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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주말의명화]더 파이널 걸스

토드 슈트라우트-슐슨, 2015

[신판주말의명화]더 파이널 걸스 대표 이미지

처음 본 슬래셔 영화는, 중학교 때 국도극장에서 본 <13일의 금요일>이었다. <오멘>과 <엑소시스트> 아니면 <월하의 공동묘지> 등 이미 보았던 공포영화에서는 귀신이나 악마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등장했다. <13일의 금요일>은 달랐다. 분명히 사람인 누군가가 정글칼이나 도끼 같은 것으로 마구 난도질한다. 액션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도가 심했다. 섬뜩했다. 물론 1편에는 제이슨이 나오지 않는다. 어린 제이슨이 나오기는 하지만 회상이고, 꿈이다. 그러니까 사이코패스가 대량살인을 벌이는 액션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2편으로 이어지며 진짜 제이슨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제이슨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된다. 번개를 맞아 무덤에서 되살아나고, 물속에 아무리 오래 있어도 죽지 않는 불로불사의 존재.

슬래셔 영화의 원조라 할 존 카펜터의 <할로윈>에 나오는 살인마 마이크 마이어스는 처음부터 악마였다. 존 카펜터는 마이어스가 순수한 악의 존재라고 말했다. 그를 쫓는 사람들은, 그의 가족조차도 어느 순간 알게 된다. 트라우마나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님을. <할로윈>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는 현실에서 가능한 이야기였다.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다가, 어머니가 죽은 후 자신의 내부에 어머니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던 비극. 그가 왜 ‘사이코’가 되었는지는 최근에 만들어진 드라마 <베이츠 모텔>에서 상세하게 그려낸다.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는 왜 어머니를 무서워하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는지. 어머니를 부활시킬 수밖에 없었는지를.

80년대의 슬래셔 영화는 섬뜩했다. 대량 살인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무서우면서도 상쾌했다. 속편이 거듭되며 무섭다기보다는 즐기는 마음으로 보게 되었다. 제이슨 그리고 많이 다르지만 <나이트메어>의 프레디는 점점 스타가 되어 갔다. 제이슨의 하키 마스크, 프레디의 줄무늬 셔츠와 손에 달린 칼을 보는 것만으로도 환호성을 지르게 된다. 아무리 무서운 것도 익숙해지면, 그 정체를 충분히 알고 나면 친숙해진다. <링>의 사다코마저도 이제는, 어떤 속편에 나와도 그저 코믹하게만 여겨진다. 캐릭터는 소중하지만 공포영화의 캐릭터는 거듭될수록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런 점에서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가 2편에서부터 코믹으로 방향전환을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지금 드라마 <애쉬 대 이블 데드>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웃으며 즐기는 과거의 향수. 그것이야말로 컬트의 미덕이다.

<더 파이널 걸스>를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80년대 슬래셔 영화에 혹한 적이 한 번은 있어야 한다. 그 때 열광했던 것이 지금은 창피한 일일지라도, 어렸을 때에 슬래셔 영화를 즐겨 보았다면 <더 파이널 걸스>는 보는 내내 낄낄거릴 수 있는 영화다. 맥스의 엄마인 아만다는 80년대 인기 슬래셔 영화 <캠프 블러드배스>에 출연했던 배우다. 하지만 공포영화에서 인기를 얻은 배우들이 대체로 그렇듯 잘 풀리지는 않았다. 진지한 배역을 맡고 싶지만 누구나 그녀를 스크림 퀸으로 기억한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은 맥스는 한참을 방황하다가 겨우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친구 오빠의 간절한 부탁으로 <캠프 블러드배스>의 상영회에 참석하게 된다.

컬트영화의 상영회가 그렇듯이, 등장인물이 술을 마시면 함께 마시고, 함께 라이터를 켜고, 이상한 행동을 따라 하며 웃는 사이에 사고가 생긴다. 화재가 나고 비상구로 나갈 수 없었던 맥스와 친구들은 스크린을 찢고 뒤편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그들이 나온 곳은 다름 아닌 영화 <캠프 블러드배스> 안이었다. 영화가 끝나야만 빠져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맥스와 친구들은 살인마인 빌리 머피를 유인하여 잡을 방법을 고안한다. 그 와중에 맥스는 엄마가 연기하는 낸시가 죽지 않을 방법을 생각한다.

맥스와 친구들은 영화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의 세계는 모든 것이 예정된 대로다. 하지만 즉흥 연기가 가능하듯 시나리오를 따르면서도 다른 결말은 가능하다. 80년대 슬래셔 영화를 제대로 패러디하면서도 새로운 경지에 이른 웨스 크레이븐의 <스크림>이 그랬듯이. 하지만 맥스와 친구들은 웨스 크레이븐이 결코 아니었고, 그들의 어설픈 계획은 어긋나기만 한다. 게다가 회상이 시작되면 그들도 함께 흑백의 과거로 돌아가야 하고, 중요한 장면에서는 갑자기 모든 동작이 슬로우 모션이 된다.

사실 아만다는 슬래셔영화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는 파이널 걸스가 아니다. 아만다가 연기하는 영화 속의 낸시는 처음에 죽어버린다. 게다가 진짜 파이널 걸스였던 폴라는 엉뚱한 짓을 하다가 맥스와 친구들의 눈앞에서 요절해버린다. 맥스는 파이널 걸이 아닌 엄마를 살리기 위해 절대로 섹스를 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이미 죽어버린 ‘파이널 걸’ 대신 처녀인 자신이 살아남기로 한다. <스크림>이 보여준 것처럼, 파이널 걸스가 동료와 함께 살아남는 것도 가능해졌으니까.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서 코미디처럼 보이는 슬래셔 영화의 공식을 가지고 노는 <더 파이널 걸스>는 추억에 기댄 유희다. 기억 속의 슬래셔 영화를 가지고 온갖 농담을 던져보는 코미디 영화. 전혀 무섭지 않고, 즐겁고 유쾌하다. 단 80년대 슬래셔 영화에 얼마큼의 애정을 갖고 있는지 비례해서 즐거움과 유쾌함의 강도가 높아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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