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의 시네마테크
[2주의시네마테크]마틴 스콜세지 인 뉴욕 - <뉴욕, 뉴욕> <비상근무>
마틴 스콜세즈, 1977
아마도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대대적인 마틴 스콜세지 회고전을 환영하며, 팬으로서 기쁜 마음으로 그의 실패작 두 편을 추천하고자 한다.
이 말에는 어떤 아이러니도 없다. A4 한 장 분량의 소개 글에서 새삼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 <성난 황소> <코미디의 왕> <좋은 친구들> <순수의 시대>를 언급하는 것은 민망한 지면 낭비다. 그보다는 이럴 때가 아니고서야 언제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을까 싶은 작품, 본다고 한들 누가 뭐 얼마나 얘기할까 싶은 작품, 그러나 널리 알려진 수작들과 마찬가지로 스콜세지를 이해하는 데에 빛을 던져줄 만한 작품 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뉴욕, 뉴욕>은 <택시 드라이버>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탄 후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오만해진 스콜세지가 매우 방만하게 만든 뮤지컬이다. 스콜세지는 제대로 된 각본 없이 많은 것을 즉흥에 의지해 계속 카메라를 돌렸는데, 처음 편집본에서는 두 주인공이 만나는 첫 장면의 길이만 한 시간에 달할 지경이었다. 그런 방만한 만듦새에다 로버트 드 니로가 재능 있는 트럼펫 연주자로 나와 역시 재능 있는 가수를 연기한 라이자 미넬리를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괴롭히는 진절머리 나는 이야기인데 흥행할 리가 있나. 영화는 대폭 삭제되었고, 실패를 맛보았다.
그러나 지미 도일의 패악질을 어떻게든 참아낼 수만 있다면, <뉴욕, 뉴욕>은 그렇게 실속 없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광 스콜세지는 여기에서 고전기 할리우드의 뮤지컬에 헌사를 바친다. 여기 나오는 뉴욕은 스콜세지가 나고 자란 비열한 거리가 아니라, 그가 어린 시절 TV로 보고 꿈꾸었을 인공적인 세트 속의 형형색색 아름다운 가짜 뉴욕이다.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연인을 학대하는 남자 예술가의 이야기는 4~50년대의 뮤지컬 <내 꿈은 당신의 것My Dream Is Yours>(1949)이나 <스타 탄생A Star Is Born>(1954)에서 가져왔다. 어쩌면 라이자 미넬리를 주연으로 삼은 것도 한편으로는 고전기 뮤지컬의 대표 감독 빈센트 미넬리와 스타 주디 갈랜드에게 바치는 간접적인 헌사였을지 모른다. 특히 대미를 장식하는 ‘해피 엔딩’ 장면은 50년대 이후로는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MGM 뮤지컬의 화려함을 한껏 뽐낸다. <악대차The Band Wagon>(1953) <파리의 미국인An American in Paris>(1951)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1952) 같은 옛 뮤지컬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눈물을 글썽일 만하다. 두 주인공의 권력 균형이 좀 더 맞았더라면, 지미 도일이 그토록 자연재해 같은 인간만 아니었더라면 더욱더 보기 좋은 영화가 되었을 텐데. 그래도 스포일러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스콜세지는 지미 도일 같은 인간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 덮은 채 ‘해피 엔딩’으로 갈등을 무마할 정도로 몰염치한 창작자는 아니다. 조금만 참아주시기를.

<비상근무>는 어떤 면에서는 <뉴욕, 뉴욕>과 정반대의 상황에 놓인 작품이다. 90년대 초 뉴욕의 야간 근무 구급요원을 다룬 이 영화에서, 스콜세지는 다시 한 번 <택시 드라이버>의 세계로 돌아간다. 뉴욕의 밤은 불타는 지옥이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주인공 프랭크 피어스는 그 안에서 구원을 찾아 헤맨다. 단,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 비클이 피로 도시를 정화하고자 하는 복수의 천사라면, 프랭크는 피 흘리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한 명이라도 살리고 싶어하는 성자다. 일종의 과대망상과 강박관념에 빠졌다는 점은 마찬가지일지 몰라도, 그는 스콜세지 영화의 남자 주인공치고는/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것치고는 놀랄 만큼 제정신이다. 여기에 로버트 리처드슨이 촬영한 뉴욕은 마이클 채프먼이 촬영한 <택시 드라이버>의 뉴욕과 마찬가지로 빨갛고 파랗고 노란빛이 어둠 속에 번지면서 화려한 추상미를 자랑한다. 거의 무게 없이 허공을 활강하듯 춤추는 카메라와 빠른 편집으로 대표되는 90년대 스콜세지의 스타일도 눈을 홀릴 만하다. 스콜세지의 음악 선곡 실력이야, 가장 좋지 않은 영화에서도 빛을 발하는 부분이고.
요컨대 <비상근무>는 이번 상영작 중 가장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큰 불편 없이 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있으며, 눈과 귀를 만족시킬 자극도 충분하다. 그런데 왜일까, <택시 드라이버>의 심란함이 빠져나가자 스콜세지의 정수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어쩌면 스콜세지의 정수는, <좋은 친구들>에서처럼, 끔찍하지만 누리고 싶은 권력의 세계 앞에 느끼는 매혹과 혐오 모두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 불온한 균형 감각에 있는 것이 아닐까? <비상근무>에서처럼 안전한 거리를 확보한 채 바라보는 지옥의 풍경은 오히려 관찰자를 게으르고 위선적인 구경꾼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비상근무>는 부재를 통해 거꾸로 스콜세지 영화의 힘이 지닌 성질을 검토하도록 이끈다. 따라서 로버트 드 니로를 비롯한 스콜세지 세계 남정네들의 갖은 난동을 보고 이런 건 정말 싫다고 질색하신 분들께 충심으로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