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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걸작선]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8월의 영화 Ⅱ

박종원, 1992

[한국영화걸작선]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8월의 영화 Ⅱ 대표 이미지

많은 감독이 소설을 영화화 하지만 생각보다 이 작업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서사를 따라가는 관객들에겐 '아는' 이야기를 참고 보게 만드는 힘이 있어야 하고, 원작의 아우라를 즐긴 독자들에겐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보다 더 매력적인 장면들이 필요하다. 물론 그 작품을 선택한 감독의 영화적 '야심'도 (영화의 성패와는 무관하게) 끊임없이 출몰한다. 여기에 원작과의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들의 숙명처럼 보일 지경이다. 원작이 단단할수록 영화가 짊어져야 할 무게는 자연 더욱 무거워진다. 그러니 1987년 발표된 소설가 이문열의 중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영화화한 박종원 감독의 결심도 남다른 것이었으리라. 게다가 자유당 정권 말기라는 시대적 배경에, '국민학교'로 옮겨오기는 했지만 누가 봐도 독재 권력이 생성-유지되는 역학(dynamic)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야기 구조는 90년대 초, 검열이라는 문제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난관뿐인 듯한 이 선택에서 박종원 감독이 보여준 몇몇 지점은 꽤 흥미롭다. 

12살 '한병태'(고정일)는 서울에 살다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시골 학교로 전학 온다.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 병태지만, 반 아이들은 이상할 정도로 '급장'인 '엄석대'(홍경인)의 말에만 복종하며 병태를 적대시한다. 병태를 더 놀라게 만든 건 석대가 반에서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선생님들조차 암묵적으로 인정해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부조리한 상황을 전복시키기 위해 병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석대에게 도전하지만 단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한 채 좌절을 반복하고 만다. 결국 '살기 위해' 병태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석대의 '부하'로 충성을 맹세하기로 한다. 하지만 석대의 세상은 아이들의 이상한 분위기를 의심하다 석대의 모든 비행을 알게 된 신규 부임 교사 ‘정원’(최민식)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소설과는 다르게 영화는 정원을 병태의 '현재' 시점에 다시 한번 등장시킨다. 이제 성인이 된 아이들은 전 담임교사(신구)의 장례식에서 재회하게 되는데, 정원 역시 이 자리를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비굴한 태도로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에선 진실과 자유를 가르치며, 엄석대의 권력 앞에서 숨을 죽이는 아이들을 다그치던 패기는 찾아볼 수 없다. 결국 영화는 엄석대의 권력 앞에서 저항하다 무릎을 꿇고 말았던 병태의 모습과 이런 정원의 모습을 병치시켜 놓음으로써 병태의 '실패'가 결코 병태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강조한다. 이 태도는 진실과 자유라는 이상을 호기롭게 논하던 그를 과거 속에 그대로 놓아둠으로써 독자들에게 일말의 희망의 여지를 남겨두었던 소설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그리고 현재 시점으로 엄석대를 불러내는 방식에서도 차이를 만들어낸다. 원작에서 병태는 기차에서 형사에게 체포돼 끌려가는 석대와 우연히 마주친다. 일류대학을 나왔지만 결국 이도 저도 잘 되지 않고 실업자나 마찬가지의 생활을 하게 되자 병태는 석대가 군림했던 그 시절을 문득 떠올린다. 소설은 이렇게 묘사한다. 

"실업자가 되어 한발 물러서서 보니 세상이 한층 잘 보였다. 내가 갑자기 낯선, 이상한 곳으로 전학 온 듯한 느낌이 들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전 학교에서의 성적이나 거기서 빛났던 내 자랑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들만의 질서로 다스려지는 어떤 가혹한 왕국에 내던져진 느낌. 그리고 거기서 엄석대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되살아났다. 이런 세상이라면 석대는 어디선가 틀림없이 다시 급장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단정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급장'으로 존재해주길 바랐던 석대가 형사에게 무력하게 잡혀가는 모습을 본 병태는 더 큰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그날 밤 나는 잠든 아내와 아이들 곁에서 늦도록 술잔을 비웠다. 나중에는 눈물까지 두어 방울 떨군 것 같은데, 그러나 그게 나를 위한 것인지 그를 위한 것이었는지, 또 세계와 인생에 대한 안도에서였는지 새로운 비관에서였는지는 지금에조차 뚜렷하지 않다.")

상당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던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병태가 석대(가 군림했던 시기)를 그리워한다는 사실보다 그가 '실업자'로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났을 때 석대를 떠올렸다는 사실일 것이다. 병태는 결국 못난 것 하나 없는 자신이 제대로 사회(학교)에서 '반짝반짝' 성공한 사람(급장)이 되지 못했던 건 내 탓도, 사회의 탓도 아닌 '석대'의 탓이라고 원망하는 데 그치고 만다. 

하지만 영화는 어떠한가? 석대가 온다는 무성한 소문 속에 병태는 마지막까지 그를 기다린다. 하지만 결국 그는 나타나지 않고 엄석대의 이름이 새겨진 커다란 근조화환만 등장한다. 단정할 순 없지만, 이 화환은 석대가 어떤 형태든 병태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성공' 했음을 암시한다. 석대를 무너뜨렸던 새 담임 교사 정원은 '변질' 돼 버렸고, 사회는 석대를 버젓한 성공의 대열로 올려놓았다. 소설 속 병태의 허무감은 그 화살의 일부가 병태 자신을 향해 있는 반면, 영화 속 병태의 패배감은 오롯이 여전히 부조리한 사회를 향한다. 이때 영화는 병태가 '석대의 세상'으로 편입하는 순간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살아남기 위해 병태는 석대에게 무릎을 꿇고 그가 세워 놓은 규칙을 따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병태가 석대의 세상에 편입되는 것은 석대의 시험 부정 사실을 담임에게 이르려고 했다가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물러서고 만 순간부터일 것이다. 이 장면에서 영화는 담임 앞에 용기를 내 선 병태를 '줌아웃 트랙인'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촬영하게 되면 화면 속의 병태의 크기는 동일하게 유지되지만, 배경은 화면 뒤로 물러가는 듯한 묘한 효과를 얻게 되는데, 그 덕분에 석대의 잘못을 누구 보다 견디지 못했던 병태가 현실과 부딪쳐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현실에서 유리(遊離)되어 버리는 듯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이 장면은 병태가 거리에서 학생들이 벌이는 ‘독재반대시위’ 행렬에 휘말릴까 골목에 숨어 있다 도망치는 모습과 맥을 같이 한다. 현실에 눈을 감기로 한 병태는 끝내 그 열패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소설과 영화가 나온 지 약 3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이제 ‘석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걸까? 당신은, 아니 우리는 ‘병태’가 아니라고, 석대의 시험을 대신 봐주며 물을 떠다 바치던 친구들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마치 예언처럼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렇게 시작한다. 

“벌써 삼십 년이 다 돼 가지만, 그해 봄에서 가을까지의 외롭고 힘들었던 싸움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때처럼 막막하고 암담해진다. 어쩌면 그런 싸움이야말로 우리 살이(生)가 흔히 빠지게 되는 어떤 상태이고, 그래서 실은 아직도 내가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받는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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