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판 주말의명화
[신판주말의명화]햄릿 고스트
워커 헤인즈, 2015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참고 견디는 것이 더 고결한 정신인가, 아니면 무기를 들고 고난의 바다에 대항하여 끝장을 내는 것이 더 고결한 정신인가?” 영화가 시작되면 「햄릿」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익숙할 그 구절이 흐른다. 그런데 이상하다. 셰익스피어의 명대사가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으로 흐르는 가운데, 스크린에선 다소 묘한 교차 편집이 이뤄지고 있다. 주인공 저지 본(워커 헤인스)은 무대 위에서 햄릿이 되어 연기를 하고 있지만, 교차되는 신에서 그는 옛날 스타일의 옷을 입고 숲길을 달린다. 도대체 이 두 시공간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 영화 <햄릿 고스트>는 이 도입부의 궁금증을 풀기 위한 거대한 퍼즐이다.
설마… 눈치채셨나? 맞다. <햄릿 고스트>는 시간 여행을 다룬 SF다. 햄릿의 아버지 유령이 주인공인 「햄릿」의 새로운 버전은 아닐까 싶은 문학적 제목과는 무관하게, <햄릿 고스트>는 셰익스피어 연극을 전문으로 하는 배우 저지 본이 겪는 갑작스러운 시공간 이동이다. 그날도 연극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교통사고 때문에 정신을 잃었던 저지 본이 눈을 떴을 때 그는 낯선 사람에게 이상한 그 무엇을 주입 당한다. 그리고 3년 후, 그는 무대에서 이상한 경험을 한다. 그는 「햄릿」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연극 무대에 서는데, 갑자기 그의 눈앞에 고전적 스타일의 「햄릿」 공연이 펼쳐진다. 환상을 본 것일까? 아니다. 그는 그 시공간 안으로 들어간다.

이즈음, 그에게 보 호킨스(글렌 맥)라는 경찰 한 명이 다가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자신의 증조부가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증거도 목격자도 심지어 살해된 시체도 없는데도, 억울하게 사형을 당했다는 것이다. 1920년에 일어난 그 사건이 주인공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이때부터 영화는 시간을 넘나드는 SF에서 범죄 미스터리로 변하기 시작한다. 증조부는 쪽지를 남기며, 어느 강가 근처 땅을 파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곳을 팠을 때 나온 건 운전면허증. 1920년에 플라스틱 운전면허증이 땅에 묻혔다는 것도 미스터리지만, 면허증의 주인공은 바로 ‘저지 본’이다. 이로써 오프닝 신의 궁금증에 대한 한 조각이 맞춰진다.
그렇다면 100년 전의 저지 본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저지 본의 전생일까? 다행히(?) 영화는 그런 무리수를 두진 않지만, 대신 ‘황당수’를 쓴다. 저지 본은 시간 여행을 통해 1920년에도 셰익스피어 배우로 활동했으며 「햄릿」 무대에 섰다는 것이다. 그는 그 시간대로 흘러들어 가고, 그곳에서 오디션을 거쳐 배역을 따내고, 저지 본 때문에 대니얼 브라운(대니얼 토머스 메이)라는 배우는 햄릿 역에서 밀려난다. 이후 이야기는 급격히 복잡해진다. 경찰의 증조부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의 간수가 등장하고, 현재 시간대에선 그 간수의 증손자를 만나고,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긴다.

<햄릿 고스트>는 결코, 적정 수준 이상의 제작비를 쓴 웰메이드 장르 영화가 아니다. 배우 출신인 워커 헤인스의 첫 장편 연출작인 <햄릿 고스트>의 만듦새는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있다. 컴퓨터 그래픽에선 ‘야매’ 느낌이 나고, 배우들의 연기엔 뭔가 빈 구석이 있고, 이야기의 깊이가 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관객을 붙잡고 끝까지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서서히 불가해한 일들이 펼쳐지면서 하나둘씩 단서가 주어지는데, 이상하게 그럴수록 이야기는 더욱 불가해해진다.
이건 결코 이 영화의 플롯이 엉망이라고 빈정대는 말이 아니다. <햄릿 고스트>는 저예산 영화이기에 가능한 반칙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타임머신을 소재로 하는 SF 장르는 일반적으로 큰 예산을 쓰기 마련이고, 그런 이유로 상업영화의 관습적 스토리를 지니기 마련이다. 어떤 식으로든 해피엔딩이어야 하고, 집이 있는 시공간으로 돌아와야 하고, 그 과정에서 악당은 처치되어야 한다. 그런데 <햄릿 고스트>엔 이런 ‘이야기의 강박’이 없다. 더 나아가 저지 본이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 ‘과학적’(?) 이유도 한참 뒤에 등장한다. 마치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말이다. 그리고 엔딩에 가도 그다지 뭔가 해결되었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며, 앞에서 언급한 ‘불가해한 느낌’은 정점에 달한다.
적극적으로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타임머신이나 루프를 소재로 하는 SF의 팬이라면 <햄릿 고스트>는 꼭 챙겨볼 만하다. TV 시리즈 <엑스파일>이나 <닥터 후>의 한 에피소드 같기도 하고, 존 그리샴 소설에 셰익스피어를 섞어놓은 것 같기도 한 이 영화는 SF적 설정에 범죄 미스터리를 결합하고,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드로리안을 보내라구!” 같은 썰렁한 유머를 한두 방울 떨어트린 유니크한 소품이다(잘 아시겠지만 드로리안은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에 나오는 타임머신 자동차다).

시간 여행 영화로서 <햄릿 고스트>가 가장 독특한 점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태도다. 대부분의 SF가 과거를 바꾸는 것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그럼으로써 현재의 물리적 세계가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데 <햄릿 고스트>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런 인과 관계에 관심 없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이 영화가 관심 있는 부분은… 의외로 심오하다. 이 영화는 실존에 대해 이야기하며, 한편으론 종교적이다. 기독교에서 던지는 질문들, 즉 인간은 어디에서 오며, 나는 왜 여기에 있으며, 결국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이며,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테마들이 <햄릿 고스트>에 말 그대로 ‘고스트’처럼 떠다닌다. 이 영화가 시간 여행에 대해 관점은 이것이다. 만약 내가 시간 여행을 한다면, 내 실존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했던 햄릿의 고민이기도 하다.
<햄릿 고스트>는 틀어놓고 잠깐 한눈만 팔아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 전개 스타일이 과격한 영화다. 이것은 감독의 의도이면서 동시에 약간의 어설픔일 수 있고, 이런 미숙함은 영화 전반에 걸쳐 있다. 그럼에도 일종의 퍼즐로서 이 영화는 꽤 흥미롭다. 나름 정성 들여 준비한 반전도 있으며, 장르적 관습에 대한 뒤틀기도 흥미롭다.
혹시 영화 속 연극에서 거트루드 역을 맡은 여배우가 낯익다면… 맞다. 당신은 TV 시리즈 <레밍턴 스틸>(1982~87)의 열성 팬이었던, 아마도 40~50대 관객일 것이며, 그 여배우는 ‘로라 홀트’로 등장했던 스테파니 짐발리스트다.