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판 주말의명화
[신판주말의명화]사우스바운드 - 죽음의 고속도로
라디오 사일런스,데이빗 브룩크너,록산느 벤자민,패트릭 호배스, 2015
공포영화를 고르는 방법은 간단하다. 무조건 본다. 소재가 흥미롭거나, 취향에 따라 고어 장면이 많을 것 같거나, 귀신이 나온다거나 뭐든지 상관없다. 자신이 좋아하거나 끌리는 것을 선택한다. 하지만 소재가 무엇이건, 고어가 많이 나오건 말건, 원하는 즐거움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 아무리 설정이 그럴듯해도 긴장감이 전혀 없다면 허탕이다. 고어 장면이 많아 나오면 적당히 볼 수 있지만 그래도 마찬가지다. 공포영화를 보는 이유는 주로 하나에 집중된다. 공포감, 긴장감, 두려움을 느끼기 위해서. 하위 장르로 내려가면 단 하나의 포인트에도 만족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극단적인 마니아들에 한정한다.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연출력에 따라서 너무 차이가 난다. <링> <주온> 등을 제작하며 J-호러를 이끌었던 프로듀서 이치세 다카시게는 공포영화야말로 가장 테크니컬한 장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캐릭터가 좋고, 플롯이 뛰어나다 해도 연출력이 부족하여 지지부진하다면 공포영화로는 낙제점이다. 공포 없는 공포영화는 일반인에게 호평을 받을 수도 있지만 공포영화 마니아들에게는 비난을 받는다. 반면 <데드 캠프>처럼 너무나 식상한 소재일지라도 긴장감이 뛰어나면 찬사를 받는다.
물론 장르 영화의 특성상 관습은 중요하다. 공포영화 마니아는 특촬물 마니아 못지않게 관습을 좋아한다. 난도질 영화에서 살인마들은 언제나 뚜벅뚜벅 걸어 다닌다. 마이클 마이어스도, 제이슨도 절대로 뛰지 않는다. 그러나 열심히 달려서 도망치는 희생자들은 언제나 발목을 잡힌다. 살인마의 위엄을 지키면서도 살육의 순간은 반드시 필요하니까. 그래서 공포 패러디 영화에서는, 카메라가 찍지 않을 때 맹렬하게 뛰는 살인마를 보여주기도 한다. 관습만 제대로 보여준다면 일반 관객에게는 역겹고 식상한 영화가 되겠지만 마니아는 만족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공포영화 마니아들은 일단 모든 공포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아니면 내키는 대로 본다. 소재가 약간 흥미로운 영화를 고르긴 하지만 확률은 동일하다. 캠핑을 간 젊은이들이 살인마를 만난다. 그야말로 뻔하지만 일단 본다. 살인마의 캐릭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추격 장면이 살아 있고 죽음의 순간이 짜릿하기만 하다면 좋다. 공포영화 마니아 역시 전작이 좋았던 감독을 일단 고르고, 다음으로는 마구잡이로 본다. 대체로 실망한다. 확률은 높지 않다. 수작을 만나는 건 1/5 정도 될까. 요즘 같이 공포영화가 침체되어 있는 시대라면 수작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신중하게 고른다. 신작이 나와도 가급적 보지 않다가 감상평이 나오는 것을 기다린다.



<사우스바운드-죽음의 고속도로>(이하 사우스바운드)도 볼만하다는 말을 들은 후에야 손이 갔다. 옴니버스 공포영화다. < V/H/S: 죽음을 부르는 비디오 >가 작은 성공을 거둔 후 옴니버스 공포가 많아졌다. 일본은 아예 옴니버스가 대세다. 실화 괴담이 공포물의 주류가 되다 보니까 세밀한 플롯이 없어도 되는, 간단하면서도 임팩트가 있는 옴니버스 공포에 주력한다. <신미미부쿠로> <토리하다>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등등. 옴니버스는 길면 30분, 짧으면 3분에서 5분 정도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유가 무엇인지,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줄 필요도 없다. 길을 가다가 귀신을 만났고, 도망쳐서 겨우 벗어났다. 그런 정도로만 있어도 충분하다. 귀신이 등장하고 쫓길 때의 임팩트만 있으면 성립하니까. 하지만 실화 괴담의 유행은 공포의 근원을 깊숙하게 파고드는 기본기를 잊게 하는 경우도 많다.
<사우스바운드>는 남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접어든 이들의 이야기다. 피를 뒤집어쓰고 운전하는 남자 두 명이 있다. 재즈를 연주하는 여성 세 명이 있다. 아내와 통화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남자가 있다. 실종된 여동생을 찾아 헤매는 남성이 있다. 일단 죽음의 고속도로에 들어서면 그들은 헤어날 수 없다. 끝없이 반복하다가 결국은 죽거나 갇혀버린다. <사우스바운드>의 첫 에피소드에서는 이상한 존재가 등장한다. 휴게소에 들렀다가 같은 길을 계속 가고 있는 두 남자에게 이상한 것이 보인다. 허수아비 같기도 하고, 해리 포터 시리즈의 디멘터 같기도 하다. 그들이 뒤를 따른다. 아무리 달려도 같은 길 위에 있고, 기이한 존재들이 뒤를 따른다. 그러니까 <사우스바운드>는 초자연적인 공포영화다. 한 번 길에 들어선 후 헤어날 수 없는 가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공포물.
완전하게 독립된 이야기들은 아니고, 기묘한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들이라는 설정이 같다. 그리고 한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다음 이야기와 미세하게 겹친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기도 하고 극적인 사건으로 조우하기도 한다. 그리고 하나의 주제를 공유한다. 자책. 그들은 모두 과거에 사로잡혀 있고, 스스로를 책망한다. 죽은 딸을 위해 복수하기도 하고, 실종된 여동생을 찾아 악마 같은 존재들과 싸우기도 한다. 친구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죽음의 고속도로에 들어선 그들에게 과거를 상기시키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아니 그들이 스스로 사건을 만들기도 한다. 결과는 동일하다. 그들 모두 길 위에서 맴돈다. 살았건, 죽었건. 마치 오대양을 떠도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같기도 하다. 자신의 죄 때문에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저주에 빠져 길 위에서 방황하는 사람들.
<사우스바운드> 각각의 에피소드는 긴밀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무엇인지, 사이비 종교는 대체 무엇을 섬기는 것인지, 그들의 목적은 대체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요소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그들은 그저 꿈을 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책망하다가 스스로를 무간지옥으로 밀어 넣은 것일지도. <사우스바운드>는 무리하게 설명하지 않고,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면서 상황에만 집중한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저마다 다른 분위기에서 각각의 공포를 안겨준다. 엄청난 감흥은 없지만 계속 보게 된다. 어차피 걸작이 아니라면, 공포영화는 그것만으로도 좋다. 순간의 호기심과 긴장감을 느끼기만 한다면 만족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