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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주말의명화]초크

클라크 그레그, 2008

[신판주말의명화]초크 대표 이미지

일단 감독이 클락 그레그다. 누구냐고? <어벤져스>에서 장렬히 전사했지만 TV시리즈 <에이전트 오브 쉴드>를 통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지키고 있는 필 콜슨 요원이다. 수십편의 영화에서 맹활약을 펼친 바 있는 이 배우가 사실은 작가이기도 하고 또한 감독이기도 하다. 작가로는 딱 한 편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게 바로 <왓 라이즈 비니스>, 로버트 제멕키스의 히트 스릴러였다. 지금까지 감독으로는 두 작품을 남겼다. 그중 첫 번째 작품, 말하자면 감독 데뷔작이 오늘 소개하는 <초크>다. 영화를 보기 전에 선입견 팍팍 들어가게 사전 정보를 주입하자면 일단 원작자가 어마어마하다. <파이트 클럽>의 원작 소설가인 척 팔라닉이다. 저널리스트 출신인 이 작가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 「질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소설이 이 영화의 원작인데, ‘초크Choke’는 한마디로 이종격투기에 나오는 기술 초크, 그 단어다. 조르기 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영화의 중요한 설정을 가리키는 말로, ‘질식’이 더 내용에는 맞는 번역인 셈이다. 사실 감독 클락 그레그는 2008년 <아이언 맨>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닥 많은 관객들이 알아보는 배우가 아니었는데, <초크>도 같은 해인 2008년에 나온 작품이다. 위대한 배우와 끝내주는 배우,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다. 순서대로 안젤리카 휴스턴, 샘 록웰, 그리고 켈리 맥도날드. 

영화가 시작되면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교실 같은 곳에 둥그렇게 앉아 있는 미국인들. <파이트 클럽>의 고환암 환자 모임이 반사적으로 기억 날 것이다. 같은 원작자의 영향이 느껴지는 순간, 모여 있는 사람들의 면면이 ‘섹스 중독자’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혹시 이 영화는 섹스 중독자 판 파이트 클럽?’이라는 엉뚱한 기대가 버섯처럼 솟아오르게 되는데, 그건 아니다. 아니, 맞을 수도 있다. 어쨌든 샘 록웰이 맡은 주인공 빅터는 성중독자다. 세상의 ‘거의’ 모든 여자들을 자신의 성적 접촉의 상대로 생각하며 그들이 벗은 몸을 항상 상상한다. 이 모임은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지 성중독자들끼리 정보와 기회를 교환하는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빅터는 폭발적으로 섹시한 여성, 이름마저 섹시한 니코와 모임 중간중간 빠져나가 화장실에서 정사를 벌이기도 한다. 사실 빅터는 자신의 증세를 치료할 생각조차 별로 없다. 그저 니코와 만나기 위해서 이 모임을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아, 니코로 말할 것 같으면 파스 데 라 우에르타가 분했다. 이 배우가 헤픈 여자를 연기하는 것처럼 설득력 강한 캐스팅은 드물다. 
 
샘 록웰
샘 록웰

그렇다면 주인공 빅터는 뭘 해서 먹고 사느냐? 미국의 개척시대를 재현해 놓은 테마파크에서 개척시대 사람인 척 연기하는 일종의 투어 가이드로 살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민속촌의 거지, 이장님, 처녀귀신, 광년이 등의 알바가 떠오르는데 그거 맞다. 빅터는 자신의 직업적 커뮤니티 안에서도 수많은 여성들과 성관계를 갖고 있다. 이 파트에 감독인 클락 그레그가 직접 출연한다. 빅터와 그 절친 데니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동료 투어 가이드인 찰리 역이다. 주로 대학생들이 알바를 하는 우리나라의 민속촌과는 달리 영화 속 테마파크엔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실패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같은데, 빅터가 딱 그런 케이스다. 수입도 별로 좋지 않고, 삶의 태도도 매우 불성실하며 오로지 머리 속에는 섹스밖에 없는 주인공 빅터는 가끔씩 몫돈이 필요할 때 하나의 쇼를 벌이는데 그건 바로 식당에서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질식하는 척’을 하는 거다. 그러고는 식당을 협박해 돈을 뜯어낸다? 아니다. 그렇게 질식한 것처럼 목을 잡고 주위 손님들을 둘러보다가 ‘딱 맞는’ 사람 앞에서 쓰러져 그 사람으로부터 구해지는 퍼포먼스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냐고? 그 사람은 영웅이 된다. 결국 그에게 누군가의 생명을 구했다는 뿌듯함을 선물함과 동시에 그로부터 동정심을 얻어내기 쉬운 상태가 된다. 자신의 생명을 구한 그 사람에게 자신의 가난함과 비참함을 털어놓고 금전적 지원을 얻어내는 것. 아주 오랫동안 해 온 빅터의 장기이며 삶의 변곡점들을 돌파하는 하나의 필살기이기도 하다. 
 
안젤리카 휴스턴
안젤리카 휴스턴

첫 문단에서 안젤리카 휴스턴 이야기를 했는데 왜 아직도 안젤리카 휴스턴 이야기가 안 나오느냐 현기증 난다, 이런 독자들이 계실 텐데 이제부터다. 대배우 안젤리카 휴스턴은 빅터의 어머니 역할로 등장한다. 현재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중증이다. 알츠하이머로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빅터가 병원을 자주 찾아가는데, 그 이유는 일단 어머니께 효도하는 캐릭터라기보다는 어머니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은 캐릭터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병원의 여러 직원들과 성적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빅터를 주로 자신의 변호사로 생각하고 대화를 나눈다. 어머니는 빅터를 끔찍하게 사랑하는데, 빅터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어머니와의 관계도 매우 중요한데, 빅터는 어린 시절 엄마와 떨어져 여러 양부모와 지냈다. 엄마는 치매가 오기 전부터 이미 뭔가 정신세계가 독특했는데, 양부모와 잘 살고 있는 빅터를 찾아와 함께 돌아다니다가 집에 보내고 그런 식으로 살았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절대로 말해주지 않았는데, 빅터는 이제 자신의 그 출생의 비밀이 알고 싶어졌다. 어머니가 이제 얼마 오래 살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새로 온 어머니의 담당 의사 페이지는 어머니의 병세가 지극히 악화됐음을 알린다. 이 영화의 매우 중요한 캐릭터가 이 의사 페이지다. 앞서 내가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한다고 말했던 켈리 맥도날드가 맡고 있다. 켈리 맥도날드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많은 이들이 미드 <보드워크 엠파이어>의 마가렛 역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나에게는 <트레인스포팅>에서 이완 맥그리거를 클럽에서 만나자마자 집으로 데리고 간 여고생으로 각인 돼 있다. 목소리가 특히 신뢰감 가는 배우인데, <메리다와 마법의 숲>에서 메리다 역을 맡은 배우이기도 하다. 하여튼 의사 페이지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어머니를 치료할 것을 빅터에게 제안한다. 자신의 전공이라는 줄기세포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내용누설을 피하기 위해 더 이상 묘사하지 않겠다. 

빅터는 어머니의 일기장이 집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것을 찾아낸다. 드디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인가 했더니 아니다. 어머니는 이탈리아 사람, 일기는 온통 이탈리아어로 적혀 있다.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는 의사 페이지에게 어머니의 일기를 맡겨 해석하게 하는데, 빅터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누군가의 보관된 체세포를 통해 탄생한 그의 클론이라는 사실을. 예측불가능한 스토리와 예측가능한 스토리가 새끼줄처럼 꼬여 있는 가운데 역시 <파이트 클럽> 원작자의 솜씨답게 적당히 재치있는 반전까지 도사리고 있다. 

영화 <초크>는 300만 달러라는 비교적 저예산으로 만들어졌고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이다. 이 상은 누구에게 주어졌느냐 하면 샘 록웰, 안젤리카 휴스턴, 켈리 맥도날드, 그리고 대니 역을 맡았던 브래드 윌리엄 헨케. 영화의 주요 배역들이 열연을 인정받았다. 샘 록웰이 할리우드에서 왜 그렇게 중요한 배우로 평가받는지 모르는 관객들이라면 의외의 한방을 얻어맞을 수 있다. 노년의 안젤리카 휴스턴은 아직도 괴력을 지닌 대배우라는 사실을, 켈리 맥도날드의 차원을 가늠할 수 없는 예측 불허의 연기를 맛볼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초크>다.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을 한 적이 없고, 오로지 IPTV에서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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