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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주말의명화]기묘한 사랑

오하타 하지메, 2011

[신판주말의명화]기묘한 사랑 대표 이미지

2012년 유바리판타스틱영화제의 그랑프리는 폭력 전문 감독 이시하라 타카히로의 <오사카 폭력 사건>에게 돌아갔다. 심사위원 대상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는 스즈키 타이치의 <네 멋대로 해라!>였다. 가장 큰 대중적 호응을 얻은 관객상은 작년에 한국에서도 개봉되었던 <울트라맨 사가>였다. 하지만 영화제 내내 평론가와 관객들이 “그 영화 봤어?”라며 수군거렸던 영화는 따로 있었다. 오하타 하지메라는 신인 감독이 만든, 단편이라고 하기엔 길고 장편이 되기엔 부족한, 53분짜리 중편 영화 <기묘한 사랑>이다. 원제는 ‘へんげ’(?化). ‘원래의 모습을 바꾸어 나타남’, ‘괴물’, ‘요괴’ 등의 뜻을 지닌 ‘헹게’라는 제목은 매우 직접적이며 정직하지만, 중의적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요시아키(아이자와 카즈나리)는 괴물로 변해간다. 제목 그대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짜로 끊임없는 변이를 보여주는 사람은 감독인 오하타 하지메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짧은 러닝 타임 안에서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호러 관련 인덱스를 끊임없이 펼쳐간다.
 
기묘한 사랑

기묘한 사랑

‘어느 부부의 사랑 이야기’라는 부제로 시작하는 영화는 어느 병원 기록 화면을 보여준다. 2008년에 촬영된 영상엔 구속복을 입은 요시아키가 있다. ‘최면 요법 및 관념 운동’이라는 제목의 영상 속에서 요시아키는 바닥을 뒹굴며 극도의 발작 증세를 보인다. 카메라는 뒤로 빠지면, 그 장면을 모니터로 보고 있는 요시아키가 있다. 과거 자신이 받았던 모습을 마치 추억을 되새기듯 다시 보는 남편이 케이코(모리타 아키)는 불만스럽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과거를 떠올리지 말라며, CD를 부숴 버린다.

그렇다면 요시아키는 완치된 걸까? 아니다. 후배이자 의사인 사카시타(노부쿠니 테루히코)는 정기적으로 방문해 병세를 체크한다. 요시아키는 여전히 3일에 한 번씩은 발작을 하며, 제대로 된 외출을 못 한 지 2년이 넘었다. 그리고 수많은 벌레 같은 것이 자신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는 어떤 상태인 걸까? 발작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의 정신세계에 대한 정확한 의학적 진단은 무엇일까? 하지만 <기묘한 사랑>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의외의 행보를 보여준다. 어느 날 밤,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요시아키의 한쪽 발이 괴물처럼 변한다. 저예산 영화인지라 조악한 특수 분장으로 한눈에 합성수지로 만든, 마치 고릴라 가면 같은 고무 질감이 느껴지는 가짜 발임을 한눈에 알 수 있긴 하지만, 그의 변신은 예상치 못했고 자못 충격적이다.

여기서 우린, 혹시 이 영화의 모티브가 카프카의 「변신」은 아닌가 살짝 의심하게 된다.(게다가 요시아키는 벌레가 자신의 의식을 지배한다고 말하지 않던가!). 구로사와 기요시 영화의 침울한 톤과 카프카가 만난 영화? 그런데 영화는 예상을 빗나간다. 다음 날 사카시타가 방문해 최면 요법을 걸자 요시아키는 소리를 지른다. “이소니레가니마레아모!” 그러자 유리잔이 깨지고, 요시아키는 발작을 일으키며 오른팔의 변이를 일으킨다. 
 
기묘한 사랑

기묘한 사랑

결국 다시 병원에 격리되는 요시아키. 이후 의사 사카시타는 케이코를 찾아와 이상한 말을 한다. 요시아키가 내뱉은 말이 인간과 동물의 의사소통 언어라는 것이다(이 단어의 의미는 이후 ‘세계의 총의(總意)’, 즉 인간을 제외한 모든 존재의 의식으로 밝혀진다). 동물과 인간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기의 존재로 회귀하는 인간? 여기서 갑자기 영화는 오컬트 장르나 <캣 피플>(폴 슈레이더, 1982) 류의 호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병원에서 탈출한 요시아키는 괴물로 변해 밤에 사람들을 해치는 연쇄살인마가 된다. 사람을 죽여 인육을 먹는 그의 모습은 좀비와 다를 바 없으며, 밤에 변한다는 점에서 늑대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집으로 찾아온 요시아키. 아내는 퇴마사를 불러 남편 안에 있는 악령을 내쫓으려 하고, 영화는 갑자기 <엑소시스트>(윌리엄 프리드킨, 1973) 같은 퇴마 호러가 된다. 여기서 방심하면 안 된다. <기묘한 사랑>의 콘셉트는 앞으로도 서너 번은 더 변해가며, 후반부엔 급기야 도시 재난 영화와 괴수 영화와 만난다. 초반부에 순진하게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렸던 관객을 무색하게 만드는, 과격한 결말인 셈이다.

데뷔작을 맞이하는 오하타 하지메 감독의 태도는 쿨하면서도 야심 차고 진실하다. 이 영화에서 발작이나 변이 같은 현상은 맥거핀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요시아키가 어떤 외부적인 초현실적 존재에 의해 사로잡혀 이런 증상을 드러내는 것처럼 냄새를 피우지만, 솔직히 감독은 그 이유를 밝히는 것 따위엔 관심 없어 보인다. 대신 그에게 중요한 건 눈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다리가 변하고, 팔이 변하고, 온몸이 변해 괴물처럼 되고, 사람을 죽여 시체를 뜯어 먹고, 얼굴이 뭉그러지고, 괴수가 되고…. 이 과정에 따라 영화는 ‘호러 판타지’라는 테두리 안에서 미친 듯이 요동치고, 관객은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야 한다. 부족한 제작비 안에서 최선을 다한 특수효과와 특수촬영이 가상하고, 너무 티 나는 컴퓨터 그래픽이 조금 안쓰럽기도 하지만, 장르적 역동성이라는 콘셉트만 놓고 본다면 <기묘한 사랑>을 능가하는 영화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기묘한 사랑

기묘한 사랑

그러면서 영화는 일본 영화의 장르적 전통과 B 무비의 유산을 소중히 계승한다. 우린 <기묘한 사랑>을 보면서 이 영화가 한 부부의 러브 스토리라는 걸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극단적 사랑 이야기’라는 일본 영화 특유의 정서는 <기묘한 사랑>에서 진정한 극단을 만난다. 영화 첫 장면, 케이코는 뭔가 악몽을 꾸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자신의 몸을 더듬고 있다. 욕구 불만 상태다. 그녀의 욕망은 남편이 괴물이 된 후에 해소된다(직접적인 섹스 신을 보여주진 않지만). 그러면서 영화는 <킹콩>이나 <미녀와 야수> 같은 괴물-여성의 순애보 성격을 띠기도 하며, 케이코는 밤거리에서 남자를 유혹해 집으로 데려와 남편에게 ‘먹이’로 주기도 한다. 곤란한 정도로 뒤섞인 결합이며, 심각한 장르적 오지랖이다.

츠카모토 신야의 <철남>(1989)를 떠올리는 것도 그다지 무리는 아니다. <철남>이 사이버 펑크의 테마 안에서 저예산 영화의 상상력을 드러낸다면, <기묘한 사랑>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부터 카프카의 소설과 오컬트 무비와 괴수 영화를 가로지르는 신체 변형의 이야기다. 여기서 오하타 감독은 그 신체에, “현대 일본 사회의 병폐” 운운하며 사회적 의미를 담는다거나, “존재의 타자성” 등을 들이대며 철학적 화두를 던지는 무리수를 두진 않는다. 대신 괴물이라는 크리처를 각종 클리셰의 격전지로 만들고, 오로지 그 결과물과 장르적 쾌감 속에서 만족한다. 오타쿠의 과시적 욕구? 혹은 아날로그적 B 무비의 상상력에 대한 오마주다.

장르 영화의 매끈하고 판타스틱한 이미지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기묘한 사랑>의 어두운 화면과 조잡한 특수효과가 불편하고 낯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겨우 53분이며, 이 시간만 투자하면 당신은 근래 들어 가장 ‘경제적인’, 홈 쇼핑 용어로 바꾼다면 ‘구성이 알찬’ 호러 한 편을 만나게 될 거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 이 영화는 내내 호러인 척 하지만, 감독은 서두부터 이 영화가 ‘어느 부부의 사랑 이야기’임을 못 박았고, 다소 기묘하긴 하지만 영화는 이 선언에서 단 한 순간도 이탈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린 믿는다. 그들의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케이코의 사랑을 통해 언젠가는 요시아키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임을. 그렇게 그들은 영원히 행복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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