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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주말의명화]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

제레미 심스, 2015

[신판주말의명화]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 대표 이미지

‘클리셰’는 어떻게 결합되느냐에 따라 진부함을 넘어 전혀 다른 결을 만들어낸다. 호주 영화 <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이하 <마지막 택시>)가 그런 경우다. 새로운 건 없다. 전형적인 로드 무비이며 죽음을 앞둔 노인의 모습에선 <버킷 리스트>(2007)가 연상된다. 여행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거대한 풍광 앞에서 경이감을 느끼는 것 역시 이 장르의 관습이며, ‘삶에 대한 긍정’도 수많은 영화가 품었던 테마다. 

그럼에도 새롭다면, 욕심부리지 않고 차분하게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가는 제레미 심스 감독의 기본기 충실한 연출 때문이다. 캐릭터의 관계를 통해 이야기의 깊이를 만들어나가는 방식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정공법. 결국엔 울림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삶에 대한 성찰, 로맨스, 유머와 페이소스. 영화의 스토리를 이루는 이러한 기본 요소들이 매끈하게 봉합되어 어우러지기가 의외로 어려운데, <마지막 택시>는 쉽게 해낸다.

원작은 레지널드 크립의 희곡이다. 호주의 작가이자 배우인 그는 제레미 심스 감독과 10년 전에 처음 만났다. 그 역시 배우였던 심스는 연출을 시도하며 데뷔작으로 크립의 희곡 <더 리턴>를 각색해 <프레오로 가는 마지막 기차>(2006)를 만들었다.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우연히 함께하게 된 승객들이 주인공인 스릴러로, 배우들의 호연과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평단의 관심을 끌었다. 심스의 두 번째 작품 <비니스 힐 60>(2010)은 전쟁 영화로 기술적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세 번째 작품인 <마지막 택시>는 평단의 호응도 호응이었지만, 주인공 렉스 역을 맡은 마이클 케이턴의 인생 영화이기도 하다. 73세(1943년생)인 이 배우는 1969년에 데뷔해 TV를 중심으로 40년 넘게 거의 호주에서만 활동했다. 화장실 유머 ‘덕후’라면 <애니멀>(2001)에서 로브 슈나이더에게 동물의 장기를 이식하던 미친 의사를 기억하실지도. 바로 그가 케이턴인데 <마지막 택시>를 만나 생애 처음으로 ‘남우주연상’이라는 걸 거머쥐었다.
 
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

영화가 시작되면 우린 한 노인의 비루한 삶을 만난다. 호주 남부의 뉴 사우스 웨일즈에 있는 작은 도시 브로큰 힐. 택시 운전을 하는 렉스(마이클 케이턴)는 가족 없이 홀로 살아간다. 매일 저녁 바에서 만나는 몇 명의 술친구들과, 길 건너편에 사는 뚱뚱한 원주민 여성 폴리(닌갈리 로포드)가 인간관계의 전부다. 어느 날 그는 암으로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 단호하게 입원을 거절하는 렉스. 이때 우연히 뉴스 하나를 접한다. 북부의 다윈 지역에서 호주 최초로 존엄사가 법으로 허용되었다는 것이다. 닥터 파머(재키 위버)는 자신이 개발한 기계를 체험할 첫 지원자를 찾고 있었고, 렉스는 곧장 전화한다. 장장 3,000㎞가 넘는 여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

여기까지 놓고 보면 <마지막 택시>는 죽음을 앞둔 한 노인의 선택에 대한 ‘실존적 영화’처럼 보이지만, 길이 펼쳐지면서 서서히 ‘풍경의 영화’로 바뀐다. 플린더스 산맥과 우드나다타를 경유해 내셔널 하이웨이를 달리는 길은 ‘죽기 위한 여정’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아름답다. 그는 황야에서 일몰을 보고, 세월을 알 수 없는 고목 밑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들고양이들을 매단 나무를 보며 잠시 죽음의 현실을 잠깐 떠올리지만, 그것마저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관광엽서에 담길 이미지가 된다는 걸 깨닫는다. 거의 평생을 브로큰 힐이라는 작은 마을에 갇혀 살았던 렉스는, 죽음 직전이 되어서야 세상의 아름다움을 조금씩 깨닫게 되는 셈이다. 아이러니다.

이때 동행자가 등장한다. 틸리(마크 콜스 스미스)라는 원주민 청년이다. 결혼해 두 아이까지 있지만, 그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떠돌이다. 프로 풋볼팀에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성격과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두려움은 그를 계속 표류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여정의 1/2쯤 되는 앨리스 스프링스를 거쳐 2/3쯤 되는 달리 워터스에 도착한다. 이 지역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줄리(엠마 해밀턴)는 영국에서 온 전직 간호사. 자유로운 삶을 찾아 이곳까지 흘러들었다. 렉스의 외로운 여행길과 풍경을 담던 영화는 어느새 세 사람의 로드 무비가 된다.

렉스의 건강은 점점 악화된다. 고통을 견디지 못한 렉스는 자살하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힘들군. 목숨 끊는 게….” 결국 세 사람은 함께 다윈으로 향하고, 영화는 힐링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운전을 하기 힘들 정도로 지친(하지만 결코 운전대를 놓지 않는) 렉스는, 틸리와 줄리의 보살핌을 받으며 계곡의 옥빛 물에 몸을 담근다. 난생처음 바다를 보는 렉스는 다윈의 해변에서 줄리에게 말한다. “아름답군.” 하지만 이젠 죽음을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다.
 
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

원칙적으론 여기서 영화가 끝나야 한다. 렉스는 자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잠들 듯 죽어가고, 남아 있는 자들은 그 죽음을 추모해야 한다. 하지만 <마지막 택시>는 여정의 끝에서 다시 시작한다. 죽음을 앞둔 그는 전화로 고백을 시작한다. 고백의 대상은 앞집에 사는 폴리다. 그녀에게 청혼하려 했지만 단념한 적이 있었던 렉스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자신의 과거와 가족과 하고 싶던 이야기들을 전한다. 그리고 다윈에서 브로큰 힐로 돌아가는 긴 여정에 오른다. 홀로 떠났듯 홀로 돌아가는 길이 끝나고, 렉스는 폴리와 만난다. “당신 살 냄새가 좋네… 이젠 안 아파….” 렉스는 폴리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든다. ‘죽음’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시작한 영화는 잔잔한 로맨스로 저문다.

그런데 <마지막 택시>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인종 화합의 메시지다. 렉스가 죽음의 충동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일종의 구원으로 본다면, 구원자는 다름 아닌 원주민 여성 폴리다. 그녀 역시 홀로 살고 있으며, 까칠해 보이지만 렉스를 품어 주는 유일한 여성이다. 영화는 렉스와 폴리가 깍지를 끼며 잡은 손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데, 이 신은 이 영화에서 가장 따뜻한 순간이다. 렉스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그녀에게 상속했고, 결국은 돌아와 그녀 옆에 앉는다. 폴리는 렉스에게 가족을 선사하는 셈이며, 그녀 덕분에 렉스는 가족의 품에서 삶을 마감할 수 있다. 
 
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

렉스가 길 위에서 만나는 틸리도 역시 원주민이다. 그는 렉스에게 삶의 활기를 불어넣으며, 렉스는 그가 풋볼 선수로 살아갈 수 있게 격려하고 돕는다. 틸리는 렉스에게 아들 같은 존재인 셈이다. 게다가 틸리는 백인인 ‘영국 여성’ 줄리와 연인이 된다. 영국은 호주에게 역사적으로 ‘본국’과도 같은 나라다. 그곳에서 온 백인이 호주의 원주민과 로맨틱한 관계를 맺는다는 설정은, 줄리가 자유분방한 성격이라는 설정을 통해 영화에선 대수롭지 않게 표현되지만 사실은 파격적인 것이다. 

렉스와 폴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이 많은 백인 노인이 원주민 중년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는 건, 호주 사회에선 꽤나 조심스럽다. 영화 초반부, 폴리는 매일 차를 가져와 렉스에게 대접하고, 두 사람은 함께 의자에 앉아 다정한 시간을 가진다. 이때 옆집의 ‘백인’ 중년 여성이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자 렉스는 잡고 있던 폴리의 손을 슬며시 놓고 일어선다. 마치 들켜선 안 되는 관계처럼 말이다. 

<마지막 택시>는 인종 문제에 대해 절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미시적인 시선을 통해 그것이 분명히 존재하는 호주 사회를 보여준다. 그리고 로맨스를 통해, 즉 충돌이 아닌 융화의 방식으로 사회적 모순을 누그러트리는 ‘휴머니즘’의 시선을 보여준다. 다른 인종 사이의 인간적 관계가 먼저 형성되었을 때 본격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

브로큰 힐을 떠나 다윈으로 향했던 렉스는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렉스는 줄리에게 틸리가 유부남임을 이야기하고, 망설이던 줄리는 틸리 곁을 떠나 자신의 일터로 돌아간다. 줄리와 이별한 틸리는 다윈에서 풋볼 선수 생활을 하며, 방치했던 가족을 다시 찾는다. <마지막 택시>는 길 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끝난다. 그리고 아들과 딸 같았던 틸리와 줄리를 떠나 보낸 렉스는, 아내와 같은 존재인 폴리에게 의지한다. 이 영화가 결국 선택하는 종착지는 ‘가족주의’인 셈인데, 이 단어에서 흔히 ‘화목함’이나 ‘포근함’ 같은 뉘앙스가 떠오른다면, <마지막 택시>의 ‘가족주의’는 일종의 ‘연민’이다. 죽어가는 자에겐 죽음을 지켜보는 가족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렉스가 긴 여정에서 깨달은 유일한 진리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 그의 곁엔 폴리라는 ‘가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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