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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주말의명화]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

저스틴 채드윅, 2013

[신판주말의명화]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 대표 이미지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아프리칸 아메리칸을 수장으로 하는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할리우드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1960년대 남부 지방의 인종 차별을 다룬 <헬프>(2011)가 큰 사랑을 받더니, <노예 12년>(2013)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다. <셀마>(2014)는 1965년 투표권 획득을 위해 행진하던 마틴 루터 킹의 모습을 담아냈다.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2013)는 1952년부터 1986년까지 30년 넘게 8명의 대통령과 함께했던 집사의 이야기다. 스필버그는 노예제 폐지 당시의 역사를 다룬 <링컨>(2012)을, 타란티노는 흑인 히어로를 내세운 <장고: 분노의 추적자>(2013)를 만들었다.

우연일까? 아니다. 레이건 시절 람보나 코만도 같은 이른바 ‘하드 바디’ 액션 영화들이 등장했듯, 이런 변화는 분명 ‘오바마 효과’의 결과이며, 1980년대 말~1990년대 중반의 이른바 ‘블랙 시네마’(black cinema)를 떠올리게 한다. 차이는 있다. 스파이크 리, 존 싱글턴, 휴즈 형제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블랙 시네마’가 현실을 토대로 사회적 모순을 때론 과격한 방식으로 파고들었다면, 오바마 시기의 이 영화들은 과거로 돌아간다. 노예 제도가 존재했고, 흑인들에겐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았으며, 그들은 하녀와 집사와 유모로 살아가야 했던 시절. 이 영화들은 흑인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환기시키고, 그들의 투쟁을 복기하며, ‘오바마’라는 현재의 성과를 되새긴다.
 
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

이런 현상은 북미 대륙에 한정되지 않는다. 대서양 건너편, 영국에서 제작된 <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저스틴 채드윅, 2013)(이하 <만델라>)은 일종의 반성이다. 이 영화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 정책이 자행되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역사를 넬슨 만델라라는 인물을 통해 바라보면서, 영국의 폭력적인 식민 통치의 과거사를 바라본다. 만델라의 자서전을 토대로 꼼꼼하게 엮어나간 이 영화는, 한 인물에 대한 전기 영화이면서, 매우 선명하게 재현한 역사적 폭력의 영화이기도 하다. <만델라>는 자료 화면과 기록 사진들을 삽입하며,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픽션이 아님을 수시로 일깨운다.

영화를 보기 위해 플레이 버튼을 누른 후, 우린 작은 당혹감에 부딪힌다. 나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넬슨 만델라’에 대해,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건 거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전기 영화의 ‘기본적 미덕’인, 한 인물에 대한 연대기적이며 개괄적인 설명에 충실하다. 말 그대로 ‘일대기’라고 할 수 있는 <만델라>는 유년기와 청년기에서 시작해, 변호사가 된 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리더로서 투쟁의 전선에 서고, 27년 동안 감옥에 갇히며, 1994년 76세의 나이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만델라를 보여준다. 이 과정은 만델라의 개인사이며 동시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현대사다.
 
만델라를 연기한 배우들: (상단좌측부터 시계방향) 대니 글로버(만델라), 데이빗 해르우드(미세스 만델라), 시드니 포이티에(만델라와 클레르크), 모건 프리먼(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만델라를 연기한 배우들: (상단좌측부터 시계방향) 대니 글로버(만델라), 데이빗 해르우드(미세스 만델라), 시드니 포이티에(만델라와 클레르크), 모건 프리먼(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

전기 영화의 이런 서술 방식 지니는 가장 큰 난점은, 긴 시간을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가다 보면 드라마의 밀도가 떨어지면서 지루한 스토리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만델라>도 예외는 아니며, 때론 교육용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제작진과 저스틴 채드윅 감독의 ‘신의 한 수’는 만델라 역에 <토르> 시리즈(2011~ )의 헤임달이자 <퍼시픽 림>(2013)의 사령관인 이드리스 엘바를 캐스팅한 것이다. 이미 다른 선택들도 있었다. HBO의 TV 영화 <만델라>(1987)의 대니 글로버는 무난했다. 역시 TV 영화였던 <만델라와 클레르크>(1997)의 시드니 포이티에는, 포이티에 라는 인물이 할리우드에서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떠올려 보면 상징적인 캐스팅이었다.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2009)의 모건 프리먼은 최고의 싱크로율이었다. 
 
이드리스 엘바와 넬슨 만델라
이드리스 엘바와 넬슨 만델라

그렇다면 이드리스 엘바는 넬슨 만델라라는 인물의 진짜 모습에 가장 근접하려는 노력이다. 엘바의 만델라는, 우리가 표면적으로 알고 있는, 인자하고 온화한 이미지의 넬슨 만델라와 거리가 있다. 190cm의 키에 탄탄한 근육질인 엘바는(만델라는 185cm였다) 대중 앞에서 뜨거운 어조로 선동하고, 육체적 욕망 앞에서 솔직한 만델라를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긴 세월 동안 감옥 생활을 견디는 인동초 같은 이미지로 만델라를 바라봤던 일반적인 관객들에겐 꽤 신선하다. 이드리스 엘바는 묵직한 카리스마와 섬세한 감성을 통해 50년이 넘는 세월을 훌륭하게 연기해내며, 어쩌면 그의 존재감이 이 영화의 전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도 있다.

자서전을 토대로 한 만큼, <만델라>는 저항적 정치 지도자뿐만 아니라 좀 더 다각적인 모습의 만델라를 담아낸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이자, 동료인 만델라. 이런 접근 역시 이야기를 분산시킬 수 있지만, 두 번째 아내인 위니 만델라(최근 007시리즈의 머니페니 나오미 해리스가 역할을 맡았다)와의 관계는 후반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갈등 구도다. 22세 때 18세 연상의 만델라와 결혼했지만, 남편은 38년의 결혼 생활 중 27년을 감옥에 있었고, 그동안 그녀는 투쟁의 선봉에 서서 갖은 고초를 당했다. 출옥한 후 남편과는 노선 갈등을 빚으며 결국 이혼하게 되는데, 영화는 그녀가 겪었던 일과 넬슨 만델라와의 공적, 사적 관계들을 담담히 보여준다. 이런 대목들은 만델라라는 인물을 위대한 역사적 인물이 아닌, 인간관계 속에서 고뇌하고 힘겹게 결단하는 평범한 인간임을 보여준다(만델라와 친분이 있었던 U2가 주제가를 맡았다. 제목은 ‘Ordinary Love’. 즉 ‘평범한 사랑’이다. 물론 그것이 결코 쉬운 건 아니지만).
 
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여정

<만델라>는 그렇게 뛰어난 전기 영화는 아니지만, 채드윅 감독의 영화적 리듬은 분명 좀 더 다듬어야 할 구석이 있지만, 넬슨 만델라라는 인물의 진짜 얼굴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접해야 할 작품이다. 영화는 만델라라는 인물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피의 현대사’를 기교와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증오의 마음을 품었고, 그래서 투쟁의 선봉에 섰고, 그 대가로 긴 세월 동안 갇혀 있었고, 결국은 적들을 용서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며 새로운 역사의 문을 연 넬슨 만델라. 영화 <만델라>는 이 과정을 평이하지만 정직하게 그려낸다.

PS: <만델라>는 2013년 12월 5일 런던에서 시사회를 가졌고, 이 자리엔 관계자는 물론 윌리엄 왕자와 캐서린, 그리고 만델라의 딸인 진지와 제나니 등도 참석했다. 영화가 상영되던 도중, 만델라의 두 딸의 휴대전화엔 당시 병원에서 투병 중이던 넬슨 만델라가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하지만 시사회는 계속되었고, 두 사람을 제외한 관객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상영이 끝난 후 소식을 전해 들은 이드리사 엘바는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만델라의 부음을 알렸고, 2분 동안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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