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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주말의명화]돔 헤밍웨이

리차드 쉐퍼드, 2013

[신판주말의명화]돔 헤밍웨이 대표 이미지

‘인간쓰레기’가 주인공인 영화는 많다. 웃기는 영화로는 빌리 밥 손톤 주연의 <나쁜 산타 Bad Santa>(2003)가 떠오르기도 하고 좀 심각한 영화로는 대런 애로노프스키 감독의 <레슬러 The Wrestler>(2008)가 생각난다. 한심한 주인공이 연민을 획득하는 과정을 다룬 전형적인 우리 영화로는 <파이란>(2001)이 있는데, 전통적으로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우리나라 극장가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도 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IPTV에 진출한 영화 <돔 헤밍웨이 Dom Hemingway>(2013)는 전형적인 ‘인간쓰레기의 분투기’다. 
 
<리플리>(1999)의 주드 로
<리플리>(1999)의 주드 로

영화가 시작되면 탈모 진행 중인 중년 남성이 감방에서 지내는 모습부터 나온다. 주인공은 주드 로다. 나같이 주드 로를 <리플리 The Talented Mr. Ripley>(1999)에서 처음 봤던 관객이라면, 그리고 언제나 그 모습이 오버랩되는 관객이라면 충격에 빠질지도 모른다. 몇 년 전부터 주드 로의 탈모와 역변에 대한 이야기들이 조금씩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긴 했지만 여기서는 이루 말할 수도 없이 망가진 중년이 되어 등장한다. 하여튼 주드 로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있다 다시 하기로 하고, 어쨌든 이 아저씨는, 참, 이름이 돔 헤밍웨이다. 돔은 12년 전에 뭔가 큰 죄를 짓고 감방에 와서 별로 뉘우치는 기색도 없이 살고 있다. 보통 이 정도 장기수라면 사회에 나갈 때 뭔가 주눅이 들어있거나 겁을 먹을 법도 한데, 그런 거 없다. 신나게 나와서 자신을 찾아온 옛 동료와 함께 여자들을 만나 질펀하고 추잡하게 놀고는 옛 보스를 찾아간다. 척 보기에 이미 거대 범죄조직의 수장인 보스 앞에서 돔은 술에 취해 온갖 욕설을 늘어놓는 데다 보스의 여자까지 달라고 한다. 이러다가 쟤가 보스의 총에 맞아 죽으면 영화가 15분 만에 끝날 텐데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는데, 다행히도 보스가 대인배라서 그냥 살려줌은 물론 50만 파운드, 우리나라 돈으로 대략 9억 원 가까이 되는 돈까지 선물로 준다. 12년 전에 보스의 이름을 끝까지 경찰에게 말하지 않고 혼자서 ‘총대를 멘’ 대가다. 12년간 감방에서 희희낙락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어쨌든 신이 난 돔은 친구, 보스, 보스의 여자와 마약을 하고 샴페인을 진탕 마신 후에 보스의 클래식 오픈카를 타고 광란의 질주를 펼친다. 

보통 이런 영화에선 이런 타이밍에 사고가 난다. 보스는 죽고, 돔은 친구와 함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긴 했는데, 보스의 여자가 보이지 않는다. 사고가 난 틈을 타서 주드 로가 받은 돈을 챙겨 달아난 것이다. 이 한심한 인간은 12년간 감방에서 썩은 대가를 그렇게 하루아침에 날리고는 누군가를 찾아가는데, 바로 자신의 딸이다. 딸은 아버지를 보자마자 보통 아버지에게는 절대로 날리지 않는 욕설을 바로 날려 준다. 당연하게도 이 아버지는 딸을 제대로 돌본 적이 없을뿐더러 엄마도 방치해 결국 일찍 세상을 떠나게 만들었다. 그런 자격 없는 애비가 만신창이가 되어 자신의 집 벨을 눌렀으니. 

이 정도 스토리 요약을 읽으면 앞으로 ‘인간쓰레기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증오했던 딸의 화해 스토리’가 눈물 나고 파란만장하게 펼쳐질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다. 이 영화 <돔 헤밍웨이>가 매력적인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딸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나 손을 씻고 새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그가 살던 방식 그대로 살면서 딸에게 잘 보여 가족 관계의 회복을 하겠다는, 어마어마하게 한심한 방법론을 택한다. 원래 금고털이였던 돔은 자신에게 일거리를 줄 보스가 이미 지옥행 특급열차를 탔으므로 새로운 물주를 찾는다. 12년 전, 다른 어느 보스의 아들이었던 새파랗게 어린 조직 보스를 찾아가는데, 얼굴을 보자마자 돔은 리버 블로우로 한 대 쳐 맞는다. 돔이 감방에 가기 전 이 어린 보스가 소년이었을 때, 소년의 고양이를 죽인 것이었다. 실수로 죽인 것도 아니고 일부러 죽였다. 돔의 인간쓰레기성이 거의 극대화 되고 어린 보스의 시건방짐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 온다. 어쨌든 돔은 자신이 아직도 금고털이의 귀재라며 자신을 테스트해 보라고 말한다. 어린 보스는 자신이 설치한 금고를 시간 안에 털면 일을 시켜 주고, 못 털면 남성의 중요한 부분을 절단하는 조건으로 테스트를 실행한다. 이쯤 됐으면 감독이 주드 로를 캐스팅한 이유가 나오겠지, 주드 로의 날카로운 눈빛만은 살아 있으니까 온갖 정밀 공구들을 동원해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정교하게 금고를 터는 장면이 나와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 없다. 상상을 초월하기는 하는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이없는 방법으로 금고를 연다. 아마도 영화 역사상 ‘금고를 강간하는 것처럼 보이는 캐릭터’는 돔 헤밍웨이가 유일할 것이다. 그렇게 한심하게 영화는 진행된다. 인간쓰레기 주인공의 딸에 대한 애정, 아버지를 죽도록 미워하는 딸의 마음이 누그러지는 스토리는 그런 한심함을 유지하며 서서히 진행된다. 관객들에게 감동을 강요하는 장면을 일부러 모두 뺀 듯 감독 리처드 쉐퍼드는 어이없는 사건들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늘어놓는다. 
 
망가진 주드 로
망가진 주드 로

<돔 헤밍웨이>는 주드 로가 ‘제대로 망가지는’ 재미를 지닌 영화다. 주드 로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서 무려 13킬로그램이나 체중을 늘였다. 뭐, 고무줄 체중으로 승부하는 연기자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대충 흔한 것처럼 보이는데, 어쨌든 주드 로 같은 고소득 스타라면 탄수화물 보충제를 먹어가며 식이요법으로 안전하게 체중을 증가시켰을 법도 한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하루에 코카콜라를 10병씩 먹으며 살을 찌웠단다. 사실 영화 속 캐릭터의 퀄리티를 보면, 그렇게 고급스러운 방법으로 체중을 증가시키지 않은 것이 영화의 톤앤매너에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언젠가 <아메리칸 허슬 American Hustle>(2013)을 보다가 아무 것도 아닌 화면에 폴 매카트니의 노래 ‘Live And Let Die’를 까니 엄청난 명장면같이 보이는 효과를 발견하고는 영미권 감독들은 자기네 흘러간 옛 가요만 깔아도 저절로 영화가 만들어지니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팝 명곡들을 깔아서 영화를 더욱 윤택하게 만드는 건 바로 영미권 감독들의 ‘종특’인데 이 영화라고 그냥 넘어갔을 리 없다. 일단 주드 로가 술을 먹고 미친 듯이 차를 모는 예의 광란의 질주 장면에 모터헤드의 ‘Ace Of Spade’가 뜩 하고 등장한다. 사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치한 화면 구성이 나오는 장면인데, 그냥 BGM 하나 제대로 깔아서 날로 먹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그 외에도 프라이멀 스크림의 ‘Rocks’, 픽시스의 절대 명곡 ‘Debaser’ 등이 아름답게 출몰하는데 아무래도 이 영화의 음악 수퍼바이저는 록 음악의 팬임이 틀림없다. ‘Debaser’ 이야기가 나왔으니 영화와 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이 노래 이야기를 좀 풀어 보자면 이 노래 가사는 루이 뷔니엘의 <안달루시아의 개>에 대한 이야기다. ‘눈알을 자른다’ 뭐 그런 가사가 나오는 곡이다. 하여튼 이런 초절정의 명곡들을 함부로 아무 장면에나 깔 수 있는 영미권 감독들의 작업 환경이 세상에서 제일 부럽다. 

함부로 사는 인간의 이야기를 함부로 쓴 시나리오에 함부로 찍은 영상으로 담아냈고 음악까지 함부로 깔았다. 영화광이라면 적당히 비웃기도 하고 적당히 박장대소도 하며 끝까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PS: 아 참, 딸 역이 에밀리아 클라크다. 이제 그 이름 외에 다른 설명이 필요 없게 됐지. 리처드 E. 그랜트에 갱스터 전문 배우 데미안 비쉬어까지 나온다. 나름 호화캐스팅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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