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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주말의명화]숏 텀 12

디스틴 크리튼, 2013

[신판주말의명화]숏 텀 12 대표 이미지

지난 2월 29일 88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으로 호명된 신예 브리 라슨. 이전까지는 레이더망에 포착된 적이 없는 배우다. 그간 배우로 또 가수로 20여 년간 연예계 경력을 쌓아 왔다고 하지만, 그녀를 수상작인 <룸>과 연결해 줄 단서는 단 하나였다. 바로 <룸>을 연출한 레니 에이버러햄슨 감독이 인터뷰마다 언급한, 그녀의 전작 <숏 텀 12>(2013) 였다. 에이버러햄슨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17살에 납치되어 무려 7년간 창고에 갇힌 채 성폭행당하고 출산을 하고, 그 아이를 키우며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한 <룸>의 주인공 조이의 인생 역정을 연기할 배우로 브리 라슨을 점찍었다고 했다. 브리 라슨의 이전 필모그래피와 별다른 접점이 없는 진지한 드라마. 이 영화가 궁금해졌다. 작년 국내에서 개봉했지만 상영관이 거의 없었고, IPTV로 거의 직행하다시피 했으니 이 시점에서 다시 끄집어낼 이유가 충분히 더해졌다. 

<숏 텀 12>의 제목인 ‘short term 12’는 청소년 보호소를 뜻한다. 부모로부터 성적 학대나 폭력을 당한 아이들이 임시로 거처하는 집단 보호소다. ‘단기(short term)’라는 말을 아예 명명하고 있는 만큼, 이곳에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계획 같은 건 없다. 그저 단순히, 보호 기간 만큼은 별 탈 없이 지내다 나가면, 기관으로서 해야 할 임무는 끝나는 셈이다. 문제는 아이들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다. 상처를 입은 어린 영혼들은 날이 서 있고 제멋대로이며, 어른에게 적대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들과 직접 매일매일 대면하는 이들이 바로 숏텀 12의 관리직원이며, 그레이스(브리 라슨)는 그 직원들 중 한 명이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효과를 자아내기 위해, 영화는 시종일관 흔들리는 핸드헬드 화면을 고수한다. 시시때때로 탈출을 시도하는 소년 새미. 18살이 되어 곧 시설을 떠나야 하는 마커스 같은 보호소 아이들은 이 ‘건조한’ 화면 속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내던져진다. 그레이스 역시 소란을 일으킨 아이에게 “넌 한 단계 강등이야, 방으로 가!”라며 냉정하게 벌칙을 준다거나, 아이들 몰래 소지품 검사를 하는 감시자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부모도 상담사도 아닌’ 안전한 보호자로서 기능하던 그녀가 이 적정선의 거리 두기에 실패하는 건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이곳에 오게 된 15살 소녀 제이든(케이틀린 디버)과의 만남 이후다. (같은 관리직원으로 일하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로 막 임신을 한 그레이스는, 과거 아버지로부터 같은 고통을 당해 아이를 낙태한 경험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그런 그레이스에게 제이든은 더 이상 보호소의 아이가 아닌, 자신처럼 아프게 성장하지 않길 바라는 보호해줘야 할 대상이 된다. 
 
제이든(케이틀린 디버)
제이든(케이틀린 디버)

<숏 텀 12>의 흥미로운 지점은, 이렇게 관리자이기에 앞서 피해자였던 한 여성이 이 부조리한 상황에 맞서면서 일종의 장르 영화로서의 구조가 확립된다는 점이다. 원장의 말처럼 관리직에게 “눈물 해석은 필요 없”으며, “성범죄자 부모를 (그들이 책임지고) 모두 고발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게 거의 자신이 겪었던 일과 유사하며 그 때문에 지금도 자신의 행복이 위협당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제 그녀는 아버지에게 다시 ‘끌려간’ 소녀를 위해 밤늦게 야구방망이를 들고 가택침입을 해서라도 보호해 줄 강인한 히로인으로 자처하기 시작한다. 요양원에 갇힌 수잔나(위노나 라이더)를 용감하게 이끌던 <처음 만나는 자유>(1999)의 카리스마 넘치던 리사(안젤리나 졸리)나, 더 나아가 연약한 여성 델마(지나 데이비스)를 보호해주는 <델마와 루이스>(1991)의 터프한 루이즈(수잔 서랜든)같은 여성들을 연상해 주게 해주는 장치다. 바로 미셸 파이퍼가 골칫거리 반항아들을 도맡고 소통하게 되는 <위험한 아이들>(1985) 같은 구조와 이 영화가 확연히 달라지는, 여성의 소통으로 이야기가 전환되는 지점이다. 

다시 브리 라슨의 이야기를 꺼낼 시점이다. 이 아슬아슬한 지켜보기에 긴장을 더하는 건 그레이스를 연기하는 브리 라슨의 연기다. 흔들리는 카메라와 호흡을 같이 하는 아이들의 불안한 움직임과 달리, 유독 그레이스의 움직임은 고정되어 있다. 그들을 붙잡아 두려는 냉정한 시선이 익숙하다 싶었는데, <룸>에서 납치, 감금이라는 끔찍한 범죄의 희생자이기에 앞서, 비극을 인지하지 못하는 아이를 다그쳐 탈출을 꾀하는 엄마가 취한 그 차갑고 냉정한 그 시선이 이미 함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쁘다는 수식어보다는, 강한 인상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마스크를 가진 그녀는 과장되게 꾸미지 않았지만, 잊기 어려운 강렬함을 내뿜으며 시종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록 많은 관객에게 소개되지 않았던 인디영화지만 <숏 텀 12>를 통해 브리 라슨의 연기는 비평가들 사이에서 회자가 되었다. 데스틴 크리튼 감독이 B급 코믹물이나 하이틴물에서 고만고만한 연기로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브리 라슨을 극적으로 탈출시킨 셈이니 그 공로가 크다. 
 
<숀 텀 12> 장편(좌측), 단편 포스터
<숀 텀 12> 장편(좌측), 단편 포스터

<숏 텀 12>는 원래 21분짜리 동명의 단편(2008)를 발전시켜 만든 작품이다. 데스틴 크리튼 감독이 대학원 졸업 작품으로 시나리오를 썼고, 그 작품이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고 다시 장편으로 제작됐다. 단편에 출연했던 배우 중 단 한 명의 배우(랩을 즐겨하는 마커스 역의 키스 스탠필드)만이 다시 장편에 출연한다. 다큐멘터리적인 지점과 장르적인 스토리라인이 혼재되어 결론에 감정이 좀 과하게 이입되며, 영화가 조금 어수선한 면이 없지 않지만 장점은 뚜렷한 작품이다. 특히 영화에는 감독이 단편에서 장편이 되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발전시킨 견지해 온 대상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이 잘 드러난다. 숏텀 12에서는 방문을 걸어 잠글 수 없는데, 자칫 아이들이 격해져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규칙이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방문이 ‘오픈’되어 있는 것과 달리, 아이들의 마음은 굳건히 닫혀있다. 영화는 아이들이 그 닫힌 문을 조금씩 여는 작업을 지켜보는데, 그 과정의 묘사의 온도가 따뜻하다. 랩을 좋아하는 흑인 소년은 랩으로 버림받은 자신의 심리를 적절하게 표현해 내는데, 관리직원들도 그런 그의 재능을 북돋아 준다. 떨어진 형제들과 가지고 놀던 낡은 인형을 빼앗긴 아이에게 다시 그 인형을 찾아다 되돌려 주는 관리직원의 마음 씀씀이도 아이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장치다. 그림과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제이든은 친구가 된 상어의 요구로 발을 하나씩 떼어줘 잡아먹힌 문어의 이야기로 자신의 다친 심경을 표현해 낸다. 첫 장면, 보호소를 탈출하던 아이로 시작된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대구법처럼 또다시 탈출을 감행하는 아이와 이를 잡으려는 관리직원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으로 마무리되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건조한 단기 청소년 보호소에 작은 희망의 기운이 느껴진 건, 나뿐만이 아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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