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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상상극장]대륙의 밀사

김묵, 1964

[시나리오상상극장]대륙의 밀사 대표 이미지

1964년에 김묵 감독, 김동오 각본으로 만들어진 <대륙의 밀사>는 얼마 전에 소개한 <지평선은 말이 없다>와 여러모로 비슷한 부분이 많다. 일단 중국 대륙, 그러니까 한강 고수 부지 무대의 대서사극이다. 주인공도 모두 항일 투쟁을 하는 애국 투사. 단지 <지평선은 말이 없다>가 어설프게 브로맨스 분위기를 풍기는 액션물을 지향하고 있다면 <대륙의 밀사>는 할리우드 대하 서사 로맨스를 가슴에 품고 있다. 당시의 최대 스타인 엄앵란, 신성일의 캐스팅도 60년대 관객들에게는 특별한 것이었으리라.

김인이라는 독립군 투사가 열차 안에서 발각되어 일본군에게 살해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인은 죽기 전에 호씨라는 중국인 아줌마(황정순이 연기했다)에게 가죽 주머니를 맡긴다. 그 안에는 장개석으로부터 북경에 있는 조선 독립군에게 지원되는 무기의 공중 수송에 관한 암호화된 정보가 들어있나 보다. 일본군이 보기에 김인이 메시지를 전달할 사람은 카바레에서 일하는 그의 동생 김란이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라면 아무리 동생이라도 정보가 다 노출된 카바레 댄서 대신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상식적이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논리가 안 통한다.

호씨 부인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김란(엄앵란이다)은 일본군에게 쫓기다가 왕성이라는 중국 남자(신성일이다)에게 아는 척을 하며 달라붙으며 추적을 따돌린다. 장교들은 하라 중좌라는 사람이 없어서 놓친 거라고 아쉬워하는데, 아마 그 하라 중좌는 대단한 실력자인 모양이다. 

여승으로 변장해 여행길에 나선 김란은 비적 떼의 습격을 받아 겁탈당한 위기에 처하는데 마침 전에 만났던 왕성이 비적을 물리치고 김란을 구해준다. 

여기서부터 각본에 구멍이 있다. 얼마 전까지 김란이 가지고 있던 주머니가 추대인이라는 팔로군 요인의 손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추측해보면 비적이 김란에게서 강탈한 것을 추대인이 사들였다고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건 그냥 짐작일 뿐이다. 다음 장면에서 왕성은 그 가죽 주머니를 다시 사들이려 하다가 약을 먹고 기절하고 기다리고 있던 김란도 역시 같이 감금된다. 둘은 창고에서 깨어나 통성명을 하는데, 여기에 또 구멍이 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창고에 갇혀 있던 두 주인공이 다음 장면에서는 산속에 있다.

알고 봤더니 왕성은 아버지가 한국인, 어머니가 일본인이다. (<지평선은 말이 없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당시엔 쓰이지 않았을 한국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둘은 바위 밑에 오손도손 앉아 서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데... 여기에 또 구멍이 있다. 분명 둘이 키스했단 지문은 없는데, 마지막 지문이 ‘키스 상태에서 떨어졌다’인 것이다!
 

인물 관계도 및 밀서 흐름도

왕성은 김란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무슨 재료로?) 말에 태워서 팔로군 기마대를 유인하고 김란은 목적지인 패왕성의 카바레에 도착한다. 하지만 다시 쫓기는 김란. 청산이라는 중국 남자의 차에 실수로 탔는데, 이 사람은 알고 봤더니 아오야마라는 일본군 장교로, 풀어주겠다는 핑계로 김란에게 하룻밤을 요구한다. 김란은 응하는 척하다가 그를 칼로 찌르고 달아나지만 아오야마가 쏜 총에 어깨를 맞아 같은 호텔의 다른 방에서 쓰러지고 만다.

다음 장면에서 이 영화가 노린 최대의 반전이 나온다. 앞에서 다들 궁금해했던 북지 팔로군관계 정보의 최대 권위자인 하라 중좌가 드디어 등장하는데, 그게 하필이면 왕성인 것이다. 더 뻔뻔스러운 반전은 김란이 쓰러져 있는 방이 하필이면 그의 숙소라는 것이고. 

깨어난 김란에게 왕성은 자신이 일본군이란 걸 고백하지만 김란은 막무가내다. 김란의 논리에 따르면 (1) 넌 아버지가 한국인이니 한국인이고, (2) 넌 나를 사랑하니까 내 말을 들어야 한다. 한심한 왕성/하라 중좌는 이 논리를 반박하지 못한다. 남자를 설득시켰다고 확신한 김란은 밀서를 왕성에게 주고 부상당한 자기 대신 독립군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한다. 아니, 그 밀서는 팔로군에게 있는 게 아니었나? 혹시 잘못 읽은 게 아닌가 하고 다시 읽어봤지만 내용은 달라진 게 없다. 얼마 전에 마술 같이 갑자기 사라져 팔로군 손아귀에 들어갔던 밀서가 다시 마술과 같이 김란의 품 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왕성은 김란과 함께 탈출하고 결국 일본군의 총에 맞아 김란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지만 나로서는 궁금증 때문에 그의 비극적 운명에 집중할 수 없다. 도대체 그 밀서는 어떻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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