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비디오모험기
[한국영화비디오모험기]그들은 태양을 쏘았다
이장호, 1981
경아라는 이름을 수없이 부르게 했던 <별들의 고향>(1974)의 대성공. 대마초 사건으로 인한 활동중단. 인고의 시절을 견디고 난 후, <바람불어 좋은 날>(1980)로 재기에 성공한 이장호 감독은 그야말로 오뚝이라 할 만 하다. 그렇게 이장호 감독의 눈은 멜로드라마의 신파로부터 사회의 모순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매의 눈으로 변했다.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바람불어 좋은 날>, <어둠의 자식들>(1981), <바보선언>(1983) 등 주목할 만한 영화들을 발표하면서 흥행 성공은 물론 비평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한국영화계의 가장 중요한 감독 중 한 명이 된다.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는 걸작을 양산하던 그 시절에 개봉된 작품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흥행에 참패했고, 비평계로부터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사실 그즈음 이장호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투박한 편이긴 하다. 정리가 덜 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1980년대의 시작은 70년대 말까지 가열차게 달려왔던 국가주도의 압축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완료된 후, 그 풍요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차 있던 시대다.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는 완성도의 여부를 떠나 그 시대의 기대감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감을 잘 묘사한 영화다. 즉, 자본의 질서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지 못한 아버지들의 불안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짙은 페이소스를 느끼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드는 동정심과 연민은 영화의 만듦새가 조금 거칠어도, 혹은 감독이 의도치 않았다 하더라도 영화 전편에 흘러넘친다.
그렇다면 이런 연민의 감정은 누구에게 가 닿고 있는 것일까? 이 영화는 70년대 중반, 실제 발생했던 캘빈 소총 강도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문도식(이영호)과 이종배(박일)는 몇 푼의 돈을 위해 총기로 사람을 죽인 잔혹한 범죄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이미지는 아들의 장난감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좋은 아버지로 변신한다. 그렇다. 이장호 감독의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남자들의 욕망의 쟁투를 다루고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쟁투에서 필연적으로 질 수밖에 없었던 대다수 아버지들에 대한 애도야말로 바로 연민의 감정이 가 닿고 있는 장소였던 셈이다.
영화의 첫 강도 시퀀스에서 이종배와 문도석은 장사밑천을 찾아 나오던 한 가장을 죽인다. 즉, 그들은 아버지의 위치를 위협하며 아버지라는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상한 모순에 빠진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장호 감독은 이런 아버지라는 이름을 확장하여 한국사회의 모순을 직시하기보다는 문도식과 이종배의 내면 갈등만 들여다보기로 결심해 버린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의미를 확장하지 못한 영화에서 아버지라는 이름은 어쩔 수 없이 가부장제라는 카테고리에서 묶여버린다. 문도식은 택시 운전을 하며 범죄로부터 벗어나 보고자 한다. 하지만 사회가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종배는 끊임없이 아들 태양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하여 아버지라는 권위를 확인하고 인정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종배는 결국 자신의 아버지처럼 나쁜 아버지가 되었다고 자책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들여다볼 뿐이다.
결국 그들은 다시 범죄를 모의하고 경찰의 추격 끝에 문도식은 큰아들을 죽이고 자살한다. 이종배는 아내를 비롯한 가족을 몰살하고 자살한다. 그들이 이토록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자신들로 인해 아들이 세상으로부터 천대받을 것이라는 근심 때문이었다. 아버지/가장/가부장에 속해야만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편협함은 세상에 희망을 남겨 놓을 꿈마저 앗아간다. 문도식과 이종배가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하고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모순된 사회구조로부터 좀 더 치열하게 원인을 길어 올렸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이 영화는 그렇게 나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그 불균질의 자리에서 연민은 더 지독하게 피어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한번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는 여전히 가부장제가 강했던 1980년대 초반의 사회에서 아버지라는 위치가 주는 압박감을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좀 더 치열하게 펼쳐냈다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태양은 양가적인 의미로 읽힌다. 먼저 태양은 이종배의 아들 이름이다. 그는 아들을 죽임으로써 스스로 희망을 거세했다. 더불어 태양은 70년대 말까지 제왕적 권력을 행사했던 상징적 아버지를 의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세상이 조금은 바뀌리라는 희망에 대한 기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은 쉽게 오지 않았고, 이장호 감독은 의미를 축소한다. 결국 그들은 태양-아들을 죽임으로써 희망의 단초를 놓아버린 것이다. 어쩌면 감독 자신의 패배감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더욱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는 연민이 흘러내리는 영화가 되고 말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박일
이영호
감독 이장호
각본 이장호
촬영 서정민
1981년 100분 칼라
판매원 (주)동양프로덕션
영상도서관 배가번호 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