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판 주말의명화
[신판주말의명화]우드잡
야구치 시노부, 2014
생각해보자. 야구치 시노부가 우릴 실망시킨 적이 있었던가? 한국에서 <산전수전>(1999)으로 리메이크되면서 망가지긴 했지만, 첫 35mm 장편 <비밀의 화원>(1996)부터 야구치 시노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의 감성을 지닌 감독이었다. 사실 <아드레날린 드라이브>(1999)가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그래도 안도 마사노부가 있지 아니한가!) <워터 보이즈>(2001)는 극도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이후 남학생들에게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시킨 감독은 <스윙 걸즈>(2004)에서 여학생 합주반을 만들며 유쾌 발랄하고 따뜻한 드라마를 선사한다. <해피 플라이트>(2008)에선 위기의 비행기 안에서마저 웃음을 만들어내더니, <로봇 G>(2011)에선 조잡하면서도 기상천외한 특유의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리고 <우드 잡>(2014)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갈 곳은 재수학원밖에 없는 녀석이 산에서 나무처럼 성장해가는 이야기는, 역시 야구치 시노부스럽고, 여전히 소소한 재미로 가득 차 있으며, 의외로 깊이 있는 울림을 준다. 상황과 인물과 디테일을 흘러가듯 즐기며 볼 수 있는 휴머니즘 코미디. 인생에서 나무만 보는 사람들에게 숲을 보라고 조용히 타이르는 목소리. 바로 <우드 잡>이다.
이 영화는 시노부 감독의 장기인 ‘제로 투 히어로’(zero to hero) 패턴을 그대로 반영한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었던’(zero) 루저이며 오합지졸이던 청춘들이 의외의 상황에 부딪혀 갖가지 난관을 통과한 후에 ‘영웅’(hero)이 되는 이야기다. 물론 여기서 ‘영웅’은 그 어감이 지닌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우뚝 서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영웅은, 드디어 스스로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화학에서 언급되는 영웅 서사의 경로를 그대로 밟으며, 결국은 외톨이에서 벗어나 사회와 통합된다.
<우드 잡>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히라노 유키(소메타니 쇼타)는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흥청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는 우연히 산림 연수원 모집 전단지를 보고 끌린다. 평소에 이쪽 분야에 관심 있었느냐고? 그럴 리가… 태어나 나무 한 그루 심어 본 적 없는 유키를 유혹한 건 홍보 전단지의 여자 모델이었다. 그는 다음 날 기차를 타고 무작정 연수원으로 향한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이론을 빌자면, 영웅이 ‘모험의 소명’을 받은 셈. 그는 그곳에서 도망치려 하지만(소명의 거부) 결국 과정을 수료하고, 휴대전화 신호도 터지지 않는 가무사리 마을의 나카무라 임업에서 1년 동안 연수생으로 일한다. 산속의 삶은 힘들었지만 그는 마을 축제의 일원이 되면서 ‘산 사나이’로서 인정을 받는다(관문의 통과).

물론 시련과 굴욕은 이어졌다. 거머리에게 물려 사람들 앞에서 엉덩이를 노출하고, 살모사에게 물려 부은 귀가, 마치 부처상의 귀처럼 축 늘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보상이 있었다면, 전단지에 있던 그 모델이 바로 마을에 살고 있었던 것. 그녀의 이름은 이시이 나오키(나가사와 마사미). 단 홍보용 이미지처럼 조신하진 않다. 캠벨의 이론에 의하면 유키는 1년의 시간을 마치고 도시로 ‘귀환’해야 하며, 그의 곁엔 연인이 된 나오키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드 잡>의 결말은 여기서 작은 반전을 만들어낸다.
<우드 잡>은 야구치 시노부 감독 특유의 유머 감각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롱 숏의 웃음’이랄까? 억지스러운 개그 코드를 들이대기보다는, 한 발자국 물러선 카메라 안에서 인간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 웃음을 유발한다(아… 안타깝게도 이 영화의 유머 코드는 글로 설명하기엔 그 뉘앙스가 너무 강하다).
이 영화가 선사하는 또 한 종류의 웃음이라면 은근한 섹스 코미디다. 이다 요키(이토 히데아키)는 연수원 시절부터 강인한 인상을 주었던 교관으로 유키는 그의 집에서 1년 동안 숙식을 된다. 요키와 아내 리다 미키(유카)의 지상 목표는 아이를 갖는 것. 미키는 체온 그래프를 만들어 ‘그날’을 정하고, 부부는 유키를 피해 도시의 모텔로 가 거사를 치르는데, 이 설정에서 잔잔한 웃음들이 만들어진다. 마을 축제도 의미심장하다. 남성 생식기를 상징하는 거목을 잘라, 여성 생식기 모양의 거대한 짚더미에 충돌시키는 의식이 치러지는데, 의도하지 않고 훈도시만을 입은 채 거목 위에 탄 유키는 얼떨결에 제주도 돌하르방 코처럼 생식의 아이콘이 되고, 마을 여성들은 그를 어루만진다.

자연의 스펙터클
하지만 <우드 잡>이 숲에서 펼쳐지는 웃음 한마당에 그친다면, 굳이 이렇게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엔, 도시 관객들이라면 경이감을 가질 만한 자연의 스펙터클로 가득하다. 특히 나무가 넘어가는 장면의 파워풀한 느낌은 장엄함을 넘어 거룩하기까지 하며(마치 산신령이 나무를 허락해주는 듯하다), 산 위에서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는 산 사람들의 모습엔 자연과 함께하는 노동의 삶이 지닌 운치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노동요를 부르며 산에서 내려온다. “나무 하나 자르면 배부르게 먹고/소처럼 누워 코 골며 잔다/오늘도 늙는다. 오늘도 늙는다….” 어쩌면 우린 이런 삶을 희구해온 것이 아니었을까? 단순하면서도 건강하고,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삶.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며 그것을 누리는 삶.
이 대목은 가문의 이름을 걸고 임업사를 경영하는 나카무라 세이치(미츠이시 켄)의 말에서 더욱 울림을 준다. 그가 오늘 벤 나무는 100년 전에 증조할아버지가 심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100년 후의 후손을 위해 오늘도 산에 묘목을 심는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한 일의 결과는 우리가 죽은 후에 나오는 거지.” 나무를 벤다는 것은 시간을 베는 것이며, 나무를 심는 것은 시간을 심는 것이다. 이것이 도시 루저 유키가 숲에서 배운 교훈이며, 눈앞의 것만 좇으며 살아가는 근시안적인 현대인들에게 이 영화가 전하는 힐링의 메시지다.
이것은 조화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나무’와 ‘일’이 결합된 <우드 잡>이라는 제목처럼, 이 영화는 두 세계가 하나 된 모습들을 보여주며, 종종 자연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이미지들을 삽입하고 인물들은 그것을 바라본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 자연의 주인이 될 수 없으며, 그렇게 순환되는 것이 인류의 역사이며 인간의 삶이라는 거대한 철학을 영화는 힘주지 않고 너무나 편하게 전달한다.
<우드 잡>은 아직 세상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젊은 청년이 산속에서 삶의 태도를 배우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1년 후 도시로 돌아간 그는, 자신이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야 할 세상이 어디인지 어렵지 않게 결심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어느새 그에겐 용기가 생긴 것이다(‘유키’라는 이름은 한자로 ‘용기’(勇氣)다).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사족으로 원작자에 대해 소개한다면 나오키상 수상작가인 미우라 시온. 일본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어 봤을, 그리고 한 권쯤은 읽어봤을 작가로 <우드 잡>은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을 영화화한 것이다. 주인공 유키가 산에서 보낸 1년을 일기 형식으로 쓴 소설로, 미우라 시온의 작품은 「마사 & 겐」 「배를 엮다」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 집」 「천국 여행」 「흰 뱀이 잠든 섬」 「고구레빌라 연애 소동」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등 한국에서 10여 종이 출간되어 있다. <우드 잡> 외에도 여러 편이 영화화되었는데 첫 각색은 오오모리 스미오 감독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2009). 2011년엔 타츠시 오모리 감독에 의해 「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 집」이 영화화되었는데, 2013년엔 TV 시리즈로도 만들었다. 영화와 TV 시리즈 모두 에이타가 출연한다. 이시이 유야 감독의 <행복한 사전>(2013)은 한국에서도 개봉했던 작품으로, 「배를 엮다」를 각색했다.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던 영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