 넘겨준 후 자결하자 청년 궁수가 다시 신기록 도전에 나선다. 하지만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 가문의 명예를 드높여야 한다는 압박이 그를 주눅 들게 하고,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아버지의 라이벌은 마음속에 거대한 적으로 자리 잡는다. 그런 와중에 현재 명궁 칭호를 지니고 있는 가문에서 청년의 신기록 작성을 막기 위해 훼방꾼들을 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져 청년을 어머니처럼 보살펴 온 누나마저 전전긍긍하던 중, 정체불명의 무사가 등장하여 남매를 돕는다. 이 영화에는 활쏘기는 물론 나루세 영화에서 보기 드문 칼싸움 장면도 등장하는데, 검술 동작도 동작이지만 나루세답게 대결이 벌어지는 공간과 인물의 배치가 인상적이다. 특히 앗 하고 탄성을 내뱉을 만큼 근사한 정체불명의 무사 등장 장면에서 문지방을 경계로 활용하는 연출을 보여준다거나, 활쏘기를 묘사할 때 과녁에 꽂히는 화살을 직접 보여주기보다는 명중과 실패를 알리는 북과 징소리로 대체하여 긴장을 드높이고 현장에 없는 사람들에게도 상황을 전달하는 연출 등은 공간과 음향의 의식적 활용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럽게 <초롱불 노래>를 비롯한 나루세의 다른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듯 나루세의 초중기작들은 다채로운 외형을 통해 여러 주제를 변주하고 확장시키고 있는바, 모쪼록 남은 두 주 동안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그 연관관계들을 직접 찾아내어 이리저리 맞춰 보는 즐거움을 놓치지 말아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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